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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東方]의 서극[西極] 묘향산[妙香山]과 살수[薩水] 하[下], 제[第] 2편[篇]
초암집[初菴集]의 저자[著者]는, 안주[安州]의 학[學]으로 폄수[貶授]되어, 영변[寧邊]에서 살았던 분이다.
이 분은 묘향산[妙香山]에 올라 유람[遊覽]을 하면서, 직접 보고 느낀 바를 기록[記錄]으로 남겼는데, 이것이 초암집[初菴集]의 유묘향산기[遊香山記]이다.
이 유묘향산기[遊香山記]에는 묘향산[妙香山]에 대한 지리적[地理的] 위치[位置] 뿐만 아니라, 자연환경[自然環境]에 대한 중요[重要]한 내용[內容]들이 서술[敍述]되어 있다.
우리의 역사[歷史]에서 말하는 묘향산[妙香山]이, 어떠한 지역[地域]에 있는, 어떠한 산[山]인가를 다시 한 번 분명[分明]히 밝혀주는 우리 선대[先代]의 귀중[貴重]한 기록[記錄]이다.
초암집[初菴集]
유묘향산기[遊香山記]
香山一名妙香。一名太白。東史所云神人降于太白山檀木下者此也。麗時屬延州。卽今寧邊 後屬煕川。
향산[香山]은 일명 묘향산[妙香山], 일명 태백[太白]이라고 한다. 동사[東史]에 이르기를, 신인[神人]이 태백산[太白山]의 단목[檀木]아래에 강림[降臨] 하였는데 그곳이 이곳이다. 라고 하였다.
고려[高麗]때에는 연주[延州]에 속했는데, 즉 지금의 영변[寧邊]이다. 후에, 희천[煕川]에 속하였다.
地志云有三百六十菴。俗傳有八萬九菴。山之靈秀。甲於東方。而在邊奧絶遠。
지지[地志]에 이르기를, 묘향산[妙香山]에는 삼백육십[三百六十]개의 암자[菴子]가 있다고 하였다.
세속[世俗]에 전하는 말은 팔만구[八萬九] 암자[菴子]가 있다고 한다.
묘향산[妙香山]은 신령[神靈]하고 수려[秀麗]하며 동방[東方]의 대표적인 갑[甲]이 되는 산이다.
산[山]은 영변[寧邊]의 깊숙한 곳에 있으며, 영변[寧邊]과 멀리 떨어져 있다.
묘향산[妙香山] 계곡[谿谷]의 여름 전경[全景]
余以去年秋。貶授安州學。其始來。
내가 지난해 가을에 안주[安州]의 학[學]으로 폄수[貶授]되어 이곳에 왔다.
登百祥樓遙望。香山在雲烟百里之外。
백상루[百祥樓]에 올라 멀리 바라보니, 향산[香山]이 구름과 연무[ 煙霧]가 자욱한데 백리[百里]밖에 있었다.
旣踰月。宿糧趍寧邊。遇雨數日。始上藥山東㙜。見香爐一峯縹緲天畔。而積雪已似深冬
달을 넘기고 묵은 양곡[糧穀]을 영변[寧邊]으로 옮기는데 수일동안 비를 만났다. 약산[藥山] 동대[東㙜]에 올라 향로[香爐] 일봉[一峯]을 바라보니, 아득히 하늘과 맞닿아 있고 눈이 쌓여 있어 깊은 겨울과 같았다. [중략]
이 암산[巖山]의 저 위에 높이 솟은 암봉[巖峯]이 묘향산[妙香山]의 향로봉[香爐峯]이다.
至安心寺。有指空,懶翁二浮屠。皆麗朝祖師。牧隱撰其碑。而判典理權鑄書之。
안심사[安心寺]에 이르니 지공[指空] 나옹[懶翁]의 부도[浮屠]가 있는데, 두 사람은 고려[高麗]때의 조사[祖師]다.
목은[牧隱]을 찬[撰]한 비석[碑石]이 있는데, 그 판전[判典]은 권주[權鑄]가 쓴 것이었다.
又有西山大師浮屠碑。乃月沙李相公文。東陽尉申公筆也。
또 서산대사[西山大師]의 부도비[浮屠碑]가 있고 안에는 월사[月沙] 이상공[李相公]의 글이 있는데, 동양위[東陽尉] 신공[申公]의 글씨였다. [중략]
迤北十里。或籃或步。步皆淸流激湍。奇巖恠石。不可殫記。
비스듬히 북[北]쪽으로 십리[十里]를 가면서 혹 살피기도 하고 혹 걸으면서 발길을 옮기다 보니, 맑은 물이 흐르고 물이 빠르게 굽이쳐 흐르는데 기암[奇巖] 괴석[恠石]이 즐비하여 이루 다 기록[記錄] 할 수가 없었다. [중략]
묘향산[妙香山] 계곡[谿谷]에 있는 기암[奇巖] 괴석[恠石]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로 많다.
將及所謂上院菴。有鐵鎖高垂者二處。攀而上則危突兀。巨壑谽谺。㙜名引壺。
거의 못미처서 상원암[上院菴]이 있는데, 오르는 곳 두 곳에 쇠줄이 드리워져 있었다. 쇠줄을 잡고 오르니 위태롭게 우뚝하게 높이 솟아올라 있고, 큰 골자기가 훤히 트인 곳에 대[㙜]가 있는데, 인호대[引壺㙜]라고 하였다.
묘향산[妙香山]의 이른 봄 전경[全景]
묘향산[妙香山]에는 기록[記錄]대로 기이[奇異]하고 거대한 암봉[巖峯]이 즐비하다. 당시[當時]에 어느 암봉[巖峯]을 가리켜 인호대[引壺㙜]라고 불렀는지 지금은 알기 어렵다.
可坐可行。有二瀑從寺前絶壁倒流。左瀑長可數十百丈。飛湍噴沫。如垂虹濺珠。右瀑
쉬었다가 다시 가는데 두 개의 폭포[瀑布]가 절 앞의 절벽[絶壁]에서 거꾸로 떨어지고 있었다. 좌측에 있는 폭포는 가히 수십백장[數十百丈]은 되어 보이는데, 날으며 물을 뿜고 무지개를 드리우고 있는데 마치 구슬을 흩뿌리는 것과 같았다.
右瀑奔至。石壁間有穴。深不可測。名曰龍穴。
우측에 있는 폭포[瀑布]는 석벽[石壁]에 이르러 석벽[石壁]사이의 혈[穴]사이로 떨어지는데,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었다. 이름은 용혈[龍穴]이라고 하였다. [중략]
묘향산[妙香山]의 가을 전경[全景]과 폭포[瀑布]
묘향산[妙香山]에는 여러 개의 폭포[瀑布]가 있다. 묘향산[妙香山]의 폭포가 특이한 것은, 지산집[芝山集]의 유묘향산록[遊妙香山錄]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흰 비단[素練]을 절벽[絶壁]에다 늘어뜨려 놓은 것 같이 흘러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蹣跚至中峯。望見香爐。尙在天外。下視諸山。纍纍如丘垤。人皆喘喘揮汗。
지쳐서 힘들게 중봉[中峯]에 이르렀다. 바라보니 향로봉[香爐峯]이 오히려 하늘 밖에 있었다.
아래를 바라보니 여러 산들과 작은 구릉들이 겹겹[纍纍]이 쌓여 있었다. 모두 숨을 돌리며 땀을 흘렸다. [중략]
묘향산[妙香山]의 가을 전경[全景]
저 위에 뾰족 하게 높이 솟은 상봉[上峯]이 묘향산[妙香山]에서 제일 높은 향로봉[香爐峯]이다.
行十餘里。極力躋上。四望鴻濛。如長白巨嶽。皆在眼底。極目數千里。海氣淼冥。不可復辨。
다시 십여리[十餘里]를 있는 힘을 다하여 올라 사방[四方]을 바라보니, 천지[天地] 자연[自然]의 원기[元氣]가 그대로 쌓인 장백[長白]의 거악[巨嶽]이 눈 속으로 들어왔다.
시력[視力]이 수[數] 천리[千里]에서 다하는데, 아득히 먼 바다의 어두운 기운은 분별[分別] 할 수가 없었다.
묘향산[妙香山]의 북[北]쪽에 있는 장백산[長白山] 줄기의 대령[大嶺]이다. 한 여름 산[山] 기슭에는 초목[草木]이 푸르지만 정상[頂上]에는 눈이 하얗게 쌓인다.
저 멀리 아득하게 백설[白雪]을 이고 있는 태산준령[泰山峻嶺]들은, 장백산[長白山]의 주봉[主峯]과 멀지 않은 산봉[山峯]들이다.
自山腰杜鵑花始吐萼。其上無草木。但香檀樛屈成藤。峯頂尙有厚雪。
이 산[山]은 허리부터 두견화[杜鵑花]가 꽃을 토하고 그 위로는 초목[草木]이 없다.
다만 향단[香檀]이 밑으로 굽어 등나무 덩굴같이 자랄 뿐이다. 봉[峯]우리의 정상[頂上]에는 늘 백설[白雪]이 두텁게 쌓인다.
장백산[長白山] 거악[巨嶽]의 전경[全景]이다. 초암집[初菴集]의 기록[記錄]대로 장백산[長白山] 거악[巨嶽]의 정상[頂上]에는 항상 백설[白雪]이 두텁게 쌓여있다.
北有毗盧峯。與爐相屬。而自古無人跡。
북[北]쪽에 있는 비로봉[毗盧峯]은 향로봉[香爐峯]과 이어진 산[山]이다. 이 곳에는 자고이래[自古以來] 사람의 발길이 닿은 적이 없다.
故登毗盧者。自山下別有一路。旣登爐不復戀毗盧。以高絶相敵也。
그러므로 비로봉[毗盧峯]에 오르려는 자는, 산 아래 별도의 다른 길을 택해서 간다. 이미 향로봉[香爐峯]에 오르면, 다시 비로봉[毗盧峯]을 마음에 두지 않는다. 더 없이 뛰어나고 높은 것은 이 두 산[山]이 서로 비슷하다. [중략]
明朝欲見檀君㙜。迆東北數里。有內賓鉢。又北上約二里至檀窟。巨巖擘作兩壁爲窟。內可容百人。俗傳檀君所降處。
내일은 단군대[檀君㙜]를 보려고 하였다. 동북[東北]으로 비스듬히 수[數] 리[里]에 안으로 빈발[賓鉢]이 있고, 또 북[北]쪽 위로 약 이리[二里]에 이르니 단군굴[檀君窟]이 있는데, 거암[巨巖]을 손으로 만든 것 같이 양[兩]쪽으로 벽[壁]이 있고, 굴[窟]안은 가히 백[百]명이 사용 할 만 하였다.
세속[世俗]에서는 단군[檀君]이 여기에 강림[降臨] 하였다고 전[傳]해지고 있다.
이 석굴[石窟]을 단군굴[檀君窟]이라고 하였을까 ? 이 석굴[石窟]안으로 들어가면 자못 넓다. 묘향산[妙香山]에는 여러 개의 석굴[石窟]이 있기 때문에, 당시[當時]의 사람들이 어느 석굴[石窟]을 단군굴[檀君窟]이라고 했는지 단정[斷定] 할 수 없다.
夜與共飮普賢。明日出山。
밤에 보현사[普賢寺]에서 같이 차를 마시고 내일 산[山]을 출발하기로 하였다. [중략]
초암집[初菴集]에서는, 향로봉[香爐峯]의 정상[頂上]에서 사방[四方]을 바라보며 묘향산[妙香山]의 향로봉[香爐峯]에서 바라보이는 지리[地理]와 그 자연환경[自然環境]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향로봉[香爐峯]에 올라 사방[四方]을 바라보니,.......... 천지[天地] 자연[自然]의 원기[元氣]가 그대로 쌓인 장백[長白]의 거악[巨嶽]이 눈 속으로 들어왔다.
시력[視力]이 수[數] 천리[千里]에서 다하는데, 아득히 먼 바다의 어두운 기운은 분별[分別] 할 수가 없었다.
이 산[山]은 허리부터 두견화[杜鵑花]가 꽃을 토하고 그 위로는 초목[草木]이 없다.
다만 향단[香檀]이 밑으로 굽어 등나무 덩굴같이 자랄 뿐이다. 봉[峯]우리의 정상[頂上]에는 늘 백설[白雪]이 두텁게 쌓인다.
장백산[長白山]의 한 줄기가 뻗어내려 압록강[鴨綠江]의 연안[沿岸]에 자리 잡은 것이 묘향산[妙香山]이라고 하였다.
지금도 묘향산[妙香山]에 올라 사방[四方]을 바라보면, 장백산[長白山]의 층층[層層] 첩첩[疊疊]으로 쌓인 태산준령[泰山峻嶺]이 한 눈에 들어온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장백산[長白山]의 전경[全景], 저 멀리 아스라이 보이는 설산[雪山]은, 백두산[白頭山]의 주봉[主峯]과 백두산[白頭山]의 동[東]쪽 산봉[山峯]들이다.
초암집[初菴集]의 저자[著者]가 말하는 대로, 이 산[山]들은 산기슭에는 초목[草木]이 푸르게 자라고 있으나,
점점 올라 갈수록 나무와 풀은 자라지 못하고, 눈 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이름 모를 꽃들이, 대자연[大自然]의 원기[元氣]를 담아 가끔 빙설[氷雪]속에서 꽃을 피우고 있을 뿐이다.
그늘진 벼랑이나 산[山]의 정상[頂上]에는 사계절[四季節]내내 빙설[氷雪]이 하얗게 쌓여 있으며, 한 여름에도, 산[山] 기슭에는 초목[草木]이 푸르나, 산[山]의 정상[頂上]에는 백설[白雪]이 하얗다.
역사[歷史]에서 말하는 장백산[長白山]의 거악[巨嶽]들은, 당시[當時]나 오늘날의 지금에도 이러한 자연환경[自然環境]에 변함이 없다.
초려집[草廬集]의 저자[著者]는 약산동대[藥山東臺]의 시[詩]에서 이르기를,......... 맑은 약산[藥山]의 강[江]은 만리[萬里]에 길다. 晴江萬里長 고 하였다.
묘향산[妙香山]에서 발원[發源]하는 청천강[淸川江]인 살수[薩水]가 만리[萬里]의 긴 강[江]이라,....... 식민[植民]의 반도사관[半島史觀]을 배워온 사람들은 이해[理解] 하려고 해도 이해 할 수 없는 구절[句節]일 것이다.
옛 사람들은 압록강[鴨綠江]을 천하[天下]의 삼대수[三大水]라고 하였다. 지금도 우리가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면 이를 고증[考證]하고 증명[證明]하여, 분명[分明]하게 확인[確認] 할 수 있다.
초려집[草廬集]
약산동대[藥山東臺]
약산의 암석[巖石]은 천년[千年]을 지나 왔고 藥石千年在
맑은 약산[藥山]의 강[江]은 만리[萬里]에 길 구나. 晴江萬里長
문을 나서 일장[一場] 대소[大笑] 하며 出門一大笑
홀로 기대여 석양[夕陽]을 바라 보노라. 獨立倚斜陽
청천강[淸川江]이라고 기록[記錄]된 살수[薩水]는, 옛적에 현지[現地]에서 압록강[鴨綠江]이라고도 불렸으며,
서[西]쪽으로 흘러들어 역사[歷史]에서 서해[西海]라고 부르던 오늘날 복해[福海]인 오륜고호[乌伦古湖]의 물과 합류[合流]한다.
청천강[淸川江]인 살수[薩水]가 서해[西海]로 들어간다고 하는 것은, 복해[福海]의 물과 합류[合流]하는 이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청하[靑河]가 흘러드는 복해[福海]인 오륜고호[乌伦古湖] 전경[全景]
옛 사람들은 압록강[鴨綠江]을 청하[青河]라고도 불렀다. 묘향산[妙香山]의 동남[東南]쪽에서 발원[發源]하는 청하[靑河]는, 서북[西北]으로 복해[福海]인 오륜고호[乌伦古湖]로 흘러든다.
다시 복해[福海]를 나가, 묘향산[妙香山]에서 발원[發源]하는 청천강[淸川江]인 살수[薩水]와 합류[合流]하여,
북[北]으로 흘러, 장백산[長白山]에서 발원[發源]하는 압록강[鴨綠江]과 의주[義州]에서 합류[合流] 한다.
다시 요동[遼東]을 관통[貫通] 하면서 흘러 요수[遼水]와 합류[合流]하고, 오늘날 자이산호라 부르는 역사[歷史]에서 말하는 발해[渤海]로 들어간다.
묘향산[妙香山]의 서[西]쪽에 있는 이 오륜고호[乌伦古湖]를 옛 사람들은 서해[西海]라고 불렀다.
성경통지[盛京通志]를 살펴보면, 압록강[鴨綠江], 혼동강[混同江], 흑룡강[黑龍江]이 모두 장백산[長白山]에서 발원[發源]하여,
그 물줄기들이 흘러가는 지역[地域]을 자세하게 설명[說明]하고 있는데, 모두 조선사[朝鮮史]의 기록[記錄]과 다르지 않다.
황여고[皇輿考]
天下有三大水。黃河,長江,鴨綠江。是也
천하[天下]의 삼대수[三大水]는, 황하[黃河], 장강]長江], 압록강[鴨綠江]이다.
황여고[皇輿考]에서 말하는 황하[黃河]와 장강[長江]은, 오늘날 중국[中國]의 황하[黃河]와 양자강[[揚子江]인 장강[長江]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歷史]에서 말하는 황하[黃河]와 장강[長江]은, 오늘날 천산[天山]과 알타이산맥 남북[南北]을 기점[基點]으로 하여 그 서[西]쪽에 있었다.
몽경당일사 [夢經堂日史]
鴨江卽天下三大水之一。而發源於白頭山者也
압록강[鴨綠江]은 천하[天下]의 삼대수[三大水] 중에, 그 하나이다. 이 강[江]은 백두산[白頭山]에서 발원[發源]한다.
묘향산[妙香山]에서 발원[發源]하는 청천강[淸川江]인 살수[薩水]가 만리[萬里]의 긴 강[江]이다. 라고 하는 것은, 발원지[發源地]에서부터,
그 강[江]이 흘러가는 물줄기 본류[本流]의 그 물이, 하류[下流]에서 오늘날 부르는 호수[湖水]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대양[大洋]의 바다, 즉 오늘날 바다[海]라고 부르는 북극해[北極海]로 들어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옛 사람들이 호수[湖水]를 바다[海]라고 부르고 또한 그렇게 기록[記錄]을 남겼으나, 그러한 곳이 오늘날 부르는 바다[海]가 아니었음을 모두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지금도 대륙[大陸]에 있는 사람들은 그 옛날 당시[當時]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옛 사람들과 똑 같이, 옛 사람들이 바다[海]라고 한 지역들을, 모두 바다[海]라고 부르고 있다.
옛 부터 압록수[鴨綠水]를 많은 사람들이 천하[天下]의 삼대수[三大水]라고 불렀음을 사서[史書]는 기록[記錄]하고 있는데,
이러한 것은 분명[分明]하게 역사[歷史] 사실[史實]의 연원[淵源]이 있는 것이며, 압록강[鴨綠江]이 흘러 오늘날 북극[北極]의 바다로 들어가는 본[本] 모습을, 우리를 앞서 간 역사[歷史]속의 선대[先代]들이 명확[明確]히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
遼水一名 鴨渌 今云安民江
요수[遼水]는 일명[一名] 압록강[鴨綠江]인데, 지금은 안민강[安民江]이라고 한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는, 요수[遼水]를, 압록강[鴨綠江]이라고 하였다. 역사서[歷史書]에서는 압록강[鴨綠江]이 여러개의 이름을 가지고 사서[史書]에 기록[記錄] 을 남기고 있다.
그 중에서도 청하[靑河], 마자수[馬訾水], 청수[靑水] 라고도 부르고 있는데, 청천강[淸川江]의 상류[上流]와 지류[支流], 요수[遼水]의 상류[上流]와 지류[支流],
압록강[鴨綠江]의 상류[上流]와 지류[支流] 하류[下流]들은, 그 이름들이 각각 다르나, 실은 하류[下流]에서 모두 모여들어 하나의 본류[本流]가 되어 흘러가는, 하나의 큰 강[江]이다.
이 곳은 복해[福海]인 오륜고호[乌伦古湖]의 물과, 묘향산[妙香山]에서 발원[發源]하는 청천강[淸川江]인 살수[薩水], 그리고 압록강[鴨綠江]의 물이 합류[合流]하여 흘러 나가는 의주[義州] 북[北]쪽 지역[地域]의 전경[全景]이다.
이 물은 요동[遼東]을 지나면서 요수[遼水]와 합류[合流]하여 발해[渤海]로 들어간다.
보이는 우[右]측이 바로 요동[遼東]의 천리[千里] 대야[大野]이다.
강[江]을 건너면 바로 모래 사막[沙漠]이라는 연행록[燕行錄]의 기록[記錄]이 떠오르는 지역[地域]이다.
옛 사람들은, 서[西]쪽에 큰 호수[湖水]가 있으면 서해[西海]로 들어간다고 말하고, 동[東]쪽에 큰 호수[湖水]가 있으면 동해[東海]로 들어간다고 말하고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 요수[遼水]가 압록[鴨綠]이라고 말한 것이나, 사서[史書]에서 압록강[鴨綠江]이 청하[靑河]라고 한 말들은 모두 맞는 말이다.
지금도 청하[青河]는 그 이름이 그대로 남아 있다. 묘향산[妙香山]의 동남[東南]쪽에서 발원[發源]하여 서남[西南]으로 흐르다가,
서북[西北]으로 흘러들어 복해[福海]에 들었다가, 묘향산[妙香山]에서 흘러나오는 살수[薩水]와 합류[合流]하여,
백두산[白頭山]의 한 자락인 장백산[長白山]에서 흘러내리는 압록강[鴨綠江]과 합류[合流]하여, 요동[遼東]을 관통[貫通]하면서 흘러 나간다.
변경[邊境]의 천참[天塹]으로 불렸던 압록강[鴨綠江]에 대하여 설명[說明]하고 있는 역사[歷史]의 기록[記錄]들은 거마[車馬]로 실을 만큼 많이 쌓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歷史]를 거짓으로 왜곡[歪曲]하는 자들은, 이러한 역사서[歷史書]의 기록[記錄]들을 왜곡[歪曲]하여 악용[惡用]하고 있다.
압록강[鴨綠江] 구룡연[九龍淵]의 전경[全景]이다. 저 멀리 아스라이 보이는 백설[白雪]이 쌓인 준령[峻嶺]들은, 장백산[長白山]의 주맥[主脈]이다.
압록강[鴨綠江]이 변경[邊境]의 천참[天塹]으로 불린 것은 그만한 까닭이 있는 것이다.
역사[歷史]에 기록[記錄]된 천참[天塹]의 압록강[鴨綠江]은, 사진[寫眞]에서 보는 것과 같이 웅장[雄壯]하고 장엄[莊嚴]한 깊은 계곡[谿谷]을 흘러가는 큰 강[江] 이었다.
하늘이 만든 천참[天塹]의 국경[國境]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통군정[統軍亭]이 백척[百尺]의 높이로 서 있는 구룡연[九龍淵]의 형승[形勝]은, 천하[天下]에 보기드믄 장관[壯觀] 이라고 하였다.
오늘날 반도[半島]의 압록강[鴨綠江]가에 있는 통군정[統軍亭]의 형승[形勝]을, 천하[天下]의 장관[壯觀]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
동계집[東溪集]
등약산동대[登藥山東㙜]
늦은 봄 변성[邊城]의 바람 기운은 화[和]하고 春晩邊城風氣和
약산[藥山]의 동[東]쪽은 높고 험하구나. 藥山東畔上嵯峨
오랑캐의 하늘 북[北]쪽을 바라보니 천봉[千峯]에 백설[白雪]은 하얗고 胡天北望千峯雪
창해[滄海]는 서[西]쪽에 임하여 만리[萬里]에 파도를 일으킨다. 滄海西臨萬里波
역사[歷史]에 기록[記錄]된 묘향산[妙香山]은, 지금도 이러한 모습을 지니고 조금도 변함이 없으며, 지금도 묘향산[妙香山]에 올라 북[北]쪽을 바라보면, 높이 솟은 장백산[長白山]의 산봉[山峯]들은 사계절[四季節]내내 백설[白雪]이 하얗게 쌓여 있고,
장백산[長白山]에서 뻗어 내리는 그 웅대[雄大]하고 장엄[莊嚴]한 경관[景觀]은, 이를 보는 사람을 압도[壓倒]하고도 남는다.
묘향산[妙香山]의 북[北]쪽에 있는 장백산[長白山] 준령[峻嶺]의 전경[全景]이다.
오늘날 북경[北京]의 동[東]쪽 바다를 발해[渤海]라고 하는데, 고지도[古地圖]라고 이름 하는 것들은 모두 그렇게 그리고 있다.
그러나 요동[遼東]에 있는 발해[渤海]에 대한 역사[歷史]의 기록[記錄]들은, 발해[渤海]는 바다가 아니라, 큰 호수[湖水]였음을 말하고 있다.
동주집[東州集]
長白山歌贈江界金夏琳生
장백산가[長白山歌] 강계[江界]에 사는 김하림[金夏琳]에게 주다
우뚝한 장백산[長白山] 長白山屹起
천지[天地] 동[東]쪽에 서려 盤踞天地東
힘찬 기세 곧장 뻗어 푸른 하늘에 닿았네 大勢直上磨靑空
북[北]쪽으로 바다에 막혀 달리다 돌아오는 듯 北阻溟浸走却回
서[西]쪽 줄기 물과 함께 횡[橫]으로 달려 西支橫騖竝水行
마냥 일렁이는 발해[渤海]까지 달려간다. 曼行遠赴渤澥之渢渢
천리[千里]에서 한 번 서리니 千里一屈蟠
솟아나 몽라[蒙羅]와 개마[蓋馬]가 되고 發爲蒙羅蓋馬
특출하게 드높은 적유령 되었네 別爲狄踰之穹窿
네 성[四城]을 형성하여 開爲四城
큰 변방[邊方] 통제하고 控扼大藩
웅장[雄壯]한 도회지[都會地] 만들었다. 作爲都會雄 [중략]
출처 구글어스
동주집[東州集]의 이 시[詩]는, 오늘날 인공위성[人工衛星]의 사진[寫眞]을 놓고 보면, 그림과 같이 일치[一致]하고 있다.
우뚝한 장백산[長白山] 長白山屹起
천지[天地] 동[東]쪽에 서려 盤踞天地東
서[西]쪽 줄기 물과 함께 횡[橫]으로 달려 西支橫騖竝水行
마냥 일렁이는 발해[渤海]까지 달려간다. 曼行遠赴渤澥之渢渢
천리[千里]에서 한 번 서리니 千里一屈蟠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文集]
발해[渤海]는 빙 둘러 못[沼]이 되고 渤海環爲沼
부상[扶桑]은 얽히어 울이 되어 扶桑繚作籬
천년[千年]의 제회[際會]를 열었다. 千年開際會
新羅記云。膺一千年之業。新羅㮲記。九百九十九年
신라기[新羅記]에 일 천년[一千年]의 업[業]에 응했다. 하였다. 신라추기[新羅㮲記]에는 9백 9년[九十九年]이었다. 하였다.
월곡집[月谷集]
묘향산[妙香山]의 푸른 암벽[岩碧] 하늘 끝에 닿아 있고 天際香山碧
산하[山下]의 초목[草木]에는 엷은 서리가 내린다. 微霜下山木
정상[頂上]에 높이 올라 멀리 신주[神州]를 바라보니 登高望神州
발해[渤海]의 깊고 큰물은 한 줄기로 가늘구나. 渤海一泓滴
중국[中國] 사람들이 동해[東海]라고 부르던 발해[渤海]의 전경[全景], 오늘날에는 호수[湖水]라고 부르고 있으나, 옛 역사[歷史]의 기록[記錄]들은 모두 바다[海]라고 적고 있다.
고려[高麗]와 조선[朝鮮]의 사신[使臣]들은, 이 발해[渤海]를 끼고 연경[燕京]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 발해[渤海]는, 살수[薩水], 복해[福海], 압록강[鴨綠江], 요수[遼水]의 물이 모여드는 곳이다. 발해[渤海]는, 창해[滄海], 명해[溟海]라고도 불렀으며, 중국[中國] 사람들은 동해[東海]라고 하였다.
발해[渤海]는, 백두산[白頭山]인 장백산[長白山]의 기슭에서 발원[發源]한 압록강[鴨綠江]의 물이 서[西]쪽으로 흘러드는 바다와 같은 호수[湖水]를 말하고 있다.
이 발해[渤海]는, 연행록[燕行錄]에서도 빠짐없이 등장하며 역사[歷史]의 기록[記錄]으로 남겼다. 발해[渤海]의 바다에서 아침 해가 솟아오르는 광경[光景]은 천하[天下]의 장관[壯觀] 이라고 하였다.
오늘날에도 이 발해[渤海]에서 새벽에 해가 솟아오르는 모습은, 당시[當時]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함이 없어 천하[天下]의 장관[壯觀]을 연출하고 있다.
이 발해[渤海]에 대하여 조선[朝鮮]의 연행사신[燕行使臣]은 이렇게 말했다.
저들은 이 발해[渤海]를 동해[東海]라고 부르니, 중국[中國]에는 실지[實地] 바다와 같은 바다는 없는 것이다.
중국[中國]이라는 나라들, 그리고 연경[燕京]은, 이러한 지역[地域]에 있었다는 말이다.
역사서[歷史書]에는 발해[渤海]라는 명칭[名稱]이 여러 곳에 산재[散在]하고 있으나, 연경[燕京]과 요동[遼東]의 지척[咫尺]에 있던 발해[渤海]는,
압록강[鴨綠江]과 장백산[長白山]에서 발원[發源]한 요수[遼水]가 흘러드는 이 바다[海]를 발해[渤海]라고 하였음은, 역사서[歷史書]와 현지[現地]의 고증[考證]으로 증명[證明]하고도 남음이 있다.
동주집[東州集]
영변[寧邊] 이십 수[寧邊 二十首]
국란[國亂]에 오히려 가벼운 형벌 받아 國亂猶輕典
늘그막에 먼 곳에서 지내게 되었네. 年衰且遠游
긴 창이 임금을 근심하게 하고 長戈愁北極
짧은 옷으로 서주[西州]의 나그네 되었구나. 短褐客西州
삭막[朔漠]의 기운 감도는 성[城] 모퉁이의 밤 朔氣城隅夜
변경[邊境] 피리 소리 들리는 가을 邊聲笛裏秋
묘향산[妙香山]에서 발원[發源]하는 청천강[淸川江]이 복해[福海]의 물과 합류[合流]하는 지점[地點]에 있는 삭막[朔漠]의 북둔현성[北屯县城]이다.
청천강[淸川江]의 물과 묘향산[妙香山]의 동남[東南]에서 발원[發源]하는 청하[靑河]의 물이, 서북[西北]으로 흘러,
역사[歷史]에서 서해[西海]라고 부르던 오늘날의 복해[福海]인 오륜고호[乌伦古湖]에서 합류[合流]하는 곳에 있는 북둔현성[北屯县城]은, 삭막[朔漠]의 대야[大野]에 자리 잡고 있다.
현지[現地] 사람들은 이 지역[地域]을 지금도 대막[大漠]이라고 부른다. 오륜고호[乌伦古湖]는 사막[沙漠]의 바다[海]라고 부르는데, 여기서부터 요동[遼東] 요서[遼西]는 거칠 것이 없는 하나의 대야[大野]로 이어 진다.
묘향산[妙香山]이 있는 영변[寧邊]에서, 삭막[朔漠]의 기운[氣運]이 밀려온다는 것은, 묘향산[妙香山]과 영변[寧邊]은, 삭막[朔漠]의 지역[地域]과 인접[隣接]하고 있기 때문이다.
압록강[鴨綠江]을 청하[靑河]라고도 하였는데, 압록강[鴨綠江]이 자리 잡고 흘러가는 이 지역[地域]의 역사[歷史]에 대하여, 기언[記言]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기언[記言]
관서지[關西誌]
至高麗定疆域。爲浿西地。今爲平安道西京。三州,十一府,二十八郡縣。幅員千里。其星箕。其次析木。
고려[高麗] 때에 와서 강역[疆域]을 정하면서 패서[浿西]의 땅이 되었는데, 지금의 평안도[平安道] 서경[西京]이다.
3주[三州], 11부[十一府], 28군현[二十八郡縣]이고, 넓이는 1000리[千里]이며, 해당하는 별은 기성[箕星]이고, 십이성차[十二星次]에서 석목[析木]의 분야[分野]이다.
西濱燕齊之海。東接閭延,虞芮古肅愼之地。北至靑河。靑河以外。古玄菟扶餘。又其西遼東古地。
서[西]쪽으로는 연[燕]과 제[齊]의 바다에 닿아 있고, 동[東]쪽으로는 옛 숙신[肅愼]의 땅이다.
북[北]쪽으로 청하[靑河]에 이르고, 청하[靑河] 밖은 옛 현도[玄菟]와 부여[扶餘]이며, 또 그 서[西]쪽은 요동[遼東]의 옛 땅이다. [중략]
壤界。接於禹貢冀北之地。其民質實。有六國之風。
평양[平壤]의 경계[境界]가, 우공[禹貢]의 기북[冀北] 지역[地域]과 인접[隣接]하고 있기 때문에, 그곳 백성[百姓]들은 성품[性品]이 질실[質實]하여, 주[周]나라 육국[六國]의 기풍[氣風]이 있었다. [중략]
압록강[鴨綠江]과 청천강[靑川江]이 흐르는 이 지역[地域]은, 기언[記言]의 관서지[關西誌]에서 말하고 있듯이, 대막[大漠]의 땅인 요동[遼東]과 잇닿아 있었으며, 그 서[西]쪽에 연[燕]나라의 연경[燕京]이 자리 잡고 있었다.
거짓 역사[歷史] 왜곡[歪曲]의 표본[標本]을 하나 예로 들면, 지금 현재[現在], 자이산이라는 산[山]이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본래[本來]의 자이산으로, 역사[歷史]에서 말하는 자이산은 카자흐스탄의 동[東]쪽에 있다.
또 하나는 지금 몽고[蒙古]의 울란바트로에 있는 자이산으로, 이 자이산은 거짓의 역사[歷史] 왜곡[歪曲]으로 만들어진 허구[虛構]의 자이산이다.
이렇게 징기스칸 원[元]나라의 대도[大都]인 연경[燕京] 지역[地域]에 있던 자이산이, 동[東]쪽으로 5000리[五千里]를 이동[移動]하여 날아와, 역사[歷史]의 진실[眞實]을 가리고 있다.
조선사[朝鮮史]를 해체[解體]하여, 조선사[朝鮮史]를 말살[抹殺] 시키려는 자들의 흉악[凶惡]한 모략[謀略]과 사악[邪惡]함은, 이렇게 간교[奸巧]하고도 악랄[惡辣]하다.
동주집[東州集]
영변[寧邊] 이십 수[寧邊 二十首]
기이[其二]
끊어진 변새[邊塞]의 부여국[夫余國] 塞絶夫余國
산 높은 철옹성[鐵甕城] 山高鐵甕城
영변[寧邊] 부사를 절도사가 겸임하니 寧邊兼節使
주진[主鎭]은 옛 병영이라네 主鎭舊兵營
묘향산[妙香山]은 가을이 일찍 시작된다. 묘향산[妙香山]의 이른 가을 전경[全景]
기사[其四]
東臺有第一峯
동대[東臺]에 제일봉[第一峯]이 있다
산[山]이 동대[東臺]에 이르러 높이 솟으니 山到東臺湧
그 봉우리 제일로 높도다. 峯標第一懸
기오[其五]
서[西]쪽 변방[邊方]에는 늘 구름이 끼니 西塞陰常盛
남쪽 끝에는 해도 희미하다. 南端日又微
물은 이[夷]의 경계를 지나 멀리까지 흐르고 水經夷界遠
산[山]은 계문[薊門] 향해 희미하게 뻗었구나. 山向薊門稀
한[漢]나라의 부절[符節]은 어느 해에 오려는가 ? 漢節何年到
동주집[東州集]의 저자[著者]는, 영변[寧邊]으로 유배[流配]되어, 영변[寧邊]에서 8년[八年] 가까이 긴 세월을 보낸 분이다.
이분은 영변[寧邊]의 지역[地域]에 대하여, 많은 기록[記錄]과 시[詩]를 남기고 있다.
영변[寧邊]에 살면서 직접 보고 느끼며 체험[體驗]한 것을 바탕으로, 영변[寧邊] 지역[地域]의 역사[歷史]와 영변[寧邊]의 자연환경[自然環境]에 대하여,
자신의 심정[心情]을 글로서 토로[吐露]하고, 또는 기록[記錄]으로, 또는 시[詩]로서 나라를 걱정하며, 자신[自身]이 겪고 있는 얽히는 심사[心事]를 감성[感性]을 담아 그 느끼는 감흥[感興]을 시[詩]로서 노래하였다.
묘향산[妙香山]이 있는 영변[寧邊]은, 삭막[朔漠]의 지역[地域]에 있기 때문에, 늘 차가운 삭막[朔漠]의 기운[氣運]이 밀려오며 감돌고 있었고,
변방[邊方]의 애절[哀絶]하고 구슬픈 피리 소리는, 서주[西州]인 영변[寧邊]에 유배[流配]되어 온 객[客]인 저자[著者]의 마음을 늘 애닮프게 하였다.
청천강[淸川江]인 살수[薩水]가, 이[夷]즉, 조선[朝鮮]의 경계[境界]를 지나 멀리까지 흐른다.
청천강[淸川江]은 서해[西海]로 흘러드는 강[江]이다. 이[夷]의 경계[境界]를 지나 멀리까지 어느 곳으로 흘러가는 강[江]이었을까 ?
그 해답[解答]과 뜻은, 한 마디로 분명[分明]하고도 명확[明確]하다.
묘향산[妙香山]의 삼면[三面]이 두절[斗絶]하고 끊어진 만인[萬仞]의 절벽[絶壁],
삼면[三面]이 두절[斗絶] 한 이 암봉[巖峯]은, 하늘에서 단군[檀君]이 하강[下降]하였다고 전[傳]해지는 설[說]이 깃든 그 암봉[巖峯]이 맞을 것이다.
지산집[芝山集]
유묘향산록[遊妙香山錄]
又上一里所。登一臺。三面斗斷。鐵壁萬仞。攢峯環而拱之。若有所敬。山之秀氣。實聚於玆。世傳檀君降此云。
또 그 위로 1리쯤 되는 곳에 있는 한 대[臺]에 올라갔는데, 삼면[三面]이 두절[斗絶]하고 끊어진 만[萬] 길의 절벽[絶壁]이었으며, 삐죽삐죽한 산[山]봉우리들이 빙 둘러싼 채 머리를 조아리고 있어 마치 공경[恭敬]하는 자세를 취한 듯 하였는데, 산[山]의 수려[秀麗]한 기운[氣運]이 실로 이곳에 모인 것이다.
세상[世上]에서는 단군[檀君]이 이곳에 하강[下降]하였다고 전[傳]한다. [중략]
역사[歷史]에 기록[記錄]된 묘향산[妙香山]은, 반도[半島]의 평안도[平安道]에 있을 수 없는 산[山]이다.
장백산[長白山]과 압록강[鴨綠江]은 지금의 반도[半島]나, 지금의 중국[中國] 동북[東北]쪽에서 말할 수 있는 산[山]이 아니다.
장백산[長白山]에서 발원[發源]하는 압록강[鴨綠江], 그리고 그 연안[沿岸]에 있는 묘향산[妙香山]과 평양[平壤]인 서경[西京]은, 지리적[地理的]으로 어떠한 관계에 있었으며,
요동[遼東]과 연경[燕京]은 어떠한 위치[位置]에 있었을까 ?
경자연행잡지[庚子燕行雜識]
상[上]
登統軍亭。是亭正壓燕遼之界。莽蕩奇壯。非他樓閣之比。
통군정[統軍亭]에 올랐다. 이 정자[亭子]는 연경[燕京] 지방과 요동[遼東] 지방을 바로 누르고 있어 아득히 광활[廣闊]하고 광대[廣大]하며, 넓고 기이[奇異]하고 웅장[雄壯]함이 다른 누각[樓閣]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馬耳山最近。如在眼前。有遙山晻靄於望裏。乃是松鶻山云。
마이산[馬耳山]이 가장 가까워서 마치 눈앞에 있는 것 같고, 먼 산[山]이 어렴풋이 보이는 가운데 있는데, 이것이 바로 송골산[松鶻山]이라고 했다.
胡人等候使行於九連城。炊煙浮空。俗以赴燕人登玆亭爲忌。人多勸止。而余笑而不聽。竟登焉。
호인[胡人]들이 사신[使臣] 일행을 구련성[九連城]에서 기다리고 있어 밥 짓는 연기가 하늘에 떠 있다.
세속[世俗]에서는, 연경[燕京]에 가는 사람이 이 정자[亭子]에 오르는 것을 꺼린다고 하여 사람들이 모두 오르지 말라고 권했지만 나는 웃으면서 그 말을 듣지 않고 기어이 올라가 보았다.
압록강[鴨綠江] 구룡연[九龍淵]의 통군정[統軍亭] 전경[全景], 압록강[鴨綠江] 구룡연[九龍淵]의 산천[山川]은 옛 역사[歷史]의 기록[記錄]대로 장엄[莊嚴]하고 수려[秀麗]하여 천하[天下]에 그 승경[勝景]을 비길 때가 없다.
현지[現地]에서는, 오늘날에도 신[神]이 내린 선경[仙境]으로 불려지고 있다.
역사[歷史]의 기록[記錄]에 통군정[統軍亭]의 지붕은 우산과 같다고 하였다. 오늘날에도 그 우산과 같은 지붕 모양은 변하지 않았다.
이 통군정[統軍亭]이 요동[遼東]과 연경[燕京]을 내리 누르고 있다고 하였으니, 요동[遼東]과 연경[燕京]은, 이 통군정[統軍亭]의 서남[西南]쪽에 있는 것이다.
연원직지[燕轅直指]
출강록[出疆錄]
압록강기[鴨綠江記]
江在義州城西五里。不甚深闊。唐書。高麗馬訾水。出靺鞨之白山。色如鴨頭。故號鴨綠江。所謂白山者。卽長白山也。
강[江]은 의주성[義州城] 서[西]쪽 5리에 있는데, 그다지 길거나 넓지 않다. 당서[唐書]에,
고려[高麗]의 마자수[馬訾水]가 말갈[靺鞨]의 백산[白山]에서 나오는데, 색깔이 오리 머리 같으므로 압록강[鴨綠江]이라 이름 했다. 고 하였다.
이른바, 백산[白山]이란 곧 장백산[長白山]이다.
山海經稱不咸山。我國稱白頭山。白頭山爲諸江發源之祖。其西南流者爲鴨綠。
산해경[山海經]에는 불함산[不咸山]이라 했고, 우리나라에서는 백두산[白頭山]이라고 한다.
이 백두산[白頭山]이 여러 강[江]의 발원지[發源地]가 되니, 그 서남[西南]쪽으로 흐르는 것이 압록강[鴨綠江]이다.
구룡연[九龍淵]을 지나 남[南]쪽 의주[義州]로 흘러나가는 압록강[鴨綠江]의 전경[全景]
연원직지[燕轅直指]
출강록[出疆錄]
압록강기[鴨綠江記]
陳霆兩山叢談云。自淮以北。凡水皆宗大河。未有以江名者。而北之在高麗曰鴨綠江。
진정[陳霆]의 양산총담[兩山叢談]에는,
회수[淮水] 이북[以北]은 무릇 강[江]이 모두 대하[大河]를 조종으로 하고 있어 강[江]이라고 이름 한 것이 없는데, 북[北]쪽의 고려[高麗]에 있는 것을 압록강[鴨綠江]이라 한다.
出燕記 蓋江源出長白。而三水,甲山以下。至昌城,朔州。皆有崇山峻嶺以束之。至灣境。始奔放脫峽。舒其怒氣。以其野勢頗曠。至海門更無拘束處也。
연암[燕巖]의 열하일기[熱河日記]에 나타나 있다. 대개 강[江]의 근원[根源]은 장백산[長白山]에서 나오는데,
삼수[三水], 갑산[甲山]으로 해서 창성[昌城], 삭주[朔州]까지는 모두 높은 산[山]과 준험[峻險]한 고개가 있어 얽혀졌다가,
만부[灣府]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확 틔어 그 노기[怒氣]를 풀었으니, 그 들판이 자못 넓어 해문[海門]에 이르기까지 다시 얽히는 데가 없기 때문이다.
每夏秋潦漲。三江合爲一流。登高望之。有如滄海。則與江河爲三。可見於此。而名不虛矣云。
매양 여름과 가을에는 요수[潦水]가 불어나 세 강이 합쳐 하나가 되어 흐른다. 높은 데 올라가 바라보면 마치 창해[滄海]와 같아서 강하[江河]와 더불어 셋이 된다는 것을 여기에서 알 수 있으니, 이름이 헛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출처 구글어스
연행록[燕行錄]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압록강[鴨綠江]은 의주[義州]의 북[北]쪽에서, 대체적으로 서[西]쪽 남[南]쪽으로 흘러내려 의주[義州]의 삼면[三面]을 안고 흘러 나간다.
장백산[長白山]의 주봉[主峯]은, 의주[義州]의 북[北]쪽에서 동[東]쪽으로 조금 치우쳐 있다.
그러나 백두산[白頭山]을 놓고 말한다면, 의주[義州]의 정 북[正北]쪽에 있는 것이다.
江自北而西而南。抱州三面。始入海。若彎弓然。州以灣名。其以此歟
강[江]은 북[北]쪽에서 서[西]쪽으로 해서 남[南]쪽으로 포주[抱州] 삼면[三面]을 안고 흘러 비로소 바다로 들어가는데, 마치 당긴 활과 같다.
주[州] 이름을 만[灣]이라고 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중략]
위성사진 출처 구글어스
인공위성[人工衛星] 사진[寫眞]에서 보는 것과 같이, 압록강[鴨綠江]은 남[南]쪽으로 흘러 내려, 의주[義州]의 삼면[三面]을 안고 흘러 나간다.
연행록[燕行錄]의 저자[著者]가 남긴 기록[記錄]과, 단 한 치의 차이도 없다. 오늘날 지금 이 시간에도, 역사[歷史]에서 말하는 조선[朝鮮] 평안도[平安道] 의주[義州]의 압록강[鴨綠江]은 변함없이 요동[遼東]을 가로 지르며 흘러가고 있다.
고려[高麗]와 조선[朝鮮]의 서관[西關]인 평안도[平安道] 의주[義州]에 있는 압록강[鴨綠江]의 통군정[統軍亭]은, 연경[燕京]과 요동[遼東] 지방을 바로 누르고 있다고 하였다.
조선[朝鮮]의 의주[義州]에서 연경[燕京]을 가는 길은, 서[西]쪽으로 천리학야[千里鶴野]인 요동[遼東]을 거쳐 산해관[山海關]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압록강[鴨綠江]의 통군정[統軍亭]이 연경[燕京]과 요동[遼東] 지방을 바로 내리 누르고 있는 지세[地勢]라면,
연경[燕京]과 요동[遼東]은, 통군정[統軍亭]의 서남[西南]쪽 지역[地域]에 있었다는 말이다.
고지도[古地圖]를 철석같이 믿고 있는 자들은, 이러한 연행록[燕行錄]의 기록[記錄]들을 보면서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을까 ?
식민[植民]의 망국적[亡國的]인 더러운 잔재[殘在]인 반도사관[半島史觀]을 주장하는 자들의 논리[論理]라면,
연경[燕京]인 오늘날의 북경[北京]은 한국[韓國]에서 볼 때, 서해[西海]의 바다 가운데 있어야 한다.
연원직지[燕轅直指]의 압록강기[鴨綠江記]에서는, 진정[陳霆]의 양산총담[兩山叢談]을 인용[引用]하여,........... 회수[淮水] 이북[以北]은 무릇 강[江]이 모두 대하[大河]를 조종으로 하고 있어 강[江]이라고 이름 한 것이 없는데, 북[北]쪽의 고려[高麗]에 있는 것을 압록강[鴨綠江]이라 한다. 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歷史]의 기록[記錄]들이 설명[說明]하고 있는 바와 같이, 조선[朝鮮]의 장백산[長白山]과 압록강[鴨綠江]은,
대륙[大陸]의 북[北]쪽에 있는 산[山]이며, 압록강[鴨綠江]은 대륙[大陸]의 북[北]쪽을 흘러가는 대수[大水]의 장강[長江] 이었다.
우리의 역사[歷史]에 뜻을 두고, 우리 역사[歷史]의 본[本] 모습을 찾아 가는 사람들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으나,
식민[植民]의 반도사관[半島史觀]에 세뇌[洗腦]되고 찌들은 자들은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일이 있다.
오늘날의 지도[地圖]를 놓고 볼 때, 벨루하산이 자리 잡고 있는 알타이산맥의 서남[西南]쪽 지역[地域]에는, 옛날 사람들이 바다[海]라고 부르던 바다와 같은 큰 호수[湖水] 두 개가 자리 잡고 있다.
하나는 중국[中國]의 땅에 있는 복해[福海]인 오륜고호[乌伦古湖]이며, 하나는 카자흐스탄에 있는 자이산호 이다.
오륜고호[乌伦古湖]와 자이산호 사이는 지금도 대막[大漠]이라고 부르는 지역[地域]이다. 이 거대한 두 개의 호수[湖水] 사이는 사막[沙漠]의 대평원[大平原]으로 서로 연결[連結] 되어 있다.
들에서 해가 뜨고 들에서 해가 진다는 연행록[燕行錄]의 구절[句節]들을 실감[實感]하고도 남는 지역[地域]이다.
연행록[燕行錄]에서는, 요동[遼東]과 요서[遼西]를 나누고 있는데, 이 곳은 오늘날 자이산호라고 부르는 발해[渤海]를 끼고 있는 요서[遼西]의 대야[大野]이다.
요동[遼東] 의 천리[千里] 대야[大野]는, 들에서 해[海]가 뜨고 들에서 해[海]가 진다는 말이 무색[無色] 하기만 하다.
오륜고호[乌伦古湖]와 자이산호가 차지하고 있는 지역[地域]은, 두 호수[湖水]의 지면[地面]을 포함하여, 그 길이가 천리[千里]를 넘고 있다.
요동[遼東]을 천리대야[千里大野], 천리학야[千里鶴野]라고 한 말은 실로 맞는 말이다.
이 사막[沙漠]의 동[東]쪽 금산[金山] 아래에는, 오늘날의 포이진[布爾津]이 자리 잡고 있다. 이 포이진[布爾津]에서 강[江]을 건너면 바로 요동[遼東]의 사막[沙漠]으로 이어진다.
포이진[布爾津], 즉 역사[歷史]에 기록[記錄]된 옛 조선[朝鮮] 평안도[平安道]의 포주[抱州]인, 의주[義州]의 전경[全景]이다.
남[南]쪽에서 북[北]쪽으로 바라 본 의주[義州]의 모습이다. 의주[義州]의 강[江] 건너가 바로 요동[遼東]의 대막[大漠]이다.
시[詩]에서,............ 한 줄기 장강[長江]이 요양[遼陽]을 가로 막아 화[華]와 이[夷]의 지경[地境]을 나누었다. 고 한 것은 바로 이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앞에 보이는 교각[橋脚]을 통하여 흘러 나가는 물이, 묘향산[妙香山]에서 발원[發源]하는 청천강[淸川江]인 살수[薩水]와,
복해[福海]의 물이 합류[合流]하여, 북[北]쪽 의주[義州]로 흘러드는 물이다.
이 물은, 의주[義州]의 북[北]쪽으로 저 멀리 초목[草木]이 푸르게 보이는 지점[地點]에서, 장백산[長白山]에서 발원[發源]한 압록강[鴨綠江]과 합류[合流]하여, 요동[遼東]을 가로 지르며 서[西]쪽으로 흘러 나간다.
포이진[布爾津]에는 지금도 이 지역[地域]에서, 수[數] 백년[百年] 동안 대를 이어 살고 있는 토인[土人]들이 많이 있다.
지금 현재[現在], 이곳에 살고 있는 한 분을 만나 그 분의 말씀을 들었는데, 그 분 말씀이,
이곳이 바로 요동[遼東]과 요서[遼西]의 광활[廣闊]한 대막[大漠]의 벌판이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포이진[布爾津]은, 이 광활[廣闊]한 요동[遼東] 벌판의 초원[草原]지대에 자리 잡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지금 이 지역[地域]을, 요활[遼闊]의 대야[大野]로 부른다. 요서[遼西]는 지금 카자흐스탄의 땅이 되어 있다.
간결[簡潔]한 요지[要旨]로 역사[歷史]를 꿰뚫는 이 한 마디에,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 것인가 ?
포주[抱州]는, 의주목[義州牧]의 다른 군명[郡名]이다. 그들은 지금 조선[朝鮮] 평안도[平安道]의 의주[義州]를, 포이진[布尔津]으로 글자를 바꾸어 부르고 있다.
그러나 산천[山川]은 고금[古今]의 영겁[永劫]을 뛰어 넘어 옛 산천[山川] 그대로요, 역사[歷史]를 이어 살고 있는 사람들은, 비록 국가[國家]라는 이름의 옷을 달리 입고 있으나.
그들 역시 옛 역사[歷史]를 잊지 않고 있는 조선사[朝鮮史] 역사[歷史]의 후예[後裔]들이다.
우리의 역사[歷史]에서 말하는 요동[遼東]과 요서[遼西], 그리고 평안도[平安道]의 의주[義州]와 무엇이 다르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
그 지역[地域]에서 대대[代代]로 역사[歷史]를 이어 살아온 분들이 요동[遼東]과 요서[遼西]를 육성[肉聲]으로 증명[證明]하고 있다.
굳이 사족[蛇足]을 달고 말한다면, 이 지역[地域]의 전체가, 조선사[朝鮮史] 역사[歷史]의 기록[記錄]과 부절[符節]을 합한 듯이 일치[一致]하고 있다.
역사[歷史]의 기록[記錄]을 통하여 고증[考證]하고 증명[證明] 할 수 있는 산천[山川]과 자연[自然], 그리고 유물[遺物]과 유적[遺跡]들이 온전히 보존[保存]되어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생생[生生]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옛 역사[歷史]를 잊지 않고, 역사[歷史]의 맥[脈]과 혼[魂]을 정신[精神]과 심성[心性]으로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조선사[朝鮮史] 일 만년[一萬年]의 역사[歷史]를 고증[考證]하며, 증명[證明]하고 있다.
동방[東方]의 서극[西極] 묘향산[妙香山]과 살수[薩水] 하[下], 제[第] 3편[篇]에서 이어 집니다.
첫댓글 안녕하세요. <환국고려>님!
놀라운 글, 감명깊게 보고 있습니다.
압록강에 대한 의문이 풀리는 것 같습니다. 기록마다 조금씩 달라서 무척 애를 먹었는데, 하류 중류 상류등지에 따라 이름이 다르고, 흘러드는 지류에 따라 이름이 다르다 보니 많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나 봅니다.
이제 <요동요서> 역시 확실하게 자리잡게 되는 군요. '자이산호'는 해국도지에서 '재상박(宰桑泊) : 기태호(基台湖)'등으로도 불렸다고 합니다.
쉽게 말하면 '신강성은 요동(遼東)지방이요, 요서 (遼西)는 카자흐스탄 경내다'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라고 보아집니다.
이제부터 조선사의 가장 큰 의문이 풀렸다고 생각이 됩니다.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세요.
문무 선생님 안녕 하십니까 ?
오늘날 현지 사람들이, 지명이나 강 이름들을 몽고어로 바꾸고,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예나 지금이나 그 방식은 다르지 않습니다.
즉 묘향산에서 발원하는 액이제사하를, 지금의 자이산호가 있는 그 입구까지 끌고 가고 있습니다.
이곳은 카자흐스탄과 중국의 국경이 되는데, 발해인 자이산호까지 들어가는 물줄기 전체를 액이제사하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실은 압록강의 발원이 가장 긴것은 지금도 그 이름이 바뀌지 않은 청하인데, 청하가 복해인 오륜고호로 들어가고 있으나, 오륜고호는 청하의 서북인 묘향산에서 발원하는 살수와 합류하는 물이라고 봐도 무방 합니다.
오륜고호에서 합류한 청하와 액이제사하는 의주인 포이진에서 그들이 말하는 객납사하, 즉 압록강과 합류하고, 요동을 관통 하면서, 연행록에서 말하는 소요수와 대요수를 받아 들이고 한 줄기가 되어, 자이산호로 들어가는데, 이러한 강을 한줄기로 액이제사하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그 옛날 압록강이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역사에 그렇게 기록 되고 있으나, 천하 삼대수 중의 하나라는 측면에서는, 압록강 하나의 물기가 되는데, 오늘날도 이 강에 대하여 부르는 방식은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우리의 역사를 읽어 내리다 보면, 살수인 청천강을 대동강이라고 불렀다는 기록도 다수 있는데, 다 그럴만한 까닭이 있다고
보여 집니다.
다산 선생은, 우리 나라의 패수가 세군데에 있다고 말하면서, 그에 대한 논증을 하고 있습니다. 당시에도 이러했는데, 오늘날 우리가 조선사를 바라 보면서, 지나간 당시 보다 역사의 사실을 본다는 것이 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 할 수 밖에 없다고 보여 집니다.
오늘날의 중국도, 역사의 거짓과 왜곡에 있어서는 다르지 않다고 보여 집니다
지방의 토인들은 고전의 역사를 말하고, 소위 신진 문물을 먹은 자들은, 중국 최고의 명문대학을 비롯하여, 그 대학 최고의 학자라는 자들이, 고전의 원전을 들이대면 금새 탄로날 거짓 역사를, 입에 침도 바르지고 않고 뻔뻔하게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그들이 하는 짓을 보면, 56개의 소수 민족으로 나누고 있는데, 가당치도 않은 짓들 입니다. 중화의 본 고장과 그 옛 법, 그리고 그 영토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 역사에 기록된 중국 이라는 나라 들 입니다.
문무 선생님 늘 강건 하시기를 기원 드리며 물러 갑니다.
안녕하세요. <환국고려>님!
상경강역고의 '삼만위'편을 보면 : 금산(金山)의 분수령 동쪽에서 또는 북쪽에서 흘러내리는 대청하와 소청하, 그리고 요수와 토하와 애하등이 모두 모여 흘러드는 곳이 "요해(遼海)"이며, 이곳이 "요하(遼河)"의 상원(上源"이라고 하였는데, 지금 위의 내용을 보니 하천의 이름만 다를 뿐 똑같은 강들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한 가지 곧 요동요서의 기준점은 어딘가? 하는 것인데, 구글어스를 보면, '오륜고호=복해'와 '자이산호(제상박)'사이를 기준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만?
오륜고호=복해의 북쪽에는 동남쪽의 알타이산맥에 발원하여 서북쪽으로 흐르는 이르티시강이 자이산호로 들어갑니다.
그렇다면 벨루하산(백두산)에서 발원하는 압록강이 서남으로 흐르다가 이르티시강(액이제사하)으로 합류하고, 동남쪽 알타이산맥 주변에서 발원하는 청천강이 서쪽으로 흘러 오륜고호로 들어가, 자이산호는 여러 개의 물을 받고(요해), 여기서 액이제사하 본류가 되어 북쪽으로 흘러 가다가 서시베리아 분지의 여러 지류들을 만나흐르다가 오브(오비)강이 되어, 북해로 간다고 보면 대략 이해될 것 같습니다.
이게 크게 보면 '압록강 또는 요수=요하이다'라는 말씀같습니다.
그렇다면 자이산호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액이제사하를 기준하여 요동요서지방으로 나눈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봅니다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이곳을 중심으로 원전의 기록을 다시 한 번 정리를 해보고 싶습니다.
진심으로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조선사의 서쪽과 서북쪽 변경지방에 대한 드넓은 이해를 하게 됩니다.
건강하시길 빌며, 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東國與地僧覽 함경도 홍원현편에보면 성길사한즉 철목진이 태어난곳이라고 합니다. 우리문헌에서 함흥을 북경이라고 국조보감에 기록되 있는데 선생님께서는 함흥은 어디에 있다 보시는지요? 또 북경을 燕京이라 할수있는지 궁금합니다.
대부여님 안녕 하십니까 ?
함흥을 북경이라고 하는 것은, 당시에 집현전의 직제학[集賢殿直提學]으로 있던 양성지[梁誠之]의 상소[上疏]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조선왕조의 선대가 이 지역에서 일어났으니 조선왕조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지역 입니다. 그러나 함흥은 연경이 아닙니다.
함흥을 한나라의 풍패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이 또한 조선왕조가 함흥에서 일어 났기 때문에, 한나라 고조의 풍패에 비유하고 있을 뿐 입니다.
역사의 기록을 따라 함흥을 말한다면, 오늘날 알타이 산맥의 동남쪽, 지금 몽고의 서북 지역이 되는곳에 함경도의 함흥이 있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이 지역에는 바다와 같은 호수들이 여러개 자리 잡고 있는 지역 입니다. 이 지역에는 지금도 당시에 쌓았던 고성들의 일부가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이곳이 함흥이다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마지막 고증이 지금 진행 중에 있습니다. 고증이 끝나는대로 말씀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