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숲을 가꾸라
에베소서 5:15-20
하나님의 평화가 말씀을 듣는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길 빈다.
오늘은 성령강림 후 제13주일이다. 이제 창조절을 앞두고 있다. 곧 무더위도 지나고, 바람 속에서 가을의 향기를 맡을 것이다.
우리 경기중부NCC 회원인 이 목사님은 몽골 은총의 숲을 가꾸는 운동의 책임을 맡아 활동 중이다. 얼마 전까지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을 맡았었다. 종종 몽골 같이 다녀오시죠 라고 말한다.
요즘 몽골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목적이 있다. 해마다 불어오는 황사를 예방하기 위해 그 불모의 땅에 나무를 심는 것이다. 사막과 같은 그 땅에 지금 어린 묘목을 심는다면 언제 자랄까? 그게 제대로 자라기나 할까?
2008년도에 개성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는 남북관계가 좋은 시절이다. 오전에는 밤나무 묘목을 심고, 오후에는 개성공단을 방문하였다. 묘목을 심는 것은 어쩌면 방문 구실에 불과하였다. 그래도 북한사람과 남한사람 사이 평화의 숲을 가꾸는 일이었다.
과연 남북 사이를 훼방하는 황사를 막아줄 방풍림이 될수 있을까? 적이도 나무를 심는 사람은 그런 믿음으로 묘목을 사고, 심고, 기도한다.
믿음은 은총의 숲 가꾸기와 같다. 여러분 안의 어린 묘목들은 어떤가? 우리 그리스도교 믿음은 죽은 나무를 생명의 나무로 바꾸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영혼의 숲을 가꾸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1)
오늘 에베소서 본문은 믿음의 자녀에게 여러 가지 교훈을 말하고 있다.
‘..행하라, ..하지 말아라, 들어라, 이해하라, 받아라, 감사하라.’
짧은 바울의 권면은 지금 우리에게는 지당하신 말씀처럼 혹은 아주 평범한 잔소리처럼 들릴지 몰라도 당시 에베소 사람들에게는 아주 불편한 권면이었을 것이다.
한 마디로 네가 살아온 지금까지 삶의 전제를 바꾸라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네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기를 원한다면 새로운 삶을 살라는 것이다.
끊임없이 반복하는 말씀은 하나님의 지혜를 배우라는 것이다. 세상의 방법, 세상의 지식, 세상의 기준대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살라는 것이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15).
오늘 성서일과 중 요한복음은 가장 중요한 지혜를 가르쳐 준다. 예수님의 말씀이다. 어떻게 새로운 삶으로 바꾸는가? 먼저 네 음식을 바꾸라고 권면한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 6:55).
예수님은 ‘나를 먹으라, 내가 주는 떡은 세상의 생명을 위한 것’이라며,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다.
사람은 자기가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체질이 달라진다. 사람은 자기가 먹는 먹거리에 따라 자신을 바꾸어 나갈 수 있다. 이와같이 예수를 꾸준히 먹는 사람은 예수의 사람으로 바뀔 것이다. 다만 예수라는 음식은 한끼용이나, 간식거리가 아니라, 내 전 존재로 먹어야 한다. 내 몸과 영, 그 전체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은 영혼의 숲을 가꾸는 일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요 6:56-57).
2)
사도 바울은 지혜로운 자라면 삶의 습관을 바꾸라고 한다. 그동안 살았던 부정한 모습을 버리라는 것이다. 이제 네 인생을 리모델링하라. 삶의 우선순위를 바꿔라.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하나님 안에 존재한다.
누구든 사람들은 자기를 바꾸어보려고 얼마나 노력하는가? 성격을 바꾸고, 습관을 바꾸고, 사고방식을 바꾸고, 인생 전체를 송두리째 바꿔보려고 노력한다. 종교나 믿음과 상관없이 그런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이 많다.
본문을 살펴보자. 단순하다. 분위기를 바꾸어서 공동번역으로 읽어 드린다.
이 시대는 악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에게 주어진 기회를 잘 살리십시오(16).
여러분은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잘 아는 사람이 되십시오(17).
술 취하지 마십시오. 방탕한 생활이 거기에서 옵니다. 여러분은 성령을 가득히 받아야 합니다(18).
성시와 찬송가와 영가를 모두 같이 부르십시오. 그리고 진정한 마음으로 노래 불러 주님을 찬양하십시오(19).
또 모든 일에 언제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드리십시오(20).
말씀을 요약하면 그리스도인이라면 세상의 방식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경건함으로 삶을 바꾸라고 강하게 요청한다. 바로 우리가 경건 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도록 당부하고 있다.
어리석은 자는 삶을 허비한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자신의 시간을 아껴서 자기 삶을 통해 거룩하고 영원한 것을 얻을 기회로 삼는다.
교보문고 통계에 따르면 해마다 공통적인 베스트셀러는 ‘자기개발서’이다. 상위 20위 중에 무려 절 반쯤은 그런 자기개발, 심리학, 건강과 관련된 책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심사를 보더라도 사람들이 얼마나 자기를 확 바꿔보려고 하는지 알 수 있다.
한동안 자기개발서 가운데 가장 흔한 주제가 시간활용법이다. 아침형 인간이 어쩌고, 저녁형 인간이 저쩌고... 제목만 봐도 해당되지 않는 사람이 없다.
부지런한 한국 사람들은 한때 잠을 악으로 여겼다. 한국인은 적게 자고 많이 일하지만, 그러나 삶의 만족도는 낮고 자살률은 높다. 왜 이렇게 마음과 삶의 균형을 잃은 채 살고 있을까.
우리 사회를 ‘고각성 사회’라고 이르기도 한다. 정신과의사가 진료실에서 진짜 많이 듣는 얘기가 ‘머리가 쉬지 못한다’라는 말이라고 한다. 항상 각성돼 있고, 긴장한다. 실제로 환경이 그렇지 않은데, 그런 각성과 긴장이 풀어진 상태는 잘못된 상태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빈틈의 위로>(김지용)라는 책이 있다. 저자인 정신과 의사는 사람마다 ‘페르소나’(persona)와 ‘자기’(self)가 늘 대립한다고 가정한다. 여기에서 페르소나’는 자아의 가면을 뜻한다. 어릴 때부터 내가 자라온 가정이나 사회에서 나한테 요구하는 모습이 페르소나다.
‘자기’는 내가 원하는 것을 뜻한다. 나를 위하고, 내가 하고 싶은 걸 찾는 등 나의 가장 근원적인 힘이다. 페르소나와 자기는 균형이 중요하다. 자아(ego)가 자기의 목소리를 들으면 삶의 변화가 시작되지만, 이를 그냥 두지 않고 페르소나가 거세게 반격한다. 결론은 우리 삶은 투쟁하는 페르소나와 자기 사이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바울은 말한다. 주의 뜻을 깨달은 사람은 자신의 평범한 일상을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엡 3:19)으로 확장해 나갈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술기운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취함, 그 거룩하고 맑은 영성을 얻고자 한다. 신령한 공동체는 진심어린 찬양을 통해 서로 위로하고, 격려한다. 또한 그리스도인은 늘 감사하는 사람이다. 마지막 순간에도 하나님께 대해 감사를 놓지 않는다.
한 마디로 ‘네 삶의 중심을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뜻에 너를 맞추어라. 말씀을 기준으로 살아라. 영성의 생활을 가꾸어라. 지혜의 나무, 찬송의 나무, 경건의 나무, 감사의 나무를 가꾸어라. 그 나무들로 내 인생의 숲을 이루게 하라’고 권면한다.
우리 하나님의 자녀의 가장 큰 특권은 그리스도의 임재, 곧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나누는 일이다. 그 은총의 숲을 가꾸라, 그 은총을 내 인생 전체에 물들이는 것이다.
한 사람은 평생 작은 숲을 이룬다. 적어도 몇 가지 나무를 가꾸며 산다. 여러분의 숲에는 어떤 나무들이 자라는가? 지혜의 나무, 찬송의 나무, 경건의 나무, 감사의 나무가 그 중심에 있는가? 어떤 사람은 마음의 정원에 있는 가시나무 때문에 평생을 시달리며 산다.
남태평양 어느 섬의 원주민들은 나무를 쓰러뜨리기 위해 독특한 방법을 쓴다고 한다. 나무를 쓰러뜨리기 위해 사용하는 무기는 날을 잘 간 톱이 아니다. 사람의 아우성이다. 모든 주민들이 쓰러뜨릴 나무 주위에 둘러서서 3일 밤낮으로 나무를 향해 고함을 쳐댄다고 한다. 그러면 나무 속에 깃들어 있는 혼이 빠져나가면서 나무가 쓰러진다고 한다.
정말 그럴지는 모르지만, 우리말에도 ‘얼마나 시끄러운지 혼이 빠질 지경’이라고 하지 않던가?
행여 우리가 머무는 은총의 숲에 있는 나무들은 안전한가? 세상의 번거로움, 소란함, 시끄러움, 유혹, 긴장, 갈등 때문에 내 영적 생활은 훼방 받지 않는가? 술취함, 방탕함, 악한 행동이 나를 위협하지는 않는가?
오늘 말씀처럼 지혜의 나무, 찬송의 나무, 경건의 나무, 감사의 나무 그 나무들로 내 인생의 숲을 이루게 하라. 성경은 말만 하지 말고 ‘네 삶을 바꾸라!’고 한다. 사람마다 숲이 필요한 까닭이다. 영혼의 숲을 가꾸어야 한다.
3)
예수님은 당신의 숲으로 초대하신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 15:4).
주저하지 말고 예수의 사건에 동참하라. 예수의 숲으로 들어오라. 하나님의 임재하심은 우리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지혜와 평화, 위로와 힘을 공급해 주신다. 주님의 약속이다. 또한 바울은 찬양하는 일을 강조한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19).
그러니 우리는 자주 손을 들어야 한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크게 부를 뿐 아니라,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기를 속마음의 기도처럼 주를 찬양해야 한다. 이것은 예수님의 은총의 숲에 참여하는 일이다. 더 나아가 내 삶에서 가꾸는 작은 숲을 예수님의 커다란 숲의 일부가 되게 하는 일이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20).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특권이 있다. 그 특권은 그리스도의 임재를 나누는 일이며,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증거 하는 일이다. 감사하는 삶이다.
신앙생활은 진리의 숲 안에 참여하는 일이다. 함께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는 것이다.
영혼의 숲을 가꾸라.
인생의 숲을 가꾸라.
예수님의 숲으로 들어오라.
어떤 나무를 심을까? 열매를 보고 그 나무를 안다. 사랑의 나무, 기쁨의 나무, 화평의 나무... 이제 여름도 다 지났다. 여름은 열매라는 뜻인데, 가을이면 열매를 수확할 것이다. 내 영혼의 숲은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고 있는가?
여러분 자신이 그 숲을 가꾸기를 바란다. 몽골과 개성에서 꿈꿨던 소망을 계획하길 바란다. 십자가의 기적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 은총으로 말미암아 죽은 나무가 생명나무로 바뀌는 십자가의 사건이 여러분의 삶 가운데 있기를 기대한다.
여러분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은총이 늘 함께 하시길, 그 은총의 숲에 예수님의 말씀과 사랑이 깃들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