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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70s] 28
씬1 더미의 서울 대리점 앞, 거리
(자막) 3년 후
경제부흥기에 접어든 활기찬 칠십 년대의 모습이 보인다.
(인서트) 플랜카드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음악) 신중현의 ‘미인’ 깔리고.
브리샤 정도의 국산차 한 대가 도착한다.
(더미의 성격상, 외제차는 안 탈 것 같습니다. 단종 되었지만..비슷한
느낌의 차로 하시면 좋겠습니다)운전석에서 더미, 내린다.
씬2 더미의 서울 대리점 안
동춘섬유에서 생산된 기성복들이 깔끔하게 진열되어 있다.
일하는 매니저와 여직원들, 그 중 세련된 스타일의 연경이 보인다.
더미, 조용히 들어와 지켜보고 있다.
피팅룸에서, 막 옷을 갈아입은 손님 나온다. 기다리고 있던 연경,
보면서 호들갑을 떤다.
연경: 어머머! 언니~ 너무 잘 어울리신다~ 꼭, 맞춤 옷 같다~
넘, 날씬해 보여요~
손님: ..(거울 보면서) 디자인은 맘에 드는데, 어쩐지 좀 거북한데..
연경: (이리저리 보며) 새 옷이라 그래요. 제가 보기엔..진짜 딱,
손님 옷이에요.
더미: 제가 한 번 봐드려도 될까요?
연경을 비롯한, 직원들 더미를 본다. ‘사장님, 나오셨어요?’
더미, 웃으면서 고개 끄덕여 주고.. 손님의 옷을 본다.
더미: (주머니에서 초크를 꺼내, 소매에 표시한다) 소매가 좀 기네요?
손등을 너무 덮어 불편하시죠?
손님: 예. 그리구 여기두... (돌아서서 등을 보여준다)
더미: (허리춤을 잡아보고, 초크로 표시한다) 체형이 서구적이시네요.
바스트가 좀 크신데, 허리는 가늘구. 허리선을 줄여드릴께요.
(가슴께를 가리키며) 여기 있는 다트를 수정하면 답답하지 않으실
꺼예요.
손님: 수선도 해줘요?
더미: 그럼요~ 당연하죠. 꼭 맞게 고쳐드리겠습니다.
씬3 대리점 내, 작은 회의실
차를 마시는 더미와 연경.
직원들끼리 아이템 회의도 하고 잠시 휴식하는 공간이다.
연경: 고객카드! 손님이 한두 명두 아니구,
일일이 걸 어떻게 다 만들어!
더미: 디자인이 이뻐서 샀다가, 담날부터 옷장에 넣어두고, 영영 잊혀지는
옷을 만들구 싶진 않아. 고객 카드 만들면, 손님의 취향, 사이즈,
신체 특징을 한눈에 볼 수 있잖아.
연경: 우린 기성복 하는 거야..여긴 앙상블이 아니잖아.
더미: 비록 독립은 했어두, 우린 장봉실 선생님 제자야. 아무리 기성복이라두
옷에 고객을 맞추는 건 아니라고 봐..나의 의상에 혼을 싣는다..
선생님 말씀 잊지 말자.
연경: 그렇게 하라믄 해야지..(한숨쉬고) 대리점에두..다, 고객카드 만들라구 해?
더미: 응. 오늘...대구랑, 부산에 옷 보내면서, 점장한테 말하자..
따로 부탁할 것도 있고. 언니, 나 줌 도와줘.
연경: 너..또..인쇄 다시 했구나!
더미: 응. (웃는)
씬4 더미의 대리점 앞
더미, 유리문 한쪽에 연경의 도움을 받아 광고 전단지를 붙이고 있다.
(인서트) 어머니를 찾습니다.
이름: 오갓난 나이: 58세 실종 장소: 임진강 하류 찾는 사람: 딸 한더미.
연락장소: 동춘섬유 본사(54-8697), 동춘섬유 대리점.
양자와 더미가 함께 찍었던 사진 중, 양자의 부분만이 확대되어 있다.
연속으로 몇 장을 한꺼번에 붙이는..
연경: 그만 할 때두 되지 않았니? 경찰선 사망처리까지 했잖아.
더미: (손바닥으로 꼭꼭 눌러 붙인다)
연경: 삼년이믄 돌부처두 감동해서 돌아볼 시간이야...진짜 이제 그만 해.
더미: 이제 겨우 삼년이야. 나, 엄말, 평생 안구 갈 자신은 없지만...
이렇게 빨리 내려놓을 수는 더더욱 없어.
연경, 더미가 다른 쪽에 전단지를 붙이는 모습을 안쓰럽게 본다.
씬5 대구역 앞(저녁)
공공게시판에 양자를 찾는 전단지가 붙는다. ‘동춘섬유’라고 등에 프린팅 된
직원복을 입은 남자1?2, 게시판에 전단지를 붙이고 돌아선다.
거지 몰골의 아낙..보따리를 끌어안고, 발을 질질- 끌며 걸어온다. 양자다!
알콜성치매로, 한 눈에도 정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양자, 절뚝거리며 걸어와 역사를 두리번거린다.
여자 아이 하나 찐빵을 먹고 있다. 양자, 군침을 다시며 찐빵을 노려보고
있다가, 아이 양자를 보면.
양자: 맛있냐?
아이: 네!
양자: ...(입맛 다시고) 여기가..대구역이니..?
아이: 예, 할머니.
양자: 응.. 그래.. (찐빵을 보고, 입맛을 쩝쩝 다신다) 맛..있냐?
아이: ..(찐빵을 내민다) 이거...드실래요?
양자: (말이 끝나기도 전에, 휙- 낚아채서, 아구아구 먹는다)
아이의 엄마, ‘영숙아!! 열차 시간 다 됐다! 얼른 와!!’ 손짓한다.
아이, ‘예!’ 하며 뛰어가다가 문득, 공공게시판을 본다. 공공 게시판을 보던 아이,
양자를 돌아본다.
씬6 태을방직, 회장실(저녁)
더미, 선 채 사무실을 둘러본다. 최비서를 기다리고 있다. ‘태을방직 사장,
최준호’ 라는 문진이 책상 위에 놓여 있다. 더미, 착잡한 마음으로 바라본다.
(인서트) 19부, 40씬. 목폴라 때문에 처음 찾아와 본 회장실에서 고창회가
더미에게 빵을 권하던 모습.
더미: ..
문 열리고, 세월과 직급에 따라 중후해진 최비서, 황급히 들어온다.
최비서: 아가씨 오셨습니까?
더미: 잘 지내셨어요?
최비서: 예. 앉으세요. 안 그래도, 재단운영에 대해 보고 드리려고,
재단에 다녀오는 길입니다. (앉아서 서류를 넘긴다)
더미: (앉아서 서류를 받는다)
더미, 서류 위에 ‘고창회 장학재단 2/4분기 보고서’라고 적혀 있다.
더미, 서류를 꼼꼼히 본다.
더미: 도서벽지에 책 보내신 건 정말 잘하셨어요.
.잘 운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비서: 감사는..저희들이 감사하죠. 기업의 사회 환원이..외국에서나
있는 일이라 생각했는데..전 직원한테..골고루 주식을 나눠주시고..
직원들을 대신해 다시 한 번 아가씨께 감사드립니다.
더미: 아빠가..기뻐하실 꺼예요..
최비서: (고개 끄덕이고) 저흰, 아침 일찍 임원진 모두 임진강에
다녀왔습니다..회장님께 인사드리려구요. 아가씨도 함께 가셨으면
좋으셨을 텐데..
더미: (웃는) 아빠한테 따로 인사드리고 싶어서요.
씬7 임진강변(밤)
칠흑같이 어두운 밤. 물에 띄우는 작은 꽃 양초가, 동동 줄을 이어 떠간다.
초파일에 강에 띄우는 유등처럼, 자잘한 불꽃이 어두운 강물을 밝혀간다.
더미, 초를 하나 띄우는.
더미: 이건 또 엄마 꺼. (동동 띄우고, 다시 하나 띄운다) 마지막이다.
이건 또 아빠 꺼~
더미, 일어나서 꽃등이 떠내려가는 것을 지켜보며..
더미: 벌써 삼년이네.. 아빠가 나를 떠난 지도...전엔, 몸이 떠나면 마음두
떠나는 건줄 알았어요. 그게, 세상의 끝이구..영영 이별인 줄 알았어.
근데, 아니었어. 아빠...
더미, 잠시 말없이 강을 바라본다.
더미: 아빠가...내 옆을 지키고 있는 걸 마음으루 느껴요..나, 그래서
쓰러지지 않구 살 수 있었어.. 내가 천지사방에 가득한 아빠를
느끼듯이... 동영 오빠두날, 느껴줬음 좋겠어..내, 마음이 오빠
옆에 늘 같이 있다는 걸..
더미, 강을 보며 웃어보지만...표정이 아프다.
씬8 뮌헨, 대학가(오후)
(자막) 서독 뮌헨, 분데스베르(독일연방군 대학)
나무 울창한 숲길을 동영, 가방을 들고 걸어간다.
씬9 뮌헨, 동영의 집(오후)
좁지만, 단정하고 실용적으로 되어 있는 원룸형태.
커다란 책상과 가득 꽂혀 있는 책, 식탁, 침대 정도의 간단한 살림살이.
동영, 밥 한 그릇에 소시지와 오이 정도를 식탁에 차려 놓고 저녁을
먹으면서도, 독일어 원서로 된 책을 읽고 있다.
(소리) 벨 소리
동영, 책 읽는데 몰두하느라 못 듣는데 계속 이어지는 벨 소리에 그제야
책을 놓고 일어선다.
동영: Wer ist das?
(소리) 대답 없이 벨 소리만 이어진다.
동영: (고개를 갸웃하다, 문을 연다)
복도에, 빈이 서 있다. 세련된 스타일의 빈, 가방까지 들고 있다.
빈, 여전히 왼손은 주머니에 찔러 넣고, 오른손에 가방을 들었다.
동영: 빈아!!
빈: (씨익-웃는다) 잘 있었어? 형.
동영: 이 녀석!!!! 어서 와라!!
빈, 들어온다. 동영, 문을 닫고..
동영, 빈의 주머니에 찔러 넣은 왼손을 본다.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
빈, 방안 둘러보다 동영을 돌아본다.
동영: (웃으며 다가간다) 여기까지 어쩐 일이야?
빈: (가방을 한쪽에 놓고) 사우디에 바이어 만날 일이 있어서. 프랑크
푸르트에서 갈아타잖아. (웃으며) 삼년 만에 만나, 스케줄부터
체크하는 건 그렇잖아~ 감격의 포옹부터 하자구.
동영: 잘 왔다! 보고 싶었다!!
동영, 빈을 와락 끌어안는다. 빈, 처음 오른손으로 동영을 끌어안았다가,
천천히 주머니에서 왼손을 꺼내 동영을 와락- 안는다.
동영: !! (빈을 떼어내고 본다) 너...너...
빈: (왼손을 들어 동영의 눈앞에 들어준다) 아직 완전하진 못해.
그래두 의사들은 기적이라고 하네. 약도 끊었어.
동영: (눈시울이 붉어진다) 잘 됐다, 잘 됐어!! 정말 잘 됐어!!
씬10 뮌헨, 주택가 근처 야외 카페(밤)
동영과 빈, 구석진 한쪽 테이블에 앉아 있다. 두 사람, 독일 병맥주를
한 병씩 놓고 마시고 있다. 독일청년, 두어 명 가방 들고 지나가다
동영에게 인사한다.
청년: Gute Nacht!
동영: (손 들어주며) Gute Nacht!
빈: 발음 죽이는데, 완전히 독일사람 다 됐네.. 언제 돌아올 꺼야?
동영: 글쎄..(말 피하고) 너, 하는 일은 잘 되는 거야? 지난 번 아버지 오셨을
때 긴 했는데. 정확하게 뭘, 수출하는 거야?
빈: 돈 되는 건 다 팔구 다녀. 세상 돌아다니는 게 팔잔가 봐. 내가 원래,
우리나라보다는 외국서 먹어주는 스타일이잖아~
동영: 짜식. (웃고)
빈: 국비 써가면서 너무 오래 공부하는 거 아냐? 나, 세금 내는 거 아깝거든.
이제 올 때 된 거 아닌가? (표정 진지하게 바꾸고)
강흰...이제 그만..잊을 때도..됐잖아..
동영: ..(술 마시려다 보면, 빈 병이다, 다른 병 따서 마시는)
여사님은 잘 계시니?
빈: (웃고) 더미 소식부터 묻고 싶을 텐데..
동영: ..(입을 꾹, 다물고 참는다)
빈: 그 침묵은 더밀 다 잊었다는 건가?
동영: ..
빈, 주머니에 왼손을 넣어 뭔가를 꺼낸다. 꽉, 움켜진 손을 천천히
펴서 손바닥을 보여준다. 세팅이 끝난 루비 반지가 놓여있다.
동영: !
빈: 삼년 전에 내가 한 말 잊지 않았지? 이 손으로 반지를 끼워줄 수
있을 때, 더미한테 청혼하겠다고. 기억해?
동영: 그래...
빈: 나, 그 약속 상기시키루 왔어. 더미한테 청혼하려구, 나 지난
삼년동안 미친 듯이 노력했어! 모두 불가능하다는데,
이 팔 이 정도로 움직이게 하려고, 이가 바숴질 정도로 이
악물구 노력했어.
동영: ...잘 됐구나...
빈: 그게 다야?
동영: 축하한다. 너라면 더미가 행복해질 수 있을 꺼야.
빈: 형, 알지? 나 복잡한 건 딱 질색인 놈인 거.
지금 형 말..그냥 그대로 믿을께.
빈, 동영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동영, 텅 빈 시선으로..애써 담담하게
그런 빈을 바라본다. (Dis)
씬11 뮌헨, 동영의 집(밤)
전체 등은 꺼져 있고, 책상 위에, 스텐드만 밝혀져 있다.
취한 빈, 동영의 침대에 누워 자고 있다. 동영, 그런 빈의 구두를 벗겨주고
책상으로 간다. 동영, 서랍을 연다. 그 안 가득, 한 통도 뜯지 않은 더미의
국제우편이 들어있다. 동영, 그 중 한 통을 꺼낸다.
동영: ...(망설이다 봉투를 뜯고, 편지를 꺼낸다)
(인서트) 더미의 편지.
(더미의 소리) 오늘은, 장군님한테 갔었어요...장군님 모습 속에, 눈빛 속에
있는 오빠를 보고 싶어서.. 장군님, 지난 달 오빠한테 다녀오셨다는데..나,
오빠가 아직도 아파하는지..묻지 않았어.
씬12 동춘섬유공업사 내, 더미의 사무실
더미, 작업대 가득 디자인과 천들이 늘어져 있다. 그 와중에, 더미,
동영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
(더미의 소리) 오빠, 나는...아픔을 멈추게 하는 법은 몰라..그냥,
참는 법만 알아. 나도..아직 강희언니 때문에 아픈데..오빠 더러 어떻게 잊으라고
하겠어..
씬13 뮌헨, 동영의 집(밤)
동영, 눈시울이 붉어져서 편지를 읽고 있다.
(더미의 소리) 우리..같이 아파하면 안 될까? 오빠와..내 아픔이 합쳐진
무게가 너무커, 때로..우리 서로가 버거워지고..미워지더라도...난,
그래도...오빠가 내 옆에서 아프길...간절히..간절히..바라고 있어요..
.그만...돌아와 줘..
동영: ...
동영, 편지를 놓고 준희의 마지막을 생각한다.
(인서트) 죽기 직전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하던 준희.
준희: 지금까지 그래왔듯이..앞으로도 내 영혼이 존재한다면,
영원히 당신을 사랑해요..
동영의 무릎이 탁, 꺾인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몸을 곧추 세운 채..
동영: ..(눈물이 흘러내린다. 꽉- 다문 입술 사이로, 비명 같은 소리가
흘러나온다) 더..미야....더미야....
어둠 속에, 스텐드 불빛을 받고..마음으로, 통곡하는 동영.
씬14 임진강변(새벽)
이미, 유등도 다 흘러가고...
더미, 아직도 아버지 옆을 떠나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다.
(연경의 소리) 더미야!!! 더미야!!!
더미, 돌아본다. 연경이, 헐레벌떡 뛰어온다.
연경: 아우! 얘, 칠호랑 나랑, 임진강 다 뒤졌다! 재작년에 함 따라왔으니
망정이지! 못 찾을 뻔 했잖아!
더미: 왜? 공장에 무슨 일 있어?
연경: 니네 엄마 같은 사람 찾았단다!
더미: ! (쿵, 하는)
연경: 대구 대리점서 연락 왔어!! 니네, 엄마 비슷한 사람 모셔다 놨다구!
씬15 달리는 차 안(새벽)
더미, 차를 몰고 대구로 가고 있다. 옆 좌석에 연경, 타고 있다.
연경: 사고 난다..천천히 줌 가.
더미: ..
연경: 니가 후사한다구 내는 바람에, 장난전화에, 사기전화에 한두 번 속았니?
그냥 편하게 맘먹자. 또 실망하지 말구..
더미: ..
씬16 대구 대리점, 앞(새벽)
차, 급정거를 한다. 더미, 차에서 뛰어 내린다. 연경, 따라 내리고.
‘인디오스(영문/한글)’ 간판 붙어 있고.. 유리문에 양자를 찾는 전단지가
서울대리점처럼 여러 장 연이어 붙어 있다.
씬17 대구 대리점, 안(새벽)
더미, 점장(여, 30대)과 이야기 하고 있다. 그 옆에 연경.
점장: 죄송해요..사장님, 분명히 옆에서 주무시구 계셨는데.. 잠깐 졸았는데
사라져 버렸어요.
더미: 우리..엄마가 확실한가요?
점장: 그게..사진이랑은 쫌 많이 달라서..
더미: ..엄말 어디서 모셔왔나요?
점장: 역 앞에서요.
더미: (연경에게) 경찰에, 전화부터 해줘! (급히 돌아선다)
씬18 대구역(새벽)
양자, 오지 않는 강희를 기다리며 하염없이 앉아 있다.
더미, 뛰어온다. 더미, 광장 앞에 멈춰 서서, 사방을 둘러본다.
그러다, 한 곳에 시선이 멈춘다. 분명히 엄마다.
더미: ! (양자 앞에 선다)
양자: (관심도 없다, 자기 다리를 콩콩 두드리며) 에구..다리야, 에구..다리야...
천릿길을 걸어왔더니...천근, 만근이네..
더미: 엄...마.
양자: (본다. 물끄러미)
더미: 엄마아...
양자: 누구? 나? 날더러 엄마라구 했수?
더미: 엄마...나야...왜 그래..
양자: 아니, 이 처자가 미쳤나! 지나 나나 나이 차이두 그닥 안 나겠구만.
누굴 보구 엄마래! 가뜩이나, 우리 딸..못 찾어 속이 부왕거리는데..
부애질을 하구 있어.
더미: ! (놀라는)
양자: (혼잣말로) 아구...우리 강희. 사리원서..헤질 때..분명히 대구역서
만나자구 했는데...여기가 아니었나...부산역이었나..
더미: ! (충격에 휘청한다.)
양자: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놈의..전쟁 왜 이렇게 안 끝나나...강희야..
엄마가 꼭 찾아갈께...역이란 역은..다 뒤져서라두..찾을께..
양자, 더미 옆을 느릿느릿 걸어간다. 더미, 양자의 손을 낚아챈다.
양자: 왜 이래!
더미: 정말..날 못 알아보는 거야..? 아님...잊어버린 체 하는 거야..
양자: 아니, 이 예편네가 돌았네, 진짜! 안 놔!! (더미의 손등을 깨물어 버린다)
더미: (소리를 버럭 지른다) 왜 이렇게 됐어!! 이렇게 될 걸 왜 도망갔어!!
나야, 나! 더미!! 엄마, 딸 더미!! 날, 모른단 말야!
양자: (더미라는 말에..움찔한다) 더미가...누구예요..?
더미: 이러믄 안되는 거잖아...자기 이름은 까먹어두...딸을 까먹는 엄마가
어딨어...자기 딸을 잊어먹는 엄마가 어딨냔 말야..
양자: 내...딸?
더미: 그래...엄마...딸..
양자: (더미의 얼굴을 거친 손바닥으로, 이리 저리 쓸어본다)....강희...야.
더미: !!
양자:; 강희야!!! 엄마야, 엄마!!! 아구, 우리 강희!!! 어디 갔다..이제 온 거야!!
이년아, 엄마 애 간장이 다 말라지는 줄 알았어!!!
양자, 더미를 다시는 놓지 않겠다는 듯이 와락 끌어안는다.
씬19 양박사의 진료실(낮)
꾀죄죄한 양자, 주눅이 들어 얌전하게 앉아 있다. 양박사, 더미에게
진료결과를 이야기 한다. 양자, 양박사의 눈치를 할끔할끔 본다.
양박사: 정밀한 검사를 더 해봐야 알겠지만, 알콜성 치매로 보이는군요.
더미: ..치료할 순 있는 건가요...?
양박사: 지금으로선... 더 이상 진행되는 걸 막는 정도가 답니다.
비타민 비원(B1)을 처방해 드리죠. 앞으로 술은 한
방울도 안 됩니다.
더미: ..(가엾은 엄마를 바라본다)
씬20 더미의 집, 목욕탕(저녁)
더미, 양자를 목욕시키고 있다. 양자의 팔을 때타월로 밀어주는 더미.
양자, 안 씻겠다고 난리를 친다.
양자: 안한다니까!! 이 년이 지금 내 껍질 벗길라 그래!!! 내가 닭이냐!
뜨건 물에 집어 넣구, 니가 지금 털 뽑을라구 그래!!
더미: 엉구럭 줌 쓰지 마! 하두 목욕을 안 해서, 요 정도두 따갑지.
피부가 숨을 쉬어야 건강해지잖어. 가만 있어봐!
양자: 이 년이! 진짜!! (더미의 얼굴에 물을 확- 끼얹는다)
더미: 이러믄, 나 진짜 화낼 꺼다! 진짜, 아프게 빡빡 밀 꺼야!
양자: ...(가만 보다) 강희야...근데..너....왜 그렇게 갑자기 늙었냐...
나랑 사리원서..헤어질 땐..(손으로 키를 가늠하며) 이만 했잖어..
더미: 엄마가..속 썩여서..그렇지..
양자: 그렇다구..늙어?
더미: 엄마가...너무..너무..오래, 날..기다리게 했거든...엄마가, 너무..늦게
와서 그래...이렇게..딸이 늙도록 안 찾으루 오는 엄마가 어딨어..
양자: 응.. 엄마가..잘못했어.. 앞으루, 우리 떨어지지 말자..
더미: 응...그래, 엄마... 우리, 헤어지지 말자... 저쪽 팔.
양자, 순해져서 다른 팔을 내민다. 더미, 때를 밀어주는데...엄마의 처지가
아파, 눈물이 툭툭 떨어진다.
씬21 더미의 집, 마루(밤)
국민주택 규모의 작은 집이다.
더미와 연경이 같이 쓰는 집이다. 양자, 더미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잔다.
양자, 깔끔하게 씻고 옷도 갈아입었다. 연경, 양자를 본다.
연경: 의사도 권했다매? 그냥 좋은 데, 요양원 찾아봄 안 되까?
더미: ....
연경: 너, 지금 부산 본사 오픈두 앞두구 있구, 고준희 유작전인지
뭔 지두 해야 되구, 고냥이 손이라두 빌려야 할 판데.
어떻게 니가 엄말 돌본다 그래.
더미: 그런 말 하지 마..어떻게 찾은 엄만데..어떤 이유든 또다시 헤어질 순 없어.
연경: (조심스럽게) 어떻게 봄..회장님 돌아가신 것두 그렇구..동영씨 떠난 것두,
다 니 엄마 잘못이야. 너..밉지두 않니?
더미: 미워...많이 미워.
연경: 근데..왜 니가 그 짐을 떠안을라 그래..
더미: 언니..시루떡 쪄봤어?
연경: 갑자기 웬 떡 타령?
더미: 흰 쌀가루 한 켜 얹구..팥 삶은 거 한 켜 얹구..그렇게 켜켜이,
켜켜이 쌓아서 시루 가득 차야 되잖아...나하구 우리 엄마두 그래..
사랑두 얹히구..미움두 얹히구..그렇게 살아갈 꺼야.
연경: ..
더미: 사랑할 땐 사랑하고..미워할 땐 미워하면서..나, 평생 엄마하고 살 꺼야.
더미, 옆에 놓인 부채를 집어 들고 가늘게 코, 골면서 자는 양자에게
부채질을 해준다.
씬22 준희의 무덤(아침)
더미, 양자를 데리고 왔다. 더미, 무덤에 꽃을 놓고 묵념한다.
양자, 멀뚱하니 비석을 보고 있다.
(인서트) 高俊熙 1943-1970
(더미의 속마음 소리) 언니..그토록 가져가고 싶었던..두 가질..
다 가져서 행복해? 고준희란 이름두, 동영 오빠두..다 가져가서...행복해?
양자: (주저앉아 하품한다)
더미: (양자를 한 번 보고, 준희에게) 엄마 모시구 왔어..보고 있지?
양자: ..(인생은 나그네 길을 중얼중얼 부른다)
더미: 거봐...살아 계시다고 했잖아. 내 말을 믿어줬음...얼마나 좋았을까...
지금 와서 아무 소용없는 말이지만..그래두 언니가 조금만...신중했었다면..
우리, 다 같이..행복할 수도 있었을 텐데..
양자: (노래 멈추고) 강희야!! 빨랑 가자..그만..
더미: 엄마, 언니한테 인사 안할래..?
양자: 아, 내가 왜! 넘의 무덤에 대구 인살 해! 쓰잘데기 없는 소리 말구,
얼른 가아! 배고파!!
더미: ..
양자: 강희야! 그만하구, 얼른 가자! 엄마, 이런 데 오는 거 싫어!
앞으루 이런 데 올라믄 너 혼자 와!!
양자, 더미의 손을 억세게 잡고 씩씩하게 걸어간다.
더미, 엄마에게 끌려가면서도 못내 발걸음이 안 떨어지는 듯...돌아본다.
씬23 빈의 오퍼상 안(아침)
여직원 하나만 있는 작은 사무실.
빈, 출장에서 돌아온다. 여직원, ‘오셨어요~사장님!!’ 인사한다.
빈: 굿모닝~
여직원: 선물 안 사오셨어요?
빈: 아..이런. 어쩌지? 깜빡했네...미안. 다음에 사우디 출장가면,
여자들 뒤집어 쓰는 챠도르 하나 이쁜 걸로 사다줄께~
연락 온 데 없었어?
여직원: (메모를 보면서) 방육성씨요. 여러 차례 전화하셨어요.
꼭, 만나셔야 되는데, 급하다구요.
빈: 그래? (수화기를 든다)
씬24 커피숍(아침)
방육성과 빈, 앉아 있다.
빈: 앙상블을 매각한다뇨!
방육성: 이젠..기성복의 시대니까. 예술 대신, 대중문화가 먹히는
사회가 됐으니까..
빈: 어머닌..좀 어떠세요?
방육성: 뭐, 늘..그렇듯이 의연하시지..
빈: (생각하다) 제가..돕죠.
방육성: 글쎄..여사님이, 받아들이실까? 너한테..도움 받고 싶어 하시진
않을 텐데..
빈: 물론 그러시겠죠. 제가 도와드린다고 하지 말고, 장봉실 여사의
작품세계를 사랑하는 후견인이 있다구 하세요.
그 사람이 돕겠다 나섰다고.
방육성: ..(생각하는)
씬25 앙상블, 몽타쥬(아침)
장봉실, 텅 빈 실습실과 재단실, 아이들의 방을 하나, 하나 열어본다.
감정을 드러내진 않지만, 장봉실의 표정이 어딘지..헛헛하다.
장봉실, 마당 분수대 옆 벤치에 앉는다. 차연, 들어온다.
차연: 왜 그러구..앉아 계세요..
장봉실: 조용해서. 늘 아이들로 북적거리던 마당이었는데...이제, 마지막
애들까지 보내구...평양에서..부산, 그리구 서울... 앙상블 문 연 이래
가장 조용하네.
차연: ...어쩌다 천하의 우리 선생님이 이렇게 되셨어요. 오사카에서두
그렇게 스폿라이트를 받으셨는데...
장봉실: 과거의..영화 같은 건 얘기 하지 말자.
차연: (조심스럽게) 우리두, 다른 숍처럼..기성복의 장점을..조금 접목해서,
(하는데)
장봉실: 그만해. (일어서며) 그래, 앙상블 인수하겠다는 사람은 만나 봤니?
차연: 만나 봤는데요. 앙상블 파산 기사 나가구, 태도가 싹 변했어요.
값을 막 후려치잖아요..
대문 열리고, 방육성 들어온다.
방육성: 여사님! (미소)
차연: 오셨어요? 근데..뭐가 그렇게 좋아서 막 웃구 다녀요..
남은 심란해 죽겠는데.
방육성: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장봉실: 좋은 소식? 뭐죠?
방육성: 여사님의 작품 세계를 동경하는 한 독지가가 앙상블을 후원하겠답니다.
장봉실: !
차연: 어머머! 어머머! 정말요!!
방육성: 여사님, 당장 앙상블 매각 계약 취소하셔야겠는데요.
장봉실: (미소 짓는) 그래.. 아직두..내 작품을..내 예술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지..그래두 무조건 후원을 받아들일 순 없어요.
누구신지, 내가 한 번 뵙겠다고 약속 잡아줘요.
방육성: (뜨끔하지만) 알겠습니다.. 여사님.
씬26 더미의 집, 마루
더미, 출근하기 위해 나가려는데.. 양자, 더미를 붙잡고 실랑이를 한다.
더미의 집으로 옮겨온, 옥천댁. 그런 양자를 붙잡고.
양자: 이년아! 너, 왜 거짓부렁해! 헤지지 말자며! 어딜 가!
더미: 시제품 나온 거 체크하구, 바로 부산 공장 준공식 준비도 해야 하구.
오늘 안에 꼭 돌아올께. 응?
양자: ..나두 가. (붙잡는)
더미: 나..엄마 두구 절대 안 떠나. 이럼, 엄마 딸, 암 것두 못하잖아.
양자: (더미를 붙잡은 손을 뗀다)
더미: 잘 부탁드려요, 아줌마.
옥천댁: 예, 다녀오세요. 아가씨.
더미, 웃으며 엄마 손을 한 번 잡아주고 나간다. 양자, 마루 끝에 쭈그리고
앉아, 나가는 더미의 뒷모습을 처량하게 본다. 옥천댁, 양자를 보며 혀를
끌끌 찬다.
옥천댁: 아줌마, 팔짜두 참. 기구하다..아무리 제 정신 아니래두..
어떻게, 우리 아가씨한테 엉겨 붙어 짐이 되나...쯧쯧..
씬27 동춘섬유공업사, 안
활발하게 편직기계와 미싱이 돌아가고 있다. 더미, 나온 제품을 보며 미싱공
책임자에게 지시한다.
더미: 바이어스가 너무 굵어요. 안으루 좀 더 접어 넣어, 공그리는
느낌으루 박아보세요. 안 그럼 밑단이 두드려져서 투박해
보이겠어요.
더미, 심각하게 이야기하는데 연경, 뛰어 들어온다.
연경: 더미야! (하다, 직원들 눈치 보며) 사장님! 저 잠깐 봐요.
씬28 동, 회의실
연경과 더미, 서서 이야기 나누고 있다.
더미: 그럴 리가.. 다른 데두 아니구..어떻게 앙상블이 무너져..
연경: 남대문에 단추 보루 갔다가 차선생님 만나 직접 들었단 말야.
제자들 키워봤자, 다 소용없다구 엄청 화내시더라.
더미: ..
연경: 우리 아세아복장학원 제자들 다 모여서, 앙상블..살리기, 대책 회의라두
해야 되지 않으까?
더미: 내가 도와드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연경: 원장님 자존심에 파문시킨 니, 도움 받으실라 그러겠니?
더미: ....
씬29 앙상블, 앞
택시 멈추고, 빈 내린다.
씬30 앙상블, 내부
장봉실, 화병의 꽃을 손보며 후견인을 기다리고 있다. 차연,
흥분해서 떠들고 있고. 방육성, 조금은 불안한 표정이다.
차연: 내가 이럴 줄 알았어요. 암요, 선생님이 어떤 분인데,
이대루 앙상블이 쭈그러져요. 근데, 방선생님. 후원하겠단
사람이 누구에요?
방육성: ..보면 알아.
차연: 섬유업계 종사잔가? 아님, 예술분야 문화인?
방육성: 보면...안다니까.
장봉실: 나두, 궁금하네. 누군가? 내가 알만한 사람인가요?
문 열리고, 빈 들어온다.
차연: 빈아!! 출장 갔다 왔구나!!
빈: 예, 이모. (장봉실에게) 다녀왔습니다..
장봉실: 더운 나라 갔다 와 그런지, 좀 그을렸구나. 안에 들어가 있으렴.
내가 지금 아주 중요한 손님을 만나기루 해서.
손님, 가시구 나서 얘기하자.
차연: 우리 앙상블을 후원하시겠단 독지가가 오기루 했어~ 선생님,
예술 세계를 굉장히 사랑하신다는구나.
빈: ..(방육성을 본다)
방육성: ..(난처해서 본다) 아직..말씀 못 드렸다..
장봉실: !! (방육성에게) 후원인이...빈...이었어요?
방육성: 죄송합니다..
장봉실: !
씬31 동 장소(시간경과)
장봉실과 빈만 있다. 빈, 통장과 도장을 테이블에 밀어 놓는다.
장봉실: (물끄러미 보다) 날...동정하는 거니?
빈: 제 첫 기억부터..줄곧 봐오던 여사님의 모습은..옷을 만드시던 거였죠..
패션을 떠난..여사님은 상상할 수도 없어요. 여사님..한 평생의 산물이
앙상블이잖아요. 받아주세요.
장봉실: 아니, 그럴 수 없다.
빈: 아들한테 도움 받는 일이 그렇게 자존심 상하시나요?
장봉실: 그건 아냐.
빈: 그럼요?
장봉실: 예술도..살아있는 생명이지. 시대와 함께 호흡하고 살아.
지금은 질보다는 양이 우선하는 시대고, 진정한 장인보다는 기능성이
우선 되는 시대지.
빈: ..
장봉실: 마음에 들진 않지만, 이젠, 다가오는 새 물결에..더미 같은 새
주역들에게, 맡기고 나는 그만 비켜설 때가 됐어.
빈: 여사님은..아직 젊으세요.
장봉실: 내 의상을 포기하겠다는 건 아냐. 그냥, 작은 곳으로 옮기려고 해.
빈: 앙상블은..여사님의 자존심이잖아요. 명성에 걸 맞는 자리와 위치라는 게
꼭, 허영은 아닙니다.
장봉실: 진정한..예술가는 명성에 연연하진 않는다는 걸..이제야 알 것 같아.
꼭 이 자리가 아니라도, 내 작품을 사랑하는 사람들과..함께
앙상블을 지켜갈 꺼야.. 이, 시대에 장봉실의 역할은 여기까지야.
빈: 여사님을..한 예술가로 존경한다는 말 진심이에요.. 여사님이..자랑스럽습니다.
장봉실: (웃고) 나도...내 아들이 자랑스러워..모자란 엄마를 떠나지 않고
옆에 있어줘서 고맙구...(아픈 손을 들어 만지며) 그 힘든 고통을
다 이겨낸..네 의지가 자랑스럽구나. 고맙다..빈아.
빈: ...
빈, 일어나 장봉실에게로 간다. 빈, 장봉실을 꼭 안아준다.
씬32 부산, 세림 본사 사옥 앞
본사 사옥과 공장이 함께 있다.
아직 오픈이 되지 않았다. 세림이라는 현판이 보인다.
더미와 연경, 차에서 내린다.
씬33 세림 공장, 내부
더미와 연경, 박사장 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아직 가동은 안했지만,
완벽한 내부가 갖춰져 있다.
박사장: 갑자기 동춘섬유가 세림으로 바뀌믄 우리 단골들도 그렇고
어리둥절 안하겠나?
더미: 시대가 달라졌어요. 이제 인디오스도 안정됐고, 시장브랜드에서
기업브랜드로의 전환점이 필요하다고 봐요.
박사장: 그 동안 물량을 다 댈 수가 없어서, 남대문으루, 동대문으루 하청
주느라구 얼마나 애를 문나. 여기만 돌아가믄, 전국에 대리점을
낸다캐두 물량 딸리는 걱정은 안 해두 되는 기라.
더미: 고생하셨어요. 제가, 여기 계속 와 있지두 못하구. 사장님 도움이 커요.
박사장: 어데. 나보다야.. 방실장이 고생했제.
연경: 근데..피에르는 어디 갔어요?
박사장: 중앙동에 갔다. 부산 상공회의소에.
피에르, 침통한 표정으로 신문을 들고 걸어온다.
연경: 피에르야, 우리 왔다~ 너, 엄청 고생했다, 얘.
피에르: ..
연경: 너 왜 그래?
더미: 무슨..일 있어요?
피에르: ..(신문을 내민다) 사장님이..직접 보세요.
더미, 피에르가 내미는 신문을 받아, 그 면을 본다.
(인서트) 오일쇼크!! 국제 유가 배럴당 12달러. 경기수축 및 하반기
수출산업에 막대한 지장 예상.
더미: !!
씬34 세림 공장 안, 일각
간이로 만든 회의용 테이블이 놓여 있다. 더미와 연경, 피에르, 박사장
신문을 놓고 침통한 표정으로 회의를 하고 있다.
연경: 배럴당 2.8딸라에서 12딸라믄 얼마가 오른 거야! 이건, 오일 쇼크가
아니라..기름전쟁이네!
박사장: 이..일을 우야믄 좋겠노? 하필..준공식 앞두구 이런 일이 터졌으니..
(기계를 보고) 뭔, 돈으루 공장을 돌린단 말이고..이제 은행 이자두
오를 기구..실값두 그렇구, 고마 천정부지루 뛸 거 아이가....
더미: ..(궁리하는)
피에르: 당분간...공장 가동을 보류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더미: 예정대로 가요.
박사장: 한사장.
더미: 동면하는 개구리두 아니구, 적자폭만 줄이면서 움츠러들 순 없어요.
시장이 위축될수록, 구매력을 회복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야죠.
연경: 지갑을..안 열겠다는데 뭔 수루 소비심릴 회복시켜.
더미: 광고부터 하자. 신문, 라디오에 광고하고. 예정대로 세림 오픈하고,
전국 대리점을 모집하겠어. 숙녀복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까,
젊은층을 겨냥한 유니섹스 캐쥬얼 복, 좀 더 감성있는 여성 브랜브를
만들어야 해.
박사장: 더미야! 그러다 니..고생고생 해서 일으킨 동춘까정 한꺼번에
무너질 수 있데이...솔직히 내는 안 내킨다..
더미: 우리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봐요. 능동적으로..대처하면, 이 위기를
박차고 뛰어 오를 수 있어요. 절, 믿고 따라와 주세요.
연경과 피에르, 박사장...더미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본다.
씬35 세림의 몽타쥬
라디오 광고가 나오고 있다.
빈, 차안에서 라디오를 켜면.. 세림의 광고가 흘러나온다..
(아나운서의 소리) 나는 나의 제품에 혼을 싣습니다. 우리 세림의 의상은
옷에 고객을 맞추지 않습니다. 여성정장 올리비에, 유니섹스 캐쥬얼 닐.
빈, 운전하면서 빙그레..웃는다.
대리점, 간판을 다시 하고 있다. ‘올리비에(ORIVIER), 닐(NIL)'
더미와 직원들 박수 친다.
귀국한 동영, 택시에서 신문을 펼쳐든다.
신문 하단에 크게, 더미의 브랜드 광고가 나왔다.
‘나는 나의 제품에 혼을 싣습니다.’ 더미의 사진과 함께
우리의 의상은 옷에 고객을 맞추지 않습니다..라는 문구. 숙녀복 올리비에,
유니섹스 캐쥬얼 닐. 하단에 세림이라고 적혀 있다.
동영, ‘더미야...’ 중얼거리며 그리운 얼굴로 더미의 사진을 본다.
씬36 김홍석 장군의 집, 마당(저녁)
김홍석, 물 조리개로 화초에 물을 주고 있다.
동영, 가방을 들고 들어온다. 동영, 오랜만에 보는 아버지의...어딘지 전보다
더 늙어버린 아버지의 모습을 애잔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다.
동영: 아..버지..
김홍석: (돌아본다) !!
동영: (웃는다) 저..왔습니다.
김홍석, 물 조리개를 놓고 ‘잘 왔다!!’ 하면서 동영을 덥석 안는다.
씬37 김홍석 장군의 집, 마루(밤)
동영, 김홍석에게 절을 하고 앉는다.
김홍석: 정말 잘 왔다. 떠나있다 해서, 쉬 상처가 아무는 것은 아니지..동영아,
상처란 그 아픔을 같이 느끼는 사람들 옆에서만이 치유될 수 있는 거다.
동영: ..
김홍석: (말 바꾸는, 웃으며) 그래 이젠 뭘 할 거니?
동영: (웃으며) 당분간 여행을 하려구요. 지리산 종주도 하고, 백두대간 전부를
밟아보고 싶어요.
김홍석: 여행 가기 전에, 준희는..만나보고 가야지.
동영: ..나중에요.. 차차...그렇게 할께요.
김홍석: 준희가 보내온 초대장이다. 부산사옥 준공식에 맞춰, 강희 유작전을
연다는구나. (다탁 위의 우편물에서 더미의 초대장을 꺼내 내민다)
동영: ...(받는다)
씬38 준희의 무덤(아침)
동영, 준희의 무덤 상석에 꽃다발을 올려놓는다.
동영, 등산복 차림으로 배낭을 옆에 두고 있다.
동영: 강희야, 잘 있었니? (상석을 보면, 싱싱한 꽃다발과 봉투에
‘世林 本社 社屋 ? 工場 竣工式 및 高俊熙 遺作展’이라고 적힌
초대장을 본다. 초대장을 들어본다) 더미가 왔다 갔구나..
(한숨을 쉰다) 강희야..이제서야 너, 느끼고 있지? 우리 모두가 널
얼마나 사랑했는지.. (쓸쓸한) 나쁜...녀석..
씬39 기차 안
동영, 기차 선반에 배낭을 올리고 자리에 앉는다. 창 밖을 보던 동영,
문득..주머니에서 더미의 초대장을 꺼내 열어본다.
(인서트) ‘세림 본사 사옥 ? 공장 준공식 및 디자이너 故 고준희 유작전’
일시: 1974년 8월 29일 장소: 부산 금정구 세림 본사 사옥
동영: ...
씬40 작은 앙상블 앞
예전의 명동 앙상블과는 비교도 안 되게 작은, 그러나 깔끔한 앙상블이
오픈 되어 있다. 장봉실과 차연, 방육성 나온다.
차연: 고준희 유작전 하는 건 좋은데, 왜 부산에서 하냐구요.
차두 팔아버렸는데. 기차 타구, 버스 타구 이게 뭔 고생이세요.
방육성: 세림 오픈식도 겸한 거잖아.
차연: 누가 뭐래요! 지네 회사 잘 된다구 자랑하는 거 같아서 기분
꿀꿀하단 말에요!
장봉실: 잔소리 할 시간에 얼른 서울역에나 가자. 늦겠다.
차 한 대가 오더니, 멈춘다. 뒷좌석에서 최비서 내린다. 목례하는 최비서.
차연: 어머! 사장님!
최비서: 전화도 개통 전이시고, 늦으면 어쩌나 걱정했습니다. 아가씨가...
여사님을 꼭 좀 모셔오라고 부탁을 하셔서요. 타시죠.
씬41 세림, 공장 앞
도착하는 장봉실, 차에서 내린다.
씬42 세림, 공장 내부
장봉실, 연경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온다.
더미, 연락을 받고 뛰어나왔다. 더미와 장봉실, 눈 마주친다.
더미: (고개 숙여 인사하고) 고맙습니다..이렇게 먼 길을 와주셔서..
장봉실: 아니..나야말로, 초대해 줘서 고맙다.
장봉실, 둘러보다 벽면에 붙어 있는 커다란 붓글씨 액자를 본다.
(인서트) 나는 나의 제품에 혼을 싣는다.
장봉실: ..
더미: (장봉실의 시선을 쫓아가다) 선생님의..저 가르치심이 부끄럽지 않은..
옷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장봉실: 나이가 들면..때로 편협해지기도 하지..시대를 읽는데도, 둔감해지고..
지금도 기성복을 인정하는 건 아니지만...더미, 네 세계를..인정하마.
더미: !
장봉실: 한더미가...내 제자였다는 게..자랑스럽구나..
더미: 선생님...
장봉실, 더미를 보며 미소 짓는다.
씬43 세림 본사 사옥 앞(저녁)
(음악) 테잎 컷팅을 위해 동원된, 고적대 음악소리.
빈, 들어온다.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기자들, 초대된 내빈들, 고적대.
더미를 비롯한, 양자, 장봉실, 차연, 방육성, 최비서, 연경과 피에르, 박사장,
테잎 컷팅을 하고 있다. 이윽고, 테잎이 잘라진다. (끙끙대는 양자)
박수 치는 사람들.
빈, 그 모습을 보며 웃고 있다.
사회자: 고맙습니다! 앞으로 우리 세림이, 어떻게 우리나라 기성복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는지 지켜봐주시기 바랍니다. 지금부터 30분 후에,
고준희 양의 유작패션쇼가 있을 예정이오니, 다들 자리를 옮겨 주십시오.
씬44 세림 본사, 공장 안(저녁)
음악과 함께, 패션쇼가 시작된다.
준희의 의상들을 모델들이 입고 워킹을 한다. 그 모습을 서글픈 표정으로
바라보는 장봉실.
장봉실의 머리 속으로, 당돌했던 디자이너 준희의 모습이 지나간다.
(인서트) 9부, 씬54 태을방직 공장 마당에서, 장봉실에게 따지던 준희.
14부, 씬22 ‘그 옷은 선생님한테..너무 잘 어울려요’
장봉실: ..(손수건으로 눈시울을 닦는다)
씬45 동, 탈의 공간(저녁)
더미, 준희가 감옥에서 만들던 옷을 입었다. 화려하게 성장한 더미의 모습.
문 열리고, 빈 들어온다. 빈, 여전히 왼손을 주머니에 넣고 있다.
빈: 굿 이브닝?
더미: 오빠! 바쁘다구 얼굴두 안 보여주길래, 못 오는 줄 알았지.
빈: 널, 만나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할 일이 있어서.
더미: 마음의 준비까지 할 일이 뭐야?
빈: 패션쇼 끝나고 보자.
더미: 무슨 일인데 그래?
빈: (윙크하고) 잘해라. (돌아서 간다)
더미: (의아하게 본다)
씬46 동, 공장 안 입구(저녁)
문이 열리고, 동영 들어온다.
동영, 입구 끝에 서서...무대를 바라본다.
‘디자이너 故 고준희 유작전’ 이라고 적힌 플랜카드가 보인다.
동영: ..(그 자리에서 서서 무대를 바라보고 있다)
씬47 동, 무대 위/동영 있는 곳/ 빈 있는 곳(저녁)
마지막 피날레 음악이 장중하게 깔린다. 스모그와 함께...무대 조명도
화려한 조명에서, 차분한 조명으로 바뀐다.
더미, 준희의 의상을 입고 걸어 나온다. 플래쉬가 터진다.
빈, 반대쪽에 서서 더미를 바라본다. 동영, 무대 위의 더미를 바라본다.
양자, 연경과 나란히 앉아 보면서..왠지 모를 답답함이 몰려드는지..인상을 쓴다..
양자, ‘고..준희..고준희..’ 조용히 되뇐다.
더미, 음악에 맞춰 천천히 워킹을 한다. 준희에 대한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인서트) 어린시절의 준희와 강희. 어른이 되서, 다시 만나, 자신을 보고 웃던
준희. 서대문 형무소에서의 준희의 모습이 지나간다.
더미, 눈물을 흘리며 워킹하다 한 순간 무대에 우뚝, 서 버린다. 사람들,
더미를 본다.
동영: ..(마음이 아픈)
빈: ..(더미를 바라보는)
감정이 복받친 더미, 무대에 선 채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린다.
동영, 그 모습을 보다 밖으로 나간다.
빈, 문득 동영 쪽을 본다. 얼핏 나가는 남자의 뒷모습이 동영 같기도 하다.
빈, 고개를 갸웃하다 ‘아니겠지...’ 시선을 돌린다. (Dis)
씬48 세림 본사, 사옥 앞(밤)
모두들 돌아간 조용한 사옥 앞. 빈의 윌리스 지프가 세워져 있다.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더미, 빈의 이끌림에 따라 나온다.
더미: 그냥 여기서 말하면 되지. 어디 가자구.
빈: 기분 전환 드라이브.
더미: (세워져 있는 지프를 본다) 오빠...운전..못하잖아..
빈: (왼손으로 조수석 문을 열어준다) 타.
더미: 오빠!!!
빈: (싱긋 웃는다)
더미: (감격하면서, 빈의 손을 잡는다) 고마워..오빠...너무 고마워..오빠라면..
꼭, 이겨낼 줄 알았어...
빈: (눈물이 핑-돈다) 사람의 의지가 기적을 만드는 거라면..이건,
더미 네 힘이다. 고맙다..더미야..
씬49 조용한 바닷가(밤)
윌리스 지프가 세워져 있고. 더미와 빈, 서 있다.
빈: (주먹 쥔 손을 내밀며) 이..손을 움직이게 되면, 너한테...청혼 하겠다고
결심했다.
더미: !
빈: (주먹을 편다. 반지가 나온다) 우리 결혼하자..
더미: ...
빈: 사랑한다...더미야.
더미: (잠시 생각하다) 내가 준희였을 때도..더미로 다시 만나서도 줄곧
오빠를 좋아했지만...그럴 순 없어.
빈: ! (반지를 내민 손을 거둔다)
더미: 세상엔..수많은 모습의 사랑이 존재해.. 오빠에 대한, 내 마음은..
평생을 같이 가는, 친구 아니, 그보다 더 진하고..뜨거운..가족 같은
사랑이야.
빈: 역시...형이 문제군.
더미: ....
빈: 형 옆에 있으면, 네가 힘들고 아파...평생, 강희 그림자에 묻혀..
두 사람 불행해져. 형이, 돌아오지 않는 이유도..그걸 너무 잘 알기
때문이지.
더미: (바다를 본다)
빈: 더미야..
더미: (하늘 올려다보고) 별 참 많다. 내일 날씨 좋겠다. 운명이란..거
어쩌면 빗나간 일기예보 같은 건지도 몰라. 어려서 우린 소풍이라도
가는 것처럼, 우리 미래가 마냥 화창하고 개인 날들이기를 바라지.
빈: ..
더미: 그렇지만 사는 게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았어. 살이 익을 것
같은 땡볕도 만나고, 휩쓸려 떠내려갈 것 같은..폭우도, 폭설도 만나.
빈: ..
더미: 어쩌면면, 더 모질고, 더 힘든 운명이 저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 천둥이든, 비바람이든..그게 뭐든...동영 오빠하고
함께 걷고 싶어. 나한텐 이게 사랑인가 봐.
빈: 형이...돌아오지 않는다면?
더미: 그렇다면... 그 것도 내 운명이겠지. 마음으로 사랑하고...평생,
멀리서 그리워하라는 운명.. 나, 기꺼이 그 길을 받아들일 꺼야.
빈: ..
더미: 미안해...오빠...
더미, 돌아서서 걸어간다.
씬50 바닷가, 갯벌(밤)
빈, 손에 놓인 반지를 보고 있다.
빈, 바다에 더미에게 주려고 했던 반지를 던져 버린다.
그리고 갯벌에 펄썩 누워 하늘을 올려다본다.
빈: 한더미...그게 니 운명이라면 대체 내 운명은 어떤 건지 생각 좀 해봐야겠어.
대짜로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는 쓸쓸한 빈. (Dis)
씬51 부산, 시장거리(밤)
비가 쏟아지고 있다. 연경과 더미, 잃어버린 양자를 찾고 있다.
더미, ‘엄마!! 엄마!!’ 연경 ‘어머니!! 어머니!!!’ 부르며 찾는.
아무리 둘러봐도 양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연경: 아우, 귀신이 곡하겠네..패션쇼할 때까지 내 옆에 얌전하게 계셨단 말야..
더미: 그러게 좀 잘 살펴드리랬잖아.
연경: 응..그러게..
더미: 미안해..언닌, 다시 본사루 가봐...경비아저씨들하구, 공장 내부 샅샅이
찾아봐줘.
연경: 응..(돌아서서 간다)
씬52 동, 다른 거리(밤)
더미, ‘엄마!!! 엄마!!’ 부르며 찾다가 문득 양자를 본다.
남의 가게, 처마 밑에서 쭈그리고 앉아 있는 양자. 양자, 소주로 나발을 불고 있다.
더미: 엄마..
양자: (슬픈 표정으로 본다)..
더미: (옆에 같이 앉아서, 술병을 뺏는다) 왜 이러구 있어?
양자: 강희야.. 엄마, 가슴이 왜 이렇게 떨리니...너..옷 입구 나오는데...엄마,
가슴이 터져서 죽는 줄 알았어... 강희야..엄마, 무섭다..
더미: 괜찮아..엄마..옆에 내가 있는데 뭐가 무서워. 집에 가자. (일어난다)
양자: ..(따라 일어나다 다리에 힘이 없어 풀썩, 주저앉는다)
씬53 부산, 시장거리(밤)
비는 여전히 쏟아진다.
더미, 양자를 업고 걸어간다.
더미: 엄마...우리 옛날 살던 집에 가볼까?
양자: 옛날..살던 데..어디?
더미: 맹골도..엄마랑, 나랑 물질하면서..행복했던 데...
양자: 응..가자.
양자, 더미의 목을 꼭, 끌어안는다. 더미, 엄마를 업고 걸어간다. (Dis)
씬54 맹골도, 양자의 집
더미와 양자, 옛 집 마당으로 걸어 들어온다.
양자, 이리저리 둘러본다. 툭, 트인 바다가 보인다.
더미: 그대로네...(썩은 나무 기둥 같은 데 만져보며) 좀 썩긴 했다.
양자: ..(둘래, 둘래 본다)
더미: (평상에 앉고) 좋지? 엄마? 경치두 좋구. 바람도 좋구..
양자, 갑자기 뭔가 생각난 사람처럼 안방으로 뛰어 간다.
더미, ‘엄마!’ 하면서 평상에서 일어나 쫓아간다.
씬55 양자의 집, 안방
양자, 미친 듯이 서랍장을 밀어 내고, 벽돌을 빼서는 깡통을 꺼낸다.
더미, 뛰어 들어와 본다.
더미: 엄마..왜 그래? 뭐하는 거야?
양자: ..(대답 없이, 깡통을 연다)
양자, 깡통에서 강희의 사진과 신문기사들을 꺼낸다.
(인서트) 사진과 신문기사.
더미: !! (앉아서, 사진과 기사들을 본다)
양자: ....얘는..누구니...?
더미: ..
양자: 얘가..강희니...? 강희....야?
더미: 아니..엄마 딸, 강흰..(자기 가슴을 짚으며) 여??잖아..
양자: 그럼 얜 누구야!!
더미: (기사를 보며) 여기 써 있잖아.. 고준희.
양자: 고준희..
더미: 옛날에..옛날에 엄마랑 나랑 사리원에서 미제 물건 팔구 살 때 말야..
고창회 사장님이라구..진짜, 진짜 좋은 분이 계셨는데..그 집
아랫방에서 세 들어 살았거든. 이 언니는..그 사장님 딸이야..
준희 언니. 고준희...
양자: ..(생각하다) 더미는...? 더민..누구야...?
더미: ...(본다)
양자: 더미가..죽었어..?
더미: 아니.. 더미가 왜 죽어. 여??잖아. (자기 가슴을 짚으며) 내가..더미기두
하구..강희기두 한거야. 강흰...원래 이름이구. 더민 엄마가...날,
너무 사랑해서.. 엄마 인생에 덤이라구 또 하나 붙여준 거야.
양자: 더미야...
더미: 응... 엄마. (눈시울이 붉어진다)
양자: 내...딸...엄마 딸..더미야...
더미: 응...(눈물이 흘러내린다)
양자: 강희야...
더미: 응...엄마...
더미, 양자를 와락 끌어 안아준다. 양자, 그런 더미에게 안긴다. (Dis)
씬56 동, 장소(시간경과)
양자, 툇마루 끝에서 잠들어 있다. 더미, 오래 묵은 이불의 먼지를 탁탁,
털어 들고 들어와 양자에게 덮어준다.
더미, 잠든 양자를 가만히 보다가 머리칼을 쓸어 주고 일어난다.
씬57 맹골도 선착장
배가 도착해 있다. 배에서 내리는 동영.
씬58 맹골도, 동영의 집
동영, 툇마루에 배낭을 놓고 주위를 둘러본다.
씬59 맹골도, 종 앞
더미, 산책하고 있다 종 앞으로 걸어온다.
더미, 종을 손바닥으로 쓸어보다가 종을 손바닥으로 치기 시작한다.
한..번, 두..번, 세...번. 계속해서 종을 친다.
동영, 걸어오다 멈칫한다. 더미가 종을 치고 있는 모습을 본다.
더미, 동영이 오는 것도 모르고 계속해서 종을 친다.
동영, 돌아서려 하는데...더미의 종소리가 발길을 잡는다.
동영, 도저히..더는 더미에게서 떠날 수가 없다. 다시, 돌아서서...더미에게로
한 발, 한 발 걸어온다.
더미, 문득 돌아본다. 조금 떨어진 곳에, 환영처럼 동영이 서 있다.
더미: !
동영: ...(희미한..미소를 띄운다)
더미: 아...저씨...
동영: ..(고개를 끄덕인다)
더미, 동영에게 달려가 두 팔로 동영의 허리를 와락- 안는다.
‘아..저씨...아저씨...’ 부르며 동영을 세차게 끌어안는.
동영, 그런 더미를 바라보다..천천히 손을 들어 더미를 꼬옥- 안아준다.
씬60 바닷가, 바위 위(석양)
더미와 동영, 나란히 앉아 석양을 바라보고 있다.
동영: 삼년동안 강희를 잊으려고 했지만, 안 된다는 걸 알았어.
난 강희를...잊을 수 없을 꺼야..
더미: 나두..그래요..
동영: 우리 서로를 보면서 더 아프고 힘들어질지도 몰라.
더미: 우린..새가 아니라서..고통을 피해 날아갈 순..없을 꺼야. 그냥,
제 몫의 아픔을..견뎌내기로 해요.
동영: ..
더미: (바다를 본다) 내가 십칠 년 간..바다에서 배운 게 있다면...
해안에 가까울수록, 수심이 얕을수록..파도가 거칠다는 거예요.
동영: (본다)
더미: 오빠하구...먼, 바다루 나가고 싶어. 함께, 손잡고...먼..바다 중심에
서서... 우리, 한 평생 살고 나서, 서로가 있어 격랑을 잘 이겨왔다고.
말할 수 있음 좋겠어.
동영: 더미야...
더미, 동영을 바라본다. 동영, 더미를 바라보다...그 어깨를 가만히
감싸 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