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까치꽃이 피었습디다
올겨울은 한두 차례 추위가 닥치긴 해도 심하진 않았다. 정초 서설이 내려 높고 먼 산에선 겨울다운 정취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렇게 춥지 않은 소한 대한이 지나고 설을 쇠면 다가오는 절기가 입춘이다. 일월 넷째 주 일요일 점심나절 산행을 나섰다. 창원역 앞으로 나가 소계동 종점으로 가는 261번을 탔다. 소계시장 못 미쳐 구암여중 앞에서 내려 주택가 골목을 빠져 나갔다.
구암동은 내가 사는 생활권과 달라 여태 한 번도 들려 보지 동네였다. 주택가가 끝난 지점엔 구암초등학교가 자리했다. 방학이고 일요일이라 교문은 닫혀 있었다. 좁은 골목이라 평소 등하교 때 통행하는 차량이 어린이 안전에 각별히 유의해야 할 듯했다. 초등학교와 인접한 등산로를 찾아 비탈을 올랐다. 들머리 약수터엔 샘물을 길으러 온 시민들이 페트병에 물을 받고 있었다.
산불감시초소에서 산불감시원이 서성거렸다. 초소를 지난 비탈진 길가엔 화사한 꽃이 피어 있었다. 엷은 하늘색 꽃송이 여러 개가 땅에 납죽 엎디어 퍼져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몸을 낮추고 살펴보니 큰개불알꽃이었다. 꽃이 지고 맺히는 열매가 개 불알을 닮았다고 민망한 이름이 붙여졌다는데, 나는 그 열매는 아직 보질 못했다. 요즈음은 봄까치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꽃이다.
어느새 봄이 가까이 다가왔음을 눈으로 확인한 순간이었다. 비탈을 조금 더 오르니 3·15민주묘지 꼭뒤에 해당하는 애기봉이었다. 약수암을 비켜 산마루엔 편백나무 조림지엔 여러 운동기구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소계동과 구암동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지 싶었다. 산에는 여러 갈래 길이 있었다. 산허리로 난 천주산 둘레길에서 금강사 방향으로 나아가다가 만수봉으로 올랐다.
합성동에서 올라왔다는 중년 사내를 만나 가보지 않은 등산로를 물어보았다. 휴일이라 산행객이 간간이 지났다. 만수봉 꼭대기에 서니 마산시가지 일부와 창원시가지가 훤히 드러났다. 산등선을 타고 가니 인성고개를 지나 구암동과 소계동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나왔다. 칠원 예곡마을로 가는 갈림길도 있었다. 계속 나아가다 경사 급한 비탈을 오르면 천주산 정상에 이르렀다.
산등선에서 소계동으로 내려서는 갈림길을 지나다가 방향을 바꾸어 칠원 산정마을로 틀었다. 날이 저물기 전에 무기마을까지 갈 수 있을 듯했다. 내가 산정마을 쪽으로 택한 이유는 아까 보았던 큰개불알꽃이 눈앞에 아른거려서다. 산정마을에서 저수지를 돌아 내려가면 돈담마을이 나온다. 돈담마을 세진정밀공업사 담벼락과 인접한 논둑에 큰개불알꽃이 군락으로 자라는 곳이다.
산비탈 희미한 등산로를 거쳐 임도로 내려섰다. 골짜기엔 포근한 겨울날 오후 햇살이 따사롭게 번졌다. 아주 길고 긴 임도 끝자락엔 산정마을이 나왔다. 나는 옛날 농주를 빚어 파는 한림댁에 들렸다. 생수나 간식도 없어 나선 서너 시간 산행에서 막걸리 몇 사발로 목을 축였다. 할머니한테 설 잘 쇠십사는 인사를 건네고 바삐 걸어 산정저수지를 돌아 돈담마을까지 단숨에 갔다.
돈담마을은 몇몇 공장이 들어서 자연마을의 정취가 사라져가는 동네였다. 대동파이프를 지난 세진정밀공업사 담벼락 곁으로 갔다. 볕바른 논둑은 한겨울에 피어나는 큰개불알꽃을 군락으로 보는 곳이다. 아까 구암초등학교에서 산불감시초소를 지나다 본 큰개불알꽃보다는 꽃이 피는 속도가 더뎠다. 생태계의 변화로 개체 수도 작년에 보았던 큰개불알꽃 군락지보다 좁아 보였다.
몸을 낮추어 하나 둘 피어나고 있는 큰개불알꽃을 살펴보았다. 산정마을 한림댁은 내가 해가 설핏 기우는 즈음 들렸기에 의아했을 것이다. 아까 나는 한림댁에게 돈담마을에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야생화를 찾아가는 길이라는 것을 말해주지 않았다. 돈담마을 사람들은 자기네 동네에 그렇게 예쁜 큰개불알꽃이 피고 있음을 모를 것이다.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14.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