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알이랑 코리아 선교회 - 알이랑민족회복운동 원문보기 글쓴이: 셈의장막재건자
추석은 성경적인가?
추석은 성경적인가?
저는 신부님이 언젠가 추석은 성서적인 명절이고 그리스도인들은
이 명절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집안에서 추석은 조상에 대한 제사로써 지켜지고 있습니다. 우리
부모님들은 모두 그리스도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추석의 기독교적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제가 그 제사에
대해서 어떻게 행동해야 합니까? 저의 언니는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러나 형부는 제사를 지내고 잇습니다. 그리고 저의오빠도 역시
똑 같은 문제를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인숙 올림
친애하는 인숙 자매에게
성경에 쓰이는 역법은 한국의 역법과 한 달 하루가 틀립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일곱 번째 달의 보름에 애굽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그 뒤로는 그 달을 첫 번째 달로 지키라고 명하셨습니다.
성경의 일곱 번째 달이 우리 한국에서는 여덟 번째 달이 됩니다. 그리고 그 달 보름의 축제는 바로 한국의 추석인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그것을 여러 가지로 부르고 있습니다. 흔히 그것을 단순히 ‘축일’ 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것 이외에도 맥추절(출 23:16), 성스러운 집회(민 29:12~40), 그리고 그들이 처음에 이집트에서 벗어났을 때 살았던 초막(Booths)을 본 따서 ‘초막절’ 이라고 불렀습니다(출 12:37 ; 느 8:14).
거의 모든 교회들이 부활절과 오순절 그리고 구약에 있는 다른 두 절기는 잘 지키지만, ‘초막절’을 지키는 교회는 없는데 이것은 참 기이한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성경에 보면 초막절이 이미 완료되었다거나 또는 폐기되었다든가 하는 말이 없습니다.
이에 반해서 온통 초막절에 대한 얘기만 들어 있는 스가랴 14장은 그것을 예수님의 재림, 천년 왕국에 연관 짓고서 초막절을 지키지 않는 모든 나라는 무서운 재난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축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위에서 이미 말한 것 외의 그 날에 관한 성서의 주된 언급은 출애굽기 13장 20절, 레위기 23장 33~34절, 민수기 16장 13~15절, 신명기 31장 10~13절, 레위기 25장, 열왕기상 8장에 나와 있습니다.
이 구절들을 검토하여 보면 그 축제는 7가지 다른 상징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축제가 7일 동안 계속된 사실과 잘 부합합니다.
첫 번째 의미는 아주 분명한 것으로서 ‘추수감사’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어디를 보나 추수는 시대의 마지막, 새로운 시대의 시작 혹은 천년왕국, 새 하늘과 새 땅의 시작을 상징했습니다. 이 축제가 소홀하게 취급된 한 가지 이유는 매우 실제적인 것으로써, 그것은 나라마다 추수시기가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영적인 성질의 것입니다. 많은 교회들이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을 그만 두었습니다. 그리고 신도는 죽으면 천당에 으레 갈뿐, 부활도, 천년왕국도 이 땅 위의 예수의 재림도 새 하늘과 새 땅도 없다는 불교적인 교리에 젖어버린 것입니다. 아직도 널리 퍼져 있는 이러한 경향은 많은 찬송가에 잘 나타나 있으며, 이것은 마땅히 고쳐져야 합니다.
유월절은 지나간 것, 과거에 대한 축제, 즉 유대인들을 애굽에서부터, 그리스도인들을 죄에서부터 이끌어내신 것을 기념하는 축제입니다. 오순절은 현재에 대한 축제, 즉 우리가 지키고 사는 율법을 주신 데 대한(유대인에게 있어서는), 아니면 우리에게 성령을 주셔서 그의 도움으로 말미암아 이제 우리 마음속에 율법에 쓰여 지고 우리는 매일매일 그의 도움으로 살게 된대 대한 축제입니다. 초막절은 미래에 대한 축제, 즉 시대의 마지막, 예수님의 도래, 마지막 왕국에 대한 축제입니다.
두 번째 상징은 「장막 속에서의 삶」입니다. 이 땅 위에서의 우리의 삶은 덧없는 것이고 우리는 약속된 땅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 상징은 이 축제에서 「율법을 낭독하는 것」인데(신 31:10~13 ; 느 8장) 이것은 하나님의 왕국으로 가는 데는 지켜야 할 기준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 줍니다. 매 7년마다 빚을 탕감하여 주고 매7년마다 노예들을 풀어줄 것, 그리고 50년마다 즉 희년에는 토지개혁을 실시하는 점들이 강조되었습니다.
이제 네 번째 상징은 「해방」이었습니다. 초막절은 율법을 실행하는 시기, 특별히 모든 사회적 부정을 바로잡는 시기입니다. 물론 모든 이러한 일들은 하나님의 왕국에서는 바로 세워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 모든 나라는 지금 당장 가난한 자와 억눌린 자들에 대해 의를 실천해야 합니다.
다섯 번째 상징은 「희년」입니다. 속죄일(사도행전 27장 9절에는 이 때 금식이 언급되었습니다)이 오면 희년의 나팔을 불어 모든 사람들이 닷새 동안 자기 고향으로 가서 자기 일족과 자기 땅에서 추석을 지내도록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토지개혁은 열 번째 날에 선포되었고 닷새 후인 추석에 그 효력을 발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다행스럽게도 한국에서 1950년 희년의 토지개혁은 부활절 무렵에 선포되었습니다. 그 해 부활절은 4월 9일 이었습니다. 만일 정부가 추석까지 기다렸다면 너무 늦었을 뻔했습니다. 6월에 북한이 침략했기 때문입니다).
희년 덕택으로 여호수아에서 바르코헤바까지 1천5백 년간 이스라엘과 유다가 한 나라로서 지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토지개혁은 므낫세 때부터 시드기야 때까지 파괴되었고 (요시야의 노력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바벨론 유수를 초래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민족 거의 모두가 갖고 있었던 희년에 대한 희망을 누가복음 4장 18절~19절 설교에서 언급했습니다. 그는 희년에 대해서 「주님의 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왜 예수님의 희년을 「좋은」(Acceptable), 「자발적인」주님의 날이라고 했는지는 아마 몰랐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희년을 선포할 위치에 있지 않았습니다.
단지 헤롯 왕만이 그것을 할 수 있었는데 그는 지주였고 그 자신이 지주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으며 지주제가 지배하고 있는 나라인 로마의 지배 아래서 그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희년을 혹은 토지개혁을 선포할 의사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줄곧 여기에 대해서 생각을 했었고 오순절날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여 3천명이 세례 받고 제자들과 합세했을 때에 자발적인 희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땅은 나의 소유이다. 아는 이것을 돌려 갖기 원한다」라고 말하는 대신 성서는 아무도 자기 것을 자기 것이라고 여기지 않고 단지 그들은 모든 것은 공동 소유라고 생각했음을 말해줍니다.
좋은(자발적인) 주님의 해에 대한 묘사는 사도행전 2장 44~45절과 4장 35절에서도 발견됩니다. 오늘날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공동체 안에 살면서 그들의 소유물을 나누어 갖게 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이념이며 성령의 힘인 것입니다.
여섯 번째 상징은 매우 늦게, 아마도 구약과 신약의 중간쯤에 발전되었습니다. 그것은 실로암 못의 물을 길어다가 성전 앞에 붓는 것으로 이루어집니다. 이것은 광야 시절 바위에서 나온 물을 뜻하는 것 이지만 또한 에스겔이 예언한 바 성전에서 물이 흘러나온 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에스겔이 새로운 성전에 대한 솔로몬이 첫 번째 성전을 봉헌하자 추석절에 하나님의 영광이 그곳을 채웠습니다.
에스겔은 또한 하나님의 영광이 다시 돌아와서 성전을 채우는 것을 묘사했는데 이것도 역시 같은 날이었을 것입니다. 43장은 「이 들 후에」라는 말로 시작하는데 이것은 아마도 여러 날들이 지났으리라는 것을 시사해 줍니다. 확실히 예수님 시대에는 추석절에 「물 긷기」행사가 지켜졌는데 예수님은 이것을 가리켜 신앙인 각자로부터 흘러나오는 성령의 상징이라고 했습니다. 에스겔서 47장의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강에 대한 묘사와 요한복음 7장37~39절의 신앙인 각자로부터 흘러나오는 강에 대한 예수님의 약속, 그리고 새 예루살렘의 가운데로부터 흘러나오는 강에 대한 요한의 환상을 모두 연관성이 있습니다(계 22:1~3, 슥 14:9 참조).
그러므로 추석은 우리들에게 「오순절의 선물을 받은 자는 성령이 충만하여야 하며 성령이 우리로부터 강처럼 흘러나와 다른 사람들을 새롭게 하고 황폐한 땅에 치료함을 가져오게 된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오순절은 받는 것에 대해서 말하는데 추석은 주는 것과 나누어 갖는 것에 대해서 말합니다.
추석의 일곱 번째 상징은 우리들에게 「천년왕국의 도래」를 상기시켜 줍니다. 이것은 스가랴 14장에 나타나는데 대부분의 다른 상징들을 모두 총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추석을 지키니 않는 자들은 축복 대신 재앙을 받으리라는 경고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인이 왜 추석을 지켜야 하는 지 알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지켜져야 하는 지도 알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조상을 위한 제사로써가 아니라 예수님 재림시 죽은 자의 부활에 참여하는 기쁨과 축제로써, 또 이 땅 위에 임할 그리스도의 천년왕국, 새 하늘과 새 땅에 참여하는 기쁨과 축제로써 지켜져야 하는 것이며 성령이 우리를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도록 하려는 기도와 함께 우리들 각자가 처해 있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에서 희년의 원칙과 해방의 해를 실천하려고 하는 실제적인 노력과 함께 지켜져야 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말했듯이 당신의 부모님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닌데 당신에게 제사에 참가할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경은 말하기를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당신의 구원을 그르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로마서 10장 9~10절은 네가 만일 믿고 또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을 받으리라고 말합니다.
당신의 부모님들에게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는 다시 올 것이고 추석의 진정한 의미는 3천4백년 전에 비롯되었으며 한국에는 솔로몬 시대에 이 진정한 의미가 전해졌는데 이제 그 원래의 의미는 잃고 말았습니다만 그 참뜻은 성서에 나와 있다고 말하십시오. 그러나 즉시 덧붙여서 「성서는 또 자식은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저는 말씀하시는 대로 따를 것입니다」라고 말하십시오.
당신의 언니의 경우도 같은 얘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녀도 남편이 하라는 대로 추석을 지켜야 합니다. 단지 먼저 남편 앞에서 자신은 나름대로 본래 다른 뜻을 추석에 두었으며 이 땅에 재림하여 사람들을 심판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그 고백을 하고 난 후에는 또 구절마다 있는 「여자는 자신의 남편에게 (목사가 아니라 – 목사는 다른 사람의 남편입니다) 순종해야 한다」는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고린도전서 11장 3절, 에베소서 5장 22절, 골로새서 3장 18절, 디모데후서 3장4~7절, 디도서 2장4절, 베드로전서 3장1절에 나와 있습니다.
당신의 오빠는 사정이 다릅니다. 그는 부모나 아내가 무엇을 원하건 상관하지 않고 제사를 지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는 한 가정의 가장이고 더 이상 아버지의 권위에 구속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2장 24절을 보십시오. 그의 아내는 그의 권위 아래 있습니다. 신명기 13장 6절은 자기 아내를 따라 우상 숭배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경고합니다. 여기에는 여러 다른 관계들도 포함되는데 부모나 (결혼하지 않은 자녀에게 있어서는) 남편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14장 26절에는 예수님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의 목록이 비슷하게 나와 있습니다. 여기에 따르면 성인에게 있어서는 부모도 포함됩니다. 그러나 남편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아내는 남편이 그를 내보내지 않는 한 남편을 떠나거나 그를 불순종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베드로전서 3장1~8절은 여자가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거나 못살게 굴지 말라고 이르고 있으며 자기 종교를 추켜들지 말고 남편의 사랑을 받도록 갖은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숙 자매님, 부모님께 순종하십시오. 그리고 추석의 진정한 의미 속에서 기뻐하십시오.
예수님은 곧 옵니다! 할렐루야!
산골짜기에서 온 편지 1권(1982), “추석은 성경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