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아베 신조 전 총리 피살을 계기로 불거진 통일교와 자민당의 유착 의혹에 대해 자신은 무관하다고 줄곧 밝혀온 기시다가 총리의 해명이 거짓된 것으로 드러나 집권 이래 부정적성 정권이라는 위기에 봉착했다.
기시다 일본 총리가 통일교 관계자들과 면담 의혹에 대해 “수많은 동행자가 있었기 때문에 한 사람 한 사람이 누군지 알지 못했다”고 부인했지만 일본 <아시히신문>이 해명 하루 만에 기시다 총리가 통일교 관련 인사들과 촬영한 사진 2장이 공개했기 때문이다.
<아사히신문>은 12월 5일자 기사에서 기시다가 자민당 정조회장이었던 2019년 10월에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옛 통일교·이하 가정연합)의 유관 단체인 천주평화연합(UPF)의 가지쿠리 마사요시 의장, 미국 통일교 회장을 지낸 마이클 젱킨스 UPF인터내셔널(통일교 창시자인 문선명 전 총재와 한학자 현 총재가 2005년 설립한 단체) 회장 등과 만났다는 기사와 함께 사진 2장을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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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후미오(오른쪽에서 둘째) 일본 총리가 자민당 정조회장이던 2019년 10월 방일한 뉴트 깅그리치(왼쪽에서 둘째) 전 미국 하원의장 등과 찍은 사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옛 통일교) 유관 단체인 천주평화연합(UPF)의 가지쿠리 마사요시(맨 왼쪽) 의장과 마이클 젱킨스(맨 오른쪽) UPF 인터내셔널 회장도 동석했다. <아사히신문> 홈페이지 갈무리 |
<아사히신문>이 공개한 사진에는 기시다와 뉴트 깅그리치 전 미국 하원 의장을 가운데 두고 가지쿠리 의장과 젱킨스 회장으로 보이는 인물들이 좌우에 나란히 서있다. 또 다른 사진에는 가지쿠리 의장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기시다와 깅그리치 면담 현장의 소파에 앉아 있었다. 당시 기시다는 방일(訪日)한 깅그리치 전 의장과 면담했는데 그 자리에 UPF 간부들이 배석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깅그리치는 기시다와 만난 다음 날, UPF가 개최한 국제회의에 참석했다.
깅그리치 및 통일교 유관단체 대표들과 기시다의 면담은 아베 신조 당시 총리의 요청에 따른 것이란 보도도 나왔다. 당초 깅그리치 일행과 면담 예정이던 아베가 당일 소집된 임시국회에서 연설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기시다에게 대신 만날 것을 부탁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시다는 당시 만남에 대해 “(깅그리치 측에서) 전 외무상을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와 만났다”며, 아베 연관 의혹도 부인했다. 전 외무상은 기시다 본인을 지칭한다.
기시다의 통일교 연관 의혹은 지난 4일 <아사히신문>이 기시다가 통일교 관계자들과 만났다고 보도하면서 불거졌다. 이날 보도 직후 <조선일보>는 12월 5일자 기사에서 기시다는 “깅그리치와 만날 때는 수많은 동행자가 있었기 때문에 한 명, 한 명 누군지 알지 못했다”며 “(UPF 의장과) 명함 교환을 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고 밝혔다.
또한 <조선일보>는 깅그리치, 통일교 관계자 2명과 찍은 사진까지 이튿날 공개됐지만, 기시다는 “동석자는 알지 못한다”며 “사진이 있다고 해도 (누군지 몰랐다는) 내 인식은 바뀌지 않는다”고 재차 강조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시다 총리의 강한 부인과 달리 신뢰에 상당한 타격을 준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7곳의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25~36%에 그쳐 ‘정권 와해 직전“이라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것은 내각과 집권당의 지지율 합이 50% 아래로 내려가면 정권이 무너진다는 ‘아오키(靑木)의 법칙’에 따른 전망이다.
실제로 2001년 모리 정권, 2009년 아소 정권, 2010년 하토야마 정권이 아오키의 법칙대로 지지율 하락 이후 붕괴했다. 집권당 내부에서 차기 선거 패배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현직 총리의 힘이 급격하게 빠져 와해된 것으로 <조선일보>는 분석했다.
게다가 기시다는 앞서 동료 의원들의 ‘통일교 유착’ 문제에 대해 가혹하게 처리했다. 지난해 아베 피살 당시 여론이 급격히 악화되자, 자민당 국회의원 379명 전원에게 ‘연관 관계를 밝히라’고 강제해 통일교나 유관 단체 모임에 축전을 보낸 것도 모두 공개한 일이 일어났었다. 당시 연관자 180명 가운데 기시다는 없었으며 기시다는 ‘통일교 유착’ 의혹이 있는 동료 의원들에 대해 가혹하게 굴었다.
그런데 통일교와 전혀 연관 없다고 공언해온 기시다 총리가 정작 본인은 통일교 관계자들과 면담을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정권에 대한 여론이 싸늘해진 것으로 보인다.
기시다 총리는 통일교 관계자들과 함께 찍은 사실이 언론에 노출되었음에도 여전히 누군지 몰랐다고 부인하고 있다. <교도통신>은 기시다 총리의 해명 직후에 “통일교 관계자가 2019년 10월 통일교 우호 단체의 수장과 미국 통일교의 전 회장이 만났다고 인정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