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참고말씀: 창29:20; 왕상18:42; 시119:67,71; 잠16:4; 요21:15-17; 계2:4,5
주제말씀: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 무릎 꿇고 있는 나무 (예화)
로키 산맥(Rocky Mountains) 해발 3,000m 높이에 수목한계선인 지대가 있습니다. 이 지대의 나무들은 매서운 바람으로 인해 곧게 자라지 못하고 ‘무릎 꿇고 있는 모습’을 한 채 있어야 합니다. 이 나무들은 열악한 조건이지만 생존을 위해 무서운 인내를 발휘하며 지냅니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가장 공명이 잘 되는 명품 바이올린은 바로 이 ‘무릎 꿇고 있는 나무’로 만든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영혼을 갖고 인생의 절묘한 선율을 내는 사람 역시 아무런 고난 없이 좋은 조건에서 살아온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온갖 역경과 아픔을 딛고 일어선 사람인 것입니다. - <지혜로 여는 아침> 중 -
명품 인생이 되길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남부럽지 않은 좋은 조건에서 아무런 고난 없이 살게 해달라고 하지 말고, 오히려 지금의 이 고난과 아픔 등을 당당하게 딛고 일어설 수 있길 바랍니다. 나무들이 ‘무릎 꿇고 있는 모습으로’ 해발 3,000m 높이의 매서운 바람 앞들을 버텨내듯이 말입니다.
아울러 이 나무들에 붙여진 이름 역시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주는 듯합니다. 즉 온갖 역경과 아픔에도 쓰러지지 않는 사람은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무릎을 꿇는 사람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고난 앞에서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까? 여전히 허리를 곳곳하게 세우고 있습니까? 아니면 무릎 꿇고 인내하고 있습니까? 원컨대 모든 일에 무릎으로 나아갈 수 있길 바랍니다. 허다한 믿음의 선진(先陣)들처럼 한 결 같이 그리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엘리야가 갈멜 산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왕상18:42 하)
* 하나님을 더욱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롬8:28 상)
고난을 이겨내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시험을 극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흔히들 든든한 인맥이나 두둑한 통장, 강인한 체력 등을 떠올릴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게 있는데 이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어째서입니까? 이것이야말로 모든 환난이나 역경을 버티고 극복하게 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의 두 경우를 통해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먼저, 야곱의 경우입니다. 라헬을 아내로 얻기 위해 무려 7년 동안을 외삼촌 라반의 양떼를 쳐야만 했습니다. 그것도 낮의 뜨거운 열기와 밤의 매서운 추위, 사나운 들짐승 등과 싸워가면서 말입니다. 그렇지만 이 기간은 불과 며칠처럼 느껴졌습니다. 어째서입니까? 라헬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창29:20)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고난을 극복하게 하는 것은 바로 사랑이라는 점입니다. 사랑이 정답인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과 우리 관계이겠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7년이 문제입니까? 10년 그 이상도 며칠처럼 느껴질 것이 분명합니다.
둘째 베드로의 경우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베드로에게 사명을 맡기실 때 거두절미 하고 오직 무엇만 물으셨습니까? 얼마나 많은 훈련을 받았고, 얼마나 많은 경험을 쌓았으며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는지를 물으셨습니까? 아닙니다. 단 한 가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것만 물으셨습니다. 그것도 세 번 씩이나 말입니다.
“그들이 조반 먹을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요21:15-17)
어째서입니까? 주님을 사랑하기만 한다면 열악한 환경이나 조건 따위는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정답인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어떻습니까? 아무리 좋은 조건에서도 힘겨워 합니다. 불평과 원망만 하게 됩니다. 사랑이 식었기 때문입니다. 원컨대 처음 사랑을 회복할 수 있기 바랍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계2:4,5)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이토록 사랑을 확인하고자 하신 것입니까? 사랑은 곧 신뢰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 자체가 곧 그분만을 신뢰한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실수하시거나 잘못 인도하시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았습니까? 그런데도 지금 혹독한 시련 앞에 놓여 있습니까? 이럴 때일수록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기 바랍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오직 하나님만을 굳게 신뢰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것이야말로 고난을 능히 극복하게 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롬8:28 상)
*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십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하)
하나님은 이런 자,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위해 어떤 역사를 베풀어 주십니까?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십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하) 헌데 이런 일은 오직 누구만이 하실 수 있습니까? 하나님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모든 일을 당신의 선하신 뜻대로 이끄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 앞에서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합니까? 크고 작은 사건들 앞에서 일희일비해야 합니까? 좋은 일이 있을 때는 하나님을 찾고 그렇지 않을 때는 달리 생각해야 합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긴 채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인내해야 할 것입니다. 형통한 날이든 곤고한 날이든 모두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말입니까? 고난도 약(藥)으로 쓰시며,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119:67) 불신자나 악인조차도 당신의 계획 아래에서 선용하심으로써 말입니다.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잠16:4)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고난 가운데 있습니까? 이럴 때일수록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신뢰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런 자들을 위해 못하실 일이 전혀 없으시며, 무슨 날이든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시는 분임을 명심하면서 말입니다.
관련 설교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mA3562eq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