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파타!』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에게 손을
얹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곧바로 그의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분부하셨다.
그러나 그렇게 분부하실수록 그들은 더욱 더 널리 알렸다.
사람들은 더할 나위 없이 놀라서 말하였다.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 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마르 7,32-37)”
여기서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를 원문대로 직역하면,
“저분은 모든 것을 좋게 하셨다.”인데, 이 말은 창세기 1장에 반복해서
나오는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라는 말에서 온 표현입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예수님은 새로운 창조자이신 분”이라는
증언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병들고 고장 난 이 세상을 고쳐서
천지창조 때의 좋았던 세상으로 회복시키시는 분”입니다.
요한 사도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요한 1,3).”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있고 우리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합니다(1코린 8,6ㄷ.ㄹ).”
그런 관점에서 보면, “에파타!”(열려라!) 라는 말씀은,
“빛이 생겨라.”(창세 1,3) 라는 말씀과 같은 ‘새로운 창조 말씀’입니다.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통로가 막혀 있는 것을 뚫어서
원래의 ‘열린 통로’로 회복시키신 말씀.>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어서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뒤에,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이 차단되었습니다(창세 3,24).
그 길이 막힌 것은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통로가 막힌 것을 상징하기도
하고, 사람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이 막힌 것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길을 복구하려고 오신 분입니다.
최후의 만찬 때, 예수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느님을 만나는 길이고, 구원을 받는 길이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이 차단된 일에 대해서 혹시라도 “그것은
하느님께서 하신 일이다.” 라고 반박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 길이 차단되기 전에 먼저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을 피해서 숨어버렸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들은 주 하느님께서 저녁 산들바람 속에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들었다. 사람과 그 아내는 주 하느님 앞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다(창세 3,8).”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을 피해서 숨은 일은,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통로를 사람 쪽에서 막은 일입니다.
그것은 죄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이 차단된 것은, 사람 쪽에서 먼저
그 열매를 먹을 수 있는 자격을 잃었기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자격을 회복시켜 주려고 오신 분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실 그 한 사람의 범죄로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죽음이 지배하게
되었지만, 은총과 의로움의 선물을 충만히 받은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통하여 생명을 누리며 지배할 것입니다(로마 5,17).”
2월 10일의 복음 말씀에서 ‘듣지 못하는 상태’는 인간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상태를 상징하는 것으로,
또 ‘말을 더듬는 상태’는 ‘하느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말씀을 제대로 전하지도 못하는 상태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니까 말씀에 따라 살지도 못하고,
그 말씀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주지도 못합니다.
<제대로 알아듣고, 제대로 실천하면서 사는 사람만이
그 말씀을 남에게 전해 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장애를 고쳐 주신 일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고, 제대로 실천하고,
남에게 제대로 전해 줄 수 있도록 고쳐 주신 일입니다.
따라서 “에파타!” 라는 말씀은, 예수님 쪽에서는 “열려라!”인데,
우리 쪽에서는 “열어라!”입니다.
들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듣게 되고, 들은 그대로 실천하면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말씀대로 살게 되고, 남에게 그것을
말해 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말씀을 전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듣지 못하고,
들은 것이 없으니 아무것도 말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신앙인으로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9장에 이런 대화가 나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나는 이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
보지 못하는 이들은 보고, 보는 이들은 눈먼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
예수님과 함께 있던 몇몇 바리사이가 이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
‘우리도 눈먼 자라는 말은 아니겠지요?’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눈먼 사람이었으면 오히려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가 ′우리는 잘 본다.‵ 하고
있으니, 너희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요한 9,39-41)”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과 생명을 얻으려면, 예수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먼저 겸손하게 인정하고 고백해야 하고,
그다음에는 ‘능동적으로’ 주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도움이 없어도 된다고 큰소리치는 사람은 예수님을 거부하는
사람이고, 예수님을 거부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나라에,
즉 하느님 나라에 못 들어갑니다.
그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면, 구원과 생명을 받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