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미술] 보다 정밀하게 … 6·25 전쟁 ‘빛나는 순간’을 담다

[朱木]

[전쟁과 미술] 릭 리브스의 ‘한국에서의 선샤인부대’(2001)

보다 정밀하게 … 6·25 전쟁 ‘빛나는 순간’을 담다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미 40사단 ‘선샤인부대’ 중공군 격퇴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헌신 그려내


1950년 6월 25일 시작된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고 있다. 외국인들에게 한국전쟁(Korean War)은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으로 알려져 있다. 제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쟁 사이에 끼여 큰 주목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인에게 한국전쟁은 ‘끝나지 않은 전쟁’이다. 국제법상 ‘휴전’ 상태일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전투가 여전히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연평도에서 휴전선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4개 국면으로 전개된 6·25 전쟁

　6·25 전쟁은 크게 4단계의 국면을 통해 전개됐다. 첫 번째 국면은 북한의 남침에서 8월 낙동강방어선 공방에 이르는 북한 공세기다. 한국군은 북한의 공격을 충분히 대비하지 못했고, 전력도 턱없이 부족했다. 270여 대의 T-34 소련제 탱크와 260여 대의 비행기, 그리고 200여 대의 야포로 무장한 북한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8월 말이 되자 북한 인민군은 부산 외곽까지 밀고 내려왔다. 대구와 낙동강, 마산으로 이어지는 230㎞의 전선이 대한민국 최후의 방어선이 됐다. 전 전선에서 치열한 전투가 계속됐고 9월 공세에는 포항지역이 함락되는 등 위험한 상황이 전개됐지만 시간이 갈수록 전세는 유엔군에게 유리하게 전개됐다.

　두 번째 국면은 인천상륙작전에서부터 서울 수복, 그리고 압록강 진격에 이르는 유엔군 반격기다. 9월 15일 단행된 인천상륙작전은 전사상 가장 성공적인 상륙작전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러나 북한군의 끈질긴 저항 때문에 28일에야 서울을 수복할 수 있었다. 이후 국군과 유엔군은 파죽지세로 진격해 10월 19일에는 평양을 점령했다. 10월 26일에는 국경 인근 초산까지 진격해 압록강 푸른 물을 수통에 담아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냈다. 승리가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6·25 전쟁의 세 번째 국면은 중공군의 개입과 유엔군의 후퇴, 그리고 반격의 시기다. 중공군 25만 명은 유엔군의 눈을 피하기 위해 400여㎞를 야간행군하며 압록강을 넘어왔다. 예기치 못한 중공군의 파상공격에 유엔군의 전열은 붕괴됐고 전략적 후퇴가 불가피했다. 그러나 2월부터 유엔군의 반격이 시작되면서 다시 서울을 수복했다. 중공군의 춘계대공세를 막아내면서 전선은 지금의 휴전선 부근으로 이동했다.

　이제 네 번째 국면이다. 개전 1년 만에 전선은 교착됐다. 한쪽에서는 휴전협상이 진행됐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고지전이 이어졌다. 피의능선전투(1951년 8, 9월), 단장의능선전투(1951년 9, 10월), 백마고지전투(1952년 10월), 철의삼각고지전투(1952년 10월), 금성전투(1953년 7월) 등 우리가 기억하는 유명한 전투들이 전개된 시기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전투는 고지의 주인이 밤낮으로 바뀔 정도로 치열했다. 그 지루하고 끔찍했던 고지전이 2년씩이나 계속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국을 돕기 위해 나선 63개 나라

　6·25 전쟁은 기본적으로 국제전 성격을 갖고 있었다. 소련과 중국의 지원이 없었다면 북한의 군사적 도발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유엔은 북한의 남침을 불법침략으로 규정하고 이를 격퇴하기 위해 유엔군을 파견했다. 16개 참전국과 의료 및 물자지원국 등 모두 63개국이 대한민국을 돕기 위해 나섰다. 전선 곳곳에서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다. 그 결과 16만여 명의 유엔군이 죽거나 부상했다.

　미국 화가 릭 리브스(Rick Reeves·1956~현존)가 그린 ‘한국에서의 선샤인부대(the Sunshine Division in Korea)’는 미 40사단 병사들이 중공군이 차지했던 고지를 점령하는 순간을 포착한 작품이다. 캘리포니아의 ‘빛나는 태양’을 상징하는 부대마크와 이름을 갖고 있는 미 40사단은 철의삼각지대와 단장의능선지구, 그리고 펀치볼지역에서 전투를 수행했다. 1953년 한때는 동부전선 최북단에 위치한 미군 전초부대로서 명성을 날리기도 했다. 342일간의 전투에서 376명의 사망자를 포함, 15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현 위치 사수’라는 사명을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명예롭게 귀국할 수 있었다.

　이 그림은 미국방위군기념재단(National Guard Heritage)의 요청으로 2001년에 제작된 것이다. 1952년 봄 선샤인부대는 김화지구 전투에 투입돼 중공군과 치열한 교전을 벌였다. 숨 가쁘게 달려온 병사들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어지럽게 퍼져있지만 주변을 경계하며 적을 제압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잔설이 남아있는 초봄 날씨와 지는 햇살이 이들의 움직임을 더욱 생생히 빛나게 하고 있다. 다소 긴장한 얼굴에서 격전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지만 어떤 핏빛 흔적도 발견할 수 없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이들의 나이는 이제 80대 중반에 접어들었다. 그들이 남기고자 한 것은 젊은 시절의 빛나는 승리였을 것이다. 그림의 병사들은 그들의 상징만큼이나 활기찬 모습이다.

   생생한 정밀묘사의 역설

　작가는 이 상황을 묘사하는 데 독특하게 극사실주의(hyper-realism) 기법을 동원했다. 극사실주의는 고화질 정밀묘사를 통해 사물을 매우 생생하게 그려낸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그 정밀함이 오히려 현실과 거리감을 만들어내는 역설이 작동한다. 너무 선명한 고화질 화면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과 같은 효과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복제”(장 보드리야르)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게 된다. 작가는 참혹한 전장의 모습을 기억하지 않으려 하는 노병의 마음을 읽었는지 모른다.

　모든 역사는 망각과의 투쟁이다. 미국인 병사에게 6·25 전쟁은 선택적 기억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한민족에게 6·25 전쟁은 철저한 기억과 반성의 대상이 돼야 한다. 과거를 잃어버린 민족에게 미래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전쟁을 대비했고, 어떻게 맞이했으며, 또 어떻게 싸웠는지에 대해 냉철한 분석과 평가를 통해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잊혀진 전쟁’을 구원하는 일이며 ‘끝나지 않은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즐겁고 행복한 나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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