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강남의 작은 도덕경』
우리가 의식하든 그러지 못하든 『도덕경』에 나타난 사상이 우리의 의식 심저(心底)를 움직이고 있고 그것은 중국, 한국, 일본 등 동양 삼국의 종교, 철학, 예술, 정치의 밑바닥을 흐르고 있다.
공자님의 윤리적이고 현실주의적인 사상이
우리 생활에서 양(陽)적인 외면 세계에 영향을 주었다면,
노자님의 형이상학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사상은
우리 생활에서 음(陰)적인 내면 세계를 움직였다고 할 수 있다.
근래에는 서양에서도 『도덕경』을 읽는 사람이 많아졌다.
헤겔이나 하이데거 같은 거장 철학자나 톨스토이 같은 사상가가 노자를 읽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었지만
최근 들어 도가 사상(道家思想)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 대학에서 도가 사상 강의를 수강하는 학생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서양에서 많이 논의되는 환경 문제나 여성학 등과 관련하여 『도덕경』에 나타난 세계관이나 자연관, 여성관이 많은 사람의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본문 7-8쪽)
『도덕경』은 본래 번역하기 어려운 책으로 유명하다. 어느 판본에 의존하느냐에 따라 원문도 다르고 같은 원문이라도 문장을 어디에서 끊어 읽느냐, 한 글자를 동사로 읽느냐 명사로 읽느냐, 동사라도 자동사로 읽느냐 타동사로 읽느냐, 평성으로 읽느냐 거성으로 읽느냐 하는 등 읽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상당 부분 역자 자신이 여러 주석서나 번역서를 참고하고 이리저리 숙고해서 가장 온당하리라고 생각하는 데 따라 ‘결단’을 내리는 수밖에 없을 때가 많다.
물론 『도덕경』은 『장자』라든가 다른 서책과 마찬가지로 우리 속에 있는 무엇을 ‘일깨우기’ 위한 ‘일깨움(evocativeness)’을 기본 특성으로 하는 책이므로 내용적으로 의미상 차이가 약간 있다 하더라도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
노자님의 글을 읽고 그와 함께 생각하며 내면적 대화를 나눔으로써 뭔가 우리 속에 잠재해 있던 것을 일깨우려는 자세가 더욱 중요하다. (본문 9-10쪽)
넘치도록 가득 채우는 것보다
적당할 때 멈추는 것이 좋습니다.
너무 날카롭게 벼리고 갈면 쉬 무디어집니다.
금과 옥이 집에 가득하면 이를 지킬 수가 없습니다.
재산과 명예로 자고해짐은 재앙을 자초함입니다.
일이 이루어졌으면 물러나는 것,
하늘의 길입니다.
(본문 42-43쪽)
가장 훌륭한 지도자는 사람들에게 그 존재 정도만 알려진 지도자,
그다음은 사람들이 가까이하고 칭찬하는 지도자,
그다음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지도자,
가장 좋지 못한 것은 사람들의 업신여김을 받는 지도자.
(본문 66쪽)
휘면 온전할 수 있고,
굽으면 곧아질 수 있고,
움푹 파이면 채워지게 되고,
헐리면 새로워지고,
적으면 얻게 되고,
많으면 미혹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하나’를 품고 세상의 본보기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