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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공격(특수 군사작전)하기로 한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상대인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그걸(공격설) 믿지도 않았다. 도대체 그 과정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24일 전쟁 1주년 특집 기사 '거짓 목적. 푸틴은 왜 공격을 시작하고, 젤렌스키는 믿지 않았을까? 사건 재구성'(Ложная цель. Почему Путин начал вторжение, а Зеленский в него не верил. Реконструкция событий)에서 러-우크라 권력 내부 소식통들을 인용, "지난해 2월 24일 전쟁 발발 이전 우크라이나 당국의 행동에도 많은 수수께끼가 있다"며 당시 상황을 재구성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미국 당국과 서방 외신은 2021년 11월부터 다가올 큰 전쟁에 대해 우크라이나 측에 경고했다. 젤렌스키 대통령 측에게는 논리적으로 정치적, 혹은 군사적 대응이라는 두 가지 옵션(선택 방안)이 있었다. 중립 국가를 선언하고 나토(NATO) 가입을 거부하며, 돈바스 지역 (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 분쟁 해결을 위한 기존의 '민스크 협정'을 준수하거나(즉 정치적 대응), 아니면 예비군 동원령을 내리고 방어 진지를 구축하는 등 전쟁 준비에 나서는(군사적 대응) 것이다.
하지만, 키예프(키이우)는 둘 다 하지 않았다고 스트라나.ua는 되짚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쟁 관련 모든 보고서를 '특수 심리전'이라고 부르며 믿지 말라고 했다. 오히려 5월부터 시작되는 휴가나 즐기도록 바비큐 준비나 하라고 했다.
막상, 전쟁이 시작되자, 젤렌스키 대통령 측은 "전쟁에 대비하고 있었다"며 "전 국민을 공황 상태에 빠뜨리지 않기 위해 대놓고 (전쟁 준비를) 얘기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정권의 이같은 설명은 스스로 자살 행위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스트라나.ua는 비판했다. 개전 초기 최대 격전지였던 남부 산업항구 도시인 마리우폴의 시민들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위험을 알고서도, 주민들을 의도적으로 대피시키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게 말이나 되느냐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영토 깊숙이 진입하고 있는 러시아군 탱크/ok 러시아군 계정
또 실제로 대규모 전쟁을 준비했다는 징후가 전혀 없었다. 전쟁에 대비하는 첫번째 조치이자 꼭 필요한 예비군 동원령을 발령하지 않았다. 러시아군의 국경 진입 이틀 전에야 수십만 명도 아니고, 겨우 3만5천명의 예비군을 소집했을 뿐이다. 개전 첫 주에 러시아군이 수도 키예프 외곽에 다다르고, 남부 지역의 넓은 땅을 차지할 때까지 방어 전략 자체가 아예 없었다고 스트라나.ua는 지적했다.
이번 전쟁은 2015년 민스크 협정, 돈바스 전쟁과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유로마이단 사건(우크라이나 친러 정권을 축출한 대규모 시위), 소련 붕괴, 1917년 혁명, 1654년 페레야슬라프 라다(제정 러시아 황제에 대한 우크라이나 코사크족의 충성 맹세 회의) 등 층층이 쌓인 역사에서 근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스트라나.ua는 분석했다.
◇ 전쟁의 방아쇠를 당기다
하지만, 전쟁의 방아쇠를 당긴 사건은 따로 있다고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2021년 2월 2일 '국가 안보회의'(정식 명칭은 국가안보및국방위원회)의 결정 사항을 최종 승인한 것. 바로 친러시아 정당인 '삶(생명)을 위한 야당 플랫폼'(Оппозиционная платформа-За жизнь, 이하 야당 플랫폼)의 지도자 빅토르 메드베드추크(나중에 러시아와의 포로 교환으로 러시아로 인도) 의장이 소유한(혹은 관련된) 친러 성향의 TV 채널 3개에 대한 제재 조치다. 이 결정은 주우크라이나 미국 대사관의 지원을 받았다.
가택 연금상태에서 탈출했다가 우크라이나 보안국에 붙잡힌 메드베드추크 의장/사진출처:우크라 보안국 SNS
이 조치는 크렘린이 지난 2015년부터 추진해온 대(對) 우크라이나 전략을 포기하라는 압박이나 마찬가지였다. 돈바스 휴전을 위한 민스크 협정이 체결된 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문제를 다루는 접근법으로 세 가지 전략을 갖고 있었는데, 우크라이나가 그 선택을 빼앗아 버린 꼴이라고 스트라나.ua는 지적했다.
첫 번째가 조건부로 '우크라이나는 잊어버리자'는 전략이다. 돈바스 사태와 크림반도 합병이후 우크라이나가 더 이상 러시아에 우호적인 국가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아예 관심을 끊는 방법이다. 유럽으로 가는 가스관을 더 이상 우크라이나를 통하지 않도록 하고(독러 해저 가스관 '노르트 스트림' 건설), 서방이 대러 제재를 해제하면 정치적 자치권을 대폭 인정하기로 한 '민스크 협정'과 상관없이 돈바스를 우크라이나에 반환하겠다는 뜻을 제시한 게 대표적이다. 민스크 협정에 참여한 '크렘린의 회색 추기경' 별명의 블라디슬라프 수르코프 전 대통령 보좌관이 지난 2019년 그같은 의사(돈바스 반환)를 피력한 바 있다. 물론, 반대파들은 돈바스를 크림반도처럼 러시아에 합병하자고 주장했다.
두 번째 전략은 전쟁. '우크라이나를 절대 잊을 수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한 안이다. 지지 세력은 우크라이나가 앞으로 극도로 러시아에 적대적인 국가가 될 것이며, 나토의 러시아 공격에 이용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유로마이단(2014년) 사건 이후 등장한 친 서방 우크라이나 정권은 내부 불안정으로 붕괴되거나, 군사적 수단을 통해 몰아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마지막 전략은 정치적인 수단을 동원해 우크라이나의 진로를 서서히 바꾸자는 것. 스트라나.ua는 "세 가지 전략이 서로 경쟁하듯 적용되고 있었지만, 크렘린의 공식적인 태도는 정치적인 전략을 따르고 있었다"고 소개했다. 이 전략의 핵심은 러시아에 대해 적대적인 우크라이나의 정책을 중립(화)으로, 나아가 미래에는 우호적으로 바꿔나가겠다는 것. 우크라이나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 친러 돈바스 지역에 광범위한 자치권을 부여하기로 한 '민스크 협정'도 여기에 부합됐다. 또 유로마이단 사건 이후 정치 흐름을 바꾸려는 우크라이나의 친러 세력을 적극 지원하는 것도 그 전략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이 전략은 처음부터 너무 환상적이고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크렘린의 선택은 세 가지 접근법을 동시에 적용하는 쪽이었다. 예컨대, '노르트 스트림 2'를 건설하고,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에서 무력 시위에 나서면서 동시에 정치전략도 병행했다.
그리고, 2019년에는 러시아의 이 접근법이 성공에 가까워진 듯했다. 우크라이나의 여론이 크게 변했기 때문이다. 권력층의 부정부패와 사회 경제적 어려움으로 '유로마이단'의 결과에 대한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환멸이 커졌고, 러시아와의 관계 정상화와 돈바스 전쟁 종식이라는 주제가 더욱 활발히 제기됐다. 우크라이나 엘리트(여론주도) 층도 서방의 원격 조종에 불만을 가졌고, 러시아와 재협상하자는 목소리(올리가르히 이고르 콜로모이스키가 대표적)도 나왔다.
그같은 상황에서 젤렌스키 후보가 대선에서 엄청난 차이로 승리했다. 그의 선거 공약은 돈바스 평화였다. 이를 위해 '악마(푸틴 대통령)와도 대화할 준비가 되었다'고 선언했다. 뒤이은 총선에서 친러 '야당 플랫폼;이 2위를 차지했다.
젤렌스키 대통령 주변에는 러시아와의 관계 정상화를 지지하는 세력이 몰렸다. 그 방향으로 진전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돈바스 분쟁의 포로 교환이 재개되고, 가스(우크라 공급및 영토 통과) 계약이 체결되었으며, 젤렌스키 대통령의 측근인 예르마크(현 대통령 실장)와 코사크 출신 모스크바 협상가 간의 협상 채널도 작동했다.
부인과 함께 '보그' 화보를 찍은 젤렌스키 대통령/캡처
문제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세력을 중심으로 한 반러 시위였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대규모 시위를 우려해 '민스크 협정'의 정치적인 부분(돈바스 자치권한 부여) 이행을 머뭇거렸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이후 우크라이나 측이 막아버린 크림반도로의 물 공급(북크림 운하의 재개통)도 재개하지 않았다. 예르마크(현 대통령 행정실장)가 러시아 측과 함께 서명한 돈바스의 정치적 해결을 위한 '조정 협의회'(러-우크라-돈바스 대표로 구성)도 실현되지 않았다. 한마디로 젤렌스키 대통령은 모스크바와의 화해로 서방과의 관계를 긴장시키고 싶지 않았다.
◇ 끝내 친서방 전략을 선택한 젤렌스키
크렘린에게는 두 가지 선택만 남았다. 민스크 협정과 북크림운하, 크림반도 등 골치 아픈 현안에도 불구하고, 지난 2008년 전쟁을 벌인 그루지야(조지아)와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와 '중립적 공존 관계'를 수락하느냐, 마느냐였다. 스트라나.ua는 '중립적 공존 관계'에 대한 제안이 실제로 젤렌스키 대통령 측에게 전달됐는지, 또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 제안에 어떻게 반응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결과적으로 러시아는 다른 길, 즉 젤렌스키 대통령과 대립 관계를 구축하고, 그의 권력을 약화시키는 수단을 선택했다.
그 당시, 젤렌스키 대통령은 큰 어려움에 빠져 있었다. 대통령과 집권 여당 '인민의 종' 지지율은 2021년 초까지 주저앉고 있었다. 헌법재판소는 그의 통제에서 벗어났고, 의회(최고 라다)에서는 '인민의 종'의 다수 의석이 깨졌으며, 모든 여론 조사에서 친러 '야당플랫폼'이 1위를 차지했다. 이같은 추세가 계속된다면 다음 총선에서 '인민의 종'과 친여 정당에서 이탈한 일부 정당들을 끌어 모아 '야당플랫폼'이 다수의석을 확보할 수도 있었다.
물론, 확율이 100%는 아니었다. 50% 미만이었을 지도 모른다. 특히 '야당플랫폼'과 그 연합세력이 다수의석을 확보했다고 해도, 친러시아적이었을 지는 확실하지 않다. 친러 성향의 두 전직 대통령 쿠츠마와 야누코비치도 권력을 잡기 전에는 친러시아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가능성만으로도 젤렌스키 대통령와 서방 측은 심각한 위협을 느꼈다. 그리고 2021년 2월 2일 '야당플랫폼'의 지도자 메드베드추크의 TV 채널에 제재가 가해졌다. 메드베드추크 개인에게도 탄압이 시작됐고, 그는 곧바로 형사 사건에 휩쓸려 가택연금에 처해졌다. 그는 가택연금 상태에서 탈출했으나 우크라이나 보안국에 의해 체포됐고, 지난해 9월 러시아와의 대규모 포로교환을 통해 러시아로 인도됐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크렘린의 인식 전환이다. '야당플랫폼'에 대한 우크라이나 당국의 탄압이 서방 측이 친러 세력의 재집권을 막기 위해 어떤 방법이든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신호로 러시아는 받아들였다. 이것은 2015년부터 추진해온 크렘린의 대 우크라 전략의 폐기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스트라나.ua는 해석했다.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돈바스 지역에서 교전이 재개됐고, 2021년 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으로 군사 장비를 이전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바이든 미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에게 전화한 후 차츰 정상을 되찾아갔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철수했고, 바이든-푸틴 정상회담이 그해 6월 제네바에서 열렸다. 특히 바이든 미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는 잊자'는 크렘린의 첫번째 대 우크라이나 전략 중 핵심인 '노르트 스트림2'에 대한 제재를 거부했다. '노르트 스트림2'는 완공을 향해 달려갈 수 있게 됐다.
그렇게 2021년 가을까지 '우크라이나 위기'는 정점을 지나는 듯했다. 러시아와 푸틴 대통령 개인에게도 국내 경제는 물론, 수출 등 해외시장 여건도 나쁘지 않았다. 지정학적으로도 미국과 서방이 본격적인 중국 견제에 들어가면서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이나 돈바스 내전 상황 등을 잊기 시작했다. 푸틴 대통령이 2024년 재선에 쉽게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도 커져갔다.
물론, 러시아에는 여전히 유럽 국가들에 비해 삶의 수준이 낮다는 사회 경제적 문제는 남아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는 적지만 공평하게 소득을 분배하고, 예산 집행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원과 수단을 갖고 있었다.
만약, 러시아 정부가 최저 임금을 큰 폭으로 인상해 국민의 평균 급여를 10만~12만 루블 수준으로 올리기로 했다면, 여기에 소요되는 자금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쓰는 돈보다 적을 것이라고 스트라나.ua는 추정하기도 했다. 나아가 그 결과는, 러시아인의 삶이 질적으로 유럽의 표준에 빠르게 접근하면, 이웃 나라 우크라이나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직접 우크라이나인들이 받을 인상은 푸틴 대통령이 거듭 강조하는 '러시아와 같은 뿌리', '두 민족의 통일' 주장보다 100배나 더 강할 것이고, 상당수가 친러 성향으로 변할 것이라는 게 스트라나.ua의 예측이다.
우크라이나는 정치적 혼란에 더 깊숙히 빠져들었다. 내부적으로는 올리가르히 리나트 아흐메토프 등 영향력 있는 세력들의 연합이 젤렌스키 대통령에 맞서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의 고질적인 부정부패 구조를 점점 더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서방 측과도 껄끄러운 관계로 접어들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지지도는 계속 추락했고, 재선은 문제가 많아 보였다.
정권에 대한 신뢰도 하락에 2014년 이후 우크라이나의 진로에 대한 실망이 겹치고, 사회 경제적 안정에 대한 희구 세력이 늘어나면서 2021년 여름에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41%(대부분)가 푸틴 대통령의 '민족 통합' 논문(주장)에 동의했다. 다시 말해, 2021년 가을(많은 사람이 러시아의 공격을 거론하기 시작한 때)까지 우크라이나인 사이에서는 러시아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가 늘어나기는 커녕, 그 반대였다.
주먹을 불끈 쥐고 연설하는 푸틴 대통령/사진출처:크렘린.ru
2021년 여름부터 돈바스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통제하지 않는 돈바스 지역의 산업 구조가 새로이 개편되기 시작했다. 러시아 정부가 돈바스에 대한 재정지원 계획을 승인한 뒤, 기업의 구조조정과 체불임금 지불, 투자 확대 등 돈바스 개발에 나섰기 때문이다. 돈바스 지역의 경제사회적 기준이 러시아 수준으로 올랐다. 모든 것이 러시아화하는 것처럼 보였다.
2021년 11월 이후 서방 외신이 매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을 경고할 때, 우크라이나나 러시아 모두 이를 극도로 회의적으로 받아들였다고 스트라나.ua는 전했다. 당시 정세 흐름을 살펴보면, 당연한 일인 지도 모른다.
◇ 젤렌스키 대통령이 러시아의 공격을 믿지 않은 이유
러시아의 공격 가능성에 대한 경고가 우크라이나로 날아들었다. 그러나 젤렌스키 정권 내부에선 믿기 어려웠다. 국경지대로 러시아 군대가 집결하는 것은 분명했지만, 전쟁 자체가 우크라이나 엘리트 층의 관점에서는 미친 짓으로 보였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젤렌스키 정권의 한 소식통은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점령해서 무슨 큰 이득을 챙길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하며 "곡물 확보? 러시아도 충분히 갖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우크라이나를 공격한다는 것인지, 그 가능성은 우리에게 완전한 뜬 구름처럼 여겨졌다"고 말했다. 정권 내부에서는 '전쟁설'이 민스크 협정과 미러 안보 협상에서 나온 러시아측 안에 대해 우크라이나가 양보하도록 협박하는 '카드의 일종'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곧 러시아가 무언가를 계획하고 있다는 게 분명해졌다. 그 해 12월에는 모스크바가 나토 측에 사실상의 최후통첩을 보내 '나토가 우크라이나의 가입을 거부할 것'을 요구했다. 당연히 나토는 거부했고, 푸틴 대통령이 이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만 남았다.
그동안 나토 측은 우크라이나 측과 소통하면서, 즉시 전쟁 준비를 시작하거나 나토 가입을 철회하는 타협안을 권하기도 했다. 하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둘 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공개적으로 '러시아의 공격을 믿지 않는다'고 여러 번 밝혔다. 스트라나.ua는 이를 두고 "그 때도 매우 이상해 보였고, 전쟁이 시작된 후에는 더욱 그랬다"고 전했다.
물론, 그같은 태도에 대한 해명도 있다. 우크라이나 측은 실제로 러시아군의 공격을 믿지 않았고, 대다수의 러시아 엘리트 층도 마찬가지였다. 서방 외신은 전쟁이 시작된 후, 라브로프 외무장관을 포함해 푸틴 대통령의 많은 측근들조차 마지막 날까지 공격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의 엘리트층도 완전히 다른 것, 즉 돈바스 합병이 준비되는 것으로 믿었다. 국경 지대로의 군부대 집결과 나토에 대한 최후 통첩도 이를 위한 준비라고 생각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2022년 2월 초 크렘린과 가까운 한 정치학자는 "우리는 (2003년 개봉된) 이탈리아 범죄 스릴러 영화 '이탈리안 갱단'(Ограбление по-итальянски)의 등장인물이 아니다"라고 농담하기도 했다.
실제로 푸틴 대통령이 2월 초 돈바스 지역의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을 승인하자, 모두가 '돈바스 합병'이 뒤이을 것으로 확신했다. 친 푸틴 올리가르히 올레그 데리파스카는 DPR과 LPR의 승인 후 "이제 전쟁은 물건너 갔다"는 요지의 글을 SNS에 올렸다.
우크라이나 권력 내부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우크라이나 정부의 여러 소식통들도 "모든 정보를 취합해 보면 러시아의 움직임은 DPR·LPR을 승인하기 위한 준비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내각 회의/현지 매체 영상 캡처
유일하게 한 소식통은 "우크라이나 측이 나토와 '민스크 협정'을 타협하지 않으면, '심각한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전쟁 개시 닷새전인 2월 19일 "바이든 미 대통령이 외교적 기회를 얘기했을 때, 푸틴 대통령 뿐만 아니라 젤렌스키 대통령에게도 타협을 권한 것"이라며 "타협하지 않으면 모두에게 좋지 않을 것이라는 게 나의 의견"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를 우크라이나 지도부와 대통령실과는 공유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 하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이 2022년 초 최소한 우크라이나의 중립이라도 선언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은 제로(0)가 아니었다고 스트라나.ua는 짚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은 끝까지 러시아군의 공격은 극도로 비현실적이라고 믿었고, 러시아가 돈바스의 독립을 인정하는 게 최대의 목표라고 여겼다. 따라서 젤렌스키 정권은 이 믿음에 따라 행동했고 가급적 공황상태를 유발하지 않도록 조심했다.
우크라이나 측은 사실 러시아의 돈바스 독립 공화국 승인에 어느 정도 만족했다. 키예프가 나서서 이행하고 싶지 않은 '민스크 협정'의 붕괴를 러시아 측이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돈바스 전쟁 확대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그것이 '돈바스 지역'을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믿었다. 어쩌면 전쟁이 끝날 수도 있고, 돈바스 상황은 합병 후 크림반도와 비슷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젤렌스키 정권은 푸틴 대통령의 궁극적인 목표를 오산한 것이었다. 권력 내부의 핵심 소식통에 따르면, 개전 며칠 전에야 우크라이나 당국은 모든 것이 돈바스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푸틴 대통령이 전면 공격에 나서리라고 믿는 이는 거의 없었다. 러시아측에 너무 무의미해 보였다.
그런데, 왜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면 공격을 결심했을까?
◇ 푸틴의 선택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 당국은 '특수 군사작전'을 시작하기로 한 이유를 여러 차례 설명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진실에 부합하거나, 비슷해 보이지 않는다고 스트라나.ua는 지적했다.
러시아는 8년간의 돈바스 전쟁과 이에 따른 주민들의 고통을 끝내기 위해 특수 군사작전을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돈바스는 이번 전쟁의 가장 큰 피해 지역이다. 희생자 수나 파괴 규모는 지난 8년과 비교할 수 없다. 전투가 거의 중단된 2015년 3월 이후, 돈바스 지역의 애매한 지위와 모호한 미래는 러시아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스트라나.ua는 "분명히 비군사적인 해결책이 있었고, 2022년 초에는 실제로 가동됐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국방장관 주재 회의 모습/사진출처:국방부 영상 캡처
나아가 스트라나.ua는 러시아측이 주장하는 몇가지 가정에 대해 하나씩 따져보기도 했다.
우선, 우크라이나가 2022년 봄에 돈바스에 대한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고, 이에 러시아가 선제 공격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러시아는 주장했다. 사실일까?
우크라이나가 돈바스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믿을 만한 증거는 없다고 스트라나.ua는 반박했다. 우크라이나 당국도 부인했고, 우크라이나군 소식통도 이를 확인하지 않았다. 2월 중순 돈바스에서 벌어진 전투(2월 16일 우크라이나 '통일의 날'을 전후한 전투 재개)도 공격을 앞둔 러시아 측의 의도적인 도발에 가깝다고 스트라나.ua는 주장했다. 실제로 전투의 규모와 양상은 이전 수준을 크게 넘어서지도 않았다.
설사, 우크라이나군이 2022년 3월 돈바스 공격을 계획하고 있다고 치자. 러시아는 DPR과 LPR를 지원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했을 것이다. 그러면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 현재와는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스트라나.ua는 "유럽의 반응이 지금과는 딴판이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프랑스와 독일은 돈바스에서 '군사작전'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거듭 선언한 상태였다. 우크라이나군이 갑자기 대규모 돈바스 공격을 개시했다면, 프랑스와 독일의 태도는 지금 푸틴 대통령을 대하듯, 젤렌스키 대통령을 대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러시아의 무력 동원을 비난할 가능성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유럽연합(EU)은 러시아에 가하고 있는 현 제재 조치의 10분의 1도 취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태도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바이든 대통령도 유럽 동맹국의 입장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을 것으로 스트라나.ua는 지적했다. 누구도 우크라이나에 중화기와 탄약을 공급하지 않을 게 분명하고, 유럽은 우크라이나가 협상 테이블에 앉도록 계속 요구할 것이라고 했다. 우크라이나가 영국(?)과 폴란드, 발트해 연안 국가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을지 몰라도, 그들의 지원은 전쟁 수행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스트라나.ua의 분석이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서방으로부터 대대적인 지원이 없다면, 우크라이나는 6개월 안에 탄약이 바닥나고, 러시아군은 적어도 돈바스에서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을 격퇴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을 것이다. 또 민간인의 희생도 지금보다 몇 배나 적을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여론도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그간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군사적인 방법으로 돈바스를 우크라이나 통제하에 놓은 방안에 지지하는 우크라이나인은 소수에 불과했다.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은 도박이자 재앙이 될 것인데, 이를 잘 알고 있는 키예프가 2022년 봄에 무슨 공격을 준비했겠는가라고 스트라나.ua는 되물었다.
우크라이나군의 기갑부대
우크라이나 당국이 돈바스에 광범위한 자치권을 부여하는 '민스크 협정'의 정치적인 부분을 이행하기를 원치 않았다고 해서, 군사적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더구나 돈바스 공격에 나서려면 러시아가 개입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2022년 초에는 이미 러시아 정예병력 15만명이 우크라이나 국경에 주둔하고 있었다.
러시아 지도부가 실제로 우크라이나군의 공격 정보를 어디선가 얻었다면, 가장 합리적인 조치는 그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스트라나.ua의 분석에 따르면, 특수 군사작전의 시작을 알리는 푸틴 대통령의 연설에도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이 특별히 강조되지도 않았다. 그는 "우크라이나 당국이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기를 거부했고,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세력과의 충돌이 불가피하다"며 "그들은 준비하고 있으며 적절한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1941년 6월 22일(독일 나치군의 침공)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문구도 있었지만, 문맥상 우크라이나군과 돈바스가 아니라 나토의 동진 정책을 겨냥한 게 분명했다.
푸틴 대통령 개전 연설의 핵심은 나토였다. "서방은 우크라이나를 '반 러시아'로 바꾸고 러시아와 전쟁을 시작하기 위해 나토에 가입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서방은 우크라이나의 중립화를 통해 새로운 안보 시스템을 구축하라는 모스크바의 요구를 무시했다". "러시아는 잠재적인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특별 군사작전을 시작할 수 밖에 없다"는 게 요지였다.
이같은 주장은 이후에도 여러 번 반복됐다. 도대체 왜?
◇ 푸틴 대통령의 의도는 진짜 무엇인가?
2022년 2월 초까지 우크라이나는 절대로 나토에 가입하기 직전까지 가지는 않았다. 서방이 우크라이나를 자제시키려는 태도까지 보였다. 우크라이나의 중립국화 의견도 엘리트 층에 널리 퍼졌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직접 이를 시사하기도 했다.
여론의 변화와 함께 시간이 흐르면서 러시아와의 평화 공존을 위한 중립국화 주제가 실현되었을 수도 있다고 스트라나.ua는 되돌아봤다. 하지만, 이는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완전히 중단됐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반대한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조차, 이제는 전쟁이 끝난 뒤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할 수도 있다고 본다.
나토 본부/사진출처:트위트 계정
나토가 러시아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주장은 여전히 비현실적이다. 만약 그런 의지를 갖고 있다면 지금 당장이 호기다. 러시아군의 주력 부대가 우크라이나에 가 있으니 나토는 거의 맨손으로도 칼리닌그라드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무르만스크까지 점령할 수 있다고 스트라나.ua는 주장했다.
하지만 나토는 러시아를 공격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에 무기는 공급하지만, 병력을 파견하지는 않는다. 왜? 러시아의 핵무기와 제3차 세계 대전 가능성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호기를 버리고 평시에 느닷없이 러시아를 공격할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더욱 우습다.
스트라나.ua는 "서방이 러시아의 현재 권력을 좋아하지 않았고, 그래서 바꾸고 싶고, 전략적으로도 러시아를 약화시키고 싶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그러나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러시아와의 직접 전쟁외에 다른 수단들이 있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러시아 국내 상황을 불안정하게 만들거나 러시아를 제 3국과의 군사적 갈등으로 끌어들이고, 강력한 제재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러시아가 서방의 미사일 방어망으로도 격추할 수 없는 강력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이상, 서방이 러시아와 직접 충돌하는 시나리오는 상상하기 어렵다고 했다.
전쟁 유발 요인에 대한 스트라나.ua의 냉정한 분석은 계속된다.
우크라이나의 핵 및 생물학 무기 제조 시도를 제지한다? 그 대처는 매우 간단하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제소하고, 사찰단을 현장으로 보내는 국제적으로 아주 쉬운 메커니즘이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공격 전에 이를 한번도 시도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내 러시아어 보호와 비나치화? 오히려 전쟁으로, 특히 러시아군이 러시아어를 주로 사용하는 도시를 공격했을 때, 그 지역에서 반 러시아 정서가 크게 증가했다.
마지막으로, 푸틴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자주 내세우는 미국의 헤게모니(세계 질서 주도권) 파괴? 물론, 미국은 '규칙을 기반으로 한 국제질서'와 '영토및 주권 보전'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할 때, 이중적인 기준과 위선적 행동으로 비난받을 소지가 충분하다. 미국은 이라크와 세르비아 등 반미 국가들을 무지막지하게 폭격한 과거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이를 반복하는 러시아의 행동도 보다 정의로운 세계 질서의 건설에 기여할 수 없다고 스트라나.ua는 지적했다. 그리고 "이게 어떻게 다극 체제로의 전환에 기여하느냐"고 되물었다. 결과적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과 유럽간의 더 단단한 결속으로 이어졌고, EU와 러시아가 힘을 합쳐 유라시아를 또다른 힘의 중심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은 물건너 갔다.
EU 정상회의
남은 것은 '역사적인 러시아 땅'을 되찾기 위한 전쟁이다. 인접 국가 정복을 통한 러시아 국경의 확장이다. 전쟁 몇 달 후에야 그 의도가 분명히 드러났다고 스트라나.ua는 지적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2월 24일 연설에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점령할 이유가 없다"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원래 계획은 러시아가 통제하는 새로운 우크라이나 정부를 세우는 것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새로운 목표를 세워야 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러시아군의 전력과 우크라이나 저항 세력에 대한 잘못된 평가로 인해 러시아의 계획대로 전쟁이 진행되지 않았다. 인간에게 가장 큰 고통을 안겨주었을 뿐이다. 우크라이나의 엄청난 비극과 러시아의 큰 손실, 그리고 제 3차 세계대전 시나리오까지, 앞으로의 전망은 모호하고 러시아를 포함한 모든 당사자에게 극도로 위협적인 상황으로 변했다.
◇ 어쩌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러시아에서는 "서방이 의도적으로 푸틴 대통령을 자극해 전쟁을 유발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서방이 굴에 있는 곰(러시아)을 막대기로 찔렀고, 우크라이나도 똑같이 하도록 시켰다는 것이다. 스트라나.ua는 "우크라이나가 돈바스 혹은 크림반도를 공격하는 정도면 모르겠으나, (막대기로 찌르는) 정도의 '도발'은 다른 행성에서 발생한 가벼운 지진과 같은 수준의 위협"이라며 "우크라이나군의 선제 공격은 없었다"고 거듭 주장했다.
그렇다면, 메드베드추크와 그의 TV 채널에 대한 우크라이나 당국의 제재가 푸틴 대통령을 전쟁으로 몰아가는 도발로 인식할 수 있을까?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러시아가 정치적 수단으로 우크라이나의 진로를 바꿀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러시아는 이 정도 도발을 무시할 수 있었다고 스트라나.ua는 밝혔다.
또 푸틴 대통령의 측근이 우크라이나군의 잠재력과 저항 의지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전쟁을 시작하도록 유도했다는 일종의 '음모론'도 있다. 그 동기는 서방 정보국에서 일하는 것부터 러시아 대통령을 교체하려는 욕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또 푸틴 대통령이 접촉 범위를 극도로 제한하고,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에 대한 판단도 흐려졌으며, 역사에 남을 만한 개인적인 동기에 따라 전쟁을 시작했다는 주장도 있다. 그가 21세기의 '표트르 대제'가 되는 꿈이다.
스트라나.ua는 이같은 헛된(?) 주장들보다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의 근본 원인이자, 명백한 사실(팩트)을 먼저 살펴보자며 "우크라이나는 전형적인 러시아의 미끼가 되었다"고 강조했다. 또 그 과정은 푸틴 대통령이 집권하기 전, 1990년대에 시작됐다고 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전략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그의 유명한 책 '거대한 체스판'(The Grand Chessboard, 1997년 발간)에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없이는 제국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러시아에서 이 말은 '우크라이나 없이는 결코 강대국이 될 수 없다'는 식으로 더 광범위하게 해석됐다. 정치 엘리트 층도, 대중도 여기에 빠졌다.
하지만, 이 이론은 완전히 거짓이었다고 스트라나.ua는 결론짓는다. 소련 붕괴 후 1991년 국경하에서도 러시아는 여전히 자급자족 국가였다. 막대한 천연자원 매장량에 산업 및 과학 분야에서 차지하는 강력한 위치, 핵무기, 광활한 영토, 유엔 안보리 거부권도 갖고 있었다. 혼란을 극복하고 내부 질서를 회복한 뒤 효과적인 국가 행정 시스템과 부의 공평한 분배 조치 등도 작동하고 있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통제는 러시아가 이미 보유한 것에 추가되지 않았다.
혼돈의 1990년대는 몰라도, 2000년대 이후 러시아에 대한 전망은 희망적이었다. 다만 우크라이나를 통하는 가스관 문제와 흑해 함대의 모항 세바스토폴(크림반도)의 유지 여부가 남아 있었다. 가스관은 기술적인 해결책이 있었고, 흑해함대는 주둔 협정을 연장하거나(실제로 2010년 연장), 노보로시스크로 이전할 수도 있었다.
크림반도의 여름 풍경
그럼에도 '잃어버린 제국'에 대한 러시아의 갈망은 2000년 우크라이나의 '카세트 스캔들'(친러 쿠츠마 대통령의 연임을 포기하도록 만든 도청 스캔들)과 2004년 마이단 사건(우크라이나 오렌지 혁명) 등을 일으켰고, 급기야는 2014년 유로마이단 사건(이후 동부지역 내전)으로 이어졌다.
스트라나.ua는 "우크라이나에 반 러시아 세력이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틀림없이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그들이 러시아의 존재에 대한 치명적인 위협이 되느냐고 물으면, 아니다"고 부인했다. "2014년 이후(유로마이단, 돈바스 내전, 크림반도 합병)에도 그런 위협은 없었다"고 했다.
스트라나.ua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미래가 달려있는 매우 중요한 국가라는 인식이 잘못된 것"이라며 "이게 전쟁의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잘못된 목표에 대한 러시아의 집중은 대외내 정책에서 잘못된 접근 방식을 유도했고, 경제 발전과 공공 행정 및 사회 정의의 효율성 향상이라는 훨씬 더 중요한 문제로부터 관심을 빼앗았다고 했다. 또 구소련의 공화국들, 특히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의 날개 아래로 가져오지 못하면 러시아는 망할 것이라는 인식이 가장 큰 문제였다고 했다.
◇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반드시 이 전쟁에서 이겨야 한다. 러시아에서도 '러시아의 패배는 모두에게 재앙이 될 것'라고 한다.
스트라나.ua는 "전쟁은 반드시 조만간 끝날 것"이라며 "양국 모두 완전한 승리를 원하고 있지만, 전쟁은 그렇게 끝나지 않을 수도 있고, 그 가능성이 오히려 더 높을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두 가지 옵션이 제시했다.
첫 번째는 새로운 전쟁을 위한 휴전 상태다. 양국은 복수의 칼을 갈며 부지런히 다음 전쟁을 준비하는 것이다. '새로운 이스라엘이 되자'고 얘기하면서도, 자칫 식민지에서 벗어난 뒤 수십 년간 전쟁과 쿠데타, 역쿠데타, 테러 및 대량 학살로 이어지는 '아프리카의 길'을 가는 것이다.
두 번째는 양국이 전쟁의 원인을 분석하고, 결론을 내린 다음 서로의 삶에 간섭하지 않고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이다. 이는 러시아가 먼저 결론을 내려줘야 한다.
러시아에서는 '국가적 아젠다'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심심찮게 나온다. 러시아의 삶의 질을 유럽의 상위권으로 올리자는 차원에서다. 성공하면, 러시아가 거대한 노르웨이로 변모할 수도 있다.
스트라나.ua는 "러시아의 이같은 아젠다는 매우 야심찬 프로젝트"라고 전제한 뒤 "그것이 우크라이나 (또는 다른 국가) 정복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고 비용이 적게 든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이 프로젝트는 인간의 생명을 원하지도 않고, 러시아 사회 전체를 위해서도 유익하다고 했다. "러시아 엘리트층이 이를 빨리 이해할수록 그만큼 모두에게 더 좋을 것"이라는 결론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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