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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굽에 들어간 이스라엘 자손
출 1: 1-7
어제까지 창세기를 공부했습니다.
이제 요셉이 있던 애굽으로 야곱의 가족들이 이주를 하여 생활을 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축복은 몇 백년 지나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 역시도 기도하는 일들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기도하는 것들이 빨리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낙심하지 말고 신실하신 하나님께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도리를 다 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에 야곱이 애굽으로 이주하는 시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서 기근으로 인해서 커다란 고통을 당하던 때이고 선택받은 백성이 역사적 위기에 처한 때입니다.
본문을 통해서도 얻을 수 있는 교훈이 많이 있습니다. 우선 애굽이라는 도시를 알아야 합니다. 애굽은 상당히 커다란 도시이고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악의 전형이라고 합니다. 즉 애굽은 이 세상의 전형으로 말 그대로 세상의 영욕을 그대로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애굽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보내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백성을 연단하시기 위한 교육의 장으로서 사용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즉 불신앙과 우상숭배가 만연하던 애굽의 생활의 풍토속에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하게 함으로 그들의 신앙을 단련시키고자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어려운 중에서도 구원을 체험하고 확실한 신앙생활을 영위해나갈 것을 기대했습니다. 더 큰 복을 주시기 위함이라는 신앙의 연단으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애굽에서의 생활을 통하여 인격과 능력이 향상되게 했습니다.
1.믿음의 향상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히11:1“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하나님께서는 애굽의 열악한 상황속에서 이스라엘이 더욱더 강한 믿음을 획득하도록 배려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단지 눈앞에 일어나는 일들을 믿는 단순한 믿음의 차원이 아닌 어려운 환경속에서 부르는 감사의 노래를 침묵적으로 요구했던 것입니다. 즉 하늘의 열매는 지상의 토양에서는 눈물로 적셔주지 않는 한 자랄 수 없는 성질의 것임을 이스라엘에게 알려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2.구속에서의 해방
이스라엘의 희망은 그들을 압박하였던 애굽 즉 죄의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에게는 상당히 고통스러운 속박인 이교적 우상숭배가 당시 애굽에 만연하였으므로 엄격하고 확실한 지도자가 있어야만 이스라엘 백성이 그 속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온갖 욕망의 찌꺼기들이 어지럽게 만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런 종교적 민족적 구속으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주고 지켜줄 수 있는 지도자적인 인물이 아무때나 출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고난을 통해서 선택된 백성을 인도하시려고 할 때에 출현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애굽은 이스라엘의 훌륭한 지도자를 주시기 위한 예비적 징후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그 지도자를 통해서 해방을 맛볼 수 있는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3.부분적으로 얻어지는 능력
야곱은 그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뀌어짐으로 새로운 능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의 손안에 이 세상 역사의 방향과 구원의 소망이 놓여진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모든 능력은 바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야곱앞에 펼쳐진 애굽의 상황에서 어려움과 맞부딪쳐 싸워 나가는 와중에서 획득되어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그 어떤 종류의 어려움도 우리의 신앙을 위한 연단임을 단적으로 나타내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련을 주다가도 우리가 참으로 어려운 일에 빠지면 그것을 이길 수 잇는 힘도 주시는 분입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은 식량부족과 고된 행군의 어려움속에서 마침내 새로운 능력을 얻게되고 가나안에 들어가 하나님께 손을 들어 감사를 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위에서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애굽의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애굽은 세상을 상징하고 그러한 애굽의 상황속에 이스라엘을 들여보낸 것은 그들의 신앙의 연단을 위해서였음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 성도들이 사는 세상에도 우리들의 신앙을 더욱 강건하게 하기 위한 연단의 장으로 받아들일 수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더욱 확실하게 기억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어려움을 당당하게 주의 이름으로 극복하여 연단뒤에 주시는 하나님의 커다란 축복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
출 1: 1-7
창세기를 마치면서 1장부터 11장까지는 천지창조, 인간창조, 인간타락(죄의 시작) 죄의 결과, 그래서 범죄한 인간이 바벨탑을 쌓고 하나님을 거역하는데 까지 기록되어있고 12장부터 50장까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 그의 형제들에 대한 이야기로 말씀을 기록해 놓았는데 이 4대에 걸친 얘기들은 우리가 우리 생활속에서 평범히 들을 수 있는 자연스럽고 한많은 이야기를 기록해 놓았다고 보아야 될 것입니다.
이민가는 이야기, 가서 자식 낳고 그 아들을 바치게 되는 괴로운 이야기, 또 고통스러운 형제간의 갈등, 이웃과의 문제, 그리고 인생의 이런 저런 쓰고 단 경험, 그리고 슬픔과 눈물, 기쁨과 감격, 고뇌와 절망, 이런 것들을 기록한 내용인데 우리도 그런 말을 기록하라면 아마 파란 많은 인생을 살아간 스토리가 많이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얘기를 쓴 중요한 내용들을 종합해 보면 그 속에서 두가지 교훈을 받자고 말씀드립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잘 섬기는데 성공하면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같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을 떠나서 인간적인 방법으로 세월을 살아가면 고생하고, 낭비하고 고난속에 지내게 된다는 교훈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잘 섬기고 믿음으로 사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길이다라고 말씀을 드립니다. 하나님과 같이 사는, 하나님의 뜻을 붸아 사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길입니다.
또 하나 요셉의 생애를 보면 요셉이 성공했지만, 어떤 사람은 성공하고 불행한 사람이 있고, 성공이라고 말은 들었지만 실패한 성공자가 아니라 행복한 성공자, 곧 성공하고 한 위치에서 높은 지위와 훌륭한 위치에 있지만 그 형제들과 불행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분노와 증오심으로 가득차서 그 형제들과 불화하고 형제들을 감옥에 넣고 죽였다면 그는 슬픈 성공자요 가슴아픈 성공자였을 것인데 그는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그 형제들이 두려워서 우리를 죽일 것이다. 우리 자식을 다 종으로 삼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형제들의 생각과는 달리 그는 마음속에 그들을 용서하고 함께 울고 저들을 악을 선으로 갚는 것처럼 후히 대접하고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돌보겠습니다. 아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 그래서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용서받고 서로 존경하는 행복한 성공자가 되었다는데 까지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실 요셉의 마음속에 잊을 수 없고, 용서할 수 없고 지울 수 없는 두 사건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하나는 열한 형제가 울면서 애걸하는 저를 웃으면서 거절한 그 얼굴의 모습, 형제가 되어서 저를 팔아먹는 그리고 팔려가는 자기를 보고 재미있어하는 그 형제들을 보고 용서할 수 없는 중대한 사건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또 하나는 보디발의 아내, 실수는 자기가 해놓고 죄는 이 사람에게 억울하게 뒤집어 씌우고 거짓말로 사실도 아닌 것을 감옥살이 하게 했으니 얼마나 원통하고, 억울하고, 섭섭하고, 괴롭고 힘들었겠습니까? 종살이 하는 것도 힘든데 옥살이까지 하게 되니 증오심과 분노가 일어나고 아마 평생 잊을 수 없고 용서할 수 없는 그 여인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다 잊어버리고 오히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기를 인도하셨다는 신실한 마음과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감옥에 가든지, 어디를 가든지 불평하지 아니하고, 원망하지 아니하고, 늘 감사하면서 최선을 다하고, 신실하고 정직하게 자기 일을 감당했기 때문에 올라 갈 때도 교만하지 않고, 내려 갈 때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고 지금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시간이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성공하는 것은 무엇이고,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는 것을 선명하게 우리가 알고 이해하고 가치관을 확실하게 정하고 그 기준에 의해서 인생을 살아가고 생애를 보낸다면 우리는 후회함이 없는 성공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성공한 후에도 행복한 성공으로 인생을 마칠 수 있다는 것이 우리가 창세기를 공부하면서 배운 교훈입니다.
하나님을 신실하게 신뢰하고, 믿고 주님을 의지했기 때문에 요셉은 하나님 앞에 높은 지위에 갔을뿐 아니라 성공한 후에도 행복한 성공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을 살아 갈때에 용서하지 못할 때가 가끔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미국에 이민와서 돈을 조금 벌어서 그것을 누가 빌려달라고 해서 빌려주었다가 그 돈을 빌려간 사람은 줄 생각은커녕 달라고 하면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아예 What are you talking about?라고 외면하고 맙니다. 그래서 심장병이 생기고 의사와 상담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이르게 됩니다.
돈 잃어버린 것은 많은 것을 잃어버린 것이고, 두 번째 돈도 잃고 건강도 잃으면 더 큰 손실이고, 건강을 잃어버리고 생명을 잃어버리면 다 잃어버리는 것인데, 그것은 하나님께 다 맡기고 용서하고 하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겨 다른 방법으로 축복하시도록 기도 드립시다. 어떻게 이것을 잊어 버릴 수 있습니까? 그때부터 만일 그것이 그의 생애의 전부라면 손톱, 발톱이 빠져 가면서 허리가 끊어져 가면서 그렇게 고생해서 10년간 벌은 돈이라면, 그는 10년을 더 고생해야 되는데 어떻게 그것을 잊어버릴 수 있겠습니까? 이런 일들이 이민사회 우리 생애에 있을 수도 있고, 자주 듣고 오가는 소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용서할 것은 용서하고, 잊을 것은 잊고 새 출발해서 하나님의 섭리와 격려를 믿고 하나님 의지하고 살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요셉이 그렇게 한 맺힌 사연들을 다 잊어버리고 성공했는데 사람을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가정을 깨뜨리지 아니하고, 자기를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사랑과 눈물과 아름다운(스토리) 우애가 남아 있어서 행복한 성공자였다는 것을 우리가 다시 한번 기억합니다.
최근에 신문에 나는 사건들을 보면, 높이 성공하고 출세했는데 나중에는 이혼하고, 싸우고, 고통받고, 돈은 벌었는지 몰라도 마음에 평안이 없어서 실패한 성공을 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비록 세상사람 보기에는 와!! 그러지 않아도 하나님이 주신 평안과 기쁨을 가지고 하나님과 교제를 성공하고, 신앙생활 성공하고, 인간관계 성공하고, 가정에서 화목하고, 그리고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남편은 아내를 불쌍히 여기고, 아내는 남편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화목하고 그리고 형제간에 우애하고 그리고 아름다운 교제가 이루어져서 하나님의 행복한 성공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그래서 마음을 열고, 용서하고, 그리고 하나님이 요셉처럼 축복하시도록 그래서 성공이 무엇이냐? 정의를 내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출세가 무엇이냐? 하는 것을 정의를 내리고 진정한 성공은 무엇이냐?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는 것이고, 그리고 인간과도 화목한 관계를 갖는 것이고, 사람과도 온전한 용서와 사랑을 갖는 것이 행복한 성공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더 성공하려고 애쓸 필요없어요.
예수 믿은 자체가 성공이요, 축복인줄 믿습니다.
죄 사함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을 기업으로 받고, 천국을 상속으로 받을 신분과 지위가 되었으면 출세했지 이 이상 더 출세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죄 사함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을 누리고 영원한 천국을 상속으로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이 사실만으로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으로, 가장 축복받는 사람으로 더 이상 부러울 것이 없는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사람인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하던지 가장 기본적인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 섬기는 것입니다.
사업도 하나님 중심으로 하고, 그리고 생활도 하나님 중심으로 하고, 주님과 가까이 하는 것, 이것이 성공이고 승리이고 축복인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살 동안 인간관계를 잘 가져서 화목하고 행복한 인간생활, 가정생활을 이루어가고 화목한 중에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행복한 성공자라는 것을 다시 말씀드립니다.
이렇게 해서 요셉이 다 그의 형제들을 애굽 고센땅이라는 곳으로 보내 목축업을 하면서 살아가는데 아마 남자만 계산해서 70명의 가족이 고센땅으로 이민을 간 것 같습니다.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400년이 흘러서 요셉은 죽고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 와서 이 강대하고 창성한 이스라엘 사람들을 핍박하기를 시작한다는 이야기, 이것이 출애굽기의 시작이고 그 핍박받는 민족을 일찌기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연단을 통해서 훈련을 받은 모세가 그 백성을 애굽땅에서 출애굽을 시키고 가나안 땅까지 인도하는 스토리가 출애굽 전체에 흐르는 주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라고 하는 사람을 우리가 다시 한번 조명하면서 모세의 생애가 가득히 담겨있는 출애굽기를 보면서 우리는 모세가 연단과 시련을 거치면서 어떻게 출세했고, 어떻게 자랐으며, 어떻게 쓰임 받는가를 조명해 봄으로 우리가 교훈을 받고 하나님 앞에 쓰임을 받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실 모세는 운명적으로 나자마자 그냥 죽어야 되는 비참하고 처절한 운명속에서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이런 운명속에서 태어났다는 모세! 어머니는 그 아이를 갈대상자에 넣어서 나일강 하류로 떠내려가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지금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운명의 갈대상자에서 떠내려 가다가 바로의 공주에게 발견이 됩니다. 누구에게 발견되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공주에게 발견되었기 때문에 공주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죄악의 세상에 떠내려가는 가련한 운명의 우리가 어느날 예수님이 우리를 보시고 발견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발견하고, 주님이 우리를 발견하셔서, 하나님의 자녀, 영원한 왕의 왕자로, 우리를 삼아 주셨다는 것을 생각할 때 얼마나 감사하고 참으로 감격스러운지 누가 만나주느냐! 누가 우리를 찾아오느냐! 이것도 중요하다고 말씀을 드립니다.
모세는 왕자의 자리에 들어가서 40년동안이나 훌륭한 환경속에 문무와 예술을 배우면서 자랍니다.
그런데 어머니 모태에서 받은 신앙의 뿌리, 민족관, 유신론, 유일하신 단일신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의 뿌리가 있어서 그가 40년이 지난 후에 장정이 되었을 때 자기 백성들을 구원할 꿈이 있었지만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아서 모세는 중대한 사고를 일으키게 되고 왕자의 자리에서 도망자라는 운명적인 신세가 되어 광야를 헤매게 됩니다. 사람이 이렇게 여러번 바뀔 수 있나봅니다.
모세가 광야에 있다가 40년만에 하나님은 모세를 떨기나무 불꽃가운데서 만나주셔서 모세야! 모세야! 부르시니까 예! 제가 여기 있습니다. "내 백성을 이끌어 내라" 는 하나님의 말씀에 '하나님 저는 말해본적이 언제인지 모릅니다' 40년 동안을 말 못하는 짐승들과 지내면서 혀가 굳어져서 말을 못할 정도로 이런 어둡고 외로운 긴 여정을 마치었을 때 하나님은 저를 들어서 찬란하고 위대한 지도자를 만드셔서 바로가 떠는 그리고 전 애굽을 상대로 해서 단신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끌어내고 요단강과 홍해를 건너는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세의 생애를 다시 보기 전에 대략적으로 모세는 그 순간순간 왜 이런 기구한 운명에서 태어났으며, 왜 이렇게 비참한 운명이 되었으며, 왜 이렇게 처참하게 떠내려가는 운명이 되었을까? 그때그때 생각하면 저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세월이 지난 후에 성경의 전체를 보면 하나님의 손길이 순간순간 같이 하셨고, 하나님의 역사가 늘 같이 계셨다는 것을 보면서 그렇다면 그 순간순간은 종착역이 아니고, 결론이 아니고 과정이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모세가 그런 시련과 역경, 올라가는 것도 과정이고 내려가는 것도 과정이고, 낳은 것도, 떠내려가는 것도, 감옥에 가는것도, 종살이 하는것도, 우물속에 들어가는 것도, 나오는 것도, 팔려가는 것도 과정인 것이었습니다.
이 과정이라는 생각을 왜 우리가 안하는지..... 끝이라고 생각하니까 절망이고, 여기서 더 이상 갈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좌절하게 되는데 하나님의 손길은 당신을 사랑하고, 붙잡은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끝까지 인도해 주실 줄 믿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결론이 아닙니다.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일하시고 계십니다.
20년동안 지켜본 집사님이 계십니다. 눈에서 눈물이 마른것을 본적이 없습니다. 신앙적으로는 평안이 있지만 그 눈에는 눈물이 항상 있었습니다. 인간적인 기쁨이나 행복감에 젖어서 웃는 웃음을 한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20년을 지켜 보았는데 눈물이 마른적이 없고, 웃음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어떤 사건, 어떤 일이 생기고 난 다음에 그 동안에 있었던 모든 어둠은 다 사라지고 드라마틱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환경도 참으로 좋아지고 그 웃음, 눈물이나 그늘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밝은 얼굴로 주님을 섬기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로 씨를 심고, 열매를 거두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지나서 어느 날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길이 움직이시니까 환경이 다 변화되고 하는 일 마다 축복이 되고 얼마나 아름답게 행복함을 느끼시는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래 참게 하시더니, 오래 인내하게 하시더니 이렇게 큰 축복과 남다른 행복과 기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는 그런 감사의 모습을 볼 때마다 느낍니다. 할렐루야!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이 모세의 생애와 같이 고난과 시련과 역경은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면 오히려 하나님이 우리를 쓰시려고 연단하시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시려고 40년동안 광야에 넣어서 우리를 훈련시키신다면 우리는 과정을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지, 과정을 결론으로 받아 들인다면 그 사람은 절망하고 믿음을 버리지 않을 수 없는 비참한 모습에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사실 사람은 어떤 면으로 볼 때 이런 과정에서 연단을 많이 받을수록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시고 사용하실 것입니다. 깊이 기초를 파면 위로 건물을 높이 지을 수 있는 것처럼 오랜 세월 눈물로 인격을 닦으면 후에 그리스도의 신비한 아름다움을 비춰내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지금 어려운 불같은 연단을 받으면 후에 정금 같은 신앙의 축복을 받게 될 줄 믿습니다.
칼이나 낫이나 도끼같은 연장들도 용광로의 뜨거운 불에서 여러번 달구고 두들기고 또 담금질 당해야만 견고한 연장이 되는 것처럼 인생도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있어서 뜨거운 불속에 넣고 뜨겁다고 하나님 죽습니다! 그러면 또 꺼내서 잔소리 마라! 그리고 때리는 것입니다. 무슨 잔소리가 많으냐? 녹이나고 때가 많고 그 못난 것 보잘것없는 것을 갔다가 두드려서 Form을 만들고 납작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다 되었나보다 하면 또 갔다가 넣고 그렇게 몇번을 하고 나면 그 다음에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잘 다져져서 좋은 사역, 일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로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불 속에 들어가 있을 때도 주인이 보고 있고, 꺼내낼 때도 주인의 손에 있고, 맞을 때에도 주인의 손에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연단 받고, 시련이 있고, 불같은 문제가 있을 때는 주님이 더 강하게 붙잡고 더 세게 때리는 줄 믿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주님 손안에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인간의 운명을 주관하시고, 운명에 떠내려 가지 아니하게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있으면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이 어떤 경우에서도 우리의 생애를 붙잡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올라갈 때도 있고, 내려갈 때도 있고, 가난할 때도, 부요할 때도, 찬란한 영광을 받을 때도, 눈물겨운 외로움과 수모를 겪을 때도 있지만 주님이 붙잡아 주시는 손길은 변하지 않고, 하나님이 같이 하신다는 사실을 출애굽기를 시작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보면서 모세의 생애를 인도하신 하나님의 손길! 우리의 손길! 우리를 붙잡으신 주님의 손길! 을 먼저 느끼고 우리가 무엇이 중요한 것이냐? 무엇이 소중한 것이냐? 를 깨닫고,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데 성공하고, 행복한 성공자가 되고, 연단 중에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과정을 과정으로 이해하고, 내일의 소망을 가지고 믿음으로 살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주님! 모세가 운명적인 비참한 출생과 가련한 운명을 지니고 떠내려가던 모세를 갈대상자에서 건져서 하나님의 손길이 평생동안 나타나 하나님이 저를 사용하셨던 것을 믿습니다.
주님! 우리가 지금 가슴 아프고 괴롭고 힘든 견디기 어려운 연단과 시련속에 있어도 주님 손에 붙잡혀 있음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용광로가 뜨거울수록 은이 순수해지고, 가마가 뜨거울수록 금이 정금이 되는 것처럼 시련과 연단이 우리를 연단해서 정금같은 믿음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모세의 생애를 다시 생각하면서 우리의 인생길에 소중한 것이 무엇이며, 귀한 것이 무엇이며, 행복한 성공이 무엇인가를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번성한 민족
출 1: 1-7
창세기는 세상을 창조하신 얘기가 아니라 족장들의 이야기이다.
출애굽기는 애굽을 탈출한 얘기가 아니라 탈출한 백성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규범과 성막 건축의 이야기이다. 출애굽기의 서두는 창세기와 출애굽기를 이어 창세기 46장의 내용을 따라 이스라엘 곧 야곱의 아들들이 애굽에 올 때는 70인이던 것이 이제는 큰 백성이 되었다는 서술로 시작한다.
70은 그 자체로 충만과 번성을 상징하는 수이다. 이렇게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이루신다.
1. 열두 아들은 열두 지파의 근원이다(1-4절)
애굽에 들어갔던 아들들의 이름을 열거하면서 나오기 전에 먼저 나온 자손의 근거를 설명한다. 이미 죽고 없는 조상이지만 그 조상들로 말미암아 자손이 있음을 밝힌다.
현재 우리가 있는 것은 조상의 덕이며, 현재 우리 교회는 우리 믿음의 선조들의 덕이다. 우리의 근거와 뿌리를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
성경은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한다. 두 이름이 함께 등장한다. 야곱은 족장 중의 한 족장이며, 이스라엘은 언약에 근거한 가계이다. 우리의 세속적 이름이 하나님의 언약의 가계가 되어야 한다.
2. 요셉은 애굽에 있던 이스라엘 민족의 근원이다(5절)
성경은 "이미 애굽에 있는 요셉까지"라고 한다. 요셉은 애굽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의 뿌리이다. 요셉은 형들이 팔아 애굽에 가게 되었고 애굽에서 고생 끝에 총리가 되었다. 요셉이 애굽으로 가므로 야곱과 식솔들이 가게 되었고 그 식솔들이 많아져 출애굽하게 된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었다.
요셉은 자신이 애굽에 팔려가게 된 것을 하나님의 경륜으로 알고 있었다. 자신을 식솔들 앞서 보낸 분은 하나님이신 것을 그는 고백한다.
바울은 경륜이라는 말과 예정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우리의 역사는 하나님의 경륜과 예정에 따라 이루어진다. 역사는 하나님의 계획이며 하나님의 활동 무대이다.
3. 이스라엘 자손은 번성하고 온 땅에 가득하였습니다(6-7절)
야곱과 더불어 이주한 가족은 번성하였다.
선민의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세대의 시작이다.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이 중다하고, 번식하고, 창성하고 심히 강대하였다. 동일한 의미의 동사가 4번 반복된다. 수사학적으로 "완전 강조"라고 한다.
하나님의 백성이 번성한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다(창 1:28). 그리고 번성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다(창 12:2).
이스라엘 공동체는 민족공동체이며 동시에 신앙공동체이다.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번성해야 하며, 약속대로 번성하게 될 것이다.
새해에도 하나님의 교회가 번성하여 온 땅에 가득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