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터운 사진첩을 뒤적거리다 롯데월드에서 촬영한 겨우 4장의 사진을 건졌다. 어릴 적에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좋은 곳을 많이 다녔던 걸 보면 '갓생'을 살았던 게 아닐까 싶다. 어떤 곳으로 떠날 때 저학년이었던 나는 솜뭉치가 달린 빨간 털모자를 쓰고 다녔다. 나를 담당하시던 엄마 수녀님이 빨래방에서 가져온 빨간 외투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외투가 신체에 비해 조금 컸지만 포근한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워낙 다른 피부색을 가져서 시설 내 형누나들에게 주목을 받았는데, 방학만 한 도피처가 없었다. 관심은 좋은 거지만 뭐든지 과하면 피로해진다. 때로는 관심이 사랑인 줄도 모르고 일부러 사람을 멀리한 바 있다.
롯데월드는 에버랜드보다 위험한 놀이기구가 적은 편이어서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놀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회전목마, 미러 월드, 카드 마술공연, 포토 타임, 매직 월드 둘러보기가 일정이었다.회전목마는 놀이공원의 꽃이다. 초보자에겐 시도하기 편하고 타기에 안전하지만 고수에게는 지루하기 그지없다. 말을 타려면 말에 올라가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다리가 긴 친구들은 회전목마에 오르기 유리했다. 회전목마와 인간의 교감이 통하면 아이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 영화 아바타에서 운전자는 꽁지머리 뒤로 나온 흡착부를 통해 짐승과 교감하여 운전한다. 이 장면을 떠올리면 자신이 타고 있는 말과 동일해지는 체험을 할 수 있다. 두려움을 극복함으로써 용기를 얻는 과정이다. 나는 '오름'의 용기를 회전목마로부터 얻었다.미러월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매 순간 펼쳐졌다. 여기에 들어서게 되면 영화 <메이즈 러너>의 주인공이 된다. 알 수 없는 길 한가운데서 미아가 빙의되기도 하고, 급작스럽게 오는 공포감과 함께 똑같은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기도 한다. 또한, 이곳은 도플갱어라는 특이한 존재의 아지트이기도 했다. 거울에 손을 갖다 대면 진실한 자신을 마주할 수도 있다. 거울을 통과하면 자신을 이긴 것이고, 머리를 부딪혀 '꽝'하면 실패한 것이다. 자신을 이기지 못했으니까. 진정한 자신을 마주할 수 있는 시험에서 붙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일단 마주하는 용기를 갖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용기는 회전목마에서 얻을 수 있다. 용기, 즉 그릇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 작은 용기를 키울 수 있는 사람은 본인인 자신이기에 주어진 것에 굳이 불만을 가질 필요가 없다. 인간은 다른 사람을 통해 용기를 얻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자기 신뢰'가 부족하면 그 아무도 믿을 수 없다. 여러 자아로 나뉜 분열된 자아에게 용기를 한 모금 주어, 위급상황시 통합해 용기의 크기를 키우는 것도 두려움을 넘어서 수 있는 좋은 방법이겠다.미러월드에 갇혔다고 생각하면 심리적으로 힘든 상태에 빠지게 된다. 나는 그곳에 풀썩 주저앉아 울어버렸다. 양어머니로부터 빚어진 '애착 불안'에 생겨 나온 마음이었다. 여기서 포기를 알게 되었다.포기는 배추 셀 때나 하는 것을 자립준비 청년, 보호 종료 아동들이 아시면 좋겠다. 좋은데 와서 행복한 사진 찍으려면 우선 '김치'해야 승승장구할 테니까.번잡한 미로에서 빠져나오려면 몸이 통과되는 길을 따라가면 쉽다. 중간에 길이 거울로 막혀 헷갈리기도 할 것이다. 나는 손목에 감긴 종이를 조금씩 다른 모양으로 찢어서 빠져나온 것으로 기억한다. 9살에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 과정은 마치 <쇼생크 탈출>과도 같았다. 혹은 <메이즈 러너>, <헨델과 그레텔>. 마녀는 이기심, 질투, 좌절, 포기, 오만, 두려움, 의심, 시기, 나태, 교만, 불만, 트집, 오지랖, 비약, 머뭇거림, 농락 등등 부정적인 감정의 진귀한 원석이기에 어려운 상황에 처하더라도 맛있는 걸 떠올리게 하는 긍정 '김치'는 필수요소다. 발효만 된다면 괘씸한 마녀를 김치처럼 밥에 올려 먹을지도.
때는 오후 12시. 놀이기구를 신나게 타던 중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엄마 수녀님은 놀이공원을 돌아다니면서 우리들을 불러 모았다. 사실 수녀님 시야 밖으로 나가면 모두가 길치였으므로 수녀님으로부터 멀어지려 하지 않았다. 곧 피니시 타임이 다가왔다. 운이 좋았던 건 집(보육원)에 갈 시간은 조금 남아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엄마 수녀님과 함께 놀이기구를 좀 더 타자고 졸랐다. 다행히도 수녀님께선 허락하셨다. 몇 년간 새우잠을 통해 기어들어온 꿈에서 드라마나 시리즈처럼 나온 장소는 바로 이곳 롯데월드였다. 꿈에서 나온 그곳이 놀이동산이라 짐작했건만 역시 악몽에 나온 특정 장소는 여기였다. 친구와 나는 그 장소로 달려가 놀이기구에 올라탔다. 굽이쳐 휘어진 선로를 달리는 열차가 구불한 길을 달리는 내 인생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의 멀미를 할 정도의 어지러움이었는데, 사는 게 정말 멀미가 날 정도로 어지러웠다. 이 열차가 언제까지 나를 휘어잡을까?라는 질문은 문신처럼 지워도, 지워도, 끝내 지워지지 않았다. 내가 탔던 그 열차는 우리를 공포와 희열에 저울질하듯 수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열차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야 주객이 전도되는 걸 방지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내가 가진 힘을 내가 두려워하면 즐거운 경험을 할 수가 없다. 두 번의 열차 운행이 끝나고 안전바가 조르던 배를 서서히 놓아주었다. 숨을 크게 들이쉬니 왠지 자신감이 붙었다. 공포를 직접 마주함으로써 지독히 거창했던 공포심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무서운 놀이기구를 타려고 기다리다가 공포 때문에 욕망이 낮아지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타고나면 별 거 아니었다. 공포가 닥치는 상황에 억지로 사람을 두면 공포심이 떨어진다고 한다. 홍수법'이라는 심리학적 용어로 개와 겁이 많은 사람을 예로 들어 보자. 개가 있는 곳에 '개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이 있으면 무서워서 벌벌 떨게 된다. 몇 개월 전의 나 또한 그랬다. 개에게 쫓긴 경험이 참 많았었다. 산책을 하다가 개를 보면 흠칫흠칫 놀라서 거리 두기에 많은 힘을 쏟았다. 이렇게 겁 많은 사람은 개의 실루엣을 보거나 작은 소리만 들어도 온 신경이 그곳으로 쏠리기 마련이었다. 공포를 줄이는 방법은 그저 말없이 시간에 맡기는 것. 그보다 더 탁월하고 안전한 방법은 없었다. 설령 그 방법이 '완벽하게' 안전하지 않았지만 상황에 있어서는 적절했다. 개에 대한 공포가 높은 사람은 아마도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어? 이 친구 나 안무네? 생각보다 무섭진 않네?'
모든 개가 온순하고 착하지도 않지만 이와 같은 간접적인 경험을 적극적으로 시도했기에 트라우마의 족쇄를 벗어날 수 있었다. 한 때 개를 좋아했던 사람도 후천적으로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다. 치료법은 다양하지만 이러한 행동심리 치료법이 있다는 것도 알아두면 좋을 것이다. 공포를 무너뜨리는 시작은 '인지'단계가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열차 운행을 마치고 손에 기다란 추로스를 베어 먹으며 우리는 지하철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설탕이 잔뜩 발라져 있었기에 무서웠냐면서 달래주는 요정이 어깨 위에 앉아 귀에 대고 얘기해 주는 것 같았다. 지하철 앞에 웬 시위대가 붉은 띠를 머리에 두르고 지하철이 있는 쪽으로 냅다 소리쳤다. 그들이 반대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어떠한 단체 앞에 부당함을 느껴 그룹을 결성한 것이었으리라. 나와 친구들은 그들 틈에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가 엄마 수녀님께서 우릴 부르셨다.
"얘들아! 나와야지, 집에 가자!"
우리는 시위대를 뒤로한 채 에스컬레이터에서 고개를 돌려 롯데월드를 보았다. 수많은 판타지, 어두운 장소에서 마주한 심연, 악몽의 시작은 모두 이곳을 거쳐 시작되었다. 꿈에서 나온 이야기들은 신맛과 매운맛, 쓴 맛으로 다양하게 변질되었으며 한 번의 경험이 내게 선사해 준 선물은 밝고 어두운 상상력과 트라우마였다. 놀라간다는 의미로 굉장히 좋은 일이었지만, 공포에 대해 한 번쯤 되짚어보는 참혹한 시간이기도 했다. 미러월드에 갇혔을 때 포기하려는 마음이 굉장히 컸다. 그때 손을 내밀어준 친구가 아니었더라면 영영 길을 헤매고 있었을 텐데. 기지를 발휘하지 않았더라면 마녀의 계략에 갇히고 말았을 텐데.어둠에서 타던 열차는 알 수 없는 곳으로 나의 어린 자아를 끌고 갔다. 어둠 속에서 끊임없이 자라는 괴물의 정류장에 데려가 수없이 먹히고 쫓기기를 반복했다. 침대 머리맡에 곤히 잠든 노트에 가둬놓으면 그들의 침범 횟수와 강도는 차차 약해져 갔다. 이후로도 종종 놀이기구를 문제없이 탔지만, 왠지 모를 어둠과 공포가 깊게 뿌리내리고 있었다. 수많은 인파에 묻혀 가려진 사람들의 시선이었을지도 모른다. 작은 주목과 호기심은 내 인생을 뿌리째 흔들었고 홍수법이 도저히 먹혀들지 않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뒤틀린 자아에 이상한 공간을 건넨 세계는 에스컬레이터가 향하는 아래, 심연으로 뒤엉킨 거울을 보여주며 아래로 이끌었다. 이 마저도 저주받은 운명이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