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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위치명(見危致命)
위험을 보면 목숨을 바친다는 뜻으로, 나라의 위태로운 지경을 보고 목숨을 바쳐 나라를 위해 싸우는 것을 말한다.
見 : 볼 견
危 : 위태할 위
致 : 이를 치
命 : 목숨 명
(유의어)
견위수명(見危授命)
논어(論語) 자장편(子張篇)에 나오는 제자들의 어록은 자장(子張) 2장, 자하(子夏) 11장, 자유(子游) 2장, 증자(曾子) 4장, 자공(子貢) 6장으로 이들은 모두 공자의 고제자(高弟子)들이다. 이 가운데 자하, 자유, 자공은 진채절량(陳蔡絶糧)의 시기를 함께 보낸 제자들이다.
증자(曾子)는 가장 어린 나이에 아버지인 증삼(曾參)의 손을 잡고 공자의 문하에 들어온 인물로 공자 사후 대학을 지어 공자의 학맥을 정통적으로 계승한 제자로 손꼽히며, 문하에 많은 재전(再傳) 제자들을 배출하였다.
자장(子張)은 진(陳)나라 출신으로, 논어 전체를 통해 공자(孔子)와 주고 받은 문답이 13번 나오며, 마지막 편인 요왈편(堯曰篇)에서 종정(從政)과 관련해 공자와 문답을 주고받은 것으로 기록된 제자이다.
논어(論語) 자장편(子張篇)에 나오는 말이다.
子張曰; 士見危致命, 見得思義, 祭思敬, 喪思哀, 其可已矣.
자장왈; 사견위치명, 견득사의, 제사경, 상사애, 기가이의.
자장이 말했다. “선비가 위난을 보면 목숨을 바치고, 이득을 보면 의를 생각하고, 제례는 공경을 생각하고, 상을 치를 때 슬픔을 생각하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견위치명(見危致命)은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내는 충의(忠義)를, 견득사의(見得思義)는 사람으로의 마땅히 지켜야할 도리를 강조하는 구절이며, 제사경(祭思敬)은 조상을 생각하며 제사를 잘 모시고, 상사애(喪思哀)는 상을 당하면 장례를 정중히 치루 워야 한다는 성인의 가르침이다. 즉, 이 말은 고대 선비와 관료들께 이르는 살신성인(殺身成仁), 사생취의(捨生取義), 대의명분(大義名分), 신종추원(愼終追遠) 같은 것 들이다.
致命, 謂委致其命, 猶言授命也.
목숨을 바친다는 것은 그 목숨을 맡긴다는 것이니, 목숨을 준다라는 말과 같다.
四者立身之大節, 一有不至, 則餘無足觀.
이 네 가지는 입신의 큰 절목이니, 이 가운데 하나라도 지극하지 못하면 그 나머지는 볼 필요도 없다.
故言士能如此, 則庶乎其可矣.
그러므로 선비가 이와 같이 할 수 있다면 훌륭하다는 말이다.
견위수명(見危授命)도 나라가 위태로울 때는 자신의 목숨까지도 바친다는 뜻이다. 논어(論語) 헌문(憲問)편에 나온다. 자로(子路)가 성인(成人)에 대해 묻자, 공자(孔子)는 지혜(智惠), 청렴(淸廉), 용기(勇氣), 재예(才藝), 예악(禮樂)을 두루 갖춘 사람이 성인이라고 대답한 뒤,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今之成人者 何必然 見利思義 見危授命 久要 不忘平生之言 亦可以爲成人矣.
금지성인자 하필연 견리사의 견위수명 구요 불망평생지언 역가이위성인의.
그러나 오늘날의 성인이야 어찌 반드시 그러하겠는가? 이로움을 보면 대의(大義)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치며, 오래 전의 약속을 평생의 말(약속)로 여겨 잊지 않는다면, 또한 마땅히 성인이라 할 수 있다.
공자는 여기서 지금의 성인은 옛날의 성인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위의 세 가지 요건만 갖추면 성인이라 할 만하다는 뜻으로 이른 것이다. 이 문장에서 유래한 견위수명은 이후 나라를 위해서는 목숨도 아낌없이 바칠 줄 아는 충신을 일컫는 용어로 굳어졌다. 흔히 견리사의와 함께 견리사의 견위치명으로 어울려 쓰이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견리사의와 견위치명은 뜻이 통하는 말이다. 나라나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는 뜻의 한자성어는 여럿 있다. 공적인 것을 앞세우고 사적인 것을 뒤로 한다는 뜻의 선공후사(先公後私), 국가의 대의를 위해 부모 형제도 돌보지 않는다는 뜻의 대의멸친(大義滅親), 사사로운 것을 버리고 공을 위해 봉사한다는 뜻의 멸사봉공(滅私奉公), 충성을 다하여 나라의 은혜를 갚는다는 뜻의 진충보국(盡忠報國), 갈충보국(竭忠報國) 등이 있다.
논어(論語) 헌문편(憲門篇) 13장에, 자로(子路)의 성인(成人)에 대한 질문에 공자(孔子)는 “이를 보거든 의를 생각하고, 위기에 처하여 목숨을 바치면 성인이라 할 수 있다.”고 대답합니다.
見利思義 見危授命(견리사의 견위수명)
이 말씀이 스승보다 48세나 젊은 자장(子張)의 폐부를 찔렀던 것인지 자장은 스승의 말씀을 들어 見危致命 見得思義(견위치명 견득사의)라는 선비의 도리를 밝힙니다.
이등박문을 척살한 안중근 의사가 가장 의미심장하게 받아드린 글도 이 자장편 見危致命 見得思義(견위치명 견득사의)와 위령공편에 실린 志士仁人 無求生以害仁 有殺身成仁(지사인인 무구생이해인 유살신성인), 지사와 인자는 삶을 구하려다 인을 해치지 않고 자기 몸을 죽여 인을 이룬다는 말로써 비장한 각오가 담긴 구절이다.
어쩌면 안의사는 논어의 불의에 함부로 무릎 꿇지 않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정신을 가슴깊이 새기고 조국을 위하여 자신을 헌신한 것이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한편 논어를 마무리하는 장면에 공문십철(孔門十哲)과 기라성 같은 삼천제자 중 젊은 그룹을 대표하는 자유(子遊), 자하(子夏), 증자(曾子), 공서화가 아닌 자장(子張)이 나오고 그의 어떤 모습이 논어 편집 제자들의 마음을 움직여 이 소장 그룹에서 그를 제목으로 뽑은 것인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어쩌면 이 자장은 공자가 돌아가신 후에 종통을 바로 세우고 그의 학문 체계를 정립하고 계승하는데 주된 역할을 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논어 안연편 6장에 자장이 스승에게 명철에 대하여 묻습니다. 이에 공자가 “물이 스며들듯이 참소와 피부를 자극하는 하소연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명철하다 할 수 있느니라. 참고와 하소연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멀리 내다본다고 말 할 수 있다.”
제자의 물음에 대하여 그 물음의 의도와 사람 됨됨이를 간파하는 공자의 대답으로 볼 때 이는 자장이 참소와 하소연에 센티멘탈하게 반응하고 더러 흔들리고 중심을 잃는 경향이 있음을 경계하는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초나라 영윤 자문과 제나라 진문자가 원칙을 치키려한 태도에 대해서 인(仁)한 것인지 질문했을 때도 충성스럽고 맑을 수는 있어도 어진지는 모르겠다는 스승의 답변에 조급한 그는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논어 전편에 걸쳐 등장하는 자장은 세상적으로 볼 때 사리에 맞고 명철한 자로 여길 수 있을 지라도 스승은 그가 편벽되고 지나치다고 평가한 것입니다.
이렇듯 젊은 날의 자장은 제딴에는 의욕이 넘치고 똑똑하고 대범하다고 여길 수 있겠지만 스승이 보기엔 좌충우돌 제멋대로인 점이 있었습니다.
말이 진실되고 믿음직하며 행동이 극진하고 경건하다면 비록 미개한 나라에서도 행해질 것이지만, 말이 진실되지 않고 믿음직하지 않으며 행동이 극진하지 않고 경건하지 않으면 비록 문명한 곳이라 한들 행해질 수 있겠느냐?’ 자장이 그 말씀을 띠에 적었다.
과유불급의 대명사 그런 그가 스승의 말씀을 깊이 헤아리고 통찰하여 내면 깊은 곳에서 見危致命 見得思義(견위치명 견득사의), 별안간 꽃봉오리가 터지듯 스승의 말씀을 토해내는가 하면 유자, 증자와 함께 종통을 잇고 공자의 뛰어난 제자 그룹에서도 높이 평가할 정도로 어느새 쑥 커버린 것입니다.
자유가 말합니다. “내 친구 자장은 어려운 일을 해내는 데는 유능하다. 그러나 아직 어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증자가 말합니다. “당당하구나 자장은 그러나 그와 더불어 어짊을 함께하기는 어렵다.”
마치 자장이 스승 앞에 의인 자문과 진문자에 대하여 물을 때 스승이 충성스럽고 맑기는 하지만 인하다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신 말씀처럼 그의 동지인 자유와 증자 역시 스승의 말을 빗대어 자장이 뛰어난 인재이지만 인(仁)한지는 모르겠다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인(仁)한지 어떤지 타인의 평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면 깊은 곳에서 자신이 곧 자신이 되어 인의 중정을 지키고 살면 된다는 의미겠지요.
스무살 무렵 자장은 공자가 진(陳)나라에 있을 때 따라 나섰다고 합니다. 그의 스승 역시 그 배움이 어디에서 온 것이 아니라 배우기를 좋아하고 끊임없이 배우고 익혔다고 하는 것처럼 자장 역시 위험을 무릎쓰고 고국을 떠나 배움을 청했으며 또 배우기를 좋아하고 익혀서 마침내 익은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표징하는 의미에서 소장 그룹 중 다름아닌 자장을 배움과 절차탁마의 상징으로 후미를 잇게 한 것은 아닌지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내가 선생님께 들은 것과는 다르구나. 여러분들은 현자를 존경함과 동시에 부족한 인간을 가여워하라고 가르치셨다. 만일 내가 현인이라면 어떤 사람도 포용하지 못할리가 없을 것이고 만일 내가 어리석은 사람이라면 상대방에게 배척당할 것이다. 내가 어떻게 다른 사람을 거절할 수 있겠는가?
이 자장의 말을 통해서 자장이 편벽으로부터 벗어나 사람과 세상을 수용할 있는 중정을 얻었으며, 누구나 갈고 닦아 자장처럼 중정의 자리에 이르는 산 희망을 발견하게 됩니다.
子張曰 士見危致命 見得思義 祭思敬 喪思哀. 其可已矣.
자장왈 사견위치명 견득사의 제사경 상사애. 기가이의.
자장이 말했다. “선비는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치고, 이득을 보면 취해서 정당한 것인지를 생각하며, 제사에는 공경해야 할 것을, 상사에는 슬픔을 다하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교양인이라고 할 수 있다.”
子張曰 執德不弘 信道不篤 焉能爲有 焉能爲亡.
자장이 집덕불홍 신도불독 언능위유 언능위망.
자장이 말했다. “도덕에 대한 신념이 확고하고 독실하지 않다면 그런 사람은 없어도 그만이다.”
子夏之門人 問交於子張.
자하지문인 문교어자장.
자하의 제자가 자장에게 사람들과 어떻게 사귀어야 하는지를 물었다.
子張曰 子夏云何.
자장왈 자하운하.
자장이 말했다. “자네의 스승 자하는 무엇이라고 말하던가?”
對曰 子夏曰 可者 與之 其不可者를拒之.
대왈 자하왈 가자 여지 기불가자를거지.
자하 제자가 대답하기를 “스승께서는 사귈 만한 사람과 사귀고, 그렇지 못한 사람과는 사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子張曰 異乎吾所聞.
자장왈 이호오소문.
君子 尊賢而容衆 嘉善而矜不能 我之大賢與.
군자 존현이용중 가선이긍불능 아지대현여.
於人 何所不容 我之不賢與 人將拒我. 如之何其拒人也.
어인 하소불용 아지불현여 인장거아. 여지하기거인야.
자장이 말했다. “내가 선생님께 들은 것과는 다르구나. 제군들은 현자를 존경함과 동시에 대중을 포용하고 선인을 칭찬함과 동시에 부족한 인간을 가여워 하라로 가르치셨다. 만일 내가 대 현인이라면 어떤 사람이도 포용하지 못할리 없을 것이고, 만일 내가 어리석은 사람이라면 상대방에게 배척 당할 것이다. 내가 어떻게 다른 사람을 거절 할 수 있겠는가.”
子夏曰 雖小道 必有可觀者焉 致遠恐泥 是以 君子不爲也.
자하왈 수소도 필유가관자언 치원공니 시이 군자불위야.
자하가 말했다. “비록 작은 기술이라도 반드시 취할 점이 있겠지만, 너무 깊이 들어가면 거기에 빠질 수가 있기 때문에 제군들에게 권하지 않는다.”
子夏曰 日知其所亡 月無忘其所能 可謂好學也已矣.
자하왈 일지기소무 월무망기소능 가위호학야이의.
자하가 말했다. “날마다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알아가며, 달마다 그 동안 배워서 할 수 있는 것을 잊지 않았는지 확인한다면, 배우기를 좋아한다고 할 수 있다.”
子夏曰 博學而篤志 切問而近思 仁在其中矣.
자하왈 박학이독지 절문이근사 인재기중의.
자하가 말했다. “널리 배우고 자신의 이상을 굳게 지키며 간절히 묻고, 직면한 문제를 사색한다면 인덕은 그 가운데 있을 것이다.”
子夏曰 百工居肆 以成其事 君子學 以致其道.
자하왈 백공거사 이성기사 군자학 이지기도.
자하가 말했다. “모든 기술자들이 작업장을 일터로 하여 자신의 일을 성취하듯이 제군들은 학문을 함으로써 자신의 이상을 달성하도록 하라.”
子夏曰 小人之過也 必文.
자하왈 소인지과야 필문.
자하가 말했다. “제군들은 잘못을 저질럿을 경우 결코 변명하지 말아라.”
子夏曰 君子有三變 望之儼然 卽之也溫 聽其言也厲.
자하왈 군자유삼변 망지엄연 즉지야온 청기언야려.
자하가 말했다. “휼륭한 교양인은 면모가 세 번 바뀌니 멀리서 바라보면 근엄하고, 다가서 보면 온화하고, 말하는 것을 보면 준엄하다.”
子夏曰 君子信而後 勞其民 未信則 以爲厲己也. 信而後諫 未信則 以爲謗己也.
자하왈 군자신이후 노기민 미신즉 이위려기야. 신이후간 미신즉 이위방기야.
자하가 말했다. “제군들이 출사하게 되면 충분히 신뢰를 얻은 뒤에 백성을 동원하도록 하라. 신뢰를 얻지 못한 상태에서 일을 시키면 백성들은 자신들을 학대한다고 여길 것이다. 군주에게도 충분히 신뢰를 얻은 뒤에 간언하도록 하라. 그렇지 못하면 자신을 비방한다고 여길 것이다.”
子夏曰 大德不踰閑 小德出入可也.
자하왈 대덕불유한 소덕출입가야.
자하가 말했다. “중대한 덕목은 그 규범의 경계를 넘어서는 안되지만 사소한 덕목은 그 경계를 넘어서도 괜찮다.”
子游曰 子夏之門人小子 當灑掃應對進退則可矣 抑末也. 本之則無 如之何.
자유왈 자하지문인소자 당쇄소응대진퇴즉가의 억말야. 본지즉무 여지하.
자유가 말했다. “자하의 제자들은 집안을 청소하고 손님을 응대하고 격식에 맞게 행동하는 일은 괜찮게 해내지만 그런 것들은 사소한 일에 불과하다. 그러나 근본적인 것은 전혀 되어 있지 않으니 어찌된 일인가”
子夏聞之曰 噫 言游過矣.
자하문지왈 희 언유과의.
君子之道 孰先傳焉 孰後倦焉.
군자지도 숙선전언 숙후권언.
譬諸草木 區以別矣. 君子之道 焉可誣也.
비저초목 구이별의. 군자지도 언가무야.
有始有卒者 其惟聖人乎.
유시유졸자 기유성인호.
자하가 그 말을 듣고 말했다. “자유가 실언을 했구나. 교양인이 되기 위해 수양을 함에 있어서 어느 것을 먼저 전수하고 어느 것을 뒤로 돌려 소홀히 하겠는가. 이를 초목에 비유하면 뿌리와 잎을 구분하여 어느 쪽이 더 중요하고 어느 쪽이 덜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수양의 방법을 어떻게 왜곡시킬 수 있겠는가. 처음부터 끝까지 사리에 맞게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성인뿐일 것이다.”
子夏曰 仕而優則學 學而優則仕.
자하왈 사이우즉학 학이우즉사.
자하가 말했다. “출사해서 일에 자신이 생기면 학문을 시작하고, 학문을 해서 자신이 생기면 출사한다.”
子游曰 喪致乎哀而止.
자유왈 상치호애이지.
자유가 말했다. “장례식에서는 슬픔을 극진히 하면 된다.”
子游曰 吾友張也 爲難能也 然而未仁.
자유왈 오우장야 위난능야 연이미인.
자유가 말했다. “내 벗 자장은 남들이 하기 어려운 일은 잘하지만, 그러나 인자라고 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曾子曰 堂堂乎 張也 難與竝爲仁矣.
증자왈 당당호 장야 난여병위인의.
증자가 말했다. “자장은 위풍당당하기는 하지만 함께 인덕을 실천하기는 어렵겠다.”
曾子曰 吾聞諸夫子 人未有自致者也 必也親喪乎.
증자왈 오문제부자 인미유자치자야 필야친상호.
증자가 말했다. “내가 스승님께 들으니, 사람이 종종 자기의 정성을 다 쏟지는 않는다. 그러나 반드시 양친이 상을 당하면 정성을 다한다.”
曾子曰 吾聞諸夫子 孟莊子之孝也 其他可能也 其不改父之臣與父之政 是難能也.
증자왈 오문저부자 맹장자지효야 기타가능야 기불개부지신여부지정 시난능야.
증자가 말했다. “내가 스승님께 들으니 맹장자의 효행은 다른 것은 따라할 수 있겠지만 부친의 가신과 정책을 바꾸지 않았던 것은 따라하기 어렵다.”
孟氏 使陽膚 爲士師 問於曾子 曾子曰 上失其道 民散久矣 如得其情則哀矜而勿喜.
맹씨 사양부 위사사 문어증자 증자왈 상실기도 민산구의 여득기정즉애긍이물희.
맹씨가 양부를 사사로 삼으니, 양부가 증자에게 묻자, “윗사람이 정도를 잃어서 민심이 떠난지 오래 되었다. 그러니 네가 죄인의 진상을 알게 되면 슬퍼하고 가엽게 여길 것이지 기뻐해서는 안될 것이다.”
子貢曰 紂之不善 不如是之甚也. 是以 君子惡居下流. 天下之惡 皆歸焉.
자공왈 주지불선 불여시지심야. 시이 군자오거하류. 천하지악 개귀언.
자공가 말했다. “은나라의 마지막 군주 주(紂)가 폭정을 했다해도 그렇게까지 심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제군들도 밑바닥에 머물지 않도록 하라. 세상의 악명이 모두 그곳으로 귀착될 것이다.”
子貢曰 君子之過也 如日月之食焉. 過也 人皆見之 更也 人皆仰之.
자공왈 군자지과야 여일월지식언. 과야 인개견지 경야 인개앙지.
자공가 말했다. “제군들은 과외를 저지르게 되면 일식이나 월식과 같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과오가 있을 때는 사람들이 모두 보게 되고, 과오를 고치면 사람들이 모두 우러러보게 된다.”
衛公孫朝 問於子貢曰 仲尼는焉學.
위공손조 문어자공왈 중니는언학.
위나라 공손조가 자공에게 물었다. “공자는 어디에서 배웠는가?”
子貢曰 文武之道 未墜於地 在人.
자공왈 문무지도 미추어지 재인.
賢者 識其大者 不賢者 識其小者 莫不有文武之道焉.
현자 지기대자 불현자 지기소자 막불유문무지도언.
夫子焉不學 而亦何常師之有.
부자언불학 이역하상사지유.
자공이 말했다. “주나라의 문왕과 무왕의 통치의 흔적은 아직 땅에 떨어지지 않고 사람에게 있습니다. 현자는 그 중에 큰 것을 발견하고, 현자가 아닌 자는 그 중 작은 것을 발견하니, 어느 것이나 문왕과 무왕의 통치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공자가 어디서라도 배우지 않았을 것이며 또한 어찌 일정한 스승이 있었겠습니까.”
叔孫武叔이 語大夫於朝曰 子貢이 賢於仲尼.
숙손무숙이 어대부어조왈 자공이 현어중니.
노나라의 숙손무숙이 조정에서 동료 대부에게 “자공이 공자보다 낫다.”
子服景伯 以告子貢 子貢曰
자복경백 이고자공 자공왈
譬之宮牆 賜之牆也 及肩 窺見室家之好 夫子之牆 數仞.
비지궁장 사지장야 급견 규견실가지호 부자지장 수인.
不得其門而入 不見宗廟之美 百官之富.
부득기문이입 불견종묘지미 백관지부.
得其門者 或寡矣 夫子之云 不亦宜乎.
득기문자 혹과의 부자지운 불역의호.
자복경백이 그 말을 자공에게 전하자, 자공이 말했다. “대궐의 담장에 비유하자면 저의 담장은 어깨쯤 차기 때문에 집안의 좋은 것들을 엿볼 수 있지만, 선생님의 담장은 높이가 여러 길이 되기 때문에, 그 문 안에 들어가지 않으면 사당의 미와 수많은 건물들의 풍성함을 볼 수 없습니다. 그 문에 들어가 본 자가 적다고 말한 공자님의 말씀이 당연할 것입니다.”
叔孫武叔 毁仲尼.
숙손무숙 훼중니.
숙손무숙이 공자를 헐뜯었다.
子貢曰 無以爲也. 仲尼 不可毁也.
자공왈 무이위야. 중니 불가훼야.
他人之賢者 丘陵也 猶可踰也 仲尼 日月也 無得而踰焉.
타인지현자 구릉야 유가유야 중니 일월야 무득이유언.
人雖欲自絶 其何傷於日月乎 多見其不知量也.
인수욕자절 기하상어일월호 다견기부지량야.
자공이 말했다. “그렇게 하지 마십시요. 선생님을 헐뜯을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현명함은 구릉과 같아서 넘을 수 있지만, 선생님은 해와 달 같아서 그 곳까지 올라 갈 방법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비록 스스로 끊으려 해도 어찌 해와 달에게 무슨 해를 입힐 수 있겠습니까. 자기 분수를 헤아리지 못함을 보여줄 뿐입니다.”
陳子禽 謂子貢曰 子爲恭也 仲尼豈賢於子乎.
진자금 위자공왈 자위공야 중니기현어자호.
진자금이 자공에게 “당신이 공자에게 공손한 것이었지 공자가 설마 당신보다 현명했겠습니까?”
子貢曰 君子一言 以爲知 一言 以爲不知 言不可不愼也.
자공왈 군자일언 이위지 일언 이위부지 언불가불신야.
夫子之不可及也 猶天之不可階而升也.
부자지불가급야 유천지불가계이승야.
夫子之得邦家者 所謂立之斯立 道之斯行 綏之斯來 動之斯和.
부자지득방가자 소위립지사립 도지사행 수지사래 동지사화.
其生也榮 其死也哀 如之何其可及也.
기생야영 기사야애 여지하기가급야.
자공이 말했다. “그대는 한마디 말로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어리석은 사람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을 삼가해야 겠소. 선생님을 따라갈 수 없는 것은 사다리를 타고 하늘에 오를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 분이 만약 나라를 얻으셨다면, 이른바 세우면 서고, 이끌면 나아가고, 편안하게 해주면 따라오고, 동원하면 호응하는 그런 상태가 되었을 것이오. 그 분의 삶은 영광스러웠고 그분의 죽음은 슬픔으로 가득했으니 어떻게 그 분을 따라갈 수 있겠소.”
▶ 見(견)은 회의문자로 见(견)은 간자(簡字)이다. 안석궤(几; 책상)部는 사람을, 目(목)은 눈을 뜻한다. 見(견)은 눈의 기능으로, 보는 일을 말하는데, 이쪽으로 부터 보는 것을 視(시), 저쪽으로 부터 나타나 보이는 것을 見(견)으로 나누어 썼다. 見(견)은 보다, 보이다, 당하다, 견해 등의 뜻과 뵙다(현), 나타나다(현), 드러나다(현), 보이다(현), 소개하다(현), 만나다(현), 현재(현), 지금(현) 등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나타날 현(現), 볼 시(視), 뵐 근(覲), 볼 관(觀), 뵐 알(謁), 나타날 현(顯),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숨을 은(隱)이다. 용례로는 보고서 깨달아 앎을 견해(見解), 듣거나 보거나 하여 깨달아 얻은 지식을 견문(見聞), 남에게 거절을 당함을 견각(見却), 실지로 보고 학식을 넓힘을 견학(見學), 남의 일을 보고 배워서 실지로 연습하는 것을 견습(見習), 사물을 관찰하는 입장을 견지(見地), 남에게 미움을 받음을 견오(見忤), 얼른 스쳐 봄을 별견(瞥見), 분실이나 유실을 당함을 견실(見失), 책망을 당함을 견책(見責),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한다는 견금여석(見金如石), 눈앞에 이익을 보거든 먼저 그것을 취함이 의리에 합당한 지를 생각하라는 견리사의(見利思義), 모기를 보고 칼을 뺀다는 견문발검(見蚊拔劍), 위험을 보면 목숨을 바친다는 견위수명(見危授命), 항상 잊지 않음을 이르는 견요어장(見堯於墻), 물건을 보면 욕심이 생긴다는 견물생심(見物生心), 나라의 위급함을 보고 몸을 바친다는 견위치명(見危致命) 등에 쓰인다.
▶ 危(위)는 회의문자이나 형성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병부절(卩=; 무릎마디, 무릎을 꿇은 모양)部와 厃(우; 사람이 벼랑가에 선 모양, 깎은 듯이 선 벼랑, 쳐다보다, 위태롭다)로 이루어졌다. 危(위)는 높고 험한 경사진 땅으로 위태롭다의 뜻을 나타낸다. 또는 뜻을 나타내는 병부절(卩)部와 厃(우, 위)로 이루어졌다. 危(위)는 위태하다, 위태롭다, 불안하다, 두려워하다, 불안해하다, 해치다, 높다, 엄하다, 발돋움하다 병이 무겁다, 위독하다, 바르다, 똑바르다, 빠르다 등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편안 안(安)이다. 용례로는 위험한 고비를 위기(危機), 실패하거나 목숨을 다치게 할 만함을 위험(危險), 형세가 매우 어려움을 위태(危殆), 위태롭고 급함을 위급(危急), 병세가 무거움을 위중(危重), 매우 간절함을 위간(危懇), 두렵고 불안함을 위공(危恐), 아주 위독함을 위극(危劇), 위급하고 절박함을 위발(危悖), 매우 피로함을 위비(危憊), 머리털 하나로 천균이나 되는 물건을 끌어당긴다는 위기일발(危機一髮), 알을 쌓아 놓은 것같이 위태롭다는 위여누란(危如累卵), 아슬아슬한 순간을 위여일발(危如一髮), 아침 이슬은 해가 뜨면 곧 사라지듯이 위기가 임박해 있음을 위여조로(危如朝露), 몹시 위험함을 위험천만(危險千萬), 위험한 곳에 들어가지 않음을 위방불입(危邦不入), 매우 위태함을 위태위태(危殆危殆), 시국이나 병세가 매우 위급하여 안심하기 어려움을 위다안소(危多安少), 위험이 조석에 달려 있다는 위재조석(危在朝夕) 등에 쓰인다.
▶ 致(치)는 형성문자로 緻(치)의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동시에 음(音)을 나타내는 이를 지(至; 이르다, 도달하다)部와 매질하여 빨리 이르도록 한다는 등글월문(攵=攴; 일을 하다, 회초리로 치다)部의 뜻이 합(合)하여 이르다를 뜻한다. 致(치)는 도달하다, 다하다, 이루다, 부르다, 보내다, 그만두다, 내주다, 꿰매다, 빽빽하다, 면밀하다, 촘촘하다, 찬찬하다(단), 곱다, 배다, 풍취(風趣), 경치(景致), 정취(情趣), 흥미(興味), 취미(趣味), 헌옷 등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이를 도(到), 이를 계(屆), 이를 지(至), 이를 진(臻), 이를 흘(訖)이다. 용례로는 죽을 지경에 이름을 치명(致命), 고맙다는 인사의 치사(致謝), 남이 한 일에 대하여 고마움이나 칭찬의 뜻을 표시하는 치하(致賀), 재물을 모아 부자가 됨을 치부(致富), 사물의 도리를 알아서 깨닫는 지경에 이름을 치지(致知), 사례하는 뜻을 표함을 치사(致謝), 있는 정성을 다함을 치성(致誠), 공양이나 공궤를 함을 치공(致供), 온 정성을 다함을 치관(致款), 나라를 잘 다스리기에 이름을 치리(致理), 가업을 이룸을 치가(致家), 경의를 표함을 치경(致敬) 등에 쓰인다.
▶ 命(명)은 회의문자로 입구(口; 입, 먹다, 말하다)部와 令(령)의 합자(合字)이다. 입(口)으로 뜻을 전한다는 뜻으로, 곧 임금이 명령을 내려 백성을 부린다는 뜻으로 쓰인다. 命(명)은 목숨, 생명, 수명, 운수, 표적, 명령, 성질, 언약, 규정, 가르침, 작위, 천명, 도(道), 호적, 명령하다, 가르치다, 알리다, 이름짓다, 이름을 붙이다 등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윗사람이 아랫 사람에게 무엇을 하도록 시킴을 명령(命令), 시문의 제목을 정하여 주는 것을 명제(命題), 사람이나 물건에 이름을 지어 붙임을 명명(命名), 살아 있는 목숨을 이어 가는 근본을 명백(命脈), 겨냥한 곳에 바로 맞음을 명중(命中), 생명의 근본을 명근(命根), 목숨의 한도를 명한(命限),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는 명재경각(命在頃刻), 한 시대를 바로잡아 구할 만한 뛰어난 인재를 명세지웅(命世之雄), 연거푸 생기는 행복을 명야복야(命也福也), 병이나 상처가 중하여 목숨에 관계됨을 명맥소관(命脈所關), 팔자가 사나움을 명도기박(命途奇薄), 목숨을 義에 연연하여 가볍게 여기다는 명연의경(命緣義輕)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