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은 폭염으로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2018년도 폭염과 비슷하거나 더 혹독한 더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열대야로 전국민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또 비싼 에어컨이 없이는 수면에 들 수도 없는 상황의 연속입니다. 경제는 경제대로 정치는 정치대로 국민들의 답답하고 용솟음치는 분노를 위로하기는 커녕 더욱 부채질하는 형국입니다.그나마 멀리 프랑스에서 열리는 올림픽에서 열심으로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의 승전보가 조금 위안을 주고 있습니다. 양궁에서 펜싱에서 사격에서 좋은 소식이 전해집니다. 이번에는 배트민턴에서 금메달 소식이 날아들었습니다.
바로 세계 랭킹 1위인 한국의 안세영선수가 파리 올림픽 여자 단식 결승전에서 세계 9위인 중국선수를 2대0으로 누르고 금메달을 차지한 것입니다. 한국 배드민턴 올림픽 단식 종목 우승은 남녀선수를 통틀어 1996 애틀랜타 대회에서 방수현 선수이후 역대 두번째이자 무려 28년만의 일입니다. 한국 배드민턴은 2008 베이징 대회 혼합복식 이용대와 이효정선수 이후 끊겼던 올림픽 금메달 획득국의 영예를 16년만에 다시 살려낸 것입니다.
이렇게 감격스런 그런 순간 금메달 수상자인 안세영선수의 얼굴에는 금메달 획득이라는 그 찬란한 영광과 모든 것을 한순간 녹여내는 그런 환희는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안선수는 금메달을 목에 건 뒤 공동취재구역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아시안 게임 이후 자신의 무릎 부상 정도는 생각보다 심각했고 낫기 힘들었다고 밝힌 뒤 대표팀에서 이런 상황을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많이 실망했고 이것을 끝으로 대표팀과는 계속 가기가 힘들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폭탄발언을 했습니다.
한국 배트민턴 협회 그리고 감독과의 갈등과 감정싸움이 그 원인이라는 것은 그 뒤에 하나하나 드러나고 있습니다. 보통은 이렇게 대단한 성과를 낸 뒤에는 어느정도 밝은 멘트와 기쁨의 소리를 전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안세영 선수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금메달을 획득한 순간 부정적인 심기를 거론하는 것은 유래가 별로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안세영선수는 배트민턴 선수로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것을 계기로 그동안 품었던 한국 배트민턴 협회에 대한 갈등과 실망의 마음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안선수의 폭탄발언이후 배트민턴 협회는 자신들은 할 만큼 다했다는 반응일색입니다. 그러자 안선수는 개인 SNS를 통해 자신의 심정을 다시 한 번 공개했습니다. 자신의 경기를 응원해주신 국민들에게 감사한다는 말과 함께 자신은 선수관리에 대해 책임을 떠 넘기는 협회와 감독들의 언급에 대해 다시 한 번 상처를 받게 됐다고 토로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에 대해 한 번은 고민해 주시고 해결 해주시는 어른이 계시기를 빌어본다는 말로 자신의 심정을 밝혔습니다.
나는 배트민턴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입장에서 왈가왈부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단일 종목에서 경기가 끝나고 금메달을 획득했을 때 거의 대부분의 선수들이 자신을 지도해주고 가르쳐주신 협회와 감독에게 감사한다는 말을 하지 그들의 행위에 대한 불편함을 토로하지는 않은 것을 감안할 때 이것은 그냥 넘어갈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얼마나 협회와 감독과 갈등이 깊었으면 선수로서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상황에서 그 불편한 현실을 밝힐까 생각하니 더욱 그렇습니다.
지금 한국은 한국축구협회 문제로 시끄럽습니다. 축구팬 대다수가 협회장 퇴진과 현 축구감독 사퇴를 요구하는 상황입니다. 정부도 나서서 실상을 조사하겠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협회장과 감독은 마이동풍격으로 여기며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습니다. 배드민턴 협회도 비슷한 모양입니다. 안세영 선수가 언급한 고민하고 해결해 줄 수 있는 어른은 한국 스포츠계에서는 없는 것일까요. 능력있는 선수가 발탁되고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 되는데 왜 잡음이 계속될까요. 인맥과 학맥때문일까요. 국민들을 한없이 우습게 보는 일부 협회와 협회장들때문일까요. 역대급으로 더운 날 잠시 시원할 줄 알았던 배트민턴 금메달소식이 또 다른 엄청난 더위와 분노를 몰고 오고 있습니다. 이제 20대 초반의 젊고 어린 선수들이 오로지 실력으로만 평가받고, 혹사 당하지 않고, 잘 관리 받으면서 당당하게 세계 선수들과 겨뤄 최고의 메달을 목에 거는 그런 환경과 분위기를 왜 우리는 만들어주지 못하는 것인지 답답해집니다.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 금메달의 목에 건 뒤 얼마나 평소에 응어리진 것이 많았기에 기쁨의 눈물을 흘려야 할 자리에서 불편하고 답답한 현실을 토로할 수밖에 없는 안세영선수가 더욱 가엽게 여겨집니다. 역대급 폭염이 더욱 강도를 높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2024년 8월 6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