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죽었다는 것
장성숙/ 극동상담심리연구원, 현실역동상담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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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상담을 받으러 온 50대 남자는 목적을 밝히려 들지 않고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이리저리 물어 가까스로 파악한 내용은 아내가 도무지 함께 살기 어렵다며 상담을 권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를 찾아오긴 했으면서도 뚱한 태도로 일관했다. 그토록 화가 날 바에야 오지를 말든지, 와놓고는 그렇게 뿌루퉁한 게 뭔가 심상치 않았다.
무슨 말끝에 그는 아내를 화냥년이라고 욕했다. 아내를 그렇게 비하하는 것에 놀란 나는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파고든 결과 그는 아내가 바람났다는 것을 확신하였다. 그러나 큰소리를 쳤다가 이혼이라도 하게 될까 봐 그는 속으로 삭이며 끌탕 치고 있었다.
내용인즉, 아내가 남편과는 도무지 대화가 되지를 않자 견딜 수 없다며 봉사활동을 핑계로 밖으로 나돌기 시작하면서 도통 살림에 신경 쓰지를 않아 냉장고에는 부패한 음식이 넘쳐났다. 그러한 상황인데도 도리어 아내가 남편에게 견디기 어렵다며 상담을 받으라고 하니까 그는 약이 잔뜩 올랐다. 다른 한편, 아내의 바람기를 견디기 어려우니까 진퇴양난의 감정으로 나를 찾아오긴 했어도 상담에 대해 양가감정을 보였다.
사태가 이런데도 아내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꾸벅꾸벅 일에나 열중하며 지내는 중년 남자, 나는 그가 표현하지 못해서 그렇지 속에는 화가 부글부글하리라 여겼다. 그래서 솔직한 심정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대답했다. 그리하여 몇 차례 벼랑 끝으로 몰아가듯 하다가 꼭 집는 식으로 그의 감정이나 기분을 물었지만, 그는 여전히 이성적으로나 대답할 뿐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는 깜깜했다. 다시 말해, 감정에 대한 억압이 심해 그때그때의 기분이 어떤 것인지 그는 감지하지 못했다.
아내와 싸움을 하든 대화를 하든 일단 감정이 살아나야 주거니 받거니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어찌하다 그렇게 억압을 심하게 하게 되었는지 살펴보니, 그의 성장사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열악했다. 정신병 증세를 보였던 어머니를 아버지는 수시로 두들겨 팼고, 피를 철철 흘리는 어머니를 보며 그는 공포에 질려 울음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며 살았다. 이러한 그가 감정을 생생히 느꼈더라면 아마 미쳤거나 심한 우울증을 앓았을 거다. 하지만 영리했던 그는 이러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감정을 철저히 외면하기 시작했고, 시끄러울 때마다 미친 듯이 공부에 열중했다. 그러한 덕분에 좋은 성적을 거두었던 학교에서 칭찬을 받았고, 좋은 학교에 진학하여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직장에 들어갔다. 그는 결혼할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았는데 회사에서 알게 된 여자가 이 남자에게 적극성을 보여 결혼하였다.
성실하지만 감정이 죽은 남편에게 재미를 느낄 수 없었던 그 부인은 밖으로 튕겨 나가 다른 남자들과 사귀는 듯했다. 그러면서도 이혼하지 않는 것은 남편의 경제력, 사회적인 평판 또는 자녀들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아무튼 이런 상황 속에서 그 남자는 지옥살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 남자가 자기 상황에서 그냥그냥 살아가기 위해서는 일단 과도한 억압을 풀어야 한다고 여겼던 나는 어떻게든 그의 감정을 소생시키려고 애썼다. 무엇이든 형성된 것은 다 필요에 따라, 즉 그럴만한 조건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서 그런지 그는 좀처럼 감정을 되살리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와 힘겨운 씨름을 하는 과정을 겪다 어느 시점에 이르러 나는 그를 코너로 몰며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다. 그러자 모르겠다고만 하던 그가 마침내 폭발하듯 자신의 화나는 감정을 무심결에 드러내었고, 그 순간 나는 소리치듯 말했다.
“바로 그것입니다. 자신의 솔직한 감정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반겨주자, 그는 화를 내다 어리둥절했다. 그러면서도 뭔가 울컥하고 올라오는 게 있었는지 그는 소리높여 울었다. 잃어버렸던 자신의 감정을 되찾자 그 자신도 감동이 올라오는지 아니면 서러움 때문인지 한참을 흐느꼈다.
그의 울음이 잦아들 무렵 나는 그에게 이제부터는 겁내지 말고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토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인제부터 아내와 마주하는 것을 피하지 말고 직시하며 나눠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자 그는 뭔가 확인하듯 이렇게 물었다.
“그렇게 해도 되겠습니까? 그러다 풍비박산 나는 것은 아니지요?”
“화를 내라는 게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담백하게 표현하는 데 무슨 큰일이 일어나겠어요? 그렇게라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 본인이 견디지 못하고 어느 순간 일을 저지르고 맙니다.”
나의 이러한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얼마 전에는 아내를 죽이고 자기도 죽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고 토로했다. 이러한 그에게 나는 어쨌든 용기를 내어 자신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수습되어가게 마련이라고 위로하였다. 표현을 통해 갈등을 더 불러오더라도 피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설명하였다. 그러면서 당부하기를 궤도에 올라 안정을 이룰 때까지 상담받는 것을 중단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부모가 아이를 키워 마침내 사회에 내보내듯이 상담자가 뒤늦게나마 그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고 일러주자, 그는 알겠다며 자기가 제대로 할 수 있을 때까지 잡아달라고 부탁하였다.
첫댓글 오늘도 상담내용 ..
감사해요..
부디 행복한 부부, 행복한 가정 되기를 기원합니다..
수영장에서 만난 수잔 부부.. 80대 ..행복한 부부.
교회에서 만난 에스더 부부.. 80대.. 행복한 부부..
존경스럽네요.. 성숙한 부부,, 닮고 싶은 부부 ....
늘 이렇게 댓글을 다시느라 수고를 많이 하십니다.
감사드립니다.
부디 더위를 잘 나시기 바랍니다.
상담의 묘미가 바로 이런 경우네요.
그 상담자가 어린 시절 겪었던 극심한 고통을 방어하기 위해 감정의 방어막을 치고 살았던 것이 결국이 감정이 없는 환자가 되는군요.
흥미로운 일입니다.
저는 가끔 너무 큰 마음의 상처를 입고
불안장애로 인해 고통받는 이웃에게 감정의 방화벽을 치라고 권하는 때가 있어요.저도 그런 때는 방화벽을 치는데,( 경험하고 극복했던 터라) 오늘 올려주신 내담자의 경우를 보니 그것이 잘하는 일인지 모르겠네요. 그 내담자가 상담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 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잘하고 못하고의 기준은 정말 모호하다고 봅니다.
모든 게 적응을 하기 위한 기제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