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마'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SK 와이번즈는 7일 KBO에 최근 은퇴의사를 밝힌 이상훈의 임의탈퇴를 신청했다. 이로써 이상훈은 93년 데뷔해 일본과 미국을 거치면서 12년간 이어온 프로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게 됐다. 야구팬의 한 사람으로서 이상훈이라는 대스타의 은퇴는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비록 전성기보다 경기력은 떨어졌고 본인도 그것 때문에 은퇴를 결심했지만, 마운드에 있는 것만으로도 팬들의 시선을 끌 수 있는 몇 안되는 스타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대스타의 은퇴를 아쉬워하며 이상훈의 12년 프로 생활을 정리해보았다.
야생마의 출현!
서울고와 고려대를 거친 이상훈은 92년 당시 역대 신인 최고액이던 2억원에 LG 트윈스에 입단했다. 1년 전만 해도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이상훈이 아마 최고의 스타로 급부상한 것은 92년 성균관대전에서 14타자 연속 탈삼진을 기록하면서부터였다. 데뷔 첫해인 93 시즌 전반기에는 좋은 경기내용을 보여주었지만, 후반기에는 체력저하와 부상이 겹치며 최종성적은 9승에 그쳤다. 신인 투수에게 9승은 적은 승수가 아니지만 프로입문 동기인 양준혁이나 이종범과 비교하면 아쉬움이 남는 성적이었다.
하지만 이듬해 이상훈은 그 아쉬움을 깨끗이 씻어낸다. 18승으로 조계현과 공동 다승왕을 차지하며 LG의 두 번째 우승에 기여한 것. 95년은 이상훈 선수생활의 최정점이었다. 90년 선동렬 이후 5년만에 20승을 거두며 다승왕을 2연패하고 승률왕까지 차지한 것. 특히 20승이 모두 선발승이어서 그 가치는 더욱 빛났다. 하지만 정규시즌에서 누적된 피로탓에 포스트시즌에서는 부진을 면치 못했고, 시즌 MVP도 라이벌 두산의 김상호에게 돌아갔다.
이듬해 척추분리증으로 고생한 이상훈은 마무리 투수로의 전향을 선언한다. 풀타임 마무리 투수로 뛴 첫해인 97년 이상훈은 시즌 최다 세이브포인트 신기록(47SP)를 세우는 기염을 통한다. 150km에 육박하는 강속구와 트레이드 마크인 역동적인 세레머니로 이상훈은 팬들에게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한국시리즈에서는 이종범에게 홈런을 맞는 등 난조를 보이며 준우승에 그친다.
먼 길을 돌아 꿈을 향해
97 시즌 후 그는 전격적으로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한다. 한국 프로야구 선수가 메이저리그 진출을 시도한 전례가 없었기에 임시방편으로 실시된 포스팅 시스템. 그러나 턱없이 낮은 입찰가격에 실망한 이상훈은 일본으로 방향을 급선회, 주니치 드래곤즈에 입단하게 된다. 선동렬, 이종범과 함께 뛴 이상훈은 주로 중간계투요원으로 활약하며 2년간 7승 5패 23세이브 방어율 3.34를 기록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로의 꿈을 버릴 수 없었던 이상훈은 99년 일본시리즈를 앞두고 메이저리그 재도전을 선언한다. 얼마 후 이상훈은 보스턴 레드삭스에 입단하며 오랜 꿈을 향한 첫발을 내닫는다. 메이저리그 재도전을 선언하던 당시의 심정을 이상훈은 이렇게 술회하고 있다.
모든 걸 말씀드릴 순 없지만 한 가지만 말씀을 드리자면, 일본에서도 2군에 있을 때에도 1군에서 좋은 활약을 할 때에도 하다못해 우승을 하고난 후에도 미국진출을 해야한다는 갈등 속에서 내 자신도 확실한 결정을 못내리고 있었습니다. 나도 사람인지라 돈에 대한 욕심, 안정성, 안락함 모두 염두에 두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한순간에 이렇게 고민을 하고 결정을 못내리는 나 자신을 보게 되면서 '내가 왜 이러지? 왜 결정을 못내리지? 나 같지 않아'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내가 바라던 바를 이제는 아무런 방해없이 선택을 할 수 있는데 안락함과 안전함 앞에서 무릎을 꿇고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다가오면서 그것을 떨쳐버리고 말았죠.
p>먼 길을 돌아와 다시 도전하게된 메이저리그. 하지만 세계 최고의 리그는 한국 프로야구의 다승왕, 구원왕 출신인 이상훈에게 쉽사리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리그의 수준도 워낙 높았지만, 미국에 진출할 때부터 이상훈은 이미 전성기를 지난 상태였고 타국생활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게다가 주니치 시절에 생긴 혈전증으로 많은 이닝 투구가 불가능한 이상훈으로서는 그만큼 기회의 폭이 좁을 수 밖에 없었다. 결국 3년간 메이저리그에서 11.2이닝 등판에 방어율 3.09만을 기록한 이상훈은 보스턴과 오클랜드 산하 마이너리그 팀을 전전하다 2002년 한국으로 돌아온다.18.44m를 던지지 못하는 날까지
시즌 중반부터 친정팀인 LG에서 뛰게된 이상훈은 예전의 넘치는 카리스마를 보여주며 팬들을 야구장에 불러모은다. 등판할 때가 되면 스타킹을 무릎까지 끌어올린 채 마운드를 향해 질주하는 이상훈의 모습은 팬들에게 청량제와 같은 역할을 했다. 하지만 체력이 소진된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는 이승엽에게 동점 3점 홈런을 얻어맞으며 팀 패배의 빌미를 제공해 아쉬움을 주기도 했다. 2003년 초반 마무리 투수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던 이상훈은 6월 8일 두산전에서 1.2이닝 7실점한 것을 기점으로 세이브 실패가 잦아지면서 더이상 예전의 위력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급기야 올해 초에는 기타연주 문제를 빌미로 이순철 감독과 마찰을 빚어 SK로 트레이드 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이상훈은 새로운 팀에서 각오를 다지며 재기를 노렸지만 한번 떨어진 구위와 자신감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고, 결국 지난 2일 전격적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It`s time to say good-bye
이상훈의 은퇴에 대해 많은 팬들이 아쉬움을 표시하고 있다. 그가 '18.44m를 던지지 못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하는 팬들도 있고, 대스타가 팀이 어려운 시점에서 너무 무책임하게 떠나는 게 아니냐는 팬들도 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어쩌면 가장 '이상훈다운' 것이었는 지도 모른다. 이상훈은 그저그런 초라한 모습으로 현역생활을 연장하는 것보다는 아직 대스타로서의 여운이 남아있을 때 떠나기를 원했는 지도 모른다. 그런 자존심이 없었다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3억6천만원의 잔여연봉을 포기하는 결단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앞으로 이상훈은 어떤 길을 가게될까? 1차적으로 지도자를 생각할 수 있지만, 이것 역시 개성이 강한 이상훈의 성격을 감안하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상훈 본인도 작년에 가진 개인 콘서트에서 "머리 기른 지도자를 누가 쓰겠느냐."며 지도자의 길에 대한 생각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바 있다. 어쩌면 팬들은 지도자 이상훈보다는 락커 이상훈을 먼저 볼 지도 모른다. 음악은 이상훈에게는 야구와 함께 그의 인생을 지탱해주는 두 지주 중 하나이고, 실제로 그는 왠만한 가수 뺨치는 가창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어쨌든 이상훈이 앞으로 인생의 다른 마운드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그것이 앞으로도 계속 그를 지켜볼 팬들에 대한 의무요, 그가 미처 완성하지 못한 '18.44m의 삶'을 완성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상훈 통산성적(한국)
308경기 출장 71승 40패 98세이브 방어율 2.56
909.2이닝 투구 피안타 651개 4구 325개 탈삼진 781개
다승1위 2회(94, 95), 승률1위 1회(95), 구원1위 1회(97), 골든글러브 1회(95)
난 우리 팀 공격이 끝난 후 라이트 뒤에 있는 불펜으로 향했다. 그러던 중 현기증을 느낄 정도로 내 몸이 피곤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제대로 된 피칭을 할 수 없을 정도의 피곤함. 하지만 난 나 자신에게 얘기했다. '상훈아, 핑계대지마. 그리고 정신차려. 꼭 오늘은 저기에 있는 마운드에 올라가서 던져야해. 저기에 올라가서 던지기 위해 다 버리고 왔잖아. 홈런을 맞아도 괜찮고, 뭘 해도 괜찮아. 너 자신에게만 부끄럽지 않으면'이라고...
<메이저리그 데뷔전에서>
첫댓글 정말 감동이네여...예전의 이상훈 선수 선발이면 매일 야구장 갔었는데......부모님 손 잡고...^^&
정말 가슴한쪽이 쪼여드는 느낌이에요. 이런결론을 내리기 까지 얼마나 힘드셨을까.. 정말 이렇게 은퇴하는 것만이 최선인가요? 정말 이대로 보내야 하나요? 갑자기 LG 구단이 미워지네요.. 왜 보내가지고 책임지세욧
제2의 이상훈이 나오기까지 우린 오랜시간을 들여야 할 것입니다. 진정한 카리스마~~~그는 우리 야구계가 만났던 최고의 투수계보를 잇기에 충분하답니다. 그가 없을 허전함이 더 무섭습니다...
이제 이상훈선수 없는 LG의 빈자리는 이승호 선수가 확실히 메워줬으면 하네요. ㅠ.ㅠ 이상훈 선수 Bye Byeㅠ.ㅠ
이상훈선수가 활약했던...94,95년 엘지야구가 젤 재밌었다......아~~~세월 참 빠르네요....암튼..이상훈선수.....그리울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