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저 찬란한 햇살
류 근
미스 충북 선발 대회 의상상 받고 와서
양장점 주인과 함께 카퍼레이드 하던 승출이네 누나는
지금쯤 시집가서 잘 살고 있을라?
종합병원 병동 앞에 펄럭이는 만국기들 바라보다가
나는 문득 삼표연탄 삼륜 트럭 위에서 꽃종이를 흩날리며
소읍의 골목길을 누비던 풍경의
그 절묘한 보색대비가 떠올랐다
일부러 햇살이 잘 비치는 벤치에 나란히 앉아
꽃들의 만개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주말 한때
살아 있을 날이 채 두 달도 남지 않은 누이와
살아가는 일이 순 견디는 자세로 움츠러든 나에게
봄날 이 햇살의 통속함이란 얼마나 깊고 감미로운가
벚꽃은 제 그늘마저 화냥기로 가리고
짜장면 배달 오토바이는 어느 벤치로든 어김없이
찾아든다 신기하지,
누이는 웃으며 공연히 먼 눈길을 햇살 속에 버려두지만
나는 안다 우리에게 찾아든 목숨 또한 얼마나
찬란하고 경이로운 인연이랴 그러나 죽어가는 시간과
살아가는 시간의 틈새에는 또 얼마나 머나먼 강물이
우리 모르게 흘러가고 있는 것이랴
누이는 목숨을 걸고 죽어가고 나는 목숨을 걸고
살아간다 벚꽃,
벚꽃 저 까닭도 없는 축제의 몸매들,
햇살 흐드러진 벤치 위에서 우리들은 비로소 말을 버리고
목숨 하나로 고요하게 세상의 시간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살아갈 날이 채 두 달도 남지 않은 누이와
살아가는 일이 순 견디는 자세로 움츠러든 나에게
속절없이 쏟아지는 햇살 저,
모든 살아 있는 것들 위에 내리는 찬란한 햇살
류근
경북 문경 출생. 199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시 당선.
시집 『상처적 체질』 『어떻게든 이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