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키는 일본 4대 메이커로 일컫는 혼다, 야마하, 그리고 가와사키와 함께 정교한 엔지니어링에서 나오는 높은 내구력, 그리고 양산차로써 최대의 신뢰를 갖게 하는 성능과 활용성, 가격 대비 가치로 오랜 시간 사랑받아오고 있다. 세계적인 시점에서 봐도 일제 모터사이클을 빼놓고는 산업을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4대 메이커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일제 브랜드를 시장에서 스타덤에 오르게 한 것은 다름 아닌 고출력 엔진, 즉 병렬 4기통 엔진의 폭발적인 인기를 등에 업었을 때부터였다. 기존의 주류를 이루던 단기통, 병렬 2기통이나 V트윈 등으로도 커버하기 어려운 고회전 영역대의 높은 출력을 확보하면서 당시로서 경쟁상대가 없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때의 이미지 덕에 지금도 4기통하면 일제 브랜드가 떠오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이제는 유럽 브랜드도 4기통에 특화된 고성능 라인을 내고 있고, 실제로 성능도 우수하고 판매량도 높다. ‘4기통 엔진은 일제 브랜드에서’라는 말도 더 이상 하기 어렵게 됐다. 하지만 반대로 유럽제 모터사이클이 명맥을 이끌어 온 2기통, 즉 트윈 엔진에 대해서는 일제 브랜드 또한 차츰 데이터를 쌓아가며 소비자의 눈높이를 맞추고 있다.
그중에서도 이번에 이야기할 스즈키의 엔진 중 V트윈의 계보는 어떻게 될까? 최근 V-STROM 시리즈나 SV650과 같은 신형 모델을 보면 V트윈 엔진 기술이 핵심인데, 과연 이런 모델에게는 어떤 역사가 있는 것일까? 신뢰해도 되는 가에 대해 의구심을 풀고자 스즈키 V트윈 엔진의 발자취를 거꾸로 살펴봤다.
스즈키는 오래전 아메리칸 크루저 스타일의 인트루더 시리즈에 이미 V트윈 엔진을 적용한 바 있다. 반면 고동감을 중시한 레이아웃에 롱 스트로크로, 당시로서는 비교적 고출력 엔진이라고는 하지만 혈통으로 보면 최근 나오는 V트윈 스포츠 엔진과 연결짓기에는 무리가 있다.
따지고 보면 스즈키 스포츠 V트윈 엔진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지난 1997년 등장한 로드스포츠 바이크 TL1000S가 말하자면 큰 형님뻘이다. TL1000S는 당시 획기적인 유선형 디자인과 V트윈으로 만들어 낸 강력한 출력 등 센세이션을 일으키기 충분한 모델이었다.
당시는 4기통 엔진이 주를 이루던 시장이었고, 스탠다드 스포츠로 카타나, 밴디트나 2스트로크 스포츠 머신 RGV250, 그리고 지금까지 명맥이 이어지는 퓨어스포츠 GSX-R 시리즈가 계속 나오고 있었고 인기도 적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 등장한 TL1000S는 변칙적인 뉴 모델이었다. TLS라고도 불렸던 이 모델은 90도 V트윈 엔진과 하이브리드 체인/ 기어 구동 캠을 장착했다. 현행의 2017년형 V-STROM1000XT 또한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TL1000S의 엔진을 개량한 것이다. 직계혈통이라고 할 수 있다.
하이브리드 체인/기어 구동 캠 디자인은 유지 보수 작업을 대폭 줄였고, 추가로 기어의 독특한 고주파음을 내면서 독특한 스즈키 V트윈 만의 엔진 음색을 만들었다. 이 엔진은 우수성을 인정받고, 카지바(Cagiva)에 Navigator와 V-Raptor의 심장으로 납품된 적도 있다. 비모타(Bimota)또한 SB8K 모델에 이 엔진을 사용했다. 엔진 스펙은 수랭 DOHC 996cc 90도 V-트윈, 최대출력 125마력을 8,500rpm에 냈다. 스즈키의 새로운 도전이었던 TL1000S는 2001년까지 생산되고 단종됐다.
하지만 그 후에 본격적인 풀페어링 레이서 레플리카, TL1000R이 등장했다. TL1000S가 등장하고 1년 후인 1998년 출시 됐으며 AMA 슈퍼바이크 챔피언십과 WSBK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시장판매에서는 당시 인기 있던 두카티 916을 목표로 설정했다.
TLR은 기본 엔진 설계를 S와 공유하지만 단조 피스톤과 강력해진 커넥팅로드, 강성이 높은 프레임으로 무장해 레이스 베이스로서 가능성을 높였다. 파워는 135마력까지 끌어올렸다. 하지만 데이터의 부족으로 전체 레이스 경력에서는 단 한 번의 우승뿐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레이싱 프로그램을 철수하게 됐다. 2003년에는 시장에서의 판매도 중지됐다.
하지만 수년간의 스포츠 V트윈 엔진 개발과 튜닝에 바쳤던 시간이 다른 형태로 보상됐다. 1999년 미들 클래스의 V트윈 엔진으로 제작한 SV650이 시장에서 크게 인기를 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볼륨모델로서 시장성이 확실했다. 단순한 네이키드 구조로 납득할 만한 성능을 냈고 가격도 좋았다.
무게가 가볍고 섀시는 단단했다. 핸들링은 예리했고 V트윈 엔진 특유의 강력한 중간 영역의 토크가 조합되어 초보자부터 숙련자까지 넓은 폭으로 사랑받았다. 두카티 몬스터와도 시장에서 경쟁했으며 북미시장에서는 네이키드 버전보다는 더 낮은 핸들바와 높은 풋 페그, 그리고 주행풍을 막을 페어링을 원했다. SV650S는 필요에 의해 창조됐으며 2000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미국 시장에 수출하기 시작해 큰 인기를 얻었다.
의외로 레이스 입문자에게도 인기였다. 상대적으로 낮은 구매가격과 우수한 핸들링 성능으로 북미 전역에 라이트 트윈 스포츠 레이스 시장을 활성화한 공신이기도 했다. SV650은 2003년 2세대를 내놓고 다양한 부분에서 개량됐다. 2009년에는 SFV650 글라디우스라는 이름으로 대체되기도 했다. 그리고 작년인 2016년 다시 SV650이름으로 돌아왔으며 ABS와 로우 알피엠 어시스트 등 편의장비를 추가했다. 경량 트윈 스포츠라는 콘셉트는 그대로였으며 모든 면에서 세련된 면모를 보이며 인기를 끌고 있다.
SV1000은 혼다 VTR1000F 파이어스톰, 두카티 SS시리즈와 경쟁한 V트윈 스포츠 바이크다. 이 역시 초대 스포츠 V트윈 TL1000S의 엔진을 사용했다. 반면 SV650의 형제 모델로서 부품을 다수 공유했으며 앞 브레이크와 포크 등은 구형 GSX-R600에서 가져다 썼다. 엔진 특성은 TL1000S보다는 약간 낮은 최대파워를 가졌지만 일상영역에서 더욱 두툼한 토크를 내도록 조절됐다.
2003년 퓨엘 인젝션을 채택하고 이중 스로틀 밸브 기술도 넣었다. K3부터 K6까지 연식변경을 하며 다양한 변화를 꾀했지만 SV650에 비하면 그리 많이 팔지 못했다. 페어링이 달린 S버전은 2007년까지 계속 판매했고 독특한 디자인으로 꾸준히 알려졌다.
브이스트롬 1000은 모델명 DL1000으로 알려졌다. 듀얼 스포츠 모터사이클 장르로 발매됐으며 이 역시 TL1000S의 996cc 엔진을 가져왔다. 라이딩포지션을 최대한 편안하게 만들었으며 2002년 발매해 인기를 끌었다. 당시 시장에서는 가와사키 KLV1000과도 경쟁했으며 2009년까지 생산하면서 꾸준히 업그레이드됐다. 그러다 다시 2014년 뉴 브이스트롬1000이 출시되면서 공백을 뛰어넘어 인기를 이어갔다.
스즈키 V트윈 스포츠 바이크 중 가장 오랜시간 큰 인기를 끌어온 바이크는 역시 브이스트롬650이다. 2004년 발매해 지금까지 판매하고 있다. 미들클래스 듀얼스포츠 바이크로 출퇴근, 투어링, 어드벤처 투어링이나 가벼운 오프로드 주행까지 다양한 조건에 적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올라운드 바이크다. 전 세계적으로 팬을 가지고 있으며 높은 신뢰로 판매량은 동급에서 최장기간 1위를 지켜내고 있다.
엔진은 SV650과 같다. 645cc 수랭 V트윈이며 중간 영역대에서 큰 파워를 낸다. 다양한 편의장비와 다루기 쉬운 특성 등으로 별다른 홍보 없이도 전 세계 전문 미디어로부터 극찬을 받았으며 미국 Motorcyclist, Cycle World 지로부터 “가격 대비 가치에 있어 따라올 자가 없다”, 독일 Motorrad 지로부터는 듀얼스포츠 바이크 알프스 테스트에서 2회 연속 우승해 ‘Alpenkoenig(알프스의 왕)’이라는 칭호를 받기도 했다.
국내에 판매가 곧 시작될 2017년형 스즈키 모델 중 V트윈 엔진을 탑재한 모델이 많다. SV650은 이미 출시되어 인기가 높고, V-STROM650XT와 1000XT가 새로운 디자인과 편의장비를 무장해 출시된다. 가격은 거의 오르지 않았지만 650의 경우 트랙션 컨트롤이 추가되고, 순정 투어링 케이스를 부착할 수 있도록 스타일링이 완전히 바뀌었다. 1000의 경우 기존에 없던 XT버전이 들어오면서 튜브리스 타입 와이어 스포크 휠, 그리고 코너링 ABS완 연동 시스템을 포함한 스마트 ABS를 추가 적용했다.
4기통 엔진에 비해 존재감이 약한 일제 V트윈 엔진 중에서도 V-STROM 시리즈는 남달리 빛난다. 미들급 듀얼스포츠 전 세계 1위 판매 실적을 가지고 있는 스즈키는 거기에 대한 자부심도 크지만, 한편으로는 기계적인 완성도로 객관적인 평가를 받아 인기를 누려온 자부심이므로 인정받아 마땅하다.
소비자의 잣대로 평가받아 온 듀얼스포츠 V-STROM은 TL1000S가 시작한 스포츠 트윈 바이크의 도전의식이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하다. 레이스 트랙에서조차 트레이닝 바이크로 사랑받고 있는 평범한 바이크 SV650의 다양한 쓰임새만 봐도 스즈키 V트윈 엔진이 그저 그런 결과물이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다. 스즈키의 4기통 이미지는 여전히 강하지만, 그 안에 스즈키만의 새로운 활로를 만들어 나가는 V트윈 스포츠로의 열망은 여전히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4기통 엔진은 2기통 엔진보다 기본적으로 파워가 높다. 하지만 코너링 안정성이나 핸들링 측면에서는 2기통의 장점이 많다. 고차원의 스포츠로 갈수록 오히려 2기통 엔진의 발전 가능성이 대두될 수 있다. 스즈키가 꿈꾸는 V트윈 스포츠는 일반 도로에서의 자유로운 스포츠 라이딩이다. 보통사람이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로드 스포츠, V-STROM이나 SV같은 보통 바이크들이 품은 V트윈 엔진의 목표는 그것이다.
글 임성진 jin@ridemag.co.kr
제공 라이드매거진(ridem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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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sv650이 갑자기 땡긴다
븨스트롬 타고싶은데 기럭지가 너무짧아서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