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과 자유와의 관계를 깨달은 교사
장성숙/ 극동상담심리연구원, 현실역동상담학회
blog.naver.com/changss0312
집단상담을 시작하면서 참가자들에게 그때그때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해보라고 하였다. 자기 목소리를 냄으로써 상대를 비춰주는 것은 물론 자기를 세우게 되는 거라고 하였다.
50대의 중년 남자는 정성스럽게 경청하고 성심껏 말해 좋긴 하였지만, 다소 고지식해 보였다. 이러한 그가 느지막하게 자신에 대해 개방했다. 가톨릭 수도사로 지내다 뒤늦게 결혼하여 자식들을 낳고 사는데, 아내가 우울 증세를 보여 대학원에 다니게 하였단다. 그러면서 아내가 가사를 소홀히 하더니 남자 교수를 숭배하듯 좋아해 내심 서운하더라고 했다. 그런데 아내가 교수를 비롯한 학우들과 해외로 졸업여행을 간다고 한단다. 아내가 여행 가는 게 싫은 것은 아니고 기쁜 마음으로 수용했으면 하는데 그것이 그리 쉽지는 않다고 하였다.
딱히 고민스럽다는 것도 아니고 어중간한 그의 말을 듣고 무엇이 문제냐고 물었으나, 그는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얼버무렸다. 그런 어중간한 마음이라도 아내에게 표현해보았느냐고 묻자, 그런 마음을 굳이 표현할 필요가 뭐 있느냐고 대답했다. 그렇게 몇 차례 밀려났던 나는 틈을 엿보다 이렇게 물었다.
“당신이 좋은 사람인 줄은 알겠는데 왠지 재미없고 지루해집니다. 아마 아내도 당신에게서 이런 것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듣기 곤란한 이런 말에도 그는 반문하지 않고 그냥 바라만 보았다. 그래서 또다시 밀려나고 말았는데, 마침 집단에는 이혼 후 교원노조 활동에 열중하다 나동그라졌던 여교사가 있었다. 이러한 그녀에게 집단원들이 가정이 깨어졌으면 본인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충격이 컸을 텐데, 아이들은 어떻게 하고 그렇게 노조 활동에 치우쳤느냐고 물었다. 어머니로서 아이들의 상처에도 마음을 써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한 것이다.
그러나 그 여교사는 시종일관 사람들이 교원노조에 대한 자기의 노고를 몰라준다며 서운한 마음을 표출하기에 여념 없었다. 그리하여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은 어찌 그렇게 말을 알아듣지 못하느냐며 아우성쳤고, 그러던 중 한 청년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저는 부모가 이혼하는 바람에 엄청나게 혼란을 겪은 사람입니다. 어머니는 떠나갔고 아버지는 화투를 치다 밤늦게야 돌아오시곤 하여 저는 밖으로 나돌았지요. 그렇게 지내다 보니 이 나이가 되도록 아버지의 근심덩어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제발 아이들이 저처럼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세요.”
좀 전까지만 해도 아버지에 의해 억지로 집단상담에 참석한 자로서 어눌해 보였던 그가 이런 뼈있는 말을 하며 울먹이자, 장내는 숙연해졌다. 하지만 정작 그 여교사는 이런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뾰로통해 있기에 내가 물었다.
“저 청년의 이야기를 듣고 어떤 마음이세요?”
“내가 다른 활동을 다 접고 아이들 양육에 몰두하다 스트레스가 쌓여 도리어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여교사의 이런 말에 사람들은 아연실색했고, 부모의 이혼으로 피해자가 된 그 청년은 뻥 찌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맞은편에 앉아있던 대학교 1학년생인 여학생이 내뱉듯 말했다.
“당신 같은 사람하고는 정말 상종도 하기 싫어요.”
그러자 앞서 말한 그 중년 남자는 질색하며 그 여학생에게 물었다.
“아니, 사람을 앞에 두고 어떻게 그런 심한 말을 하지요?”
아버지 연배의 남자가 그렇게 항의성 발언을 하자, 여학생은 난감했는지 집단상담을 시작할 때 솔직하게 표현하라고 하였던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하여 내가 대신 대꾸했다.
“밖에서는 예의상 남이 기분 나빠할 만한 이야기를 하지 않지요. 그러나 집단상담에서는 상대가 자신을 되돌아보게끔 느끼거나 생각한 바를 솔직하게 되돌려주자고 약속한 특수한 자리입니다. 그러니까 저 여학생은 자기가 느낀 바를 솔직히 말하는 것에 비해 당신은 아내의 여행이 마뜩잖아도 기쁜 마음으로 보내고 싶다는 식으로 자신을 억압하고 있지 않아요? ”
이러한 말에 타격을 받았는지 그는 더 말하지 못하고 생각에 잠기는 것 같았다.
이윽고 그 중년 남자는 자기 이야기를 하였다. 독실한 가톨릭신자였던 어머니는 늘 자기에게 착하게 살라며 부정적인 표현을 삼가도록 하셨단다. 그렇게 자랐던 자기는 수도원 생활을 하면서 언제나 착하게 살고자 노력하고, 그 결과 큰 소리가 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곳에서 재미없는 사람 같다는 피드백을 들었는데, 돌이켜보니 표현을 억제하는 사이 감정이 다 죽어버린 것 같단다. 그동안 자유로워지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고 살았는데, 자유는 좋고 나쁜 걸 가리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함으로써 얻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깨달음이 든다고 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여학생을 향해 확인하듯 물었다.
“상종도 하기 싫다고 말한 것은 상종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 아니라 그 순간 그러한 감정이 들 정도로 갑갑하고 싫었다는 말이지?”
이러한 질문에 사람들은 와 하고 웃었다. 그렇게라도 확인해야 안심하겠다는 그의 고지식함이 여실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 여학생은 씩 웃으며 봐주기라도 하듯 고개를 끄덕였고, 그제야 그는 흡족하게 웃었으며 다른 사람들도 와~ 하고 웃었다.
잠시 후 그 중년 남자는 늘 자유를 추구해왔는데 그것이 다름 아닌 솔직한 표현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며 밝은 표정을 지으며 내게 감사를 표했다. 아울러 집에 돌아가는 대로 아내에게 자기의 솔직한 심정을 표현해보겠다고 다짐하였다.
첫댓글 "그러나, 집단상담에서는 상대가 자신을 되돌아보게끔 느끼거나 생각한 바를 솔직하게 되돌려주자고 약속한 특수한 자리입니다."
집단 상담을 통하여 상처치유...
정말 좋아요...
상처입은 사람들
치유받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개인과 가정 사회 모두가 상처입은 연약한 자들로 충만합니다...
오늘도 좋은 상담
감사해요...
감사합니다.
서울은 연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립니다.
아마 올 여름의 막바지 더위 같습니다.
부디 건강하세요.
폭염에 건강조심하세요...
폭염이 계속 되네요.~~
재미있네요. 그 여학생이 그런 말을 자유롭게 내뱉을 수 있는 것이 부러운 걸 보면 저도 할 말을 다 참고 고지식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 하나만 참으면 온집안이 편한데 굳이 나 좋자고 할 말 다해 버리면 그로 이해 야기되는 상황들을 감내해야 되는게 귀찮아서 입 꾹 다물고 사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