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곡은 최양숙의 노래로 유명하다. 서울 음대 출신인 가수 최양숙은 이 샹송풍의 노래로서 일약 스타가 된다. 이 곡은 흥겨움 속에 메시지가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1937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나 1958년 ‘눈이 내리네’로 데뷔한 최양숙은 당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 출신의 한국 최초 여성 샹송가수로 주목 받았다.
최양숙은 故 박춘석이 작곡한 그녀의 첫 히트곡 ‘황혼의 엘레지’로 1966년 제2회 TBC방송 가요대상 가수상을 수상하면서 1960년대를 대표하는 최정상 가수 대열에 합류했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외모와 성악으로 다져진 클래식한 창법은 ‘대중가요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호평을 이끌어 냈다.
최양숙은 그러나 그 때 대중가수라는 것이 부끄러웠다. 빼어난 외모와 함께 서울대 성악과 출신으로 전도유망한 성악가가 대중음악으로 전향했기 때문이다. 당시 '딴따라'로 통하던 대중가수로의 변신은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때문에 데뷔 초기에는 본명이 아닌 '정은영'이나 '주미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모교인 서울예고에서 교편을 잡는 등 (성악가로서) 전통적인 코스를 밟고 있었는데 중간에 유행가를 부르게 된 거예요. 그러다 보니 고개를 들기가 힘들더라고요. 연예인들 모인 자리에서도 구석에서 대화도 나누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몰라요."
예전과 달리 대중가수가 최고스타인 세상이다. 자칭 '딴따라'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세계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실력 있는 사람들이 인정을 받는 시대가 와잖아요. 특히, 싸이가 대단하더라고요. 그의 춤에는 무용을 전공한 사람도 따라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어요. 힘도 좋고. 심각하면서도 웃음이 나오는 표정도 참 대단하죠.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대단한 재능을 지녔어요."
싸이가 미국 등 해외에서 활약하는 것을 보고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기도 했다. "1967년 캐나다 몬트리얼 엑스포에 한국 대표가수로 나가 노래를 부르기도 했죠. 우리나라 여권은 세련되지 않았어요. 지금보다 몇배나 컸죠. 입국심사할 때 코리아가 어디냐고 묻고, 중국사람 아니냐고 묻고. 그런데 지금 후배들이 너무 잘해주고 있네요."
건강이 나빠져 2000년대 이후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한 최양숙이 콘서트를 열게 된 것은 한국음악발전소 최백호 소장이 1년 전부터 권유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자신이 없고 몸도 아프고 해서 거절했어요. 평범한 할머니로 살다가 갑자기 무대에 나오라고 하니 겁이 났거든요."
1970년대 초반에는 고은의 시에 김민기가 곡을 붙여 발표한 노래 ‘가을 편지’가 대중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으며 최고의 여가수 자리에 올랐다. 이 노래는 군사정권 아래에서 이 곡의 작곡자인 김민기가 활동제재를 당하면서 판매금지 되는 불운을 안기도 했으나, 10년 뒤인 1982년 이동원이 불러 재히트 하기도 했다.
마로니의 나뭇잎에 잔별이 지면
정열의 불이 타던 첫 사랑의 시절
영원한 사랑 맹세하던 밤
아~ 흘러간 꿈 황혼의 엘레지
황혼이 들면 지금도 가슴을 파는
상처의 아픈 마음 다시 새로워
눈물을 먹고 이별하던 밤
아 ~흘러간 꿈 황혼의 엘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