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황은 호는 퇴계(退溪)이며 경상북도 예안에서
출생하여
1527년 향시에 합격하고 1534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였습니다.
을사사화 때 삭직되었다가 다시 복직하는 등
부침이 있었으나 일찍 고향으로 내려가
도산서원을 열고 후진양성에 힘을 쏟았습니다.
지금 대한민국 천 원짜리 지폐 초상화의
주인공이 바로 퇴계 이황입니다.
첫째 부인은 김해 허 씨로서 아들 둘을 두고
이황이 27세 때 세상을 하직함으로써
많은 사람에게 슬픔을 안겨주었습니다.
둘째 부인은 안동 권 씨와 혼인했는데 권 씨의
할아버지 권주가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 씨에게
사약을 전달한 사람입니다. 갑자사화로 교살되고
할머니는 관비가 되고 아버지는 위배를 당했는데
이 과정에서 권 씨는 정신질환을 얻게 됩니다.
권 씨의 아버지 권질은 이황의 사람됨을 알아보고
유배지에서 이황을 불러
"정신이 맑지 못하고, 영리하지 못한 나의 딸과
혼인해 줄 수 있겠는가? 부족한 내 딸을 맡길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네밖에 없네."
일찍이 권질을 존경하던 이황은
"저는 오히려 꾸미지 않은 순수한 모습이
마음에 듭니다. 기꺼이 혼례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이황이 30세에 정식으로 혼례를 올리고
정실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황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모자란 권 씨 부인을 두고 말이
많았지만 정작 이황 자신은 부인을 한결같이
공경하고 격려했습니다.
조정에 나가 왕을 알현하는 어느 날, 권 씨 부인이
이황에게 버선을 내밀었습니다. 권 씨 부인이
난생처음으로 만든 그 버선은 빗자루를 본으로
삼아 그 생김새가 아주 이상했습니다.
하지만 직접 버선을 지어준 부인의 정성을
알기에 이황은 그 버선을 신고 임금 앞에
나섰고, 그것을 본 임금과 대신들이 함께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임금은 아내를 공경하는 퇴계의 인품을
높이 샀음은 물론입니다.
어느 봄날 제자들과 마루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을 때,
마당에 있는 우물가에서 허드렛일을 하고 있던
권 씨 부인이 용모 단정하게 앉아 있는 이황의
모습을 보고
"하이구! 그렇게 앉아 있으니 꼭 신선 같네.
밤만 되면 사람을 못살게 굴면서~~"
이 소리를 들은 제자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는데 정작 이황 자신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태연하게 제자들을 둘러보며
"오늘 날씨가 참 좋지?" 하면서
담소를 계속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한 번은 조상 제사를 모시는 날, 권 씨가
배 한 개를 훔쳤다가 손위 동서에게 들켜
꾸지람을 듣게 되었는데 이황이 형수에게
"형수님, 용서해 주십시오. 제가 꾸짖어 잘
타이르겠습니다." 말하고
이황이 권 씨를 방에 조용히 불러
왜 그랬느냐 물어보니 배가 먹고 싶어서
그랬다고 하니, 손수 배를 깎아 권 씨에게
먹게 했다고 합니다.
이황의 집 마당에는 감나무가 있었는데
권 씨가 이 떨어진 감을 주워 감국을 끓여 밥상에
올렸는데 이황이 감국을 맛있게 먹으면서
"감국이 먹을만하네. 맛이 있다." 하니
다음 날부터 감김치, 감나물이 때마다
올라왔음에도 불구하고
"부인의 음식 솜씨가 날로 좋아지는군요."하며
언제나 변함없이 권 씨를 격려했다고 하니
대단한 부인 사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도포가 찢어져 기워달라고 하니 흰 도포에
빨간색의 천을 대어 기워주니 유림의 모임에서
웃음거리가 되어도
귀신을 쫓는데 좋다 하여 우리 부인이 나를 위해서
해준 것이라고 자랑했다고 하니 정말 성인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 때는 퇴계 패션이 유행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사랑하던 부인도 이황이 47세 때에
출산 중 사망했다고 하니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슬하에 자식도 없이 떠나간 부인을 위해
첫 부인에게서 난 자식들에게 친모를 대하듯이
하라 하여 삼년상을 지내고 이황 본인도 부인의
묘 옆에 암자를 짓고 일 년 동안 시묘살이를 했다고 하니
정말 지극정성이었음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이황은 부인과 17년을 함께 살면서 수많은
학문적 업적을 남겼습니다.
정신질환을 앓는 부인을 대신해서 가정을
이끌어 가야 하는 고충이 오죽했겠습니까.
하지만,
천국을 만드는 것은 결국 긍정적인 마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도 이황의 가문에서는 권 씨를
'바보 할매"라 부르고 있다 하니
권 씨의 정신질환이 심했던 모양입니다.
어릴 때, 가정의 비극으로 인하여 얻은
병이라 마음 깊이 상처로 남아 저 세상으로
갈 때까지도 치유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끝"
친구분들! 한 해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마무리
잘 하시고 항상 건강하시길 빕니다.
첫댓글 같이 오래 살다 보면, 전우(戰友)가 되지요.
오로지, '전우 애' 하나로 삽니다.
겨울 비가 내리네요.
느긋한 마음으로 차 한 잔 하이소.
지극한 순애보.
나는? 얼런업다.
전우애라?
그 말되네.
나는 전의를 잃고 사는데 우리 마누라는 아직도 투지를 불태우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