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기 제정반포 (1883. 1. 27) : 그 이듬해인 1883년 음력 1월 27일 고종은 왕명으로 태극도형과 4괘가 그려진 국기를 공식으로 제정, 반포하였으나 구체적인 작도법 등이 정해지지 않아 개인이나 단체에 따라 다소 다른 문양의 태극과 4괘 도안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신 소설가 게오르규는 《25시에서 영원(永遠)의 시간으로》에서 우리의 태극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국기는 유일한 것이다. 어느 나라의 국기와도 닮지 않았다. 거기에는 세계의 모든 철학의 요약 같은 것이 새겨져 있다. 태극기는 멋지다. 거기에는 우주의 대질서, 인간의 조건이나 살아 있거나 죽어 있는 모든 것의 운명이 선, 점, 원, 붉은 색, 흰 색 그리고 파란 색으로 그려져 있다."
우리나라가 태극기를 제정한 것은 1882년이다. 그 이후부터 서양인들은 우리의 태극기에 대해 매우 깊은 관심을 보이면서 그들의 나라에 소개하고 있다. 그 몇 가지를 살펴본다.
1883년 조선의 사절단이 미국을 방문하여 태극기를 게양했을 때 미국인들은 태극 문양에 매우 깊은 호기심을 보였으며, 9월 27일 뉴욕 타임즈 신문에서는 우리 태극문형을 '상형문자와 같은 상징'으로 '행복'을 의미한다고 소개하였다. -----------------
김구선생님은 손에 태극기를 들고 돌아 오시고, 국민들은 밥 공기를 엎어서 그토록 그립든 태극기를 그렸다.
8·15 광복으로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3의사의 유골도 조국에 돌아와 효창공원에 안장되었다.
1946년 1월 11일 미 군정청은 태극기 정식 게양하고.......
조국은 해방되었지만, 미소신탁통치의 역사적 틈새를 비집고 조국은 점점 남북으로 금이
가고 있었다.그러나 태극기는 남북한 관계없이 게양되었다. 북한의 김일성도 태극기 앞에서
연설을 하였으나,
48년 7월 24일 결국 북한은 태극기를 내리고 인공기를 게양하였다. 국기가 둘로 갈라지면서
조국 또한 둘로 갈라졌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정부에서는 이때까지 조금씩 다른 도안으로
사용되어 돈 태극기 문양을 통일시키기 위하여 당시 문교부에 사학자. 미술가. 언론인 등
사계 권위자 42명으로 "대한민국 국기 시정위원회(大韓民國國旗是正委員會)"를 구성.
설치한 후 전문적인 검토를 거침과 아울러 국민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수차의 회의를
거듭하여 오늘날과 같은 태극기를 국기로 채택하기로 하고,
1949년 10월 15일 이를 정식으로 공포하였다.
그 후1984년 2월 21일 국기의 제작· 게양방법 등 기본적인 사항을 정한 『대한민국
국기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제 11361호)를 제정· 공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나라의 상징이며 민족의 얼이 깃들어 있는 태극기를 자랑스럽게 게양하고 예절을 지키는
일은 나라 사랑의 작은 실천이며 조국에 대한 우리 모두의 마음을 손쉽게 표현하는 길이라
하겠다.
<국기 관련 규정 연혁>
1883. 1월(음) : 고종 20년 태극과 4괘가 그려진 기를 국기로 사용토록 왕명으로 공포 1949. 10월 : [국기 제작법] 공포 (문교부 고시 제2호) 1950. 1월 : [국기 게양방법] 공포 (국무원 고시 제8호) 1966. 4월 : [국기 게양 방법에 관한 건] 공포 (대통령 고시 제2호) 1984. 2월 : [대한민국국기에 관한 규정] 제정 (대통령령 제11361호) 1987. 4월 : [대한민국국기에 관한 규정] 제정 (대통령령 제12148호) ※ 국기 강하시각 등 개정 1989. 3월 : [대한민국국기에 관한 규정] 제정 (대통령령 제12642호) ※ 국기의 실내게양 방법 등 개정 1996. 3월 : [대한민국국기에 관한 규정] 제정 (대통령령 제14943호) ※ 국기에 대한 경례시 애국가를 주악할 경우 맹세문 낭송 생략 1996.12월 : [대한민국국기에 관한 규정] 제정 (대통령령 제15182호) ※ 국기의 연중, 24시간 게양 및 국기 문양의 생활용품 활용제도 도입
6·25 전쟁 속의 태극기 :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민족의 최대 비극인
동족 상잔의 전쟁을 도발하였다. 피난 속에서도 미래 조국의 주인공들에 대한 교육은 계속되었는데....
천막을 치고 태극기를 걸고 수업을 하는 당시 소래초등학교의 모습.
학도병이 사용한 태극기(1950년) : 한국동란(6.25) 당시 제3차 학도병 지원시(1950. 9)
학도병들이 조국을 구하기 위한 전쟁에 나서기 직전 구국의 결의를 기록한 태극기.
서울수복 태극기(1950년) : 그 해 9월 27일 다시 서울을 되찾게 되고 중앙청 앞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