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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의 첫 번째 맑음은 수려한 산에 머문다. 이곳 산세는 풍수지리로 보자면 ‘용이 할아버지를 돌아본다’는 뜻의 회룡고조형. 자기가 나온 자리를 되돌아 보는 성찰의 산이 대한민국 또 어디에 있을까. 360도로 휘몰아치는 산의 생김생김은 청도 사람들의 안락한 삶을 병풍처럼 지키고 섰다.
청도가 품은 一淸의 비밀은, 이 산 저 산 할 것 없이 알알이 뿌리 박힌 소나무의 대찬 기운에 있다. 사시사철 같은 색으로 무장한 소나무 덕에 늘 변치 않는 푸르름을 전해주는 청도.
혹여 밥벌이의 지겨움에 시달리느라 삶의 목적이 무색해질 때면 청도의 一淸에 슬며시 기대보자. 눈이 시릴 정도로 올곧은 푸른 산의 기백은, 첫 월급이 찍힌 통장을 두 손에 쥐었을 때의 떨림, 그 감격의 초심을 되살려줄 것이다.
구름이 통하는 관문 ‘운문산’
경상도 전역에 퍼져 있는 고도 1000m 이상의 일곱 산을
일컫는 ‘영남알프스’. 높이도 높이지만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아찔한 장관은 ‘알프스’라는 명칭으로도 부족하다는
게 세간의 평. 산세 좋기로 이름난 청도 역시 영남알프스의
대들보를 든든히 이어받고 있다. 한 번 들르면 몇 번이고
다시 찾고 싶게 만드는 ‘운문산’이 거기 있기 때문.
경북 청도군과 경남 밀양군의 경계에 위치한 운문산은, 조선시대 실학가 이중환이 저술한 택리지에 ‘승가에서는 천 명의 성인이 세상에 나올 것이라 전하며, 병란을 피할 수 있는 복지다’라고 언급된 명산 중 명산.
비파와 거문고를 켜는 ‘비슬산’
청도군과 대구 달성군 사이에 사뿐히 걸터앉은 비슬산. 청도가
품은 비슬산의 참면목을 만끽하려면, 각북면 남산3리 낙성부락
등산코스가 제일이다. 사람 손길 타지 않은 산 그대로의 산을
맛볼 수 있어, 소담한 경관을 찾아 헤매는 등산객의 사랑을
담뿍 받고 있다.
비슬산에 새벽이 내리면 우거진 골짜기마다 뽀얀 안개가
무성하게 피어 오른다. 신선이 비파와 거문고 켜는 모양을
닮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비슬산’다운 장관. 이쯤 되면
삼국유사로 유명한 보각국사 일연이 왜 이 산에 20여 년이나
머물렀는지 알 만하다.
태백산맥의 마지막 절경 ‘가지산’
태백산맥 끝자락을 담당하고 있는 영남알프스의 주봉, 가지산. 배포 큰 명산답게 웅장한 면모를 울산, 밀양과 다정하게 나눠가졌다. 청도인에게 가지산이란 운문산과 어깨를 나란히 둔 다정한 친구. 그도 그럴 것이 이 두 산은 불과 4Km를 지척에 두고 있다.
가지산과 운문산이 이웃사촌이라는 것은 등산로에서도 테가 난다. 황정마을에서 운문사를 거쳐 사리암 입구를 지나 천문골을 오르면 밀양 남명리와 통하는 아랫재에 닿는다. 이 아랫재 좌측 능선을 오르면 가지산이요, 우측 능선을 오르면 운문산에 닿게 되는 것. 이름난 명산을 한 곳에서 만나는 재미 또한 놓칠 수 없는 一淸의 자랑이다.
청도의 두 번째 맑음은 어떤 이물도 섞이지 않은 청정수에 있다. 도시를 살포시 감싸 안은 산의 지형 덕분에 외부에서 물이 유입되지 않는다는 특징은 청도가 일급 청정수를 지킬 수 있었던 비결. 물이 발원하는 상류지세가 바위와 나무로 구성된 것 역시 청도가 맑디 맑은 二淸을 오롯이 간직할 수 있는 이유다.
어느덧 세상살이 묵은 때가 온몸을 뒤덮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누구도 해결해줄 수 없을 것만 같은 그 순간의 고독함을 말끔히 씻어내고 싶다면, 거울보다 해사한 청도의 물줄기로 향하자. 고치를 벗어 던진 나비처럼 사회라는 바깥세상에 처음 발 내딛던 설렘을 생생히 복원해줄 것이다.
二淸의 출발은 졸졸졸 지저귀는 계곡에서 : 삼계리계곡
스치듯 지나가면 놓치기 십상인 삼계리계곡의 비경! 스스로 문을 두드리는 자에게만 보여주려는 듯 숲 속에 꼭꼭 감춰져 있기 때문에, 꼼꼼히 살펴봐야만 그 매력과 마주할 수 있다. 혹시 찾기 힘들까 벌써부터 겁먹을 필요는 없다. 청도 제일 가는 계곡인 만큼, 길 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도 친절한 안내를 받을 수 있으니. 배너미, 개살피, 생금비리라는 세 골짜기가 한 데 모였다 해서 삼계리라 이름 붙여진 이곳. 과연 두 번째 맑음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계곡은 흘러 흘러 폭포로 향하고 : 낙대폭포
아아. 대한민국에 이런 절경이 숨어 있었다니! 울창한 숲을 헤치고 들어가면, 자연이 깎아놓은 기암괴석에서 우레 같은 폭포수가 흘러내린다. 어떤 소리꾼의 간곡한 창도 뚫고 나올 수 없을 만큼 우렁찬 음악. 하얗게 터져 나오는 물보라는 꽉 막힌 가슴을 속 시원히 뚫어준다. 예로부터 신경통에 효험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약수폭포라 불리기도 한다고.
청도의 맑은 물이 하나로 모이면 : 운문댐
담는 그릇에 따라 모양이 변하는 물. 운문댐에 가면 늘 곁에 있어 소중함을 몰랐던 물의 압도적인 힘을 느낄 수 있다. 이곳이 댐인지 강인지 분간하기 힘들 만큼 드넓은 풍광. 자연미와 인공미가 적절히 안배된 것도 일품이지만, 배 한 척 띄워놓고 시 한 수 짓고 싶게 만드는 넉넉함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물안개 피어 오르는 운문댐을 끼고 20번 국도나 69번 지방도로를 달리면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호반 드라이브코스 정복!
청도의 세 번째 맑음은 후한 인심에서 나온다. 경치 좋은 산과 속이 훤히 비치는 물을 곁에 두고 사는 사람들의 곳간 인심이 야박할 리 없지 않은가. 예로부터 아무리 욕심나는 물건이 길에 떨어져 있어도 함부로 손대지 아니하는 도불습유(道不拾遺) 정신을 꼿꼿이 지켜온 것은 이들의 자랑. 게다가 불교와 유교의 영향을 이어받아 어른을 공경하고 예의를 중시 여기는 풍토가 뿌리 박힌 곳이기도 하다.
걱정 근심은 제쳐두고 베푸는 삶을 실천하며 사는 청도인들의 속 깊은 DNA. 넉넉한 마음씀씀이 만큼 환한 그들의 미소와 마주한 순간, 남루한 일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건 우리들의 마음가짐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엄마 품처럼 포근한 ‘청도 5일장’
청도의 인심을 제대로 맛보려면 5일장에 들를 것! 우리네 재래시장의 통 큰 덤이야 누군들 부정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후하기로 소문난 ‘청도’ 사람들이 문을 연 장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다. 어찌나 퍼줄 것이 많은지 전날 오후 8시부터 장사를 시작해, 장날 오전 6시에 마감하는 ‘새벽 번개시장’으로도 유명하다.
어머니의 낙낙한 품이 그리운 날이면 풍요와 여유로 그득한 청도 재래시장에 들러보자. 모락모락 피어나는 뜨거운 김과 골목 끝까지 퍼져나가는 감미로운 향은 오감을 만족시키고, 도시 손님에게 속절없이 퍼주는 구수한 정에 이끌려 주전부리 한 두 봉지 손에 쥐어야 직성이 풀리는 묘미는 각박한 마음을 스르르 녹인다.
차고 넘치는 게 제 맛인 ‘장터국밥’
청도 5일장에 들렀다면 국밥 한 그릇 후루룩 들이키는 재미를 빠뜨리지 말지어다. 장이 서는 곳 그 어디라도 빠질 수 없는 국밥! 마을 어르신 주머니에서 쌈짓돈 꺼내게 하는 장본인도, 지나가다 들른 나그네 허리춤에서 꼬깃꼬깃한 지폐 몇 장 슬쩍 하는 주인공도 이 뜨끈한 국밥이리니. 장 안에 위치한 어느 국밥집에 들러도 후회는 없다.
재빠른 손놀림으로 뚝딱 말아주는 뚝배기에 차고 넘치는 국물. 그게 바로 청도 인심의 본 모습이다. 무릇 정이란 가다 서는 법이 없는 게 당연지사. 세상 천지 널린 게 국밥이라지만, 청도 곳곳에 들어선 장터국밥에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인간미까지 담아준다는 사실! 헛헛한 속배만이 아니라 구멍난 가슴까지 채우고 싶다면 청도의 후덕한 국밥 한 사발로 만사형통이다.
거저 줘도 아깝지 않은 ‘청도 반시’
어쩜 그리도 욕심이 없는지. 청도 곳곳에 장승처럼 버티고 선 감나무들에선 주홍빛 열매가 여물어 가는데, 지나가는 나그네가 입술 한 번 달싹이면 망설임 없이 반시 하나 쥐어주는 청도인들. 덮어놓고 내 것부터 챙기고 보는 도시인의 콧대를 납작하게 비트는 그들의 습성이다.
청도에 들르면 반드시 섭취해야 할 당도 20°의 씨 없는 감, 반시! 얼마나 연하고 부드러운지 조선시대 임금님의 사랑을 독차지했다던 청도의 특산품! 그들에게야 거저 줘도 아깝지 않은 흔한 감이라지만, 여행객에게는 거저 받기 아까운 명품 과일이다.
세월의 흔적에 무뎌져 사람냄새가 당길 때면 청도로 발길을 돌리자. 달큰한 반시에 한 번, 청도 사람들의 푸짐한 인심에 두 번 빠질 테니.
어느 날 문득 쇼윈도에 비친 내 모습에 놀랄 때가 있다. 저 사람에게도 해맑은 어린 시절이 있었을까 싶게 잔뜩 찡그린 표정. 그게 바로 나다. 다람쥐 쳇바퀴처럼 쉼 없이 돌아가는 하루를 사는 우리 모두의 얼굴이다.
컴퓨터를 포맷하듯 복잡한 머릿속도 새하얗게 표백하고 싶은 순간이 오면 앞 뒤 잴 것 없이 청도로 가자. 속세의 요란함은 저만치 접어둔 채, 맑고 밝고 푸른 것만 간직한 그곳. 태곳적 순수와 엇비슷한 농도의 산, 물, 인심의 세례를 아낌없이 받을 수 있는 그곳. 잊고 지냈던 모든 것의 시작점을 되짚어주는 그곳에 취하자.
어느덧 해가 지고 집으로 돌아올 무렵. 삼청의 고장을 등진 당신의 가슴속에는 바짝 자른 손톱처럼 개운한 기분만 남아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