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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순례자
시편 84:1-12
하나님의 평화가 말씀을 듣는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길 빈다.
오늘은 성령강림 후 제14주일이다. 앞으로도 하나님의 달력은 성령강림절기이지만, 그 안에서 새로운 절기를 시작한다. 9월부터 창조절로 지킨다.
이제 무더위도 곧 한풀 꺾이고, 가을로 가는 문턱으로 향한다. 마치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인생 여정에서 백로, 한로, 상강이라는 정거장에 차례로 들를 것이다. 9월 첫 주일은 가족예배로 드리며, 성찬식을 한다.
엊그제는 재일동포에게 최고의 날이었다. 우리는 광복절은 보내면서 불편한 마음이었는데, 얼마 후 동해바다를 건너온 뉴스는 참 즐거웠다.
일본 고시엔고교야구대회에서 한국계 교토국제고 야구부가 우승했다는 소식이다. 무려 3,700개 일본 고교 야구부들이 도와 현 지역 예선을 통해 올라온 49개 팀 토너먼트 승부에서였다.
그런데 전교생 157명 중 남학생 68명이 전원 야구부인 교토국제고 야구부가 우승한 것은 마치 ‘공포의 외인구단’이란 만화같은 이야기다. 이 학교는 1947년 교토조선중학교로 시작했는데, 해방 직후에도 계속된 설움과 차별을 극복하려는 재일동포들이 세운 학교다.
무려 여섯 차례 고시엔 야구장에 한국어 교가가 울려퍼졌다. NHK 생방송으로 전국에 중계되었다. 교가 내용이 마치 애국가를 듣는 듯하다.
“동해바다 건너서 야마토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 아침 저녁 몸과 덕 닦는 우리의/ 정다운 보금자리 한국의 학원.”
재일동포는 제 조국, 제 나라에서 보금자리를 읽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두 번째 삶의 자리인 일본에 터를 잡았다. 인생 순례자로서 참 고달픈 역정을 살았다. 한반도에 사는 나도 국제교토고의 성취가 감격스러운데, 재일동포의 가슴이 얼마나 벅차고 미어졌을까? 성경은 그런 디아스포라를 이렇게 비유한다.
“고향을 떠나 유리하는 사람은 보금자리를 떠나 떠도는 새와 같으니라”(잠 27:8).
1)
시편 84편은 명절에 예루살렘을 순례한 사람의 드높은 기쁨을 담은 노래이다. 보금자리를 떠나 떠돌던 사람이 하나님의 집을 찾아가는 일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 기대와 설레임이 클 것이다.
초막절 순례자의 환희는 이렇게 노래한다. 그는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켜 ‘주의 장막, 여호와의 궁정, 주의 제단, 주의 집’(시 84:1-4)으로 부른다. 이렇게 다양한 표현은 그의 마음이 얼마나 감동적인가를 느끼게 한다.
시인이 성전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 때문이다. 하나님과 가까이하고 싶은 마음이 그를 들뜨게 하였다. 마치 짝사랑을 그리워하듯이 몸이 쇠약할 정도라고 한다. 함정에 빠진 사람처럼 유일한 구원자를 기다리는 애절한 심정도 담겨있다.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2).
시편에는 이렇듯 성전에 올라가는 기쁨을 노래한 시들이 많이 있다. 시편 120편부터 134편까지 이 묶음을 순례자의 노래라고 부른다. 성전을 사랑하는 이 시들은 성전 때문에 자기 가정, 자기 민족, 자기 인생을 더욱 사랑하게 된다고 고백하고 있다. 예배자의 삶이 그를 새롭게 하고, 즐거움을 주고, 하나님과 동행하게 한다.
시편 84편은 꽤 오래 전 우리가 암송한 말씀이다. 연합속회에서 5개의 시편을 암송하여 속별로 경쟁한 적도 있다. 기억이 아슴아슴할 것이다. 그중 84편은 성전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가득하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3).
시인의 표현에 따르면 성전은 제비가 보금자리를 지을 만한 그런 편안한 장소이다. 누구나 의지하고 도움을 얻을 만한 그런 인생의 보금자리 같은 곳이다. 성전은 하나님을 믿는 그 사람에게는 절대적인 장소이다.
제비는 가장 흔한 새이다.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집집마다 제비집이 있었다. 봄이 오면 저 대만이나 오키나와 쯤인 강남에서 제비들이 돌아온다. 그리고 처마 아래 흙과 지푸라기를 물어다 새집을 짓고, 어느샌가 알을 까서 제비 가족을 거느렸다.
내가 어린 시절, 아이들은 어미 제비가 새끼들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광경을 보면서 자랐다. 요즘 유투브 보고 아이들이 자라는 식이다. 이젠 보기 어려운 풍경이 된 것이 참 아쉽다.
우리나라 기후환경과 생태계에 무슨 잘못이 있는지 요즘 제비가 안 날아온다. 오죽하면 제비집이 어느 식당 처마에 보금자리를 짓고 다섯 마리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장면이 이젠 TV 뉴스에 화제가 될 정도로 희귀 새가 되었다.
성전을 찾아온 순례자는 그런 눈으로 성벽에 깃들어 보금자리를 찾는 새들을 보고 있다. 성전 벽에 보금자리를 튼 제비처럼, 자신도 성전에서 편안한 삶의 보금자리를 발견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집에서 참 안식을 얻을 수 있다. 참새와 제비처럼 하찮은 미물도 안식을 얻을 수 있는 곳이 하나님의 집이다. 하물며 하나님의 백성에게 얼마나 따듯한 하나님의 위로를 주시겠는가?
인생 순례자인 여러분도 하나님의 성전에서, 평생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의 길에서 진정한 보금자리를 얻기를 바란다.
2)
지난 주간에도 각종 사건사고가 흉흉하였다. 물 위로 차가 둥둥 떠다니고, 호텔에서 불이 나고, 새벽에 인력시장 자동차가 추돌 사고를 냈다. 많은 사람들이 아까운 생명을 잃었다. 코로나가 다시 극성을 부르고, 병원 응급실은 환자 받는 일을 주저한다.
마치 세상이 목적지를 잃은 듯하다. 이렇게 위험하고 흔들리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묻는다. 과연 “쉴 만한 물 가”(시 23:2)는 어디인가?
세상살이에 지친 사람들은 어디에서 위로를 구하는가? 잠시 현실을 잊을 수 있는 방법은 있지만, 어디 간들 편한 곳은 없을 것이다. 시편은 말한다. 너희는 하나님이란 목적을 잊은 채 나는 다른 곳을 목적지로 삼아서 방황하고 있지는 않은가? 명심하라. 하나님을 의지하려는 가난한 마음이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시인에 따르면 성전으로 나온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사는 사람, 그 제단 가까이에서 지내는 사람들이라고 부러워한다.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4).
그러니 시인은 바로 우리를 향해, 내 일상 속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라고,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을 우선하여 살라고 말한다. 인생의 길에서 무거운 멍에를 멘 사람, 마음이 크게 상해 눈물이 골짜기를 이룬 사람, 그런 사람에게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라고 한다.
인생이란 전쟁터에서 온갖 답답함과 시련과 좌절을 겪은 사람은 위로가 필요하다. 배려와 격려, 위로와 소망이 간절하다. 누가 나를 도와줄 것인가? 그런즉 하나님의 집을 사모하라. “주께 힘을 얻”(5)을 것이다.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제함으로써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7)게 될 것이다.
한자어로 ‘집 가’(家)란 글자는 집(冖) 속에 돼지(豕)가 들어앉은 모양을 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중국 사람은 식량으로 돼지가 가장 중요하다. 돼지고기 요리는 매우 일상적인 음식이다. 그래서 집의 최고의 가치는 돼지인 모양이다.
그러면 이제 적어도 먹는 문제가 해결되었다면 언제까지나 우리 집의 참된 가치를 돼지, 혹은 돈으로만 삼아서는 안 될 것이다. 먹는 것만 충분하면 행복한가? 그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그 자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러면 나의 신앙의 집에 참된 가치를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성경은 하나님을 찾으라고 한다. 인생은 눈물 골짜기와 같다. 신앙은 자신의 보금자리에만 머물지 않는다. 때로는 떠나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을 향하고, 떠나라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귀향 본능이 있다. 신앙이란 우리 인간이 본래 지니고 있는 영적 귀소본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종교적 인간이라고 부른다.
성전을 향하는 마음, 하나님을 향하는 마음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신앙생활은 주님께 힘을 얻으려는 영적인 순례길이다. 그 마음의 길을 닦는 것이 순례이다. 그 삶을 통해 하나님을 향하는 것이 순례이다.
이슬람교를 믿는 모슬렘의 5대 의무 중 하나가 평생 한 번 성지순례이다. 그리스도인의 오랜 소망도 성지를 순례하는 일이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얼마나 조상의 땅이 그리울까? 해외에 살고있는 한국 사람들도 고국을 방문하는 일을 늘 손꼽는다.
폴란드의 한 유대인 마을이 있었다. 그 마을에는 신앙심이 좋은 유대인들이 살았다. 열심히 일했고, 자식을 키웠으며, 가축들을 돌봤다. 그들에게 한 가지 공통된 소망이 있었다. 생전에 성지를 한번 다녀오는 것이었다. 모여 앉기만 하면 입버릇처럼 말했다.
“올해는 꼭 성지순례를 다녀와야지. 더 나이 먹기 전에 다녀와야겠어.”
그렇지만 늘 이런저런 핑게를 댔다.
“이번에 우리 집 소가 새끼를 낳으면 꼭 가야지. 소가 배가 잔뜩 불러갖고 있으니 떠날 수가 있어야지.”
“난 신고 갈 구두가 없단 말야. 구두만 사면 더 이상 미루지 않고 꼭 가겠어.”
“난 성지순례를 가면서 그냥 갈 순 없어. 멋진 노래를 부르면서 가야지. 그런데 내 기타가 줄이 끊어졌단 말야. 기타줄만 갈면 떠나야지.”
그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아무도 성지순례를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후 독일군이 마을에 쳐들어와 마을의 유대인들은 모두 집단 수용소로 끌려가야만 했다. 저마다 끌려가면서 이런 이야기했다.
“우리 집 소가 계속 새끼를 낳았는데도 난 성지순례를 떠나지 않았어. 그때 충분히 갈 수 있었는데 가지 않았어.”
“난 구두가 없다는 핑계로 가지 않았지. 고무신을 신고서도 갈 수 있었는데 말야.”
“난 기타 핑계를 댔지. 기타줄이 없으면 성지순례가 불가능한 것처럼 말했어. 그냥 노래만 부르면서 갈 수도 있었거든.”
그들은 다들 입을 모아 말했다.
“그때 갔어야 하는 건데! 이미 때는 늦었어!”
순례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내려놓고 철저히 하나님의 길에 동행하는 행위이다. 자신의 일, 책임, 경제적인 염려, 두려움을 모두 잠시 포기하는 것이다.
인생 순례자인 우리가 드리는 기도는 영적인 순례이다. 그 시간만큼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다 내려놓는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한다. 자기 생각을 다 움켜쥐고 기도하는 사람은 제대로 기도하지 못한다. 영적인 순례자는 늘 기도를 통해 마음의 순례를 한다.
“귀를 기울이소서”(8).
“얼굴을 살펴 보옵소서”(9).
내가 인생 순례자라면 영혼의 순례를 계획하라! 순례를 시도하라! 그 마음에 고속도로를 닦아라. 바로 ‘시온의 대로’이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5).
마틴 루터는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를 ‘마음에서 우러나 주를 따라가는 자’로 번역하였다. 루터는 예루살렘 순례를 인생의 순례로 이해하였다.
3)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얼마나 기쁜가?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10).
‘천 날과 하루’, ‘악인의 장막과 성전 문지기’는 두 극단 사이의 대조이다. ‘천 일과 악인의 장막’은 편안하고, 호사롭고, 당장 만족스럽다. 그러나 ‘하루와 문지기’는 초라하고, 보잘것없어 보인다. 그러면서 단호히 말한다. 나는 차라리 하루를 택하겠다. 호화로운 장막의 주인이 되기보다 하나님의 집의 문지기요,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 고백한다.
하나님을 모르는 처지에서 천 날의 의미가 부럽지 않다. 양적인 것은 사람의 개념이지만, 질적인 것은 하늘의 개념이다. 하나님 없는 천 일, 만 일의 나날이 무슨 기쁨이 있겠느냐? 악한 것과 짝하여 호사롭게 천 일, 만 일을 산들 하나님과 함께하는 하루에 절대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11).
해와 방패는 하나님이 삶의 근원과 보호이심을 표현한 것이다. 태양을 바라는 해바라기는 하나님을 사모하는 인간의 모습을 닮았다. 사람은 하나님을 바라는 신앙으로 살아간다.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영광, 기쁨, 삶에서 좋은 것들을 베풀어 주신다.
‘제비는 작아도 강남 간다.’ 모양은 비록 작아도 제 할 일을 다하는 존재이다. 비록 내 삶이 자주 흔들리더라도 하나님을 향하는 일은 모든 하나님의 자녀의 의무이다. 주님을 향한 인생의 순례를 계속하기를 바란다.
꽤 오래 전에 오사카를 방문했다가 우리 집에 온 교환학생 배순주 부모님의 초대를 받아 어느 중국집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가라오케가 있는 룸이었다. 내게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있다면서 같이 부르자고 부탁하였다.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 월출봉에 달 뜨거든 날 불러주오/ 기다려도 기다려도 님 오지 않고/ 빨래 소리 물레 소리에 눈물 흘렸네”
함께 울었다.
매크리나 위더커는 ‘그대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에서 인생 순례자들을 향해 이렇게 축복한다.
그대의 모든 목적이 하나님 마음속에 둥지를 틀기를
...
삶의 동심원이 길가는 내내 그대를 에워싸기를
깨어진 세상이 그대의 어깨 위에 목말을 타기를
그대 영혼의 배낭에 그대의 기쁨과 슬픔을 지고 가기를
그대가 온 세상 모든 기도의 고리들을 기억하기를
믿음으로 사는 인생 순례자는 그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시온의 대로가 있는 사람이다. 만군의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이다. 그런 하나님을 향한 전용도로가 여러분의 삶에 가득하기를 바란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인생, 늘 그 품을 향해 순례하는 은총의 사람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