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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아버지 장례식에 300만원 냈는데” 내 어머니 장례식 날 확인한 봉투에 말문 막혔다
인간의 도리와 염치라는 것은 화려한 잔칫날의 웃음 속에서는 쉽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평온할 때는 누구나 점잖은 벗을 자처하고 입에 발린 의리를 노래할 수 있지만,
한 사람의 삶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는 애경사(哀慶事)의 한복판,
특히 피눈물을 삼키며 부모를 떠나보내는 장례의 문턱에 서게 될 때 비로소 그 사람이 품고 있던
인간 됨의 밑천과 진심의 무게가 낱낱이 발가벗겨지는 법입니다.
올해로 쉰아홉을 맞이한 강태호 씨는 경기도 평택에서 소형 화물 지게차 임대업과 정비 일을 하며 살아온 정직한 생활인이었습니다.
평생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입고 거친 쇳소리를 들으며 뼈마디가 닳도록 일해온 태호 씨에게 인간관계의 신의란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삶의 철칙이었습니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내가 받은 은혜는 반드시 곱절로 갚으며, 벗이 슬픔에 잠겼을 때는 제 주머니를 털어서라도
그 곁을 지켜주는 것이 사내의 당연한 도리라 믿고 살았습니다.
그런 태호 씨에게 고등학교 단짝이자 삼십 년 넘게 한 동네에서 막역하게 지내온 친구 윤철이는
각별하기 이를 데 없는 벗이었습니다.
윤철이는 젊은 시절 서울로 올라가 건설 시행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몇 차례 부침을 겪고는,
십여 년 전부터 경기도 일대에서 제법 규모 있는 실내 인테리어 업체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성격이 호탕하고 언변이 좋아 주변에 늘 사람들이 들끓었고,
모임에 나올 때면 번쩍이는 외제차를 몰고 와 비싼 양주를 척척 돌리며 사업가의 수완을 과시하곤 했습니다.
두 사람의 처지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태호 씨는 여전히 낡은 1톤 트럭을 몰며 현장을 전전하는 투박한 기술자에 불과했지만,
윤철이가 "태호야, 세상만사 다 부질없어도 어릴 적 불알친구인 너만큼 편한 놈이 없다"며
손을 잡을 때면 태호 씨는 순박한 웃음으로 그 우정을 귀하게 받들었습니다.
비극과 시험의 서막이 오른 것은 지금으로부터 4년 전, 윤철이의 아버지가 오랜 지병 끝에 세상을 떠났을 때였습니다.
당시 윤철이는 맡았던 대형 상가 인테리어 현장의 건축주가 부도를 내는 바람에 수억 원대의 공사 대금이 묶여
극심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고급 세단을 굴리며 체면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당장 거래처 자재 대금과 인건비를 막지 못해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던 절박한 시기였습니다.
장례식장은 서울의 한 대형 대학병원 특실에 차려졌습니다.
번듯한 상가 건물이었지만, 정작 상주인 윤철이는 퀭한 눈으로 빈소 구석에 웅크려 앉아 한숨만 내쉬고 있었습니다.
조문객들이 뜸해진 한밤중, 윤철이는 태호 씨의 소매를 붙잡고 비상계단으로 데리고 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가슴을 쳤습니다.
"태호야...
내가 지금 자금줄이 꽉 막혀서 당장 이 장례식장 안치실 비용이랑 식대 삼일치 삼천만 원을 결제할 현금이 없다...
카드 한도도 다 찼고, 내일모레 발인인데 결제를 못 하면 관을 못 나간다고 병원에서 으름장을 놓는데...
내가 아버지 마지막 가시는 길까지 이런 꼴을 보여드려야 하냐...
죽고 싶다, 정말..."
친구의 그 피눈물 나는 절규를 마주했을 때, 태호 씨의 가슴은 불에 덴 듯 뜨거워졌습니다.
당시 태호 씨의 형편 역시 결코 넉넉지 못했습니다.
작은 지게차 한 대가 노후화되어 엔진을 통째로 갈아야 했고, 둘째 아이의 대학교 마지막 학기 등록금 고지서가
나와 있던 빠듯한 살림이었습니다.
하지만 태호 씨는 두 번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내 지게차 수리는 다음 달로 미루면 되고, 등록금은 분납 신청을 하면 된다.
하지만 내 벗이 제 아비 장례를 치르지 못해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내가 어찌 내 주머니 사정만 재고 앉아 있겠는가.'
태호 씨는 곧장 병원 로비의 현금인출기로 달려갔습니다.
비상금 통장에서 백만 원, 마이너스 통장에서 이백만 원을 헐어내어 정확히 ‘현금 300만 원’을
하얀 부의금 봉투에 두둑하게 채워 넣었습니다.
보통 친구 사이의 부의금이 십만 원, 많아야 이삼십만 원이던 시절이었습니다.
300만 원이란 평범한 기름밥 노동자에게는 한 달 치 순수익 전체를 털어 넣는 생살 같은 거금이었습니다.
태호 씨는 비상계단에서 윤철이의 차가운 손을 꼭 쥐며 그 두툼한 봉투를 쥐여주었습니다.
"윤철아. 삼우제 치르고 발인할 때 병원비 정산하는 데 보태 써라.
갚을 생각일랑 꿈도 꾸지 말고, 아버지 마지막 가시는 길 평안하게 모시는 데만 온 신경을 써라.
넌 내 둘도 없는 친구다."
봉투를 건네받은 윤철이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태호 씨의 허리를 끌어안고 어린아이처럼 오열했습니다.
"태호야... 이 은혜 평생 잊지 않겠다...
내가 다시 일어서면 네 발밑에 엎드려서라도 이 고마움 다 갚을게...
진짜 고맙다, 친구야..."
그 눈물과 떨림에 태호 씨는 자신의 통장이 바닥났음에도 마음만은 더없이 벅차고 따뜻했습니다.
그 덕분이었는지 윤철이는 무사히 부친상을 치러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묶여있던 공사 대금 중 일부를 극적으로 회수하면서 회사를 다시 반석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이후 윤철이의 사업은 날개를 달았습니다.
신도시 상가 인테리어를 독점하다시피 하며 수십억 원대의 매출을 올렸고,
서울 강남의 50평대 아파트로 이사했다는 소식이 동창들 사이에 자자하게 퍼졌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사업이 번창할수록 윤철이의 연락은 뜸해졌습니다.
가끔 걸려오는 전화에서도
"태호야, 내가 요즘 강남 쪽 사모님들 미팅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
조만간 비싼 밥 한번 살게"
라는 형식적인 인사치레만 늘어놓을 뿐이었습니다.
태호 씨는 서운하지 않았습니다.
'친구가 잘 풀려서 바쁘다니 그것만으로도 참 다행이다.
내가 돈을 받을 목적으로 도왔던 것도 아닌데 뭘 바라겠나'
하며 묵묵히 제 일터를 지켰습니다.
그렇게 4년의 세월이 흐른 지난달, 마침내 태호 씨의 삶에서 가장 거대한 기둥이 무너져 내리는 날이 찾아왔습니다.
아흔을 바라보던 태호 씨의 노모가 오랜 노환 끝에 평택의 한 요양병원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신 것이었습니다.
평생 홀몸으로 시장 골목에서 삯바느질을 하며 태호 씨 삼 남매를 길러내셨던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의 주름진 손을 부여잡고 오열하던 태호 씨는, 평택 장례식장에 빈소를 차리고 떨리는 손으로 상주 완장을 찼습니다.
부고를 전하며 태호 씨의 뇌리에는 자연스럽게 친구 윤철이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윤철이가 알면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오겠지. 4년 전 제 아버님 가실 때 함께 밤을 새우며 눈물을 흘렸던 사이인데...'
장례 첫날 낮 열두 시경, 부고 문자를 확인한 윤철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태호야, 어머님 소식 들었다.
아이고, 연세가 있으셔서 호상이라지만 네 상심이 얼마나 크겠냐.
내가 지금 지방 현장 감리 때문에 내려와 있어서 당장은 못 가고, 내일 저녁쯤에 서울 올라가는 길에 꼭 들를게. 기운 내라."
태호 씨는 "바쁜데 멀리서 마음 써줘서 고맙다. 천천히 조심히 내려와라"며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저녁 여덟 시경, 빈소의 조문객들이 북적이던 시간에 마침내 윤철이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윤철이는 고급 맞춤 정장을 차려입고, 손목에는 롤렉스 시계를 번쩍이며 빈소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어머니 영정 앞에 절을 올리고 향을 피운 뒤, 상주 자리에 선 태호 씨의 손을 잡았습니다.
"태호야, 고생 많다.
어머니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다."
"와줘서 고맙다,
윤철아. 먼 길 오느라 힘들었지?
저기 안쪽에 자리 잡고 앉아라.
밥이랑 육개장 좀 들고 가."
하지만 윤철이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아, 태호야. 미안해서 어쩌냐.
내가 지금 서울에서 대형 건설사 임원들이랑 밤 아홉 시에 골프 모임 뒤풀이 미팅이 잡혀 있거든.
얼굴만 잠깐 보고 바로 쏴야 할 것 같다.
밥은 다음에 서울 올라오면 내가 진짜 최고급 일식집에서 제대로 살게."
서른 명 가까운 옛 동창들이 둘러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며 밤을 지새워주고 있던 자리였습니다.
삼십 년 지기 단짝이라는 친구가, 4년 전 제 아비 상사 때 사흘 내내 뜬눈으로 빈소를 지켜주었던 벗의 모친상에 찾아와
절 한번 달랑 올리고 십 분도 채 머물지 않은 채 골프 모임 핑계를 대며 발길을 돌리려 하고 있었습니다.
주변에 앉아있던 동창들의 시선이 서늘하게 굳어졌지만, 태호 씨는 묵묵히 쓴웃음을 삼켰습니다.
"그래, 바쁜 사업가가 시간 쪼개어 와준 것만으로도 고맙다.
운전 조심해서 올라가라."
윤철이는 빈소 입구 접수대 앞에 서서, 제 정장 안주머니에서 하얀 봉투 하나를 꺼내 부의함에 툭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고 접수대 장부를 지키고 있던 태호 씨의 조카에게 손짓을 하며 말했습니다.
"거기 장부에 서울 (주)예손디자인 대표 윤철이라고 똑바로 적어줘요."
윤철이는 거들먹거리는 걸음으로 지하 주차장을 향해 사라졌습니다.
친구의 번쩍이는 외제차가 배기음을 울리며 장례식장을 빠져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태호 씨의 가슴속에는 알 수 없는 서늘하고 쓸쓸한 바람이 휑하니 불어왔습니다.
하지만 태호 씨는 애써 서운함을 지워냈습니다.
'그래도 서울에서 평택까지 그 바쁜 와중에 얼굴이라도 비추러 내려온 게 어디냐.
사람은 저마다 제 삶의 무게가 있는 법이지.'
사흘간의 장례가 모두 끝나고 발인을 마쳤습니다.
어머니의 유골함을 선산 양지바른 곳에 모시고 돌아온 일요일 늦은 밤,
적막이 내려앉은 평택 집 거실에서 태호 씨는 아내와 함께 퉁퉁 부은 다리를 주무르며
조의록 장부와 부의금 봉투들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먼 길을 달려와 슬픔을 나누어준 고마운 인연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수첩에 옮겨 적으며,
나중에 그들의 애경사에 잊지 않고 보답하리라 마음을 다잡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태호 씨의 손이 '윤' 씨 성을 가진 봉투 묶음으로 향했습니다.
장부에는 조카의 반듯한 글씨로 적혀 있었습니다.
[서울 (주)예손디자인 대표 윤철 - 금 000원]
봉투를 열어 금액을 확인하고 장부에 숫자를 채워 넣어야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태호 씨는 봉투 겉면에 적힌 '윤철'이라는 익숙한 흘림체 글씨를 보며,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졌습니다.
'이 녀석, 4년 전 자기가 힘들었을 때를 생각해서 분명 제 형편껏 성의를 담았겠지. 내가 300을 줬으니,
아무리 못해도 그 절반이나 그에 상응하는 마음을 넣었을 거야.'
태호 씨는 떨리는 손으로 풀로 단단히 붙여진 봉투의 입구를 조심스럽게 뜯어냈습니다.
그리고 봉투 안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어 빳빳한 지폐를 끄집어내었습니다.
하지만 봉투에서 미끄러져 나온 지폐를 확인한 순간,
태호 씨의 숨은 턱 끝에서 얼어붙어 버렸고, 두 눈동자는 거짓말처럼 멈추어 섰으며,
온몸의 신경이 마비되는 듯한 처절한 충격에 말문이 완전히 막혀버리고 말았습니다.
탁자 위에 내려놓아진 지폐.
수표도 아니었습니다.
두툼한 오만 원권 묶음도 아니었습니다.
그 안에서 차갑게 모습을 드러낸 것은, 시중에서 흔히 굴러다니는 구겨진 ‘오만 원권 지폐 딱 한 장’이었습니다.
오만 원. 정확히 숫자 ‘50,000원’.
태호 씨는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봉투 안쪽에 다른 수표나 지폐가 끼어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빈 봉투를 거꾸로 털어보고,
불빛에 비추어보고, 찢어발기듯 안쪽을 샅샅이 뒤졌습니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단 한 장의 편지도, 메모도, 다른 지폐도 없었습니다.
오직 덜렁 오만 원짜리 한 장만이 휑한 식탁 위에서 형광등 불빛을 받아 차갑게 번쩍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여보... 이게... 이게 뭐예요...?"
옆에서 장부를 정리하던 아내가 굳어버린 태호 씨의 손과 식탁 위의 오만 원권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사색이 되어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이게... 윤철이라는 그 친구 봉투 맞아요?
당신 4년 전에 그 집 아버님 돌아가셨을 때 지게차 수리도 못 하고 마이너스 통장 털어서 300만 원이나 해줬던 그 친구요...?"
태호 씨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입술이 파르르 떨려왔고, 턱관절이 딱딱 부딪히며 온몸이 경련하듯 떨려왔습니다.
머릿속이 하얗게 점멸하더니,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차디찬 얼음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오만 원...?’
‘내가 제 아비 장례식장 안치실 비용이 없어 피눈물을 흘릴 때, 내 피 같은 300만 원을 쥐여주며 갚지도 말라 했던 그 녀석이...
수십억 대 인테리어 회사 대표가 되어 롤렉스를 차고 외제차를 굴리는 그 놈이...
내 어머니 장례식에 와서 내민 돈이...
고작 오만 원...?’
그 끔찍하고 처절한 배신의 실체가 태호 씨의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발겼습니다.
동네 지나가던 면식범도, 이름 모를 거래처 말단 직원도 부의금으로 십만 원을 넣고 가는 세상이었습니다.
하물며 삼십 년을 단짝이라 부르짖었고, 제 아비 장례를 치러준 은인이라며 발밑에 엎드려 울던 사내가
제 어머니를 떠나보낸 벗의 영정 앞에 던져두고 간 돈이 지나가는 행인에게 적선하듯 던진 오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이었던 것입니다.
차라리 돈이 없어 빈 봉투를 냈다면 이토록 피눈물이 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태호야, 내가 사업이 다시 꼬여서 주머니가 비었다. 미안하다"며 손을 잡고 울었다면,
태호 씨는 소주 한 병을 따서 친구의 잔을 채워주며 등을 두드려주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녀석은 50평대 아파트에 살며, 외제차를 몰고, 골프 모임에 가야 한다며 십 분 만에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면서도
장부에 제 회사 이름을 똑바로 적으라 으스대며 부의함에는 오만 원짜리 한 장을 던져 넣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인색함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가난하고 촌구석에서 기름밥이나 먹고 사는 친구의 처지를 향한 지독하고도 잔인한 '멸시'이자,
'너와 나의 급이 이제는 다르다'는 것을 조롱하듯 선언한 천박한 자의 차디찬 침 뱉기였습니다.
내가 4년 전 건넸던 그 300만 원의 피땀과 눈물은, 저 알량하고 비열한 인간의 눈에는 그저 '과거에 잠시 빌려 쓴 푼돈'에 불과했고,
이제 성공한 자신에게 태호 씨는 단돈 오만 원짜리 밥값 하나 던져주고 치워버리면 그만인 하찮고 거추장스러운 옛 인연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모멸감과 배신감에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엄습했습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갈비뼈 안쪽이 칼로 베이는 것처럼 아파왔습니다.
태호 씨는 거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두 손으로 마룻바닥을 쥐어뜯으며 소리 없는 오열을 토해냈습니다.
어머니의 영정 사진 앞에서 차마 다 쏟아내지 못했던 눈물이, 세상의 가장 비열한 배신 앞에서 피눈물이 되어 터져 나왔습니다.
당장이라도 전화를 걸어 "야 이 파렴치한 자식아! 네가 사람이냐!" 하고 고함을 지르고 싶었습니다.
서울로 쫓아 올라가 그 번쩍이는 회사 사무실 바닥에 저 오만 원짜리를 집어 던지며,
네 놈이 4년 전에 처먹은 내 피 같은 300만 원을 토해내라고 멱살을 잡고 흔들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바닥을 짚고 엎드려 한참을 통곡하던 태호 씨의 가슴속에서,
용암처럼 끓어오르던 분노는 어느 순간 차갑고 서늘한 얼음장 같은 ‘엄숙한 결단’으로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고함을 지르고 따져 물어보았자 무엇하겠습니까.
이미 염치를 잃어버리고 양심을 똥통에 처넣은 자에게 내 상처와 눈물을 보여주어 보았자,
돌아오는 것은 "바빠서 비서가 봉투를 잘못 넣었다"는 뻔뻔한 변명이거나,
도리어 "내가 먹고살 만해지니까 이제 와서 옛날 돈 바라고 유세 떠느냐"는 더러운 오물 같은 조롱뿐일 터였습니다.
호의를 베풀었을 때 그것을 갚을 줄 모르는 배은망덕한 인간에게 내 아까운 분노와 시간을 낭비하는 것조차
하늘에 계신 내 어머니의 거룩한 죽음을 욕되게 하는 짓이었습니다.
태호 씨는 옷소매로 눈물을 닦아냈습니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식탁 위에 놓인 그 구겨진 오만 원권 지폐를 집어 들었습니다.
그의 눈빛 속에서 방황과 슬픔의 흔적은 깨끗하게 지워져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는 생애 단 한 번도 품어본 적 없는 서슬 퍼렇고 단호한 '사내의 결기'가 시퍼렇게 살아 숨 쉬고 있었습니다.
태호 씨는 식탁 서랍에서 하얀 봉투 하나를 새로 꺼냈습니다.
그리고 정서(正書)로, 단 한 치의 떨림도 없이 봉투 겉면에 글자를 적어 내려갔습니다.
[받는 사람: (주)예손디자인 대표 윤철] [보낸 사람: 강태호]
태호 씨는 윤철이가 냈던 그 구겨진 오만 원짜리 지폐를 봉투 속에 그대로 밀어 넣었습니다.
그리고 지갑을 열어, 자신이 일터에서 땀 흘려 번 빳빳한 오만 원권 지폐 한 장을 더 꺼내었습니다.
정확히 십만 원을 채워 넣었습니다.
그것은 동냥치에게 던지는 적선이자, 삼십 년 썩은 우정을 쓰레기통에 처넣는 가장 명징한 ‘결별의 부의금’이었습니다.
태호 씨는 편지지에 짧고 서늘한 문장 세 줄을 적어 봉투 안에 함께 동봉했습니다.
'윤철아. 네가 내 어머니 영정 앞에 던져두고 간 오만 원,
거기에 내 돈 오만 원을 더 보태어 정확히 십만 원을 등기로 되돌려 보낸다.
4년 전 네 아버지 장례식 때 내가 건넸던 300만 원은 내 벗의 눈물을 닦아주려 했던 내 청춘의 순수한 피땀이었으나,
오늘 네가 내게 건넨 오만 원은 네 놈의 천박한 영혼과 썩어빠진 염치의 알량한 몸값이었더구나.
내가 그 돈 삼백만 원으로 너라는 파렴치한 괴물의 밑천을 완전히 확인하고 내 남은 인생에서
네 놈을 깨끗하게 도려낼 수 있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값진 인생의 정리가 어디 있겠느냐.
네 놈이 쥔 그 번쩍이는 돈과 껍데기를 끌어안고 평생 그 메마른 탐욕의 지옥 속에서 배부르게 살아가거라.
내 살아생전, 그리고 내가 죽어서 저승에 가서도 너와 나의 인연은 영원히 끝이다.'
풀을 발라 봉투의 입구를 빈틈없이 봉인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태호 씨는 우체국으로 걸어가 그 봉투를 서울 윤철이의 회사 대표이사실 앞으로
‘배달 증명 익일특급’으로 발송했습니다.
우체국 문을 나서는 길, 늦가을의 차갑고 투명한 바람이 태호 씨의 뺨을 부드럽게 스쳐 지나갔습니다.
가슴속을 짓누르던 끔찍했던 모멸감과 배신감의 응어리는 찬 바람 속으로 연기처럼 흩어져 사라지고,
세상 그 어떤 순간보다 맑고 서늘한 평온이 온몸 구석구석을 채워왔습니다.
300만 원이라는 돈은 사라졌습니다.
삼십 년을 믿어온 친구라는 허상도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하지만 태호 씨는 결코 패배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장례식 날, 하늘은 태호 씨에게 내 남은 황혼의 삶을 갉아먹을 뻔했던 가장 거대하고
썩은 종기를 단칼에 도려내어 버릴 수 있는 거룩한 기회를 베풀어준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가치와 의리란 내가 얼마나 많은 돈을 가졌느냐로 증명되는 것이 아닙니다.
남의 슬픔을 제 이익의 저울에 올려놓고 재단하는 자는 아무리 수억 원의 금을 휘감고 있어도
한낱 악취 나는 걸인에 불과하며, 비록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입고 있을지라도 벗의 눈물 앞에서
제 살점을 내어줄 줄 아는 자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부유하고 고결한 영혼을 가진 진짜 사내입니다.
공구함을 챙겨 들고 낡은 트럭의 시동을 걸었습니다.
덜컹거리는 엔진 소리가 오늘따라 맑고 힘차게 울려 퍼졌습니다.
차창 너머로 쏟아져 내리는 눈부신 가을 햇살을 바라보며,
쉰아홉의 강태호 씨는 거짓된 인연의 찌꺼기를 모두 털어내고 홀로 우뚝 선 자의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고 당당한 미소를 허공을 향해 엷게 띄워 올리고 있었습니다.

첫댓글 경우가 없는 행동이네요.
받은 만큼은 돌려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