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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역
한 설 야
1
가을도 이미 깊었다.
엷은 구름 떼가 금시 하늘을 덮었다가 자발없이¹ 고작 또 헤어지곤 하던 수다스러운 첫가을이 지나가고 요즈막은 줄창 내리 맑은 날씨가 계속된다.
홍수 뒤 거친 산지대(山地帶)로서는 분에 넘치는 좋은 일기다.
그러나 서릿발(霜氣〕을 머금은 아침 바람은 소리 없이 대지를 스치고 사람의 뼈짬까지를 아삭바삭 핥는 것 같다.
방축 부역을 나가던 기술은 끼었던 팔짱을 죄어 올리며 오싹 몸을 떨었다. 그러며 그는 파란 하늘을 치어다보았다. 그리고 황량한 땅으로 다시 시선을 떨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거운 시름이 납덩이같이 지그시 대지를 내려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자기의 몸이 너무도 외름고 조그만 것을 문득 깨달았다. 겹겹으로 내려 실리는 베차맞은 분위기를 헐치기²에는 너무도 작은 자기의 몸이었다.
작년 여름까지도 이렇게 고독한 자기가 아니었고 이다지 줄난³ 자기가 아니었다. 의지할 곳도 있었고 무슨 일이든 겨뤄볼 용기도 있었다. 그러나 작년 여름에는 때 아닌 회리바람⁴에 곁을 모조리 잃어버리고 금년 여름에는 홍수 때문에 살길을 빼앗기고 말았다. 마음에 받은 상처가 낫기 전에 금년에는 주림이 그 육신을 엄습하여 온 것이다. 하늘을 쳐다보아도 땅을 굽어보아도 호소할 곳이 없는 것 같았다. 사람의 꼬부라지가 아직 남아 있다고는 하나 그것은 몸뚱어리가 쪼그라진 늙은이 아니면 하잘것없이 마음이 허거운⁵ 못난이들뿐이다. 실로 이런 한 푼에 석 드럼짜리⁶만 남아 있는 것이다. 자기 자신도 그 종류에 속하는 한 사람이 아닌가?
그는 또 한 번 파란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버드나무 흐느러진 옛날의 그 마을의 평화한 풍경이 새삼스레 눈에 선해진다. 목동의 호들기 소리에 푸르러가던 벌판 천리에 휘황한 달빛 아래에 끊일 줄을 모르던 다듬이 소리, 땅을 다듬는 격양가와 누런 곡식단을 실은 수레 위의 멍에가(농부들이 소를 몰며 부르는 노래), 그것은 꿈속 같은 열 살 전의 남은 기억이다. 어찌해서 그때는 그렇게 아름답고 평화했던지……?
그러나 어떤 의미로는 그보다 사뭇 깊게 그의 맘을 물들인 기억은 최근 몇 해 사이의 생활이었다. 생전에 처음 듣는 연설이니 강좌니 하는 것도 맛보았고 얄팍하나마 안통이 단단한 책자들도 얻어보았다. 그리고 추수니 타장(打場)이니 하는 때에 난생처음으로 삯전도 쥐어보고 보통학교나 다넜던 덕으로 야학도 가르쳐보았다. 가난을 뚫고 나갈 용기도 거기서 얻었다. 그리고 또 의중(意中)에 그리는 금순이는 하루도 빼지 않고 자기가 가르치는 야학으로 꼭꼭 와주지 않았는가. 금순이는 말할 수 없이 예쁜 계집애였다.
금순의 속에서 피어나는 붉은 삯⁷은 검푸른 생활고를 물리치고도 남음이 있었다. 정구지역⁸에 모지라진 그의 손 밑에서는 윤기 있는 흰빛이 내비치고 눈바람에 튼 볼편에서는 불그스레 으늑한⁹ 꽃이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렇게 피어날 무렵에 그만 된서리가 쳤다. 그는 단 하나인 오빠를 작년 여름에 태양이 없는 그곳으로 보내고 말았다. 친근한 동무요 더욱이 금순이의 오빠인 그를 잃은 것은 기술에게도 물론 큰 타격이었으나 그러나 금순이에게는 더한층 뼈저린 한이 되었다. 요전 어느 땐가 오래간만에 금순이를 보았을 때에는 그의 손톱이 여지없이 닳아 떨어졌었다. 그리고 산 나무를 하다가 그랬는지 손등을 몹시 긁혀서 피더데기가 엉키어 있었다. 예쁘기는 여전히 예뻤으나 그러나 그의 몸속에서는 기어드는 가난과 피어나려는 젊은 혈기가 뿔이 부러지도록 악착스레 서로 싸우고 있는 것만 같아서 그것이 불시에 기술이를 서럽게 하였다. 하마터면 그는 울 뻔하였다.
“흐흐흐……”
그래서 기술이는 위정 이렇게 선웃음을 쳤다. 그러나 그 부자연한 웃음 밑에서 무엇이 지그시 늘리는 것을 느끼며 그는,
“그래 이지간은 요새는 아바지가 망댕이(몽등이)로 땅을 갈기지 않소?”
하고 또 한 번 위정 웃어 뵈었다. 그러자 금순이도,
“아니요.”
하고 서글픈 웃음을 뵈어주었다. 금순의 아버지는 자기 아들 동무들이 굶건 헐벗건 어쨌든 태양 아래에서 제 발로 걸어다니는 것을 보면 아들 생각에 화가 버럭 나서 지게 받침대로 땅을 갈기고 한번 시원히 한숨을 톺고라야 배기는 것이었다.
기술은 이런 생각을 하며 그들의 농장으로 방축 부역을 나갔다.
*
부역 나온 작인들은 아직 몇 사람 되지 않았다. 그렇게 형지 없이 터져버렸던 방축도 인제 거의 옛 모양으로 돌아왔다.
“아아, 그 무섭던 방천(방축)이…….”
그는 한숨을 한번 크게 쉬었다. 묵직한 찬짐을 부려놓은 것 같은 가뿐한 기분이 삽시에 왔다. 역시 무슨 일이든지 하면 안 될 것이 없을 것 같았다.
여름 홍수로 말미암아 스물여섯 군데나 갈라 먹힌 방축을, 무짠지같이 절은 작인들이 처음으로 개미가 재〔城〕 쌓듯이 엉기적덩기적 흙을 파 메울 그 당초에는 쑥백년을 지나도 본래 제대로는 복구될 성싶지 않았다. 터지기가 보면 볼수록 진저리나도록 엄청나게 실지보다 곱백 갑절 크게 눈에 비쳐오는 것이었다.
거의 사람의 힘으로는 어선도 대지 못할 것같이 뵈었다. 그런데 또 인제는 소작도 다 해먹었구나 하는 가냘픈 낙망이 들어서 처음은 일이 통 손에 닿지 않았다.
그러나 일이란 하기만 하면 언제든가 바닥이 나고야 마는 것이었다. 그때그때에 있어서는 하루가 삼추와 같이 지리한 생각이 들던 일도 지금은 대수롭지 않았던 듯이 생각되었다. 지나간 고역(苦役)의 날이 둔감한 그들의 기억 가운데서 마치 눈 껌벅 사이 같이 지나가고 어느덧 부역은 거의 필하여갔다.
‘이만하면 내년 농사는 걱정 없지!’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좀더 튼튼해졌다.
지주한테 공사비나 좀 달래보고 싶은 뱃심도 났다. 그리고 내년 가을까지 먹고 쓰고 농사짓기에는 부족이 없도록 마련해줄 것이라고 그들은 믿었다. 그러나 생각하면 줏대 없는 것은 자기 아버지와 같은 노토리 (늙은이)들이다.
개중에도 자기 아버지처럼 허거운 사람은 또 없을 것이다. 모든 일을 하늘에 돌리고 사람은 다만 거기에 순종하여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육십 평생을 곱다랗게 인종(忍從)의 미덕을 졸업 하여온 사람이다. 김 갑산(농장 임자) 이 터지기를 건부역¹⁰으로 해대려 할 때에 선참으로,
“그러니 어찌겠소. 명(命)이거니 했지 별수 있소.”
하고 굽석굽석 나선 사람은 그의 아버지였다. 그러자 다른 노토리들도 역시 같은 생각으로 거기에 따라서 마침내 작년 여름 그 난리 이후 처음으로 없어졌던 건부역이 다시 실시되었던 것이다.
젊은 축들은 처음 거기에 반대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되자 노토리들은 또,
“그저 지 빼 (제 뼈) 공신(功臣)이지.”
하고 꺼벅꺼벅 저희들이 먼저 이 난공사를 메고 나섰다. 그래서 젊은 축들도 하는 수 없이 결국 나서게 되었다. 첫째 골삼년을 해도 다하지 못할 노토리들의 일손을 보기가 화증이 나서 떠다밀듯이 하고 나서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고서도 이따금 화가 나면 기술이들은 노토리들에게 해대었다. 말썽이나 걸어 보았으면 하다못해 신발값, 담배용이라도 줄는지 모르는 일이요 그렇지 않으면 점심이라도 먹여주든가 혹시 점심 쌀을 꿔주든가 할 것인데 무엇이 데바빠서¹¹ 자발없이 망령이냐고 소패들이 욱다지르면 노토리들은 그저,
“그러나 별수 있나. 누구는 하구 싶어 하겠나…… 목숨이 원수지.”
하기도 하고 혹은,
“내년은 곱절이 나네, 그저 두고 보랑이. 그게 그 속에 있을 거니…… 그 무서운 벼를 그대로 처박아 썩였으니 알조가 있지.”
하고 딴전을 허비는 배포 유한 웃음을 웃는 사람도 있었다.
“저리 비켜요, 비켜……꾼 방구를 대맡으니 방구다틈을 하구 있는가.”
기술은 어느 때 노토리들이 터지기 물가에 모여 서서 이러쿵저러쿵 뜬소리를 하고 있는 뒤에서 흙을 담은 지게를 탁 쏟아 젖히며 외쳤다. 부리어진 흙이 터지기 물에 출렁 떨어지며 흙물이 뛰어올랐다. 노토리들은 그제야 이마와 입과 뺨에 뛰어오른 흙물을 혹은 씻으며 혹은 튀튀 불며 물러들 섰다. 그 바람에 공교히 기술의 아버지가 짓밀려서 엎어질 듯이 비켜서는 것을 기술은 한참 멍히 바라보고 있었다. 참 순간에는 ‘거 잘했다’ 하는 생각이 났다. 그러나 늙은 어머니가 지어준 겹옷에 뛰어오른 흙물을 털며 자기가 삼아준 짚세기가 발에서 벗어져서 나뒹구는 것을 소중히 털어 신는 것을 볼 때에 기술은 갑자기 맥이 풀려서 그만 돌아서버렸다.
그러다가도 문득문득 밸머리가 치밀곤 하였다. 아버지의 소갈머리 없는 꼴을 보다가 못해서 젠벽¹²에 마른침을 탁 뱉어주고 집을 튀어나오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러고 나와보아도 맘은 시원치 않았다. 그래서 돌멩이고 개새끼고 뭐고 뵈는 대로 함부로 막 차주고 싶은 충동까지 났다. 지난여름 홍수 통에 다친 허리가 불시에 뜨끔하고 결린다든가 또는 요전에 소짚새 (소짚을 써는 일)를 하다가 다친 손을 무심코 보게 된다든가 하는 때면 그 아픔보다도 아버지에게 대한 악심이 더 크게 불끈 치미는 것이었다.
그러며 ‘방아허리를 넘어가면 어버이가 죽는다’ 하는 속담을 생각하고, 또 어렸을 때에 몇 번인가 ‘이 간나 늙은 기 죽어봐라’ 하고 방아허리를 넘기까지 하던 일을 생각하며 금시 방앗간으로 뛰어들어가는 자기의 모양을 방불히 머리에 그리기도 하였다.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는 유순하고 텁 텁 하면서도 아들에게는 몹시 강박한 아버지였다. 기술의 동생이 죽은 뒤로는 외아들인 그를 사랑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으나 무심히 구는 때에는 도무지 사정모가 없는 아버지였다. 누그러진 듯하면서도 멋없이 펙 (신경질) 하기도 하였다.
보통학교로 다닐 때에 먹 한 자루 사고 남은 돈 2전을 가지고 눈깔사탕 열두 개(다섯 개는 신문지에 싸서 금순이를 주었다)를 사먹고 혼쭐이 난 일이 있다.
“이 패가재 간나 새끼…… 그기 무슨 돈인 줄 아니. 지신제 지낼 소지(燒紙) 사자던 돈이다.”
하고 아버지는 비슬비슬 피해 나가는 그에게 낫자루를 내던진 일이 있다. 지금 생각하니 그것이 미운 것은 차치하고 여편네들보다도 더 미신꾸러기인 것이 새삼스레 더 미워났다.
그리고 또 하나 이런 기억도 남아 있었다. 그것은 보통학교를 마치고 사사키 교장네 양잠소에 다닐 때 일이다. 그때는 워낙 나이 먹어서 늦게 학교에 입학하던 때이지만 개중에도 그는 더 늦게 학교에 든 관계로 졸업하였을 때에는 더부룩한 숫총각이었다. 그런데 더욱 그때는 언제 스무 살이 될까 언제 어른이 될까 하고 기다리던 때라 하루는 양잠소에서 급료를 받아가지고 그길로 T읍에 가서 난생처음으로 이발소에 들어가 상고머리를 깎았다. 그리고 일부러 좀 어둑어둑해서 집에 돌아왔는데 아버지는 어유 등불에 희미하게 비친 그의 머리를 바라보더니만 대뜸 이발소에 간 줄을 알았던지,
“이 종재야, 거 대가리 복판에 개가 찌를 갈겼디. 어째서 꼭대기를 파냈니?”
하고 성을 내었다. 그러고는 이제 양잠소에서 받은 돈을 모조리 훑어갔다.
“이기 어째 요것뿐이냐? 썩 더 내놔라.”
하고 아버지는 연방 졸라맸다. 기술은 어느 동무한테서 머리를 깎았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사실 그날은 머리 깎은 외에도 15전을 주고 비누 한 개를 사서 금순이를 준 일도 있고 해서 고박한 그는 그것이 들켜날까 봐 속으로 몹시 황황해났던¹³ 기억이 아직도 역력히 남아 있었다.
그런 것을 모두 생각하면 아무리 아버지의 일이라 하더라도 절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 방축 부역을 하게 되면서부터 더욱 아버지가 미워나는 일이 많았다. 홍수 뒤에 이것 보아라 하듯이 날씨가 밝게 갠 것을 쳐다보며 “지금 개면 무얼 하는가? 빌어먹을 놈의 하늘” 하고 아버지를 미워하는 나마에 하늘까지 껴서 욕지거리를 퍼붓기도 하였다.
2
역부는 지억 진고개를 넘어서 착착 진행하였다. 까마아득하게 내다보이던 아틈찬 공사도 어느새 절반을 넘겨놓고, 인제 준공이 가까워오고 보니 한결 힘에 부치지 않는 것 같았다. 아버지에 대한 감정도 그 도수가 적잖이 떠졌다. 그리고 이따만큼씩 김 갑산에게 어떻게 걸고 들어볼까 하는 엉큼한 뱃심이 얼마큼 여유 생긴 그들의 가슴에 오고 가는 것이었다. 어느 모로든지 무슨 갚음이 있도록 서둘러보리라고 하였다. 물론 잘 들어주지 않을 것은 뻔한 일이나 어쨌든 말은 걸어보아야 할 것이라고 내심으로 다짐을 두었다.
그래서 젊은 축들은 지게를 지고 흙을 나르는 사이에 여기 대한 얘기들을 바꾸기도 하였다. 그랬대야 눈앞이 어두워지고 상론할 결¹⁴이 없어진 그들이고 보매 그 얘기는 별로 질서나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삯을 좀 달래보자든가 용량을 좀 넉넉히 꿔오자든가 하는 정도를 넘지 못하였다. 안 들어주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까지는 말해본 일이 없으나 어쨌든 그만치라도 서로 막힌 속을 털어 붙이고 보니 말 아니 낸 때보다는 거뿐한 기분이 생겼다. 그러다가 나중은 부역이 필하면 축하 겸 한번 모두들 우 몰려가서 그 말을 걸어보자고까지 의논이 되었다.
작인들은 굽석굽석 일들을 잘 해대었다.
노토리들은 부삽을 줘고 흙텀에서 흙을 파서 젊은 축들의 지게에 담아주었다. 흙텀을 파서 물이 날 지경이면 다른 텀으로 옮겨가곤 하였다. 그래서 방축 바로 옆은 거의 돌아가며 웅덩이가 되도록 파내었다. 저 건너편 산 여부대기¹⁵에서는 뗏장〔芝〕을 떠다가 새로 흙을 다져 넣은 곳에 덮기도 하였다.
젊은 사람들이 흙과 뗏장을 지게로 나르는 동안, 노토리들은 허리춤에 꽂았던 곰방대를 내어가지고 뽕잎 가루가 절반 이상이 섞인 담배를 담하가지고는 뿌지직뿌지직 댓진 끓는 소리를 내어가며 담배들을 뻑뻑 피우기도 하고 악마디¹⁶진 주먹으로 잔허리를 툭툭 두드릴 만한 여유는 있었다. 그리고 범 영감의 날파람 있던 젊은 시절 얘기도 청하곤 하였다.
범 영감은 인제 비록 늙었으나 아직도 꼬장떡같이 꼬장꼬장한 조그만 다부진 늙은이다. 뱀 〔蛇〕 수염같이 빳빳한 그의 성긴 수염은 아마도 옛날의 파랑파랑한 기질을 방불케 하였다. 소를 부려도 받는 소만 부리고 개를 잡아먹어도 닫는 개만 때려 먹었다. 그리고 어느 해엔가 이곳서 50리 되는 H감영에 갔었는데 때마침 민요가 일어나서 성문을 닫아걸고 야단법석 이른바 도리깨 난리가 난 판에도 그는 사람들이 범벅덩이가 되어가지고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는 그 머리 위로 허궁¹⁷ 솟아서 사람들의 꼭대기를 달려 빠져나왔다는 이야기를 다른 노토리들은 벌써 몇 번 들었건만 또다시 듣고는 재미있다고 웃어들 대었다. 그런 중에도 평생 홀아비로 지내는 그의 오입하던 얘기는 듣는 때마다 노토리들의 허리를 잡는 것이었다. 그의 어투가 독특한 맛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영감, 그래 중 오입하던 이얘기 한번 하우다.”
한 늙은이가 이렇게 말하자 모두 그리 해롭지 않다는 듯이 입들을 씨무룩하고 그 얘기 나오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범 영감이,
“누가 중 첸신 (맛보이는 것)을 시켜줬습데?”
하고 시침을 멘다. 그러자 곁에 있던 늙은이들이 제가끔 제멋대로 범 영감의 흉내를 내어가며 그 얘기를 펴놓았다.
“그게 바루 기미년 이듬해였다. 기미년 대창¹⁸ 뒤라 살아갈 수 없는 아낙네들이 중이 돼가지고 동냥을 다니는 때야 바루…… 하하하…… 한 여중이 드놀아드니까 저 두상(늙은이) 집으로 들어갔단 말야…… 하하하……”
“그래서…….”
아직 그 얘기를 듣지 못한 한 늙은이가(그는 불과 몇 해 전에 이 마을로 이유 온 사람이다) 구미 있이 그렇게 묻자 말하던 영감쟁이는 더욱 신이 나서,
“들기를 잘못 들었지…… 아따 사흘 굶은 범이 원님을 가리겠음…… 한데 저 영감이 엉쿰하단 말야. 마츰 신을 삼고 있다가 밖에서 여편네 소리가 나자, 야 이거 무슨 떡이냐 하고 이불을 쓰고 드러누웠단 말야…….”
“옳지, 김칫국부터 마시구…… 하하하……”
“앙이지(아니지)…… 이불을 쓰구 드러누워서는 끙끙 앓음 소리를 내는데 여승이 마당문을 비죽 열고 동냥을 청하지 앵겠소(않았겠소). 한즉 저놈의 승물(흉물)의 말이…… 나는 모진 병이 들어서 꼼짝 못하니 어서 뒷고방에 들어가서 쌀을 떠가우. 그래서 불공 덕으로 내 병을 하루바삐 낫게 해주우다……하고 연신 죽어 넘어가는 소리를 내니까 여승은 맘 턱 놓고 뒷고방으로 쌀뜨러 들어갔단 말이오…… 그리자 저 두상이 그만 앓음 소리고 뭐고 네 갈 데로 가라 하고 비호같이 뒷방으로 뛰어들며 예 들었구나 하고 벼락같이 소리를 지르는 통에 여승이 그만 덴겁을 집어먹고 히뜩 나자빠졌단 말요…… 하하하…….”
“하하하… …”
“으흐으흐……캑·……어규 허리야.”
노토리들이 이렇게 맥없는 웃음을 웃고 있을 때에 기술이들 젊은 패가 흙텀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늙은이들이 담아주는 흙을 지고 4, 5인이 일렬로 서서 방축 쪽으로 결어갔다. 방축 밑 흙 파낸 웅덩이에 다다라서 그들은 내리막을 잔달음질하여 그 힘으로 방축을 올려 달렸다. 그까지가 제일 힘에 부치는 것이나 그담에 방축에만 올라서면 좀 완완해서 뜬걸음으로 잡담도 하고 때로는 전쟁이 나느니 쌀 시세가 무턱 올라가느니 하며 저편 터지기로 걸어갔다.
아직 오전 중이기 때문에 원기도 있었고 또 기분들도 비교적 밝은 편이었다. 오후와 달라서 높은 소리로 떠벌려도 웃어대도 또 방귀를 뀌어도 그다지 원기의 소모는 되지 않았다.
이 농장 북쪽―당초에 지저번〔沼地〕 이었던 곳은 여름 홍수 때에 맨 첨으로 이 방축의 운명을 터트린 곳인데 그만 착 첫 물살의 된탕을 맞아서 제일 깊게 패어나갔다. 그래서 엷은 터지기부터 메우고 이곳을 지금 마지막으로 옥수한 것이었다. 중년 남자들은 바지를 오금까지 걷어붙이고 아침부터 찬물 속에 들어서서 말뚝을 박아 걸창을 만들었다. 흙이 잘 걸려 있도록 하기 위하여서다.
이곳저곳의 흙텀에서 모아온 젊은 사나이들은 지게의 흙을 이곳에 가져다가 철썩철썩 비워버린다. 그러고는 빈 지게를 외어깨에 걸치든가 그렇지 않으면 두 어깨에 메고 한 손으로 지게를 떠받들어가며 땀난 잔등에 바람을 몰아넣곤 하였다.
그러다가 누가 담배 피우는 눈치만 얼씬하면 모두들 쉬파리 떼같이 우 몰려들어 너두나두라고 야단법석이었다. 그들은 모두 담배 기근에 들었을 뿐 아니라 그렇게 되면 한결 더 먹고 싶은 것이 인정이라 밥보다 담배가 더 먹고 싶었다. 배가 호랑이 배같이 홀쭉하게 졸아붙어도 담배만 한 대 먹으면 원기가 돈다고 그들은 말하였다. 징역을 가면 첫째 담배를 못 먹어서 죽겠다고 감옥살
이 얘기를 들은 어떤 젊은 사나이는 말하였다.
사음은 저편 수문 위에 서서 작인들에게 무엇을 지휘하고 있다가 또 휘둥그런 방축을 어슬렁어슬렁 이편으로 걸어왔다. 그는 온종일 돌아다니며 일하는 품을 감시하는 것이었다.
역부가 시작된 후 얼마 지나서 작인들의 희망도 있고 또 일을 속히 마치게 하기 위하여 지주는 작인들에게 점심을 먹도록 소미(만주속) 얼마씩을 돌려주었다. 사음은 그것을 자기가 주선한 덕이라고 내세웠으나 그러나 작인들이 인차 점심을 먹다가 말다가 하는 것을 보자 꿔준 쌀을 종작없이 처먹었느니 팔아먹었느니 하여 눈을 까뒤집고 욕지거리를 하더니 그만 그것조차 돌려주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작인들은 팔거나 처먹은 것은 아니었다. 이틀 동안 점심을 먹으면 하루치 식량이 공중¹⁹ 날아나고 따라서 그만치 목숨이 줄어드는 심이지만 만일 이틀 동안 그것을 먹지 않으면 하루치 용량이 남아서 그만치 연명이 된다는 타산으로 자연 점심을 먹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쌀 예수가 끊어지고 본즉 악색한 사음쐬에게도 또 그리고 괜히 제 속는 줄 모르고 점심을 굶은 빙충맞은 자기들 자신에게도 무척 밸머리가 나는 것이었다. 생겼을 때에 흠썩 먹어줄걸 공연히 아끼다가 되레 손을 보았구나 하는 후회도 났다.
“장진 놈은 외상이면 소두 잡아먹는다는데…….”
생각하면 자기들은 ‘장진 놈’보다 더. 우둔하고 배짱이 없는 것이었다. 점심때가 되고 보니 그런 생각이 더 절히 왔다.
참경선의 두번째의 북행이 땅바닥을 울리고 지나갔다. 벌써 점심때다. 허기가 배로부터 명치끝으로 쌀쌀 기어올랐다. 그들은 군침을 삼키며 바지띠를 바싹 졸라매었다.
그러나 공복의 절정이 차츰 몽롱한 의식 가운데 흐리어갔다. 그러고는 그저 전신만신에 맥이 탁 풀려서 지게를 등지고 아무 데나 털썩 주저앉기도 하고 또 흙을 나르다가 쓰러진 것처럼 시더더 방축에 쓰러지기도 하였다. 사음이 눈을 찌그리고 지나가면 그들도 마주 찌그리어주었다. 그래야 사음은 말을 하려다가도 미우나마 그대로 지나가는 것을 그들도 잘 알기 때문이다. 머리를 숙이면 숙일수록 누르고 싶은 것이 누르는 사람의 버릇인 것을 그들은 육신으로써 배웠다.
세번째 남행이 지나가고 인차 화물열차가 지나갔다. 인제 한 시간쯤 있다가 서울 가는 급행열차가 지나가면 그제²¹는 바로 긴역²²때다. 기차는 그들에게 있어서 틀림없는 ‘시계’ 인데, 오후가 되고 석양이 되는데 따라서 이 ‘시계’의 돌아감이 어쩐지 몹시 뜬 것같이 그들에게는 생각되었다.
인제는 아무도 별로 떠벌리는 사람이 없었다.
3
하루의 부역을 마치고 기술은 동(桐) 건너 남녘 마을로 갔다.
왼편으로 어떻게 결례가 되는 차손이네 집으로 구루마 기름을 얻으러 간 것이다. 그의 집 소가 얼마 전부터 한쪽 발을 살룩거리기에 굽을 들고 들여다보니까 까치벌레가 발뒤꿈치 짜개진 골을 상당히 파먹었기에 기술은 구루마 기름으로 지져주어야 되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의 동네에는 구루마 있는 집이 한 집도 없었다. 그래서 차손이네 집으로 갔던 것이다.
그는 깨어진 토기 조각에 기름을 조금 얻어가지고 오며 자기가 어려서 목병이 자심해서 늘 어머니가 참기름을 끓여가지고 목을 지져주던 일을 생각하였다. 어느 때엔가 한번은 어머니가 사기창(깨어진 사기그릇 조각이 창끝같이 꾜보족하게 된 놈)을 싸릿가지 끝에 단단히 매어가지고 잔뜩 부은 목(편도선)을 찔러 악혈을 빼고 기름으로 지진 일도 있다. 앙탈을 쓰는 자기의 입에 받침대를 물리고 악을 써가며 기어코 목을 째고 지지고 하던 내강한 어머니가 멋없이 울뚝 배리만 사나운 아버지보다 지금 생각하니 얼마나 고마운지 알 수 없었다. 또 그 강기가 구차한 실자기집 살림을 끌어매어오는 데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오늘 밤으로라도 솜뭉치에 끓은 구루마 기름을 묻혀가지고 소발의 까치벌레를 지져주리라고 생각하였다. 소가 시원해하는 것이 완연히 보이는 것 같았다. 아무리 갈 힘이 센 둥글황소라도 채찍 끝으로 뒷다리 샅을 살근살근 긁어주면 그 큰 몸을 내맡기고 차츰 꼬리를 쳐드는 것처럼 자기 집 소도 아픈 곳을 시원히 지져주면 얼마나 좋아할까? 그는 곱이 낀 검둥그런 눈으로 자기를 멍히 바라보는 소를 생각하였다. 하나, 둘, 셋, 넷…… 아버지, 어머니, 소, 자기…… 그는 이 넷이라는 숫자로써 자기 집의 전부를 연상하는 것이었다.
날은 어둑어둑해졌다. 어둠은 발밑으로 기어들었다. 서쪽 하늘은 아직 해 넘어간 뒤의 희멀끔한 자취가 남아 있었다.
남녘 마을 뒷등성이로부터 잔솔밭이 검은 띠같이 남으로 뻗어있다. 그 솔밭이 끝나는 곳부터 창리의 살진 평전이 있다. 그러나 그 등성이 북쪽은 자름자름한²³ 구릉에 사로잡힌 그다지 넓지 못한 척 박한 신개간지들뿐이다.
그중에서는 기술이들이 부치는 김 갑산의 동이 제일 크고 또 오래다.
기술은 조그만 도랑 옆을 걸어왔다. 도랑은 물이 죄다 말라버렸다. 그는 물이 마른 시커먼 도랑판을 멍히 내려다보았다. 여름 홍수 때에 이 도랑으로 흙물이 콸콸 쏟아져오던 일이 다시금 생각났다. 그러다가는 물이 도랑을 넘어서 그 곁의 밭으로 올려밀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물은 곡식밭을 이제 갈라먹기 시작하였다.
조와 수수때기가 하이얀 뿌리를 드러내놓고 연신 나자빠졌다. 기술은 아직도 그 기억이 역력하였다. 그 곡식 뿌리는 자연의 무서운 채찍 아래에 벌벌 떨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그 무거운 기억을 털어버리듯이 숨을 후 내쉬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역시 밝은 하늘이나 달은 없었다. 별들이 차츰 희미한 빛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날은 낮보다 한결 차졌다. 이따금 어디서 일어나는지 알 수 없는 싸늘한 바람이 불시에 몸을 휘감아치곤 하였다. 추운 겨울이 성큼성큼 달려오는 것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았다.
사방은 죽은 듯 괴괴하다. 땅도 도랑도 마른 풀과 잔디도 그리고 철도 둑도, 집들도 모두 묵묵한 가운데 잠겨 있다.
기술은 도랑둑으로부터 철도 둑 옆으로 통하는 수릿길 (큰길)로 나섰다. 철도 둑 북쪽으로 늘어선 전봇줄의 가늘게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고는 아무 소리도 없었는데 철도 다리 밑을 지날 때에 별안간 무엇이 푸두둑하여 나타났다. 그는 솜털이 오싹토록 놀랐다. 그러나 알고 보니 까친가 무엇이 다리에서 잠을 자려다가 놀라서 날아간 것이었다. 희미한 하늘로 날아가는 모양이 어슴푸레 보였다.
그러고 나서 조금 지난 후였다. 뒤에서 인기척이 나며 으흠 하고 건기침을 뱉는 소리가 낮게 들려왔다. 기술은 힐끈 돌아다보고 사람인 것을 안 다음 고개를 수깃하고²⁴ 그대로 걸어갔다.
뒤에서 오는 사람의 걸음은 기술이보다 좀 빨랐다. 어느새 그의 뒤에 가까이 와서 그를 지나쳤다. 지나치며 그는 힐끗 기술이 편으로 눈을 주었다. 그러고는 얼씬 고개를 저편으로 돌렸다가 인차 다시 기술이 편으로 눈을 주어내,
“어, 기술이 앙인가?”
하고 부른다. 그 소리에는 오래간만에 만나는 놀람과 반가움은 별로 없었으나 퍽 무관하게 들렸다.
“어 ―”
기술이는 삼시에 어떻게 대답할지를 모르듯이 이렇게 외마디를 내다가 인차,
“어, 문근인가?”
하고 자기도 힘써 버젓이 말하였다.
문근이와는 보통학교 동창일 뿐 아니라 어렸을 적부터의 동무다. 동리는 서로 달랐지만 풀 깊은 곳으로 소 먹이러 가는 때마다 만나는 동무였다. 그리고 보통학교 다닐 때에 T읍 바로 남쪽에 있는 중국 사람 채소밭에서 홍당무(붉은 무)와 우방(牛蒡)을 함께 뽑아 먹기도 하였다. 그 밭을 지나다가 문근이가 기술이를 탁 밀치면 기술이는 일부러 커다랗게 그 밭에 탁 쓰러지면 그 틈에 슬쩍 무를 뽑아가지고 달려 나와서는 문근이를 때려주듯이 쫓아갔었다. 그리고 청인이 안 보는 눈치를 보아가며 같이 노나 먹었다. 그리고 수수밭을 추며 감부지 (黑穗〕도 같이 뽑아 먹고 뽕밭에 들어 오디 (桑實〕도 함께 따 먹었다. 수수때기도 잘라서 빨아 먹고 ‘핫도리 상’ 네 과수도 올가미질을 해서 따 먹었다.
그러나 보통학교를 졸업한 이후로는 피차 자주 만날 기회가 없었다.
문근이는 보통학교를 마치고 이곳에서 50리 되는 H읍(지금은 H부가 되었다) 농업학교에 입학하고 기술이는 사사키 교장 선생의 양잠소(다른 사람의 명의로 경영하였지만) 에서 일을 보았다.
기술이는 그 봄부터 양잠소에 가서 잠박(蠶箔)²⁵을 냇가에 나가 씻고 ‘무시로’²⁶의 주어진 곳을 수선하고 그리고 ‘하키다데〔掃立〕’²⁷란 춘잠(春蠶)을 잠박에 펴서 ‘다나’²⁸에 올려놓았다. 한란계²⁹를 보아가며 방 안의 온도와 습도를 맞추어주고 계집애들이 따오는 애상(어린 뽕잎)을 넓죽한 상도(桑刀)로 기사미같이 보드랍게 썰어서 개미같이 검스레한 치잠(稚蠶) 위에 골고루 뿌려주었다. 뽕밭에도 나가보았다. 금순이도 뽕 따는 처녀의 한 사람이었다. 그 애들이 뽕잎을 따오면 기술이가 저울에 달아서 치부해 두곤 하였다. 한 관을 따는 데 3전씩인데 역대 같은 계집애라도 하루 열 관을 따는 사람은 없었다.
기술이는 늘 계집애들의 후론을 들었다. 금순이 뽕잎은 늘 관수(貫數)를 더 적어준다고……
계집애들은 금순이 뽕잎과 자기들이 딴 그것을 들어보았다. 들어보아야 자기들의 뽕잎이 더 무거운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막상 기술이한테 가서 저울에 달고 나중에 회계할 때에 보면 금순이 편이 더 많았다. 그래서 계집애들은 늘 푸념을 하였다.
기술이는 물론 학교로 더 다니고 싶었지만 양잠소 일도 차츰 재미가 났었다. 금순이가 있은 탓도 컸을 것이다. 그래서 첨은 상급학교로 들어간 문근이들을 몹시 부러워하였으나 양잠소 재미에 그런 공상을 어느 만치는 눌려갈 수가 있었다.
그러나 문근이도 학자 관계로 얼마 못 되어 이 농업학교를 퇴학하였다. 그러고는 H읍에서 무슨 직업을 구하다가 그도 뜻대로 안 되어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가세가 그렇게 곤궁하지 않은 관계로 오래 농토에 묻혀 있지 아니하고 다시 H읍엔가 어디로 가서 어느 가게의 사환이 되어가지고 한편 무슨 회니 동맹이니 하는 데에도 다닌다는 말을 기술은 풍편에 들었다. 그때는 기술이도 T조합 B동리 (그의 마을) 반에 관계한 때였다.
그는 거기서 지식도 새로 얻었다. 또 이것저것 새로 깨달은 점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생각하면 차라리 우스운 일이지만 어쨌든 자기라는 위인도 한다는 사람보다 별로 못한 것이 없거니 하는 일종의 자만심까지 생겼다. 그렇게 부럽던 사람들이 그다지 놀라울 것이 없는 것같이도 생각되었었다.
기술이는 작년 봄에 문근이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는 말과 또 그가 T군도범 청년강습회에 다닌다는 말을 풍편에 들었다. 그리고 그해 가을엔가 문근이가 그 강습회를 마치고 자기 면 면사무소 서기가 되었다는 말도 역시 풍문으로 알았으나 만나보기는 오늘이 첨이다.
기술은 오래간만에 그를 만났으나 별로 할 말이 없었다. 생래 첨으로 만나는 사람보다 더 야릇한 무엇이 둘 사이에 끼어 있는 듯해서 몹시 께름하였다. 이상히 군색하고 지루한 순간이었다.
기술은 사실 얼른 그와 갈라지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마을로 삐여지는³⁰ 길은 아직도 아스랗고 문근이는 먼저 훌쩍 지나쳐버리려는 동정도 없었다.
그러며 그는 인차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바로 H부 연대(聯隊) 추기 연습이 있어서 자기들도 괜히 바빴다는 말을……
“……연대장이랑 도청 내무부장이랑, 사회주사(기술은 첨 듣는 이름이었다) 랑 면소에 왔기에 그것을 인도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노라고 어떻게 바빴는지 아주 죽을 뻔했다. 발이 다 부르텄다.”
문근이는 이렇게 말하고 혼자 픽 웃는 상이었다. 그리고 그는 내일 또 돌아다닐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며 연대장에게서 탄 선사ㅡ—종이에 싼 무슨 벤또 같은 것을 기술에게 뵈었다. 기술은 얼핏 눈만 주었으나 어두워서 그저 무엇이 희멀끔하게만 보였을 뿐이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참, 사사키 선생도 오늘 같이 돌아다녔다. 이 지방 형편을 잘 아니까 내가 설명을 하는데 우리가 모르는 것을 다 알더라. 농사 이치도 어떻게 밝은지 농부를 찜쪄먹겠네.”
문근이는 이렇게 말하며 또 웃는 모양이었으나 기술은 여전히 잠자코 있었다. 그도 요즈막에 추기 연습이 있는 줄은 잘 알고 있었다. 바로 철도 선로 북쪽 사방 10여 리 지대가 군용지요 그중에는 옛날 자기네 마을 터도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구장이 그 얘기를 하며 그 사이에는 국기를 달아야 한다고 한 폭에 15전씩으로 온 동리에 골고루 노나준 일이 있었다. 그러고는 오늘 아침에 구장이 붓다새 돌아다니며 죄다 일깨워주고 기를 속히 달도록 말한 관계로 기술이도 물론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연대장의 일행이 동네동네를 돌아다녔다는데 자기네 동리 근방으로는 온 일이 없는 듯해서,
“이 허양(근방)에도 왔다 갔는가?”
하고 혼자말 비짓이³¹ 우물거렸다.
“앙이다. 온 이 허양에야 무서거 보자구 오겠니? 모범 부락 시찰인데……”
“엉……”
기술은 문근의 말을 듣고 보니 자기의 말이 엉터리없었던 것 같아서 혼자 고개를 끄덕끄덕하였다. 그러며 평생 말을 안 하다가도 어째 하게만 되면 온 생퉁 같은 실수를 하게끔 마련된 자기인 것같이도 생각되어서 그는 그만 입을 닫아물었다.
그래도 문근이는 이러니저러니 잔사설이 끊어질 사이 없었다.
“여기는 교장 선생 농장도 있고 해서 시찰하러 온다는 말도 있기는 있었으나 오늘은 시간도 모자라고 또 상기 동(堈)도 점 낮고 해서 그런지 교장 선생님도 그다지 안내하구 싶어 하는 눈치가 없더라.”
문근이는 이렇게 말하다가 별안간 생각난 듯이,
“그리구 나는 이 허양 동내는 뵈이구 싶지 않더라. 조선 사람 숭(흉)이나 났지…….”
하고 마치 이 지방의 면목을 위해서 안내하지 않았다는 듯이 서글픈 어조로 말한다. 그러나 인차 도로 말소리를 살리어가지고 모범 부락의 형편을 이야기하였다. 교장 선생은 농촌에서 자란 자기보다도 더 소상히 농촌 사정을 설명하더라는 말도 하였다. 선생이 지금 갱생 부락 모범 부락이 실행하고 있는 여러 가지 일을 낱낱이 헤아리는 데에는 입을 딱 벌리지 않을 수 없더라고도 말하였다. 선생은 그 부락 인민들의 추경 여행 (秋耕勵行), 축산여행 (양돈, 양계, 양견, 축독),³² 퇴비 증산(堆肥增産), 앙판정지 개량(秧板整地改良)과 양상보급(揚床普及), 정조식 (正條植) 등 농사 개량에 관한 것과 부업 (잠업, 임업, 수산, 농산 가공, 관태, 운반), 연료비림 조성 (燃料備林造成), 해조 채취 등 부대사업에 관한 것과 의례 준칙 실행, 색복 착용, 절주 절연, 허례 폐지, 미신 타파, 근검저축, 부녀자 근로(옥외 노동, 기업여행(機業勵行)), 온돌과 부엌 개량, 부채 근절 등 생활 개선에 관한 것과, 납세 기일 엄수, 자력갱생, 지방 진흥, 국기 게양 엄수, 경로사상 등 정신 작흥에 관한 것을 낱낱이 들어가며 설명하더란 말을 기다랗게 늘여대었다. 그리고 교장 선생은 전선에서 엄지손가락을 꼽는 모범 교장이라는 것과 이런 궁벽한 곳에 그런 선생이 있다는 것은 참말 이상한 일이라는 것을 입을 다시어가며 말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그는 문득 이런 말을 말끝에 꺼내었다.
“참, 그 선새미 내년 봄부터 김 갑산 동을 경영하게 된 거 니 아니?”
김 갑산 동이란 즉 지금 기술이들이 부치는 농장이다.
기술은 금시초문이었다. 그는 그 말을 들으면서도 그저 정신이 뗑 해서 무슨 소린지 잘 알 수 없는 말인 것 같았다. 그리고 원 그렇게 될 일이 있으랴 하는 믿어지지 않는 맘도 있었다.
“나도 자세는 모르겠다만 저 벌말 나카무라 상한테서 들으니까 꼭 그렇게 된다구 그러더라.”
문근은 또 이렇게 말하였다. 나카무라 상이란 사람은 교장 선생이 3년 전엔가 그 고향에서 데려다가 벌말에 있는 자기 토지를 소작시키는 다섯 사람 소작인 중의 한 사람이다.
그들은 좁은 땅에서 많은 추수를 거두고 있었다. 보통 1단보 3백 평에서 일곱 말까지 소출을 내니까 조선 농민의 약 3배를 거두는 셈이었다. 그들은 앞으로 1단보에서 여덟 말까지 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검은 판자를 둘러쌓은―—퍽 평화로워 보이는 집 속에서 살고 있었다. 그들의 아낙들은 손등만 가리는 장갑을 끼고 짜개 보선 신발로 들일을 하는 것이었다. 기술이도 몇 번 그 집 앞을 지나친 일이 있다. 뜨거운 물을 호―호 불며 마시는 것이 몹시 평화롭게 보였다.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가운데 무슨 범하기 어려운 은혜로운 공기가 늘 그들과 그들의 집과 심지어 그들의 발바리까지를 에워싸고 있는 것 같았다.
교장 선생이 농사 한창때에 학생들을 데리고 그들의 농텀에 가서 구경시킨다는 말도 기술은 일찍 들은 일이었다. 그리고 한번은 그들을 데리고 광포로 해수욕 가는 것을 멀찌감치서 바라본 일도 있다. 그러니까 그들이 교장 선생의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 것은 뻔한 일이다.
문근이는 말을 이어 여러 가지 사정을 또 이야기하였다.
김 갑산 동은 T회사 지점에 10년 연부로 저당에 들어갔는데 그 연부상환금(年賦償還金)이며 심지어 이자까지도 가리지 못해서 불원간 회사에든지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손으로 들어가고야 말리라는 것이 문근의 말이었다.
못해서 김 갑산은 빚을 가리려고 백방으로 주선하고 나중은 팔아서 다만 얼마라도 우수리를 쥐고 나앉으려고도 하였으나 살려는 사람은 기껏해야 잡혀먹은 돈 정도밖에 값을 치지 않아서 매매는 종내 성립되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 올해는 예외 없이 농형이 썩 좋아서 청초를 껴서 팔면 상당히 여재가 나리라고들 하였으나 마침 그 무렵에 대창이 나서 그만 그도 틀어졌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대로 내버려둘 수도 없고 또 아직도 팔아볼 욕심이 남아 있어서 김 갑산은 성화같이 작인들에 게 부역을 시킨 것이었다.
“땅은 묵힐수룩 좋은 것이다. 3년을 묵혔다가 지으면 부자 안 되는 사람이 없는 법이다. 어서 부역들 해라.”
김 갑산은 이렇게 졸라대었다. 그런데……
“아, 그러면 교장 선생님이 아주 샀는가?”
기술은 이렇게 물었다. 그러나 문근의 말을 들으면 아주 산 것은 아니었다.
선생은 처음 같은 학교 박 선생을 시켜서 저당금에 약간 꼬리나 달아서 사려고 하였으나 그 교섭이 시원치 않아서 그것을 단념하고 직접 T회사 지점에 넘겨 붙었다. 회사에서 그 처치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을 염탐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러한 이면 사정 때문인지는 몰라도 회사에서는 그 후 연거듭 김 갑산에게 연체금을 독촉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돈이 들어서지 않는 까닭으로 마침내 회사는 경매 수속을 취하여버렸다. 그 최후 기한이 발밑에 다가올 때까지 김 갑산은 백방으로 뛰어가며 매매 운동을 계속하였고 동시에 연체금 갚을 주선을 하였다. 그리고 일변 우치다라는 금융 브로커를 내띄워가지고 T회사에 연기 운동도 하고 또 그 사람이 이전 C은행에 오래 있었던 관계로 그 은행에 바꿔 맞추려고도 해보았다. 그래서 아낙네들의 패물 등속까지 톡톡 팔아서 교섭 비용이니 토지 감정료니 하는 것을 주변해보았으나 결국 모두 헛물켜기가 되고 말았다.
일방 저편에서는 유력한 사람들의 힘까지 빌려가지고 T회사에서 토지를 경락(競落)해 가진 후에 그것을 대부(貸付) 맡을 운동을 착착 진행하고 있었다. 자력갱생 농사 개량 게다가 심전 개발이라는 웃짐까지 쳐가지고 그 토지를 그러한 방면에 이용한다는 것이었다. 즉 자기 고향에서 모범 농민을 더 옮겨 오는 동시에 T교 졸업생 중에서 중견 분자를 가려서 그 토지를 소작시켜 다수확
(多收穫)과 온건 착실한 근로 정신을 아울러 심물 양면의 전형적 모범 농장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교섭은 이미 십상팔구는 성공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기술이도 문근의 말의 어느 정도까지는 이미 풍편에 들어온 바이나 정작 그렇게 넘어가게까지 되었다는 것은 전연 첨 듣는 말이었다.
“앙이 그러면 작인들은 어떻게 되능가?”
기술은 조바심이 나서 그렇게 물었으나 감당키 어려운 괴롬을 당한 때에 제 눈을 슬쩍 감는 것 같은 일종의 허약증이 돌아서,
“설마한들 작인들이야 일없겠지? 선새미, 글이나 쓸 줄 알었지 제 손으로 땅을 팔라구…….”
하고 혼자 벙긋이 웃었다.
“무스거…… 정신없는 소리…… 말은 듣는지 먹는지 모르겠다·…… 저어 고향에서 모범 농민을 데려오고, 또 졸업생을 쓴다지 앵니.”
문근은 기술의 어리석은 소리에 괜히 역증이 났다. ‘세상에 제일 미운 것은 미련한 인간이야’ 하는―—무지한 자기 아내에게 대한 답답스러운 생각까지 문근에게로 돌아갔다.
‘저러니까 돌음돌이”가 굼뜨고 한뉘르(평생) 고생만 하지…….’ 하는 미움 반 조소 반으로 그는 기술을 쳐다보았다.
“체…… 간나 거 두고 보지…… 어떻게 되는가…….”
기술은 침을 테― 뱉고 입을 다물어버렸다. 문근은 기술의 그 질둔한 자포자기에 까닭 없이 웃음이 났다.
“나두 농사나 하겠다. 3년만 지나면 번듯한 자작농이 된다더라. 돈이 장수지 볼 거 있니.”
문근이는 자기 마을로 뼈여져 들어가며 이렇게 말하였다. 그의 집도 별로도 큰 실수도 없이 작년에 와서 제물에 내려앉아서 소작농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4
얼굴보다도 더 큰 것같이 보이는 교장 선생의 커다란 ‘왕눈’이 기술의 눈에 선히 떠왔다. 그 눈에는 잔재주는 없으나 보다 무서운 술책과 재간이 품겨 있는 것 같았다. 굵다란 털이 난 최강한³⁴ 팔을 쓰담으며 껄껄 웃을 때에도 그렇지만 팔짱을 껴고 눈을 부릅뜨고 무엇을 생각할 때의 그 눈은 확실히 보통 사람의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기상(奇想)을 빚어 내는 것이었다.
다음으로 구의 농장이 머리에 그리어졌다. 그것은 바로 저 앞 평전에 거연히 가로누워 있었다. 그 널따란 검은 농장의 몸뚱어리에 번쩍거리는 무섭게 큰 ‘왕눈’이 박혀가지고 지금 바로 자기의 머리 위로 엉큼엉큼 기어오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일순에 자기의 몸을 그리고 자기들의 동을 두꺼비 파리 잡아먹듯이 냉큼 감아 넣을 것 같았다.
그는 지난여름의 홍수를 또 연상하였다. 이 골 저 골에서 콸콸 흘러내리는 물이 자기들의 동으로 합수쳐 흐르는 광경을 그리고 동이 쩍 갈라지어 물이 들이밀리는 광경을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 아래 동은 아무 일 없었다. 그리하여 그것은 어깨를 살구고³⁵ 연신 일어나는 것 같았다. 도깨비는 쳐다볼수록 키가 무척대고 하늘을 올려 버친다는 범 영감의 말과 같이 그놈의 동은 지금 자
꾸 치솟는 것같이 그의 머리에 비쳐왔다. 그래서는 그 곁에 있는 동들을 모조리 삼켜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먹히는 동을 지키는 개미같이 조그만 그림자들을 눈 깜박 사이에 들이그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 조그마한 흰 그림자들이 그 거멓고 무서운 괴물의 밑구멍으로부터 마치 그전에 양잠소에서 본 누에똥같이 까맣게 되어서 졸졸 굴러내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흐르는 가운데서 박 영감도 범 영감도 금순이도 그리고 자기의 낯짝도 그는 분명히 찾아볼 수 있었다.
그는 솜털까지 오싹 떨렸다.
무엇이 무엇인지 갈피를 출 수 없었다. 무엇 때문에 건부역을 하는 것인지 장차 어떻게 될 것인지, 지금 어디로 걸어가는 것인지, 그는 잠시 동안 분간해낼 수 없었다. 서릿발을 머금은 싸뉴한³⁶ 바람이 땅바닥을 스쳐 올라오며 목덜미를 싹 핥아주고 어디로 발 빠르게 가버리었다.
동구 앞 잎 떨어진 백양나무의 성긴 가지가 개겹게 하늘을 쓰는 것이 어렴풋이 보인다. 옛 동리의 나믓가지에는 까치들이 둥이를 틀더니만 이 마을에 옮아온 후 10년이 넘는 동안 아직도 날짐승이 깃들인 나무를 본 일이 없었다. 자기 집 마당 천장에다가 나뭇가지까지 꽂아주었으나 제비 한 마리 날아드는 일이 없었다. 어느 해 봄엔가 제비 한 마리가 입에다 마른 나뭇가지 하나를 물고 날아들어왔다 간 것을 본 다음에는 첨으로 이 동리에 집들을 얽어맬 때에 누구인가 이런 말을 한 일이 있다ㅡ—이 마을은 빈 턱석³⁷에 새가 앉았다가 날아가는 형국이라고…… 그것은 벌써 몇십 년 전에 어느 이름난 풍수가 이곳을 지나다가 한 말이라고도 누구는 말하였다. 지금 생각하니 그럴 법도 하였다. 붉은 언덕받이에 턱석 하나 펴놓은 데서 지나지 않는 마을이었다. 그나마 빈 턱석이라 새도 날개를 쉴 염이 나지 않을 것이다. 어찌 새뿐이랴, 믿던 동 하나만 꺼떡하면 안 날아나고 배길 장수가 누구랴?
기술은 진맥이 쑥 빠져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뒷간 모퉁이에 구루마 기름을 담은 깨진 그릇을 내려놓고 오줌을 누며 집 안을 들여다보았다. 소미 포대로 만든 뒤청문이 바람결에 출렁거리며 정주의 등불이 꺼질 듯이 훌긴다. 그 사이로 아버지와 어머니와 그리고 암소의 얼굴이 분명히 들여다보이는 것 같았다. 그들의 낯짝은 더 보지 않아도 뻔한 것이었다. 한결같이 거멓게 절어 있을 것이다. 그의 머리에는 또 문득 아까의 환상이 떠왔다. 거멓게 생긴 커다란―—말할 수 없이 커다란 괴물의 밑구멍 에서 누에똥이 떨어지는 그 환상이 또 떠왔다. 그 까만 일개미 속에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암소의 곱이 낀 눈이 분명히 섞이어 있었다. 그리고 얼굴보다 더 큰 것 같은 무섭게 큰 눈이 마치 별같이 하늘에 박여서 그 누에똥들을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오줌을 다 누고 나니 몸이 경풍 난 것처럼 몹시 떨렸다.
“저, 이거 꿇여야 하는데……”
기술은 기름잔을 들고 성큼 마당에 들어섰다.
“앙이 어째 이재(인제) 오니?……아 앙 지름으(기름을) 얻어 개애구 오는구나……징 약으(기녁을) 먹구 해라, 참 불이 없는데.”
어머니가 이렇게 말하자 아버지가 뒤를 받아가지고,
“네일 (내일) 아츰 불에 끓여서 해라. 나무가 없는데·…‥”
하고 말린다.
기술은 공연히 불끈 심화가 났다. 그래서 저녁도 먹기 전에 자기로 부엌에 불을 살리고 기름을 끓였다. 그리고 낡은 솜이 없어서 헌 헝겊을 막대 끝에 뭉쳐 매어가지고 소발을 지지기 시작하였다.
“워 워 (소 달래는 소리), 이 쇠…….”
기술은 문득 기름에 데어 죽는 까치벌레를 생각하였다. 그러며 더욱 소발을 꿰잡고 연해 지져주었다. 그는 제 몸속에서 억센 기운이 솟으며 그것이 가슴을 지나 팔을 더듬어 손아귀로 뻗쳐 오는 것을 깨달았다.
-끝-
2016년 7월 8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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