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18일 토요일 퇴원예정이다.
18년된 병자를 예수님께서 고쳐주신게 떠오른다.
(누가복음 13장) 10 <안식일에 꼬부라진 여자를 고치시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11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12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13 안수하시니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창세기 1장) 18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뉘게 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알고보니
창세기 1장
18절에 빛과 어둠을 나누셨다는 것을 알게 되다.
나는 주일날 아침에 입원하였었는데 퇴원하는 토요일은 구약시대로 보면 안식일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18년 동안 병으로 고통을 받는 여인을 고쳐 주셨는데 어느 목사님께서 이병은 나처럼 척추병이라고 하였다.
(누가복음 13장) 10 <안식일에 꼬부라진 여자를 고치시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11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12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13 안수하시니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그런데 파티마병원 수녀 과장에게 재활치료를 받고 허리가 안좋아졌다. 걱정하던차에 의사되시는 이집사님께서 서울에서 허리 전문가 의사의 책을 보내주겠다고 하셔서 안심이 되었다.
다리가 다시 아파서 내속에 귀신을 내쫒는 기도를 드렸다. 또한 가족과 나에게 맡겨진 영혼들을 괴롭히는 마귀를 대적하고 내쫒는기도를 드렸다.
그런데 잠시뒤 부친께서 벌통을 보러갔다가 뒷바퀴가 구렁에 빠져 버렸다. 다행히 내가 요청을 하여
자동차를 위기에서 구원해주는 견인차로 들어 올려 무사히 빠져나오셨다. 견인차를 보면 구원하시는 예수님이 떠오른다.
알고보니 이사온 아저씨는 족발집 사장님이신데 당뇨로 발을 절단하였고 다른 다리 새끼발가락에도 증상이 나타나 걷지를 못하여 병간호인을 쓰고 있었다.
술을 마셨다고 한다.
내 병실에는 구미 칠곡 대구 경산 청도 경북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대구는 경북에 중심지이며 대형병원이
있는 곳이다.
병실 사람들이 여기도 돈벌이로 병원을 한다고 하였다. 즉 검사와 수술이 끝나면 돈이 안되기에 퇴원이나 소형병원으로 보낸다는 것이다. 즉 MRI 수술등은 돈이되지만 이후로는 돈이 안되기에 빨리 보내려고 한다는 것이다.
병원에 입원한 어느 아저씨는 시골에서 만약의 재료가 되는 양귀비 꽃을 급할때 약으로 쓰려고 조금 키우는것 같았다.
우리나라도 알게 모르게 미국처럼 마약의 노출되어 있다. 대마초가 되는 삼베도 문제다.
미국처럼 동성애와 마약이 판치지는 않을까 심히
걱정이 된다. 거기다가 우리나라는 이혼과 자살률이 세계1위다.
창세기 1장 18절 말씀처럼 빛과 어둠이 공존하고 있다.
오늘 첫째 매형과 같은 독일인 칼 귀츨라프 선교사가 우리나라 최초의 조선 선교사 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근 나의 선교 처럼 선교 기간은 짧았지만 고대도 섬을 방문하여 최초로 복음을 전했다고 한다.
매형과 혼혈 독일 조카와 누나는 독일에 살고 있는데 나는 종교개혁의 사명도 받았다.
의사이면서 다재다능하신 이집사님께서 번역을 잘하시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으시다면 세계로 쓰임을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알고보니 칼 귀츨라프 선교사도 의사출신이면서 번역과
통역을 잘하셨다.
병실에 새로온 아저씨는 2년마다 하는 건강검진으로 신장의 혹을 발견하여 수술을 하러왔다.
우리나라는 의료혜택이 세계최고 수준같다.
말이 나와서 얘기지만 의료보험은 박정희가 만들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박정희에게 감사해야 된다고 믿는다. 경제도 박정희 대통령의 헌신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세"
나는 우리나라 발전을 위해 박정희 대통령도 하나님께 쓰임을 받았다고 믿는다. 그는 주일학교를 다녔던 사람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호불호가 갈리지만 우리에게 잘알려진 세계의 대통령들은 하나같이 박정희 대통령을 존경하고 모델로 삼았다.
나의 옆 침대에 대상포진으로 새로온 아저씨는 군위에서 목조주택을 하는 분이신데 아내분이 좋으셨고 금술도 좋았다. 그런데 아내분은 독실한 불교인이셨다.
그런데 사람이 너무 좋으셨다.
시골 목조주택으로 TV에도 나오신 분들이다.
아래는 칼 귀츨라프 선교사를 소개하는 글이다.
"한국에 처음 발을 디딘 선교사는 프러시아계 독일인으로 의사이며 목사였던 칼 귀츨라프(Karl Gutzlaff)"
한국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는 독일인 "칼 귀츨라프 입니다 독일 루터교 목사인 귀츨라프는 1866년에 순교한 토마스 선교사보다 34년, 1884년에 인천항을 통해 입국한 의료선교사 알렌보다 52년, 1885년 입국한 미국 선교사인 언더우드, 아펜젤러 보다 53년이나 앞서 1832년 조선을 선교하기 위해 방문한 인물이라고 합니다."
"한국에 주재(駐在)하는 선교사들이 오기 반세기 전에 선교의 가능성을 탐색하기 위해 한국을 다녀간 선교사 몇이 있다. 이들은 한국 선교사로 파송 받아 온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한국에 거주하면서 선교 사역을 하지는 않았지만, 한국에 복음의 씨를 뿌리기 위해 온 사람들로 한국교회 역사에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사람들이다. 한국에 처음 발을 디딘 선교사는 프러시아계 독일인으로 의사이며 목사였던 칼 귀츨라프(Karl Gutzlaff)이다.
그는 1803년 7월 독일 포메라니아(Pomerania) 지방의 피리쯔(Pyritz)에서 유태계 독일인으로 태어났다. 그는 독일 경건주의운동의 발상지였던 할레(Halle)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는 일찍이 선교사가 될 포부를 갖고 1826년 네덜란드 선교회 파송을 받고 동남아 자바 지방에 도착하여 그 곳에서 선교 사역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곳에서의 사역에 별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던 차에, 불행히도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슬픔을 안고 본래 의도한 중국으로 떠났다. 그는 1831년 요동반도를 거쳐 마카오에 도착하였다. 그는 같은 해, 6개월에 걸쳐 중국 동해안과 만주로 전도 여행을 하였다. 그는 이 여행에서 많은 성과를 올리고 선교의 가능성을 확인하게 된다.
귀츨라프가 한국에 오게 된 것도 이 선교 여행에서의 성과 때문이었다. 영국 동인도회사는 1천톤 급의 군함 로드 앰허스트(Lord Amherst)을 무역선으로 중국, 한국, 일본, 오키나와, 대만 등지로 교역을 트기 위한 항해를 준비하였다. 이 배의 선장이었던 휴 린제이(H. Lindsay)는 귀츨라프에게 통역, 선의(船醫), 선목(船牧) 등의 자격으로 승선해 달라는 요청을 한다. 귀츨라프는 이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임으로 한국에 오는 첫 선교사로서의 기록을 남겼다. 로드 앰허스트 호는 1832년 2월 중국 마카오를 떠나 7월에 한국 서해안 황해도 백령도을 거쳐 충청도 홍주목만(洪州牧彎) 불모도(不毛島)에 도착한 후 고대도(古代島) 안항(安港)에 예인되었다. 선장은 그 지방 관리들을 통해 국왕 순조(純祖)에게 통상을 원한다는 청원서를 보냈다. 이 때 선장의 권고에 따라 귀츨라프가 전도용으로 갖고 온 한문 성경 두 권과 서양포(西洋布), 시진표(時辰表), 천리경(千里鏡) 등의 선물을 함께 보냈다. 서울로부터 회신을 기다리는 동안 귀츨라프는 한국 사람들과의 접촉을 시도했다. 관리들의 감시가 소홀할 때 귀츨라프는 섬에 상륙하여, 섬사람들을 만나 그들에게 성경과 의약품을 나누어 주었다. 그는 그의 항해기에서 다음과 같이 한국인들에게 성경을 나누어 준 사실을 기록했다. “우리들은 해변에 상륙하여 큰 어선이 있는 곳으로 갔다. 정부 관리의 감시가 없는 해안이었으므로 어부들은 우리를 친절히 대하여 주었다. 내가 복음서를 몇 권 주었더니 그들은 너무 고마워 답례할 물건이 없음을 미안히 여기면서 잎담배 몇 개를 주었다.” 귀츨라프는 한국 사람들에게 한문 복음서를 전해 줌으로 성경을 전해 준 선교사로 기록된다. 귀츨라프가 이곳에 머무는 동안 한국 교회사와 한국 역사에 뜻 깊은 일 두 가지를 한다. 한국 교회사에 뜻 깊은 일은 그가 주기도문을 우리나라 말로 번역한 일이다. 앰허스트호가 도착했을 때 마량진에서 관리들이 문정을 위해 배 위에 올라왔다. 그들이 검문을 마치고 돌아가려 할 때, 갑자기 일기가 불순하여 그 날 밤을 배 위에서 지내게 되었다. 귀츨라프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한문으로 된 주기도문을 한국어로 번역할 생각을 했다. 배에 올라온 홍주 목사(牧使) 이민회(李敏會)의 서생(書生) 양씨(梁氏)에게 한자로 주기도문을 써주고 한글로 그 옆에 토를 달아 번역하게 하였다. 이것이 부분적으로나마 한글로 성경을 번역한 첫 번째 일이다. 또 한 가지 한국사에서도 특기할 일은, 귀츨라프가 섬사람들에게 감자 씨를 주면서 그 심는 법과 재배법을 가르쳐 준 일이다. 귀츨라프는 섬사람들이 굶주림에 고통 당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는 그들의 식품으로 갖고 온 감자를 가져다가, 나누어 먹게 하지 않고, 해안에 둔덕을 만들어 100여 군데 심어 주면서 한문으로 그 재배법을 써 주었다. 그러나 섬사람들은 외국의 식물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국법을 어기는 것이라며 완강히 거부하였다. 그러나 귀츨라프는 이것은 좋은 식품이니 잘 재배하여 굶주림을 면하고 배불리 먹고 살라며 섬사람들을 설득하였다. 그가 떠나 후, 몇 개월이 지나 섬사람들이 둔덕을 파 보니 주먹만 한 감자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섬사람들은 이것을 삶아 먹고, 구워 먹고, 튀겨 먹고, 생으로도 먹어 허기를 면하였다. 처음에 이것은 마령서(馬鈴署)라 불리다후에 감자라 불렀으며, 충청도 일대에 퍼져 나간 후, 전국으로 보급되었다. 귀츨라프는 감자를 당장 먹게 하지 않고, 재배하게 함으로써, “고기를 잡아주면서 먹게 하지 않고, 잡는 법을 가르쳐 준” 귀한 결과를 가져왔다. 가난과 기아에 허덕이던 우리 민족이 감자를 재배하여 배고픔을 모면할 수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귀츨라프의 공헌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귀츨라프는 우리 민족에게 생명의 양식인 성경과 육신의 양식인 감자까지 주고 간 고마운 선교사로 기억되어야 한다. 귀츨라프는 섬사람들에게서 나는 악취에 숨을 쉴 수 없었다. 그들의 머리에서, 입에서, 몸에서 옷에서 역한 냄새가 계속 풍겨 나왔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 사람들의 삶에 무엇보다 비누가 절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비누는 사람의 몸과 의복과 생활을 정화 시키는 귀한 물품이다. 성경은 인간의 영혼을 구원해 주는 생명의 말씀이요, 감자는 인간 육신의 삶을 이어주는 먹거리라면, 비누는 인간의 삶을 정화시키는 필수품이다. 인간에게는 영혼의 양식인 성경과 육신의 양식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육체도 정결해야 하는 법이다. 귀츨라프는 우리 민족에게 가장 요긴한 성경과 감자를 주고 갔다. 비록 비누는 주고 가지 못했지만, 마음 속으로 이 민족에게 비누를 주실 것을 소망하면서 떠나갔다. 이제 우리 민족은 이 세 가지를 다 소유하게 되었고, 영혼의 구원뿐만 아니라 육신의 먹거리 문제, 그리고 겉사람의 정결까지 유지하게 된 것은 선각자 귀츨라프 선교사의 은덕이라 아니라 할 수 없다. 따라서 그는 우리 교회뿐만 아니라, 일반 사회도 꼭 기억해야 하는 귀한 분 중 한 분이다. (계속)
귀츨라프의 선교사역은 특정 교회와 교단의 선교사의 모습은 존재하지 않는다. 선교학자, 역사학자들은 귀츨라프를 전문직을 겸비한 자비량 전문인 선교사, 혹은 Faith Mission 믿음 선교의 선구자로 정의한다. 귀츨라프는 마카오, 홍콩 대사관 등에서 일하며 '내 평생 중국을 복음화하자'라는 목표로 믿음의 선교를 이뤄간 믿음의 선교사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칼 귀츨라프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그가 개신교 최초로 조선의 언어를 사용한 선교사, 조선의 언어를 유럽과 세계에 알린 선교사, 조선의 언어로 주기도문을 번역한 선교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필자는 귀츨라프의 사역 중 그가 언어, 말씀의 씨앗을 조선 땅에 심어준 것이 가장 놀라운 선교의 열매라고 믿는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임하시매 ... 그는 헤른 후터의 슬로건처럼 얀 후스의 개혁주의와 더불어 친첸도르프의 경건주의의 지대한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다. 베를린 신학교에 그는 무엇을 배웠을까? 화형대에 오르기까지 하나님 말씀의 숭고한 소명을 버리지 않았던 얀 후스의 개혁주의와 말씀에 사로잡힌 경건주의의 가르침을 배우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 뜨거운 말씀은 강력한 선교 의식으로 폭발하여 칼 귀츨라프와 같은 선교사들을 미지의 나라로 생명을 걸고 떠나게 한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