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불암 소나무 사이'로 토함산 보이고…
4코스: 동남산 칠불암 가는 길
어제 이어서 정강왕릉 입구 근처의 통일전 주차장에서 걸었다.
서출지 주위에는 웬 아줌마들이 무엇을 열심히 보따리에 주워 담고 있다.
필사적으로 뛰고 있는 살 오른 메뚜기와 이미 자신을 던져버린 은행알을 줍는다고 야단이었다.
신라 21대 소지왕과 사금갑(射金匣) 사연으로 유명한 서출지(書出池)에는
말라버린 연잎이 깊어가는 가을을 알리고 있었다.
남산 칠불암 가는 길은 단순하면서 오묘하다.
가는 길에 남산마을 이 골목 저 골목을 기웃거릴 수 있고, 신라시대 석탑을 보는 눈복(眼福)도 누릴 수 있다.
다만 크고 우악스럽게 지어놓고 높은 담으로 꽁꽁 둘러놓은 집들을 보면 눈복이 감퇴된다.
옛부터 집은 주인의 인격이라 했다.
염불사에 닿았다.
흩어져 방치되어 있던 옛 신라 석탑을 세워놓았다.
몇몇 석탑의 부재들은 새로 만들어 세운 것인데 동·서 쌍탑이 제 위치라면 절은 삼각형 꼭지점에 있어야 된다.
그러나 최근에 세운 염불사는 원 위치가 아니다.
탑은 하늘거리는 우아한 맛이 흐르는데 단을 네모 반듯하게 석축 쌓듯이 쌓아 놓은 것이 눈에 거슬린다.
전(傳) 염불사지였다는데 삼국유사에는 "어느 스님이 시간을 정해 하루에 몇 번씩 나무아미타불, 염불 부르는 소리가 온 서라벌 장안 360방 17만호에 들리지 않는 곳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를 공경하여 그가 살던 피리사를 염불사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17만호가 나오는 것으로 봐서 헌강왕(875~886) 이후의 신라 하대다.
·산길 극락으로
차를 타면 길이 있는 끝까지 가는 습관이 있다.
여기도 주말이면 등산객들의 차로 빽빽하다.
더 이상 들어오지 말라고 쇠줄을 쳐놓았다.
팻말에는 '칠불암 1.9km'라 적혀 있다.
사과농장을 지나자 염소는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데 개는 어찌나 짖어대는지….
'감전주의'라는 친절한 경고판을 총총히 걸어놓았다.
그래도 사과밭 지나자 산길이 호젓이 반겨준다.
이처럼 산은 자신의 품에 안기는 사람에게 위안을 주고 마음의 평온을 선물한다.
길가에 보이는 유치한 영어와 불법묘지가 눈에 거슬렸지만, 화요일 오후 사람 하나 없는 산길을 걸어가는
나그네 가슴에 물소리가 졸졸거리고 솔향기가 스며든다.
태고의 정적이 이럴까?
이윽고 '칠불암 300m' 팻말이 나온다.
칠불암 석축이 보이고 "날마다 좋은날 되세요"라는 문구가 물 한 모금 마시라고 권한다.
굽이굽이 석축을 오르자 제법 번듯하게 지어놓은 암자가 나온다.
칠불암.
참 오밀조밀하면서 당차고 세련된 칠불은 장쾌한 시야를 선사한다.
참 좋고 아름다운 곳이다.
휘어진 소나무 사이로 토함산과 벌판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한참만에야 눈을 마주친 처사님께 합장하니 울산에 사신다고 했다.
속기 벗은 순박한 모습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기와조각에 '인생에서 가장 귀중한 날은 언제인가. 바로 오늘이다.
오늘 하루를 삶의 전부로 느끼며 살아야 한다'는 벽암록 말씀을 인용해 놓았다.
상선암 마애불에는 오르지 못하고 칠불암 마애불의 말없는 침묵을 뒤로한 채 어둠이 밀려와
처사님의 차대접도 마다하고 서둘러 내려왔다. 욕망의 속세에는 이미 불이 켜져 있었다.
4코스(4km, 3~4시간) : 통일전-서출지-남산리 3층석탑-염불사-칠불암
kjsuoja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