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구속사 강해
이스라엘의 창성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 계획
하나님은 애굽을 비롯한 팔레스틴 지방에 심한 기근을 내림심으로써 이스라엘의 후손들을 애굽으로 이주하게 하셨다. 그리고 이미 준비하셨던 요셉으로 하여금 양식을 풍족하게 비축하도록 함으로써 이스라엘 자손들이 생육하고 번성하는데 있어서 어려움이 없도록 모든 여건을 준비해두셨다.
이스라엘 민족은 비좁은 가나안 땅에서 사람들과 다투지 않게 되었고 오히려 넓은 애굽에서 번성할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애굽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생업인 목축업을 부정하다고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스라엘은 애굽 사람들과 분리될 수 있었고 외부의 문화로부터 아무런 동화도 받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하나님의 보호 아래에서 이스라엘 후손들은 이스라엘만의 순수한 문화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고 하나의 국가를 형성할 수 있을 만큼의 많은 인구로 성장할 수 있었다.
1. 성취되고 있는 하나님의 약속
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와 그 시대 사람은 다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이 중다하고 번식하고 창성하고 심히 강대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출 1:6-7)는 기록은 애굽으로 이주했던 이스라엘 후손들 중 초창기 세대 사람들은 수명이 다하여 죽었으나 그 후손들은 큰 수를 이루게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애굽으로 이주한 이스라엘 민족의 수가 많아졌다는 것은 야곱이 가나안을 떠날 때 약속하신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가나안을 떠나 애굽으로 내려가는 야곱에게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비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정녕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창 46:3-4)고 말씀하셨다.
이때 하나님은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큰 무리로 장성하게 한 후 그들과 함께 가나안으로 돌아올 것을 약속하신 바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후예들이 큰 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하여 가나안으로 돌아갈 기한이 다 되어 가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한편 애굽 왕 바로는 이스라엘의 후손들이 애굽에서 큰 수를 형성하고 번성하는 것에 대하여 깊은 우려를 가지게 되었다. 이스라엘의 수가 많아진다는 것은 곧 이
스라엘이 애굽에 대항하는 세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출 1:8-10). 이스라엘의 창성에 대한 우려를 감출 수 없었던 애굽의 왕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함으로써 더 이상 그 수가 늘어나는 것을 방지하고 그들의 힘을 축적하지 못하게 하는 정책을 펴게 되었다.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살펴보면 애굽 왕 바로가 이스라엘 민족에 대해 불안감을 가지게 된 것에 대하여 보다 잘 이해하게 된다. 야곱이 BC 1876년경 애굽으로 내려간 이후인 BC 1720년경부터 BC 1570년경까지 애굽은 북쪽 팔레스틴에서 침략한 힉소스(Hyksos) 왕조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당시 힉소스 왕조는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애굽에서부터 팔레스틴을 거쳐 유프라테스 강 상류에 이르기까지 넓은 지역을 통치하고 있었다. 이 기간 동안 애굽은 북쪽에서 온 가나안 사람들에 의해 수많은 약탈을 당하며 수모를 겪었던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애굽 사람들은 북쪽 팔레스틴 사람들에 대하여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BC 1550년경 애굽의 제18왕조를 건설한 아모세 1세(Ah-Mose I)가 일어나 힉소스 왕조를 물리치고 애굽을 통일하였고 이후 애굽은 자주적인 국권을 회복하면서 번영을 추구하게 되었다.
때문에 팔레스틴에서 건너온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의 콧잔등이에서 번성하고 있다는 것은 위험한 요소가 아닐 수 없었다. 만일 이스라엘의 수가 번성하게 되면 자연히 북쪽 팔레스틴 군대와 힘을 합하여 애굽을 재침략함으로써 예전과 같이 애굽을 약탈할 수도 있고 혹은 북쪽 군대와 애굽이 전쟁하게 될 때 배후에서 애굽을 모반할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다. 출애굽기 1장에 등장하는 요셉을 모르는 애굽의 왕은 힉소스 왕조를 물리친 왕가의 출신으로 추정되며, 이 왕은 자연히 이스라엘에 대하여 배타적인 경향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정세 때문에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 건재하고 있다는 것은 언제나 바로에게 목의 가시처럼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이스라엘 백성을 팔레스틴으로 내쫓아버릴 수도 없었다. 당시에는 노동력을 이용하여 대부분의 토목 공사를 수행해야 했기 때문에 인력을 많이 확보한다는 것은 곧 국력을 판가름하는 척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많은 수의 이스라엘 백성의 노동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바로에게 부를 가져다 주는 셈이었다. 때문에 바로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추방할 수 없었다. 아마 바로는 이점, 즉 경제적 이익 때문에 이스라엘을 자기 수하에 두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2. 이스라엘 백성의 통치자이신 하나님
바로는 비돔과 라암셋에 국고성을 건축하는 일에 이스라엘 백성을 동원하여 강제 노역을 시키는 등 자신의 권세를 세우는 일에 동원하되 한편으로는 더 이상 이스라엘의 세력이 커가지 못하도록 갖은 수단을 다해 이스라엘을 학대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바로의 학대를 받는 것과는 상관없이 이스라엘을 더욱 번성하게 함으로써 야곱과 맺은 약속을 성취해 나가고 있었다.
이러한 하나님의 경영을 알지 못하는 바로는 이스라엘에게 더 큰 노역을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번창하는 것을 막을 수 없게 되자 이스라엘에게서 노동력만을 얻을 목적으로 산파들을 시켜 여자아이들은 살리고 사내아이들은 모두 죽이라는 명을 내리게 되었다(출 1:15-16).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에 바로의 명을 거역하고 사내아이들을 살려내었다. 산파를 동원하여 이스라엘의 번성을 막아보려 했던 바로는 이대로 두어서는 이스라엘의 수가 계속 번성하는 것을 막아낼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사내아이가 출생하면 모두 강에 던져 죽이도록 명령을 내림으로써 이스라엘이 강성해지는 것을 막아보려고 했다.
이미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그의 후손들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번성하여 새로운 나라를 건설할 것이라는 약속을 하신 바 있다(창 15:5, 22:17, 26:4, 28:14). 하나님은 그 약속을 성취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크게 번성하도록 역사 하시고 계셨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지 못하고 있는 바로는 이스라엘이 번성하여 곧 애굽을 위협하는 세력으로 등장하게 될 것만 우려하고 이스라엘의 수를 바로가 다스리기 쉬운 적정한 수를 유지하도록 하기 위하여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학대하려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부터 애굽으로 내려오게 하신 것은 그곳에서 이스라엘의 고유한 문화적 특성을 살리며 번성시킨 후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하여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 그 땅에 순결한 문화를 세우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야곱에게 약속하신 대로 이스라엘이 장성하여 큰 민족을 이루게 되면 그들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돌아오실 계획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새나라를 건설함으로써 창조 이래로 하나님을 거역하는 인간들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세상으로부터 구별하여 내신 언약의 백성을 통해 하나님의 뜻, 즉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구현하고자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는 이러한 하나님의 의도를 모르고 있었다. 때문에 이스라엘을 자기의 소유로 삼고 국가적인 이익을 위해 소모품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이스라엘을 창성케 하는 하나님의 계획에 대하여 반역하고 이스라엘을
장악하여 자기의 부를 유지하려는 바로와 하나님 사이에 이스라엘의 진정한 통치자가 누구인가를 밝히는 싸움이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이스라엘의 진정한 통치자가 누구인가는 명확하게 밝혀져 있다. 아무리 바로가 이스라엘의 수를 조절하여 자신의 손아귀에 잡아 두려 해도 이스라엘은 그것과 상관없이 자꾸 번성하고 있다는 점이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성경 기자는 이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이 중다하고 번식하고 창성하고 심히 강대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출 1:7)는 내용을 반복적으로 기록하고 있다(12, 20절). 이렇게 이스라엘의 생육이 지속되고 있음을 밝힘으로써 머지 않아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불러들이실 하나님의 때가 가까웠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해 주고 있다.
출처: 기독신학공동체 원문보기 글쓴이: 송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