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으로 떠난 서울문학 문학기행
2018년 5월 31일, 서울문학 문인회(회장:조대연)에서 강릉 김동명문학관과 허난설헌 문학기념관, 오죽헌을 찾아 문학기행을 떠났다.
문학기행을 위해 멀리 경남 창령과 전남보성에서까지 전날부터 올라오신분도 계셨고,충북 청주와 충남 천안에서 올라온 일행도 있어 그야말로 회원분포가 광범한 전국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먼길도 마다하지 않고 문학기행을 동참하려는 그 성의가 실로 놀랍다고 느껴졌다.
집결 장소인 서울 잠실 종합운동장에서 오전 8시 출발, 경춘고속도로를 타고 홍천을 경유하여 맨 먼저 찾은 곳은 김 동명문학관....
문학관을 찾아가는 주변에는 감자 꽃이 한창 피어 올라 있었다.
일행중 명 금자 시인은 "저꽃이 무슨 꽃이냐"고 묻길래, 감자 꽃이라 일러 주었건만, 아마도 꽃에 열매가 열리는 줄 알고 감자나무라고 연신 그렇게 말하여 실소를 자아냈다.
서울 아이들이 쌀이 쌀나무에서 나온다고 한다더니,감자가 어디에 달리는 걸 모르다보니 그랬던 것 같다.
문학관에 도착한 일행은 문화관광해설사로 부터 김 동명시인에 대한 자상한 설명을 듣기도 하고, 해설사의 시낭송에 이어 몇 분이 시낭송을 펼치기도 했다.
1차 답사를 마치고선, 그곳에서 가까운 초당할머니 순두부집을 찾아 우선 민생고부터 해결하였다.
관광이란 보고 즐기는것도 중요하지만, 모름지기 입도 즐거워야 구색이 맞기 마련이다.
오찬을 마친 후에는 예정에 없는 바닷바람을 쏘이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기왕 동해안 바닷가에 나왔으니, 바다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던 모양이다.
바닷바람을 쏘이고, 다음 코스는 허난설헌 기념관과 오죽헌으로 향한다.
본래 계획은 이곳까지를 돌아보고, 평창 봉평에 있는 이 효석 문학관을 가고자 하였지만,예정에 없던 바다 구경이 그 시간을 잡아먹고 말았기에 불가피 오죽헌에서 행사를 마칠수 밖에 없었다.
예정 코스를 다 돌아보지 못한 아쉬움이 있기는 하였지만,여행은 무척 보람있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오고 가는 차중에서는 각자 자기소개가 있기도 했고,시낭송과 노래등으로 문학기행의 보람을 더하기도 하였다.
홍천 휴게소에서.....
김 동명문학관 전경
김동명은 전원적인 서정과 민족적인 비애를 시화한 시인으로 강릉의 현대 문학에 지평을 여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에 강릉이 낳은 한국 근현대의 대표 문인인 초허 김동명(金東鳴)[1900~1968]의 삶을 재조명하고, 그의 문학 정신을 계승하며 지역 문예 진흥에 이바지하기 위해 2013년 7월 3일 김동명 문학관을 개관하였다.
김 동명 생가앞에서 기념촬영
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 들으며.....
해설사는 자신이 김 동명의 네번째 부인이라고 조크를 던진다.
김 동명시인은 세번째 부인까지 거느렸는가 하면, 자신이 김동명시인을 그만큼 사랑하고 있으니 그럴법도 하다.
암튼 김 동명시인에 대하여 열정을 가지고 해설에 충실하려 했고 자랑 또한 대단하였다.
김 동명 시인은 1900년 2월 4일 강원도 강릉군 사천면에서 출생
8세까지 이곳 생가터에서 살다가, 함경남도 원산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학창시절을 보냈고, 일본 유학을 하기도 했다.
원산 소학교 교원,동광학원 원장, 함흥 영생고교와 흥남 중, 여중 교장을 맡기도 했다.
조선 민주당 흥남 시당 부위원장과 함경남도 도당 부위원장직을 역임하기도 했으며, 월남한후 이화여대 국어 국문학과 교수를 역임하기도 했으며, 초대 참의원에 당선되기도 하였고, 시로썬 <술노래>, <광인>을 끝으로 절필하였다.
1968년 고혈압으로 69세를 일기로 별세, 망우리 문인 묘역에 잠들어 있다.
김 동명시인의 대표작들이 걸려있다.
맛집, 초당 할머니 순두부집으로.....
경포대는 아니래도 바다는 바다였다.
동해안은 맑고 푸른 물이 참으로 가슴을 후련하게 해준다.
허 균,허 난 설헌 기념관으로.....
난 설헌 허 초희
본명은 초희였고,난설헌은 그의 호를 말한다.
오죽헌은 신사임당과 율곡(栗谷)이이(李珥, 1536∼1584)가 태어난 몽룡실(夢龍室)이 있는 유서깊은 별당 건물이다.
강원도 강릉시 죽헌동에 자리한 이곳 오죽헌은 조선 초기의 건물로써,우리나라 주택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검은 대나무가 집 주변을 둘러싸고 있어서 ‘오죽헌(烏竹軒)’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오죽헌이란 명칭은 까마귀처럼 검은 대나무가 많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권처균의 호에서 비롯되었다.
권처균의 본관은 안동. 자는 사중(士中), 호는 오죽헌(烏竹軒). 감사인 권륜(權綸)의 증손이고 세마(洗馬)인 권연(權璉)의 손자이며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이종제(姨從弟)였다.
강릉 석불입상/강원도 문화재 제 3호
신사임당/ 이 율곡 선생 어머니
강릉 시립 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