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46]함양 "3곳"만으로도 잊지 못할 고장
함양咸陽 땅을 처음 밟았다. 오래 전부터 가보고 싶은 고장이었다. 임실문화원 주최 ‘우리문화 바로알기 문화유적지 답사’행사에 고맙게도 끼게 된 것이다. 지역 문화원들이 하는 일들 중의 하나라고 한다. 지난 가을에는 ‘동학의 길’을 다녀왔다는데, 알지 못해서 못간 게 아쉬웠다. 관광버스 5대, 160여명(회원이 400여명이라고 한다) 참석, 회비 포함 3만원. 군수와 군의회 의장단의 전송까지 받는 행사인 것도 처음 알았다.
아무튼, 명성을 오래 전부터 들었던 천연기념물 숲 ‘상림上林공원’산책이다. 오전인 데도 날씨가 달아오르기 시작해, 그늘을 찾아야 하는데, 숲길은 제격이다. 걸어보니 알겠다. 봄 신록, 여름 녹음, 가을 단풍, 겨울 설경, 모두 일품逸品일 것을. 통일신라 진성여왕때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이 태수로 있을 때 조성했다고 한다. 1천여년 전의 일로, 가장 오래된 인공림人工林이다. 백성들이 홍수 때문에 고생하는 것을 안타까이 여겨, 물길을 돌리고 나무를 심은 것이다. 소위 ‘위정자爲政者’는 이렇게 백성의 눈물을 닦아줘야 하는 것이거늘. 총길이 1.6km, 면적이 6만여평이며, 참나무(신갈나무, 졸참나무, 상수리나무 등 6종)가 대표 수종(전체 의 60%)으로 2만그루가 연륜年輪을 한껏 뽐내고 있다. ‘참나무는 들을 바라보며 자란다’는 말이 있는데, 그 까닭은 논에 벼농사가 잘되면 참나무 열매(상수리와 도토리)가 거의 열리지 않는데, 가뭄이 들어 흉년이 되면 상수리와 도토리가 엄청나게 열리는 데에서 나온 것이란다. 먹을 게 없으니까 초근목피로 연명하듯, 도토리묵이나 무침을 먹어 목숨을 이어가라는 깊은 뜻, 고마운 나무였던 것도 처음 안 일.
다음 목적지는 함양이 자랑하는 역사적인 인물,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1450-1504)을 모신 사당과 그를 기리는 남계서원灆溪書院(물 맑을 람)이다. 201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한국의 서원> 9곳(모두 640여개의 서원이 있다)이 동시에 등재되었다. 서원書院은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까지 조선시대 지방 지식인들에 의해 건립된 대표적 사립 성리학 교육기관. 1552년 건립된 남계서원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세워진 소수서원(백운동서원) 다음으로 역사가 오래된 곳이다.
성균관과 향교에 모셔져 있는 <동방 18현>(겨레의 스승)을 아시는가? 일두 정여창은 그중의 한 분이자, <동방5현>(김굉필, 조광조, 이언적, 이황)으로도 불리는 뛰어나 유학자였다고 한다. 이 참에 ‘동방 18현’의 이름이라도 알고 가면 어떨까? 설총, 안유(향), 김굉필, 조광조, 이황(퇴계), 이이(율곡), 김장생, 김집, 송준길, 최치원, 정몽주, 정여창, 이언적, 김인후, 성혼, 조헌, 송시열, 박세채이다. 김장생과 김집은 부자父子간이다.
<일두문집>을 남겼는데, 호 ‘일두’의 ‘좀벌레 두蠹’자가 너무 특이한다. 자신을 ‘한 마리의 좀벌레’라고 낮춰 부른 것이다. 이름 ‘여창汝昌’은 ‘너 여汝, 창성할 창昌’으로 당시 천재로 소문나 ‘네가 가문을 번창시킬 것’이라는 뜻으로 지었다고도 한다. 연산군때 사화로 죽었다. 김종직과 김굉필을 사사했으며, 한강 정구는 으뜸 제자로 스승을 현창해 <문헌공실기> 등을 남겼다.
함양을 왔다면 꼭 가봐야 할 곳이 <개평介坪 한옥마을>이다. 일두 정여창 고택을 비롯하여 오래된 역사를 지닌 한옥 60여채가 보존되어 있다. 게다가 수백년 된 노송들이 즐비한 그림같은 개평마을은 “좌 안동, 우 함양”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유학자를 배출한 선비마을이라는 게 아닌가. 나지막한 돌담길과 냇가를 따라 골목골목을 둘러보며, 옛 선조들의 생활모습을 엿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절로 날 것같다. 조용하고 아담한 마을의 골목길이 2차선으로 포장돼 있으니 유명 관광지임에 틀림없다. 한옥韓屋은 공부하면 할수록 매력이 넘치는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종합예술같다. 안채와 사랑채, 내외담, 수많은 창窓 등, 하나하나 심오한 뜻이 담겨 있다. 당상관 이상이 돼야 지을 수 있는 소슬대문 앞에 서면 금방이라도 “이리 오너라”하는 소리가 들릴 것같다. 뒤늦게 집에 돌아와 팸플릿을 보고 안 사실이지만, 구한말 국수國手(나라안 바둑의 최고수)였던 노사초의 생가도 있었던 걸. 아쉽다. 아무래도 조만간 아내와 같이 가 상림산책길 1.6km도 걸어보고, 개평마을에서 파는 솔송주도 맛봐야겠다. 대봉산의 집라인도 굉장하다는데 손주와 같이 와도 좋을 듯하다.
바쁜 농번기를 틈타, 이런 문화유적 답사를 하는 것도 좋은 일인 것같다. 정부지원사업의 일환이라는데, 이런 기회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리라. 임실문화원은 내년이면 60년이 된다고 하는데, 지역문화벌전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게 가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첫댓글 우천바쁘네 평통위원에 문화원 회원에 임실을 우천 품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