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기준
옛날 어느 도시에 이름난 효자가 있었다. 그의 효성은 이웃 동네까지 소문나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시골에 자기보다 더 훌륭한 효자가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다. 도시 효자는 그 효자에게 한 수 배우기 위해 찾아갔다.
찾아가니 시골 효자는 나무하러 산에 가고 그의 老母만 홀로 있었다. 도시 효자는 자신이 찾아온 사연을 말했다. 그러자 그 老母는 "암. 우리 아들은 효자 중의 효자이지"라면서 아들을 자랑했다.
얼마 후 시골 효자가 너무 한 짐을 지고 돌아왔다. 그러자 老母는 뛰어나가 아들의 짐을 내려준 후 아들을 마루에 앉히고는 “오늘 얼마나 수고했냐”며 아들의 어깨를 주물러주었다. 더군다나 대야에 물까지 떠 와 아들의 발까지 씻어주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아들은 아무 말도 없이 어머니가 하시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닌가.
그 것을 바라보던 도시 효자는 화를 벌컥 내며 “천하의 불효자식 같은 놈!”이라며 “너 같은 놈에게서는 배울 것이 없다”는 말을 내뱉고는 가버렸다.
그때 시골 효자는 그의 뒤를 따라가서 한마디 했다. "효자를 배우러 오셨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제가 무슨 효자 자격이나 됩니까? 그저 어머니가 하시자는 대로 하는 것밖에 없습니다"라고 했다.
그 말에 도시 효자는 뒤통수를 한 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자신은 자신의 기준에서 어머니를 섬겨왔지 “어머니의 기준”에서 섬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의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세상 사람들도 아는 비유다. 이 비유의 핵심은 어디에 있을까? “이 사람을 돌봐주시오.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오는 길에 갚겠소”에 있다고 본다. “비용이 더 들면”이란 내가 도와주고 싶은 대로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저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도와주겠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 비유는, “사랑의 기준”은 상대방에게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효자는 부모가 기준이 되고, 불효자는 자신이 기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