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와 보편성
장성숙/ 극동상담심리연구원, 현실역동상담학회
blog.naver.com/changss0312
어느 젊은 부인이 나를 찾아와서는 친구에 대해 서운함을 털어놓았다. 자기는 그 친구와 오래전부터 잘 알고 지냈으며, 그녀의 아버지에게 큰 도움을 받아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상태라고 한다. 그런데 그 친구가 언제부터인가 자기에게 썰렁한 태도를 보여 몹시 불편하다고 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 없다며 이유를 잘 찾아보라고 해도 그 젊은 부인은 잘 모르겠다고 대꾸했다. 그리하여 그녀의 아버지에게 도움을 받았다고 하는 게 뭐냐고 물었더니, 자기 남편이 회사에서 누명을 쓰고 좌천당할 위기에 몰렸던 사건을 친구에게 넋두리하자, 그 친구가 자기 아버지에게 말해주어 잘 해결되었다고 했다.
자세한 내막을 살펴보니, 그녀의 친구는 젊은 부인이 사색이 되어 발을 동동 구를 때 딱한 사정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전에 고위직에 있던 아버지에게 말했다. 그러자 그 아버지는 전에 자기 밑에 있던 사람에게 한 번 살펴봐달라는 부탁을 하였고, 그 덕택에 젊은 여자의 남편은 무사할 수 있었다. 이렇게 위기를 모면하고 나서 그 젊은 부인과 남편은 그 친구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그 후 그 친구의 표정이 마뜩잖아하는 것 같았지만 그러려니 하고 지나쳤다.
그런 일이 있고 난 뒤, 몇 달 후 친구의 집안에 큰 행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부부는 정식으로 초대되진 않았어도 그 참에 친구의 아버지에게 직접 인사를 드리고 싶어 부부가 함께 연회장에 갔다. 그리고 깍듯이 인사를 드리기까지 했는데, 그 친구가 계속 자기를 냉담하게 대하니까 여간 속상한 게 아니라며 그녀는 눈물을 비췄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어 연회장에 갈 때 축하금을 얼마나 가지고 갔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젊은 부인은 갸우뚱하며 봉투를 가지고 가야 하는 거느냐며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스 순간 ‘아, 이것이구나!’ 하고 알아차림과 함께 나는 놀라움을 금하기 어려웠다. 이윽고 마음을 가라앉히며 그런 곳에 갈 때는 최소한 식대 정도는 가지고 가는 게 예의라고 했다. 즉 저번에 입은 은혜에 대한 감사 인사를 그 참에 두둑이 해야 하는 거라고 일러주었고, 아울러 호텔에서 열리는 연회장이니 최소한 식비로 20~30만 원 정도는 들고 갔어야 했다고 말했다.
나의 이런 말에 젊은 부인은 놀랍다는 듯 입을 쩍 벌리며 소리쳤다.
“그래야 하는 거예요?”
“큰 도움을 받아 남편이 위기를 모면했다면서요? 그런 혜택을 받고 어떻게 입으로만 인사를 하고 가만히 있어요.”
“친구 사이인데 어떻게 금품을 주고받는가 해서….”
“그 친구의 아버지도 자기 부탁을 들어준 사람에게 고맙다며 밥이라도 사지 않았겠어요?”
나의 이런 말에 수치심을 느꼈는지 아니면 동의할 수 없다는 저항 때문이었는지 그녀는 입을 앙다물었다. 나 역시 그녀가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에 더 말할 기분이 들지 않았다.
첫 회기 상담에서 그런 불편함을 느꼈기 때문인지 그 젊은 부인은 내게 다시 오지 않았다. 나 또한 그렇게 세상 물정 모르고 자기 입장만 고수하는 듯한 그녀에 대해 잊고 지냈다.
그런데 몇 년 후 그녀는 가족 간의 불화, 즉 형제들 간에 벌어진 이권 다툼에 대해 도움받고 싶다며 다시 나를 찾아왔다. 내가 그녀를 기억하지 못하자, 그녀는 자기를 소개하며 저번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말했다. 그제야 내가 기억을 되살리고 그 후 어떻게 지냈느냐고 묻자, 그녀는 저번 상담에서 혼란스럽고 복잡한 심경이었다고 토로했다. 아무튼 그 친구와는 멀어졌고, 그래서 그녀의 아버지에 대해서도 잊고 살았다고 한다.
도움을 받았던 사안에 대해 그렇게밖에 처리하지 못하는가 하여 새삼스레 답답한 마음이 올라왔지만, 당사자가 덮어버린 문제인데 객인 내가 왈가불가할 필요가 없다고 여겨 입을 닫았다. 그 대신 그렇게 혼란스럽고 복잡했다며 어떻게 다시 나를 찾아왔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멋쩍은 듯이 웃으며 그래도 현실적으로 해법을 알려주시는 분은 장 교수님밖에 없다고 여겨 다시 왔다고 말했다. 그러한 대꾸에 나는 다시 말해주어도 마땅치 않으면 따르지 않을 텐데 그래도 듣고 싶으냐고 웃었다. 그제야 그녀는 무안했는지 얼굴을 확 붉혔다.
그녀가 다시 나를 찾게 된 사안, 즉 가족 간의 불화 역시 손해를 볼 수 없다는 인색함과 무관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나는 그녀에게 조금 손해 보듯 살면 어디서든지 무난하게 지낼 수 있다며, 형제들이 크게 불이익을 주는 게 아니라면 바득바득 싸우지 말고 지켜보라고 일렀다. 즉 형제들이 과도하게 선을 넘으면 그때 변호사에게 위임하는 식으로 대응하는 게 낫지 일일이 싸울 것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상대가 경우에 어긋나는 태도를 보이면 화가 치밀어 견딜 수 없다고 하였다.
이러한 그녀를 바라보며 나는 짓궂게 다시 물었다.
“본인은 딱딱 경우에 맞게 산다고 여기세요?”
그러자 그녀는 전에 제대로 인사를 차리지 않고 자기의 기준에 따라 뭉개고 말았다는 것을 기억하고는 마음에 걸리는지 또다시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는 내게 물었다.
“교수님은 제가 친구의 아버지에게 뒤늦게라도 인사를 차렸어야 한다고 여기세요?”
“예, 그렇게 여깁니다. 이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고 하지 않아요?”
“... 그 친구와는 연락이 끊어졌는데….”
“이쪽의 무지로 인해 그렇게 된 것 같은데, 아닌가요?”
이렇게 하여 그 젊은 여성과의 대화를 마쳤는데, 그녀는 상담실 문을 나설 때 들어설 때와는 달리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나갔다. 생각지도 못했던 숙제를 떠안고 가는 듯 침통한 모습이었다. 그래도 다행한 점이 있다면, 저번에는 혼란스러우면서도 동의하지 않는 듯했던 데 비해 이번에는 다소나마 수긍하는 듯하다는 거였다.
첫댓글 오늘도 좋은 상담
감사합니다..
저도 감사드립니다.
한국은 곧 중추절을 맞이 합니다.
좋은 시간을 맞이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