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마농 이야기
2021.6.24
어제는 소나기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서
햇볕에 널어 말리던 씨앗용 마늘(제주어: 마농)을
부랴부랴 거두어 들였습니다.
땡볕에서 하루종일 일을 하다보니 모자를 썼어도
얼굴이 벌겋게 탔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습니다.
좀 서운했지만, 그래도 얼마 있으면 장마가 시작되겠기에
씨 마늘 말리는 것은 이것으로 끝내고자 합니다.
오늘은 잎마늘(풀마농)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저에게 잎마늘은 애증의 관계인 것 같습니다.
1. 잎마농을 만나다.
제주에 이사온 후(2015년 8월) 집을 짓고 남은 350여평의 텃밭에
우리가 먹을 야채를 심고 옥수수, 들깨, 참깨 등을 경작했습니다.
옥수수를 수확한 후 동네 친하게 지내는 교우들과
이웃 삼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것을 받은 분들의 말씀이 잘 먹겠다고 하시면서도
밭에 이런 것 심지말고 돈되는 작물을 심으라고 충고? 하셨습니다.
그땐 이름도 생소한 콜라비, 브로콜리, 양파, 방울 양배추 등...
하지만 육지에서 농사짓던 대로 우리 먹을 야채와
몇가지 다른 작물을 심으려고 했는데 5월 중순쯤 교우 한 분이
잎마늘 종자를 조금 주시면서 심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으로 3~4백만은 벌수 있다고...
그래서 마늘을 햇볕에 바싹 말린 후 장마가 지난,
8월 초에 밭의 일부에 조금 심어봤습니다.
그리고 물어가며 농사를 짓고, 12월 말부터 매일 2주간 작업하여
170여만을 벌었습니다. 얼마 안되는 금액이지만
그런데 이 작업이 매력이 있습니다.
매일 작업하여 집 앞에 포장된 박스를 내 놓으면
농협에서 지정한 운송회사에서 수거해 가고
다음날 휴대폰으로 경매한 가격을 통보해 줍니다.
그리고 하루 이틀 뒤에 통장에 입금이 되는 겁니다.
그렇게 매일 얼마에 팔렸을까 하는 궁금증과 함께
통장에 쌓여가는 금액을 보는 즐거움이 생겼습니다.
매일 출하하는 양이 3박스 정도에 불과하지만
매일의 기대와 함께 기쁨을 누릴 수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매력적인 친구 잎마농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친구를 만나게 해준 자매님께 감사드립니다.
2. 시련을 겪다.
이렇게 시작한 잎마늘 작업은 이제 야채 심을 곳을 제외한
밭 대부분을 차지하여 약 300평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익숙치 않은 작물이라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제 부모님이 농부셨기에 제 몸에도 농부의 피가 흐릅니다.
국민학교때 까지 가끔 부모님을 도와드린 경험이 있기에
기초적인 연장인 호미(골갱이)와 낫(호미) 정도는 다룰줄 압니다.
제가 국민학교 때 어머니를 도와 참깨 밭을 맨 적이 있습니다.
당시 참깨는 흩뿌림을 해서 참깨 사이에 난 풀(검질)을
매면서 흙을 부드럽게 해 주어야 했습니다.
참깨 사이를 조심스럽게 호미 끝으로 땅을 쪼아야하는데
잘못하면 참깨까지 뽑히게 됩니다.
성경에도 그런 말이 있지요.
"너희가 가라지를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마태 13,29-30)
그래서 조심조심 참깨밭을 매는 저를 보고 어머니께서
우리 아들 어려운 참깨밭도 잘매네! 하고 칭찬을 들은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서울에서 여주로 이사가서 살 때도
이웃 주민들께서 낫질도 잘하고 지게질도 잘한다고
어떻게 서울사람이 이런 것을 하느냐고 놀래기도 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저는 농부의 자식입니다.
그래서 육지에서는 그런대로 농사를 잘 지었는데
이곳 제주에서는 많은 실패를 했습니다.
주로 바람(보롬)때문이죠. 태풍이 한 번 지나가면
키큰 옥수수는 물론 들깨의 잎사귀도 모조기 떨어뜨리고
쓰러뜨려 열매를 하나도 수확못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밭 주위에 밭담을 쌓아 바람을 막기도 하고
밭 주위에 나무를 심기도 하고
바람을 막아주는 망을 설치하기도 합니다.
저는 농사래야 300평 정도라 옛날 부모님 방식대로 합니다.
전체적으로 1년에 2번 정도 돈을 주고 로터리를 치고
나머지는 삽과 괭이로 이랑을 만들고 밭을 고릅니다.
힘이 들지만, 매일 조금씩 운동한다는 생각으로 합니다.
글이 삼천포로 빠졌네요.
말의 요지는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것이지요.
육지에서 하던 방식이 아닌 현재 살고있는 지역에 맞게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제초제는 물론 농약을 안쓰겠다고 생각하고
잎마늘 농사를 짓다가 매일 밭에 앉아 잡초를 뽑느라
정말 고생했습니다. 남자들의 몸은 유연하지 못해서
쪼그려 앉아서 하는 일은 너무 힘듭니다.
오히려 삽질을 하던지 괭이로 땅을 파는 일이 더 낫습니다.
이렇게 잡초와의 싸움으로 혼줄이 난 잎마늘 농사.
그리고 잎마늘 작업을 하느라 매일 밥만 먹으면
콘테이너 창고로 출근을 합니다.
그렇게 일하러 나가있다가 20년간 동거동락을 해오던
강아지(짱구)의 임종을 소홀히 했습니다.
일을 마치고 들어오니 거의 반응을 보이지 않고
가쁜 숨만 쉬고 있었고 곧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날 만이라도 짱구와 함께 옆에서 시간을 보내며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했어야 했는데, 잎마늘이 뭐라고...
그리고 2년 후 친구와도 이별을 했지요.
그리고 마늘작업이 한창일 때 4년전 어느 날,
가장 친한친구 아내의 발병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전날까지 창고에서 함께 마늘작업을 했는데,
쉬라고 적극적으로 말리지 못한 내 자신을 자책해 봅니다.
지금은 병원에 정기적으로 다니며 건강관리를 하기에
그 때부터는 혼자서 작업을 합니다.
3. 가장 친한 친구가 되다.
육지에서는 겨울철은 농한기라고 하여 쉽니다.
마을회관에 모여서 기도도하고, 담소를 나누며
함께 음식을 나누며 지냅니다.
그러나 이곳 우리 마을 삼촌들은 정말 부지런합니다.
겨울철이 농한기가 아니라 농번기입니다.
12월 부터 시작하여 2월 말까지는 잎마늘 작업에
눈코뜰 사이도 없이 바쁜데다, 콜라비, 브로콜리도
수확하고 바당(바다)에 나가 소라, 전복, 미역 등도 채취합니다.
한 번은 본당 신부님께서 미사 후 공지사항 시간에
삼촌들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삼촌들은 가정방문을 해 보면 항상 일을 하는데
언제 쉬느냐고 하시며
비가오면 밭이 질어 못들어가니까 쉬겠네요? 하자
비오는 날은 바당에 나간다고 했지요.
그러자 신부님은 그럼 태풍이 오면 쉬겠네요.
바당에도 밭에도 못들어가니까? 하시자
그런 날은 창고에 앉아서 농작물을 다듬는다고 했지요.
그럼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야 쉬겠네요 하고
신부님이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바쁜 생활을 하시기에 저같이 조금 한가한 사람은
누구와 대화할 기회가 없습니다.
오히려 빈둥거리는 모습은 삼촌들에게 반감을 살 수 있지요.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하루종일 말을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내가 육지에 간 경우에...
그래서 강아지 두 마리와 말을 했는데
그 녀석들과도 헤어지니 더욱 기회가 없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기타를 잡고 노래를 하든지,
아침에 일어나서 성무일도를 큰 소리로 하면서
제 입술을 열기도 합니다.
제가 본래 말이 적은 편인데
육지에서 친구나, 친척(궨당)이 오면
거의 90% 정도 제가 말을 한다고 아내한테 지적을 받습니다.
그동안 말을 못하고 지낸 한을 그들에게 푸는가 봅니다.
겨울철 3개월 동안은 창고에 혼자 앉아서
휴대폰으로 신부님들 강론도 듣고
조용히 제 삶을 돌아보기도 하며
피정하는 마음으로 잎마늘 작업을 합니다.
그러면 심심하지도 않고 또 매일 통장으로 돈이 들어오는
기쁨을 맛보는 것이지요. 일석이조라 할까....
작년에는 씨를 잘 말리지 못해 거의 반이 죽었지만
그래도 잎마늘 가격이 좋아서 600만원 수입이 되었지요.
본래 일터(직장)는 힘들고 재미없는 곳이지요.
왜냐하면 돈을 버는 곳이니까요.
재미있는 곳은 보통 돈을 내고 들어가지 않습니까.
놀이공원, 극장, 야구장, 공연장 등
그러나 잎마늘 작업을 하는 나의 일터는
재미도 있고 돈도 벌수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잎마늘은 나와 절친이 된 것입니다.
잎마늘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종자인 씨를 준비하는 과정부터 키우고
출하작업까지 힘든 일이지만
저에게는 즐거운 직장이며 친구로서
앞으로도 잎마늘 농사는 계속할 생각입니다.
첫댓글 뭔가 했네요.. 서울에선 풋마늘이라고 하는데..
저거 넣고 보리 새우 넣고 고춧가루 풀고 쌀뜨물 넣어서 보글보글 끓이면 참 맛나용.ㅋ
그렇군요.
저는 요리를 잘 못해서 데쳐서 양념으로 무쳐 먹든지
그냥 잘 씻어서 고추장 찍어서 먹는데요.
완다님 말씀처럼 한 번 먹어봐야 겠네요.
댓글 감사합니다.
풋마늘 김치를 해먹어도 좋든데요.
울시어머니께서 한 통씩 해주셔서
먹었던 그시절이 생각납니다
저도 농부의 자식이라
어린시절 등 너머로 본 것이
지금도 뒷뜰에다 깻잎 고추 상치 가지 오이를
두세포기씩 심어서 농사(?) 를 하면
수확(?) 을 많이 해서 여름내내
그로서리를 가지 않아도 될 만큼 ...
혼자서 농사 하시느라 수고가
많으시겠습다
속히 아내 분이 회복 되시길
기도 합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시는 모습 보기
좋으십니다
풋마늘이 아주 건강해 보입니다
생통가루 묻혀서 쪄서
갖은 양념에 무쳐서 엄마가
해 주셨던 그 맛이 생각납니다
깡미, 초록잔디님. 공감 댓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내 발병소식을 들었을 때는 가슴이 철렁내려 앉고
걱정이 많았습니다.
4년 째 건강 조심하면서 정기적으로 병원을 다니며 관리하고 있습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농사를 지으면서도
즐겁게 하시는 클로버님
고맙습니다
가장 좋은친구 건강이 주님의 은총으로
건강을 찾으시기를 기도합니다
늘 웃음 잃지 않고 수고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