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주일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드림으로 기쁨이 넘치게 하시고
성도의 귀한 교제를 통해 서로 사랑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자기주장의지와 판단하는 마음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정결한 마음이 되어 성령의 역사만을 기대하게 하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실 때
나의 주 그리스도를 밝히 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28. 큰형 엘리압이 다윗이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들은지라 그가 다윗에게 노를 발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양들을 누구에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
29. 다윗이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어찌 이유가 없으리이까 하고
30. 돌아서서 다른 사람을 향하여 전과 같이 말하매 백성이 전과 같이 대답하니라
31. 어떤 사람이 다윗이 한 말을 듣고 그것을 사울에게 전하였으므로 사울이 다윗을 부른지라
32.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그로 말미암아 사람이 낙담하지 말 것이라 주의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리이다 하니
33.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울 수 없으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34.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35.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36.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37. 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38. 이에 사울이 자기 군복을 다윗에게 입히고 놋 투구를 그의 머리에 씌우고 또 그에게 갑옷을 입히매
39. 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하지 못하므로 시험적으로 걸어 보다가 사울에게 말하되 익숙하지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곧 벗고
40.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본문 주해)
28~30절 : 엘리압이 의분에 찬 다윗을 교만하고 완악하다고 꾸짖는다.
교만하다고 한 것은 다윗이 목동의 주제를 벗어나 허세를 떨기 때문이며, 완악하다고 한 것은 처절한 전쟁을 보며 즐기는 못된 심보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어린 것이 분위기도 파악하지 못하고 시건방을 떤다는 책망이었다.
이는 맏형으로서 어린 막내에게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사실은 자신을 제치고 동생이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시기심이 그 마음에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전쟁을 믿음의 관점으로 보지 않고, 육체의 관점으로 보는 자였기에 다윗을 꾸짖는 자가 된다.
31~40절 : 다윗이 군사들과 나누는 의분의 말을 사울이 듣고 그를 부른다.
사울 앞에서 다윗은 골리앗으로 인하여 낙담하지 말라고 하며 자신이 골리앗을 물리치겠다고 한다.
사울은 다윗이 너무 어려서, 전쟁터에서 뼈가 굵어진 골리앗의 상대가 안 된다고 말할 때, 다윗은 골리앗이 자신의 상대가 안 되는 이유를 말한다.
그것은 자신이 주의 종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주의 종은 자신의 힘이 아닌, 주의 힘으로 사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 자신이 양을 칠 때 어떻게 사자와 곰을 물리쳤는지를 말한다. 그것은 자신의 용맹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다고 하는 것이다.
이는, 다윗이 양을 치면서 곰과 사자를 물리친 것도 여호와의 기름 부으심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사울이 다윗에게 자신의 군복과 놋 투구와 갑옷을 입게 하지만, 그것이 익숙하지 않은 다윗은 다 벗어버리고 손에 막대기와 물매와 물맷돌 다섯 개를 들고 나간다.
(나의 묵상)
다윗의 전쟁이 시작되기 직전이다.
그때 맏형 엘리압이 시기와 질투와 무시하는 발언으로 다윗을 꾸짖는다.
그러나 다윗은 형을 향해 물매를 준비하지 않는다.
그냥 돌아선다.(30절)
아군과 싸우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는 다윗이다.
엘리압은 육체의 눈으로 전쟁을 보았기에 믿음의 눈을 가진 동생의 말을 책망할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엘리압을 ‘이미 버렸다(16:7)’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다윗은 걸림돌이 되는 형과 싸우지 않고 그를 넘어간다.
어느 목사님께서 하신 말을 들었다.
교회를 개척해서 빠른 시간에 교인 수가 불어나 좋아했는데 교인들이 그렇게 자꾸 싸우더라는 것이다. 나중에 깨달은 바, 그것은 각각 주님의 말씀 앞에 서는 것없이 일부터 시작해서 자기를 내세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말씀 없이 열심 있는 교인들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그 말씀 없는 엘리압이 오늘도 다윗에게 시비를 걸지만, 하나님의 영이 충만한 다윗은 그에게서 돌아선다.
하나님을 위한 의분이라도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쓸데없는 곳에서 힘을 소진할 수 있다.
교회 안팎으로 주님의 여러 가지 사역을 맡아 하노라면 의견이 맞지 않는 사람이 나올 수 있고, 나아가 판단하고 헐뜯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 (또 사실 자신의 의견이 옳지 않을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 사람들을 일일이 다 상대하다가는 싸워야 할 적군과 싸우지 않고, 아군끼리 치고받는 일이 벌어진다.
그럴 때 상대를 향해 치솟는 판단과 자기의를 십자가에 못 박고, 주님께서 이끌어 주시기를 기대하며 잠잠히 기다릴 일이다.
다윗은 사울이 입혀준 군복과 놋투구와 갑옷을 다 벗어버리고, 자기에게 익숙한 막대기와 물매와 돌 5개만으로 골리앗에게 나아간다.
사울은 다윗에게 커다란 군복과 놋투구와 갑옷을 입혀 주는 것밖에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세상적인 무기는 다윗에게 너무 맞지 않았다. 다윗은 이 모든 것들을 다 벗어버리고 자신에게 익숙한 막대기와 물매와 돌 5개만을 가지고 적진을 향한다.
사울이 입혀준 군복과 놋투구와 갑옷은 전쟁을 치르는 자에게 당연하게 필요한 것들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막대기와 물매와 돌을 사용하여 다윗을 훈련시키셨다. 세상의 무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무기이다.
그것은 양을 치는 다윗의 일상에서 함께 하심으로 갖추게 하신 무기였다. 육체의 눈이 아닌, 영의 눈으로 하나님을 주목하는 ‘주의 종’(32, 34, 36절) 다윗의 무기였다.
사울로서는 입혀줄 수밖에 없는 군복과 놋투구와 갑옷은 바로 상식적인 세상의 힘이다.
혹시 세상의 힘이 필요하지 않을까 흔들리는 마음을 십자가에 못 박고, 늘 그랬듯이 평소에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돌이켜 생각하며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나아가는 것이다.
주님을 향한 마음을 분산시키는 엘리압에게서 돌아서고, 세상의 힘을 의지하지 않는 주의 종이 되기를 기도한다.
그러기 위해 말씀을 통하여 붙드는 십자가가 더 이상 내게 어색한 군복과 놋투구와 갑옷이 되지 않고, 막대기와 물매와 돌처럼 내 몸에 착 붙는 무기가 되길 소원한다.
(묵상 기도)
주님,
십자가가 그럴 듯하게 갖다 붙이는 장식이 되지 않고
제 몸에 착 붙는 무기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이 십자가로 먼저 자신을 쳐서 주님께 복종하게 하시고
그렇게 십자가에 연합된 자로서 적진을 향하는 주의 군사가 되게 하옵소서.
십자가를 밝히 보여주는 매일의 말씀이 저를 소생시키니
날마다 말씀 앞으로 달려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령님의 끝없는 은혜에
끝없는 나의 찬양을 올려드리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첫댓글 저 또한 상대를 향해 치솟는 판단과 자기의를 십자가에 못 박고, 주님께서 이끌어 주시기를 기대하며 잠잠히 기다리는 자 되길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