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수를 용서하기 어려워했던 성직자
장성숙/ 극동상담심리연구원, 현실역동상담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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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상담에 참석한 성직자는 크게 모나지 않고 사람들의 질곡에 대한 이해도 깊어 종교인다웠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크고 작은 자신의 문제를 개방하며 사람들과 교류를 하는 데 비해 그는 시종일관 자기에게는 별문제가 없다며 관망하는 태도를 보였다. 몇 차례 그에게 자신을 개방해보라고 권하다 번번이 미끄러졌던 나는 맨 마지막 시간에 이렇게 말했다.
“아무런 고민도 없는 당신은 그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군요.”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라는 말에 멋쩍었는지 그는 하는 수 없이 응답했다.
“그렇지는 않고, 저도 불편한 사람이 있기는 해요.”
그러면서 그는 하는 수 없다는 듯 털어놓았다. 그는 몇 년 전부터 형수를 쳐다보지도 않는데, 성직자인 자기가 사람을 미워한다는 것이 부끄러워 썩 편하지 못하다고 했다. 사연인즉, 사업하는 아버지 밑에서 형이 일했는데 십 년 전에 부도를 맞았다. 그러자 부모님이 야반도주하듯 피신하였고, 형은 일 년 정도 수감생활을 하였다. 그러자 결혼 전에 교사였던 형수가 아이들을 데리고 생계를 위해 공사장에서 함바집을 하는 등 온갖 고생을 다 하였다. 몇 년이 지난 뒤 부모님 댁에서 명절을 쇠었고, 차례 후 형님 식구들은 처가에 들린다며 서둘러 떠났다. 그때 형수가 봉투 하나를 어머니에게 주고 갔는데, 어머니가 그 봉투를 열어 보자마자 부들부들 떨더라고 했다. 왜 그런가 하고 작은 아들인 자기가 다가가서 보니, 그 봉투에는 돈을 갚아 이젠 백지나 다름없는 어음 몇 장이 들어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어음을 갚느라고 그동안 죽을 고생을 했다는 형수가 보이는 무언의 시위였다. 이것을 보고 부모와 자식 간인데 굳이 이런 표시를 내어 부모의 속을 긁나 싶어 자기는 형수를 괘씸하게 여겼고, 그래서 몇 년째 상대를 안 하고 지낸다고 하였다.
이런 이야기에 나는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관계니 그러려니 하라고 말하려던 참이었다. 이때 철쭉 님은 내가 입을 떼기 전에 얼른 말했다.
“집안이 그 지경에 이르렀을 때 당신은 몇 살이었으며 무엇을 하고 있었소?”
“그 당시 스물여섯 살이었던 저는 군대에 다녀와서는 성직 생활에 뜻을 두어 수련 받던 중이었습니다.”
“집안이 그렇게 풍비박산 났을 때, 사지가 멀쩡한 당신은 이상이나 좇았는데 뒤늦게 무슨 낯으로 고생한 형수를 못 마땅해하시오?”
이런 말을 들은 그의 얼굴은 순식간에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러면서도 자기도 힘든 수련 과정을 거치면서 형님 면회를 꼬박꼬박 다녔다고 했다. 그러나 그런 말이 어설프다는 것을 알았는지 그의 말에는 힘이 빠져있었다. 철쭉 님 역시 더는 말을 건네지 않았다.
불과 몇 마디에 불과했지만 이미 그는 무너지고 말았다. 그렇게 5박6일 집단상담을 일정을 마치고 석별의 정을 나누느라고 시끌벅적할 때도 그 성직자는 여전히 얼굴을 벌겋게 달군 채 멍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집단상담을 마친 나는 철쭉 님께 말했다.
“아무런 힘도 들어가지 않은 그 한마디에 그가 저토록 망연자실한다는 게 놀라워요.”
“석두가 아닌 이상 무슨 말을 하겠소! 부모에 대한 것이어서 이 말은 안 했는데, 애당초 그 부모가 처신을 잘못한 거지요. 그렇게 일이 터지면 나이 든 아버지가 감방에 들어가고 젊은 아들은 남아서 뒷일을 처리해야 하는데, 노인은 피신하고 젊은이는 갇혀 있으니 주변 상황이 얼마나 엉망진창으로 돌아갔겠소. 범처럼 나대야 할 젊은이가 모든 책임을 지고 갇혀 있었으니 그 형수가 얼마나 독이 올랐겠소! 그뿐만 아니라 그 아버지는 노인이기 때문에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감면을 받기도 했었을 것이오. ”
이렇게 응수하는 철쭉 님의 얼굴에는 쓴 미소가 지어졌다.
집단상담이 끝나고 일주일 정도 지났을 무렵 그 성직자가 내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다.
“언젠가 선물로 받은 고급 모시가 있는데, 곧 돌아오는 추석 명절 때 그것을 형수에게 선물할 참입니다. 저번에 저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일깨워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고마움을 전하는 그의 목소리는 한결 밝고 가벼웠다. 그런 전화를 받은 나는 마약보다 빠른 것이 정곡을 찌르는 말이라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아뿔싸’하는 순간 그는 그렇게 변한 것이다. 멋진 전환이 아닐 수 없다.
첫댓글 "정곡을 찌르는 말
멋진 전환
형수에게 선물"
좋은 상담 사례
감사해요,,,
성숙한 성직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좋은 사레라고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한국은 완연한 가을입니다.
아침저녁으로 소슬합니다.
그 형수는 시댁 식구들을 용서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저 성직자라는 시동생, 정말 어처구니 없을 만큼 상식적이지 못하네요. 사고체계 자체에 문제가 있지 않나 싶을 정도입니다.
두루두루 살피지 않으면 그렇게 치우치게 되는 듯합니다.
그것이 우리 인간이지 싶습니다.
@장성숙 그 성직자란 사람은 자신이 해야 할일인데도 회피하고 안한 일을 해낸 형수에 대해 마음의 부담이 있었기에 무언가 다른 일로 형수를 비난함으로서 자신의 무책임했고 불효했던 일을 덮으려는 심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전혀 떳떳치 못한 일이며 도대체 성직자란 사람이 어떻게 저정도로 자기성찰을 못 할까요? 그리고 그 시부모란 사람도 참 한심하신 분인 것 같습니다. 솔찍히 말해서 다들 사람취급하기가 어렵군요.
아버지가 중환자실에서 장기간 앓다가 돌아가시면 그동안 밤잠 못자고 아버지의 병상을 지키며 돌보던 맏아들과 맏 며느리는 잠잠히 죽음을 받아들이고 의사와 간호원에게 수고했다는 말까지 한답니다. 그리고 평소에 와보지도 않다가 그 때야 나타난 시누이와 시동생은 맏며느리와 맏형의 무성의와 의료진의 과실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비난을 하고 친척들에게 이런 일을 광고하고 다닌답니다. 이런 일은 돌아가신 분이 유산이라도 남긴 것이 있으면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난답니다. 나는 이런 일을 실제로 목격한 일이 있는데 바로 매형이 과로로 순직하셨을 때였습니다. 그 때 그 광경을 목도한 몇 사람이 분개해서 우리 누이에게 투덜거리며 항의하는 그 시동생을 두들겨 패려는 것을 누이가 말렸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