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경학장님의 카톡에서]
개구리 부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개구리 아내는 알을 잔뜩 낳고는 떠나가 버렸다.
남편 개구리는 알들을 입에 가득 넣고
그 알들을 혼자서 키우기 시작했다.
알들을 입에 넣은 개구리는, 먹을 수도 노래를 부를 수도 없었다.
노래도 안 하고 먹지도 안하는 것을 본
친구 개구리들은 재미가 없다고 하면서
하나씩 떠나기 시작했다.
남편 개구리는 어느새 외톨이가 되었다.
남편 개구리는 알들이 부화를 하게 되면
이 외로움도 사라질 것이라고 믿었다.
귀여운 새끼들 하고 오순도순 살면서 아빠로서 대장 노릇도 할 수 있고, 외롭지도 않고 더욱 재미있게 살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개구리는 그때를 생각하면서 외로움과 불편함을 참고 견디었다.
마침내 알들이 부화되어 올챙이가 되는 날, 남편 개구리는 즐겁게 입을 벌려 올챙이들을 쏟아 내었다.
그리고 그들이 곁에 머물며 그 동안의 외로움을 보상해 주리라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올챙이들은 개구리의 입밖으로 나오는 순간 소리치며 모두들 바깥세상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아빠 개구리는 어이가 없었지만 붙잡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남편 개구리는 다시 외롭게 홀로 남게 되었다.
늙어서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삶은 어차피 외로움 속에서 이루어진다. 고독은 누구나 운명적으로 감당해야 하는 삶의 조건 인지도 모른다.
외로움을 피하려고 하면 더욱 외로워지는 게 우리 인생이다.
외로움을 극복하려면 외로움에 익숙해지는 수밖에 딴 도리가 없다
불란서 파리에는 한집 건너 독신이라고 한다. 그 사람들은 배우자없이 혼자 살면 외롭지만, 자유가 더 좋아 결혼은 안 한다고 한다. 차라리 고독한 자유를 즐기면서 산다는 것이다.
한국도 이와 비슷한 사회 모습으로
변질되어 가는 걸 보게 된다.
옛날엔 가족이 삼대가 한 지붕밑에서 산다.
가장의 권위와 체통을 지키면서 손주들의 재롱도 받고 살았으나, 요즘 가족은 핵가족화로 분해되어 모두들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다.
18세기, 미국의 프랭클린이라는 사람은 그래도 딸을 둔 부모는 낫다고 했다.
아들은 결혼과 동시에 잃게되지만, 딸은 마음만이라도 부모 곁을 떠나지 않고, 고분하게 부모를 섬겨서 좋다는 것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사는 모양은 별반 다르지 않았는가 보다.
아들딸들이 시집장가를 가 버리고 나면
늙은 내외만 남든지, 아니면 혼자서 남은 세월을 살아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가끔이라도 자식들의 전화나 만남으로 늙은 부모로서는 삶의 이유로 삼을 수 있다. 어쩌면 감지덕지 해야 한다.
노인들은 독백처럼 중얼거린다.
키울 때 자식이지, 키우고 나면 다 그만 이라는 것이다. 차라리 이것이 진리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인생은, 과거나 미래나 그렇게 흘러가기 마련이 아닌가 한다.
인생은 외롭고 고달프다지만 늙으면 더욱 외롭고 쓸쓸해 지는가 보다.
나이가 들수록 주위 사람들을 따뜻하게 사랑하고, 좋은 친구를 사귀면서 낙천적으로 살 수 있다면 노년의 삶이 조금은 좋아질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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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
□찬모(饌母)의 눈물□
◇운우지정◇(雲雨之情)이란?
남녀간에 육체적 사랑을 뜻한다.
이 대감댁 하인과 하녀들은 주인 내외를 하늘처럼 섬긴다.
주인은 인품이 훌륭해 잘못한 일이 있어도 눈감아 주거나 곱게
타이르지 고함 한번을
치지 않는다.
하인, 하녀들이 짝지을 나이가 되면 이리저리 중매를 해서 혼인을 성사시키고
넓은 안마당에 차양막을 치고 번듯하게 혼례식을 올려 준다.
허나 이대감
내외가 가슴 아파하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열두살 때 이 집에 들어와 이십년이 넘게 부엌일을 하는 찬모를
서른셋이 되도록 시집을 못
보낸 것이다.
얌전하고 일 잘하고 입이 무거운 찬모는 얼굴을 빼고는 모자람이
없는 색싯감 이건만~
장가 오겠다는 총각이 없었다.
어느날,
독실한 불교신자인 안방마님이
9일 기도를 드리러 30리나
떨어진 유하사로 떠나던 날,
*유하사(遊夏寺)
안동시 와룡면 가구리79에
있는 절
저녁나절 부터 좌르륵 좌르륵
퍼붓던 장맛비는 밤이 깊어지는
데도 그칠 줄 몰랐다.
사랑방에 불이 켜져 있으면 찬모는 밤참을 챙겨 드려야 한다.
“나으리, 밤참 가져왔습니다.”
“들어 오너라.”
찬모는 참외를 깎아 사랑방 문밖에
서 있다가 이대감의 말에 흠칫 놀랐다.
보통 땐 이대감이
“알았다” 하면
밤참을 내려놓고 돌아섰는데,
그날 밤은 들어오라는 명이 떨어진 것이다.
찬모가 조심스럽게 들어가 참외 쟁반을 놓자
이대감이 후~~~’ 하고
촛불을 꺼 버렸다.
슬며시 찬모의 허리를 끌어당기자
그녀는 저항하지 않고
부드럽게 이대감의 품에 안겼다.
옷고름을 풀고
치마끈을 풀고
속옷까지 다벗기고 난후
찬모를 보료 위에 눕힌 후 이대감도 훌훌 모시적삼을 벗어 던졌다.
“아, 네 몸은 비단처럼
매끄럽구나.”
이대감이 가쁜 숨을 쉬며
탄성을 흘리자
발가 벗겨진 찬모는 이대감 품으로 파고들었다.
탱탱하게 솟아오른 앞가슴을
훑어내려간 이대감의 오른손이 무성한 숲을 헤치자
벌써 옥문(玉門)은 흥건히 젖어 있었다.
이대감의 단단한 양물이 천천히
옥문 속으로 들어가자
“아!” 찬모가 숫처녀임을 알리는
가느다란 비명을 질렀다.
이대감의 절구질에 가속도가 붙더니
마침내 큰 숨을 토하고
쓰러졌다.
옷을 입으며 찬모는 흐느껴 울었다.
“내가 못할 짓을 했구나.
이대감의 말이 떨어지기 전에
찬모가 말했다.
"나으리, 기뻐서 솟아나는 눈물 입니다.
소녀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제 절을 받으십시오."
어둠 속에서 찬모는 이대감에게
큰절을 하고 물러났다.
안방마님이 9일 기도를 간 사이 찬모와 이대감은 매일 밤
폭풍을 일으켰다.
안방마님이 돌아왔다.
며칠 후 찬모가 안방마님 앞에 꿇어 앉았다.
“마님은 저를 친자식처럼 보듬어 주셨는데 •••
저는 마님을 배신 했습니다.
평생을 두고 속죄하겠습니다"
"찬모를 구하는 대로 저는 떠나겠습니다."
안방마님이 빙긋 웃더니 찬모의
손을 잡았다.
안방마님이 자초지종을 털어
놓았다.
사연은 이렇다.
어느날 밤, 이대감이 안방을 찾았다.
부인과 운우지정
(雲雨之情: 남녀간에 육체적 사랑)을 나눈 후 안방마님이 말을 꺼냈다.
“대감!
친구분들께서는 하나같이 첩을 두는데 대감께서는 한 눈을 팔지 않고
저만 찾으시어 고맙기 그지없습니다만,
저도 이제 사십대 중반입니다.
한평생 대감의 사랑을 듬뿍 받았으니
대감께서도 친구들처럼 젊은 씨앗을 만드십시오"
"쓸데없는 소리"
“대감!”
안방마님이 설득해서
대감의 반승낙을 받고 일부러 9일 동안 집을 비웠던 것이다.
사연을 듣고 난 찬모는 안방마님의
치마에 엎어져 오래도록 울었다.
안방마님은 찬모를 고갯너머 뒷동네로 세간을 내 주었다
이 대감은
가끔씩 그 집에 들렀다.
이듬해 찬모는
달덩이 같은 아들을 낳았다.
이 이야기는 안방마님의 속깊은
뜻이 감동을 주는 옛날
이야기 입니다
지혜있는 안방 마님의 처신이
우선 우리들의 마음을 울리네요
그리고 첩을 거느리지 않고
오직 자기만 사랑해준 이대감 에게
시집 못가는 찬모를 수발하게 함으로써
이대감이 별도의 한눈을 못팔게
하는 안방마님의 지혜가
감동을 줍니다
내가 사랑한다고
나혼자 독차지 하려다가
어여쁜 색시를 첩으로 맞이하여
영원히 이대감을 빼앗기는것 보다는
마음씨 예쁘고
남자라고는 전혀 모르는 찬모를 시앗으로 정해 줌으로써
나도, 너도, 대감도,
서로 행복하게 산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닫고 신방을 꾸며준 안방마님의 계략이 모두에게 幸福을 선사하고
마음을 푸근하게 하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욕심은 항상 화를 부르는 것"
입니다. 또한 모르는 것을
안다는 것도 즐겁고 행복한 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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