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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신라의 달밤 애절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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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절양(哀絶陽) -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한국 한시 감상 고전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보니 한국과 중국의 한시를 많이 읽게된다. 수준이하의 천박한 일본작품은 시간을 낭비하면서 읽을 가치가 없다. 한시를 서예작품화 하다보면 서정성이 뛰어난 시를 고르게 되고, 그중에서도 내 취향에 맞는 한시를 가지고 작품으로 쓰게된다. 추사 김정희의 '함벽루(涵碧樓)', 고운 최치원의 '호중별천(壺中別天)', 남명 조식의 '서리황강정미(書李黃江亭楣)', 퇴계 이황의 '촉석루(矗石樓)', '물리(物理)의 극처(極處)에 이르지 않음이 없음을 변론한 존재(存齋)의 시를 변론하다.' 중국의 한시를 쓰고 있다. 시의 특성상 대부분이 서정시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특별히 사회성을 가진 한시도 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애절양이란 한시를 읽고 전율한적이 있다. 이 시를 쓴게 1803년이고, 시를 쓴 배경에 대해서 자세하게 기록하고있다. 조선의 르네상스 시기라고하는 영정조 시대가 끝나자마자 조선이라는 나라가 이토록 망가진것인지, 아니면 이전에도 이런일이 있었던것인지 의문스럽다. 정조(1752~1800)가 죽고, 다산 정약용(1762~1836)은 1801년부터 1818년까지 유배생활을 한다. 애절양은 유배 초기에 쓴 시이다.
애절양(哀絶陽) - 양근을 잘라버린 서러움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蘆田少婦哭聲長(노전소부곡성장) 노전마을 젊은 아낙 그칠 줄 모르는 통곡소리 哭向縣門號穹蒼(곡향현문호궁창) 현문을 향해 가며 하늘에 울부짖길 自古未聞男絶陽(자고미문남절양) 남자가 그 걸 자른 건 들어본 일이 없다네 舅喪已縞兒未澡(구상이호아미조) 시아버지는 삼상 나고 애는 아직 물도 안 말랐는데 磨刀入房血滿席(마도입방혈만석) 칼을 갈아 방에 들자 자리에는 피가 가득 自恨生兒遭窘厄(자한생아조군액) 자식 낳아 군액 당한 것 한스러워 그랬다네 閩囝去勢良亦慽(민건거세양역척) 민땅 자식들 거세한 것 그도 역시 슬픈 일인데 生生之理天所予(생생지리천소여) 자식 낳고 또 낳음은 하늘이 정한 이치기에 豪家終歲奏管弦(호가종세주관현) 부호들은 일년내내 풍류나 즐기면서 客窓重誦鳲鳩篇(객창중송시구편) 객창에서 거듭거듭 시구편을 외워보네 [주]잠실음형 : 남자는 거세(去勢)를 하고 여인은 음부를 봉함하는 형벌. 바람이 통하지 않는 밀실에 불을 계속 지펴 높은 온도를 유지시키는 방이 잠실(蠶室)인데, 궁형(宮刑)에 처한 자는 그 잠실에 있게 하였음. 《漢書 武帝紀》 당(唐) 나라 때에 그곳 자식들을 환관(宦官)으로 썼기 때문에 형세가 부호한 자들이 많아 그곳 사람들은 자식을 낳으면 곧 거세를 하여 장획(臧獲)으로 만들었다고 함. 《靑箱雜記》 다산 정약용의 저서인 목민심서(牧民心書) '첨정(簽丁)'에 애절양이란 시를 쓴 동기가 실려있다. "이것은 가경 계해년(1803) 가을에 내가 강진에 있으면서 지은 것이다. 그때 갈밭에 사는 백성이 아이를 낳은 지 사흘 만에 군적에 편입되고 이정이 소를 토색질해 가니, 그 백성이 칼을 뽑아 자신의 양경을 스스로 베면서 ‘내가 이것 때문에 이러한 곤액을 받는다.’ 하였다. 그 아내가 양경을 가지고 관청에 나아가니 피가 뚝뚝 떨어지는데, 울기도 하고 하소연하기도 했으나, 문지기가 막아 버렸다. 내가 듣고 이 시를 지었다." 조선후기의 군정(軍政)이 이토록 심각하고도 문란했던것은 조정이 부패하고 관리가 부패한 탓이었다. 다산 정약용은 이런 부패를 청산하고 개혁하지 않으면 '조선은 반드시 망한다.'고 했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보자. 권력이 부패하고, 관리가 부패하고, 돈있는자가 부패한 나라가 되었다. 조선후기의 상황과 너무도 닮았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명심할 지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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