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드기에 대한 공포
장성숙/ 극동상담심리연구워, 현실역동상담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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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상담을 받는 여성은 차분하면서도 사려 깊은 인상을 주는 사람이다. 그녀의 남편은 사회적으로 승승장구한 사람인데, 그녀는 이러한 남편과의 관계에서 외로움을 탔다. 일찍이 친정아버지가 사업을 하다 사위에게 손해를 입히는 바람에 알게 모르게 부부 사이는 썰렁해졌다. 이미 아이를 두었던 그녀는 이러한 손해를 메꾸는 데 이바지하고자 나름으로 열심히 일하며 숨죽이고 살았다.
마침내 빚을 다 갚게 되었을 때 친정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렸던 아이도 다 자랐다. 이런 상황에서 의지처를 찾아 성당에 다니다 인간관계에 회의를 느꼈던 그녀는 나를 찾아왔고, 그런 회의가 어느 정도 진정되었어도 상담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기로 하고 나와의 만남을 이어갔다.
최근 들어 높은 습도와 함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바람에 피부병을 앓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이런 와중에 유달리 벌레를 무서워했던 그녀가 어느 날 진드기에 물렸다. 이때부터 그녀는 진드기 박멸을 위해 대대적인 집 안 청소에 나섰는데 그 기간이 두 달 가까이 이어졌다. 이러는 과정에서 옷장을 뒤엎는 것은 물론 침구까지 다 바꾸자, 주말에나 상경하던 남편이 심각성을 느꼈는지 그녀를 살피며 이야기 좀 하자고 진지하게 나섰다.
무심하기 이를 데 없던 남편이 그렇게 나오더라며 통쾌하다는 듯이 말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그동안 그녀가 피곤하도록 진드기 박멸에 나서는 것을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냈던 나는 정신을 바짝 차렸다. 그리고는 ‘뭐 때문에 그녀가 그토록 진드기 박멸에 매달렸을까?’ 하며 그녀의 역동을 헤아린 다음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책임을 다하며 애지중지 키웠던 아이가 이제 곧 결혼해 품을 떠나는 것도 헛헛한데, 야속했던 남편이 곧 퇴임해 집으로 돌아온다고 하니 이중으로 힘이 드시는가 봅니다.”
이런 해석에 파편들이 맞춰지는지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그동안 애착 대상이었던 딸은 곧 떠나고 자기중심성이 강한 남편하고만 지내야 한다는 사실에 자신이 적지 않게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을 마주할 힘이 없으니까 진드기에게 온통 주의를 돌리며 피했던 자신의 나약함을 비로소 마주한 것이다. 이윽고 그녀는 내게 물었다.
“어떻게 하지요?”
“지금은 막막해도 막상 맞닥트리고 보면 별 게 아니라고 여겨지지 않을까요?”
“그럴까요? 서로의 결이 너무 달라서….”
“이 세상에 자기와 딱 들어맞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그런 차이, 즉 다양성을 감내하며 사는 게 인생이지 않을까 해요.”
“......”
내가 하는 말을 선뜻 수용하기 어려웠는지 그녀는 침묵했다.
이러한 그녀에게 나는 다시 말했다.
“너무 두려워하거나 걱정하지 마세요. 상황은 늘 변화하며 흘러가게 마련이어서 미래는 지금 생각한 대로 펼쳐지지 않을 테니까요. 그냥 오늘 할 수 있는 것에나 열중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지요?”
“그럼요. 남편이 자신과 잘 통하지는 않는 게 아쉽긴 해도 어쩌면 그것도 욕심이지 않을까 해요. 그리고 남편도 그 정도면 수준급이니까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남편이 외도를 일삼는 것도 아니고 경제적으로 무능하거나 폭력적인 사람도 아닌 것을 아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울러 우리는 늘 변화하며 살아가니까 지금 생각한 대로 미래가 전개되지 않으리라는 것에 위안을 얻는지, 그녀는 다시 눈물을 글썽이며 이렇게 말했다.
“제가 교수님을 찾아왔던 게 아주 잘한 거 같아요. 해주신 말씀을 잘 곱씹도록 할게요.”
그녀가 돌아간 뒤, 나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변하게 마련이라는 부처님의 말씀에 다시금 경의를 표했다. 어떤 실체가 있는 게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시시각각 구현될 따름인 삶을 살아가면서 미리 예단하고 걱정할 필요가 없음을 다시 깨달았다. 수많은 조건, 즉 인연이 어떻게 변화될지 모르므로 그저 현 순간을 열심히 사는 게 우리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다졌다.
첫댓글 오늘도 평안하세요..
모든 관계에서 화평을 이루며 살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정신적으로 강건해야 겠지요.~~~
이제 곧 핼로윈데이 이지요?
좋은 시간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한국은 단풍의 절정을 향해 치달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