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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나무아미타불 십대발원문
김호성
문 : 「나무아미타불 십대발원문」을 짓게 된 인연은 어떤 것입니까?
답 : 인연은 야나기 무네요시 선생의 『나무아미타불』이 번역 출판된 것입니다. 10년 걸린 불사를 마치면서, 이제 '총알'이 준비된 만큼 앞으로 남은 일들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해 보면서, 정리한 것입니다.
문 : 그럼, 「나무아미타불 십대발원문」에 담긴, 앞으로 남은 일들은 어떤 것들입니까?
답 : 예, 그것이 바로 「나무아미타불 십대발원문」을 이루고 있는 중요한 불사들입니다.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됩니다.
제1원 --- 수지(受持)
제2원 --- 독송(讀誦)
제3원 --- 해설
제4원 --- 법보시
제5원 --- 번역
제6원 --- 연구, 세미나
제7원 --- 인재양성
제8원 --- 재보시
제9원 --- 염불
제10원 --- 묘호인의 삶
이 열 가지 일을 하는 것이 바로 『나무아미타불』이라는 이름의 책을 내고 나서 해야 할 후속작업이자, "나무아미타불"이라는 육자명호와 관련한 불사들이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바로 앞으로 제 여생 동안 실천해야 할 인생계획이기도 하고, 동시에 이 "나무아미타불" 신앙에 동참한 길벗들이 다 지켜야 할 청규(淸規)라고 할까요, 권계(勸戒)이기도 합니다.
문 :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을 해주십시오. 수지는 무슨 말입니까?
답 : 제4원까지는 전통적인 경전신앙에서 늘 하던 말입니다. 수지는 책을 받아서 지닌다고 하는데, 곧 구입해서 갖고 있겠다는 말입니다. 독송은 갖고 있는 책을 소리 내어 읽거나(독), 소리 내지 않고 읽는 것(송)을 말합니다. 해설은 그 의미를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전통적으로는 '서사(書寫)'라는 말이 들어갔습니다. 옛날에는 인쇄술이 발전하기 전이니까, 책이 한 권 있으면 빌려서 베껴 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책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미 책이 인쇄되어 있으므로,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 것이지요. 그 대신에 이미 인쇄된 책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법보시를 하게 됩니다.
문 : 그럼 제5원부터는 전통적인 경전신앙에서는 언급하지 않는 것이었습니까?
답 : 예, 그렇습니다. 실제로 이 『나무아미타불』이라는 책에 수많은 정토관련 경론이나 어록이 인용됩니다. 등장합니다. 그것들을 다 우리말로 옮겨야 합니다. 물론, 저로서는 이 『나무아미타불』 하나만 해도 정토신앙의 알파와 오메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알파와 오메가 사이에 수많은 어록이 있습니다. 이를 우리말로 옮겨서, 널리 읽도록 하고, 읽으려는 분들의 선택폭을 넓혀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이제 우리의 남은 일입니다.
문 : 그 책들 중에서 시급히 번역이 필요한 경우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답 : 제일 시급한 것은 『탄이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우리나라에서 두 번 번역되었습니다. 1997년에 경서원에서 한 번 나왔고, 2008년에 지식을 만드는 집이라는 출판사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후자의 경우에는 300부를 한정판으로 만들었다고 하고, 전자의 경우에는 말이 고투입니다. 그래서 새롭게 널리 읽힐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문 : 제6원 연구를 통한 세미나는 왜 굳이 필요할까요?
답 : 첫째는 염불에 대한 말이 많이 떠돌아다녀야, 사람들이 그 말들의 어느 하나를 붙들고 신앙하게 됩니다. 그런데 현재 말을 만들어 내는 데는 학자들의 힘을 빌어야 합니다. 학자들은 그런 발신(發信)을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신앙적인 언어는 못 되더라도 말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장소로 보더라도, 절이 아니면 대학에서 염불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절에서 염불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제일 자연스럽습니다만, 저의 경우에는 현재 절에 아는 스님들에게 부탁해서 “염불이야기 좀 하게 해 주세요” 라고 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물론 이 작업도 해야 합니다만, 아무래도 우선 대학공간을 빌리는 것이 수월합니다. 또 대학의 학자들을 동원해서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현재도 정토와 염불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별로 없긴 합니다만 ---. 그래서 다음 제7원에서 인재양성을 발원하였습니다.
문 : 왜 인재양성을 해야 합니까?
답 : 너무나 당연한 것을 묻고 있습니다. 인재가 양성되지 않으면, 법의 미래는 없습니다. 지금처럼 제 혼자 이야기하다가 말겠지요. 저 혼자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정토를 이야기할 수 있게 해야 더 많은 사람들이 염불을 하게 될 것입니다. 저희 세대가 다 극락으로 가고 나면, 이 사바세계에 남아서 또 염불법문을 넓혀줄 사람을 길러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법은 죽고 망하고 말겠지요. 그래서 인재양성을 해야 합니다.
문 : 어떻게 하면 인재가 양성됩니까?
답 : 그래서 독서회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절도 없고, 학교도 없습니다. 강의실도 없고, --- 오직 독서회라는 프로그램뿐입니다. 강의실을 빌리든, 까페에서 모이든 --- 모여서 공부를 하다보면, 발심(發心)하는 젊은 인재들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른들은 이를 위해서 역할을 해야 합니다. 제8원에서 재보시를 말하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문 : 사실, 그것은 좀 그렇지 않습니까? 왜 남에게 돈을 쓰라고 하는 것입니까?
답 :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법보시가 되었든 인재양성이 되었든 재정이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습니까?
문 : 예, 인정합니다만 ---.
답 : 그럼, 그 재정은 누가 제공합니까? 지금 이 「나무아미타불 십대발원문」을 읽는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동참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불사는 지속될 수 없습니다. 더욱이 불자로서 보시바라밀은 여섯 가지 바라밀 중에서 첫째이고, 그 보시에는 앞서 말한 법보시와 재보시가 있지 않습니까? 그 둘을 다 당연히 해야지요. 제가 볼 때, 우리 불자들은 근래 보면 재보시를 잘 못하는 것 같습니다.
문 : 그래도 돈을 내놓아라, 하는 식으로 들릴 수 있거든요?
답 : 아, 그렇게 들립니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이야기를 안 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듣는 것은 듣는 사람의 자유이고요. 법을 설하는 사람은 원론을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재보시를 강조하는 것은 원론입니다. 더구나 일본불교사독서회를 시작하면서부터 많은 분들이 재보시를 해주셔서 감사하게도 이 일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꾸준히 재보시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재보시를 하지 않고서 재보시하자고 하면 문제겠지만, 아직까지는 일본불교사 독서회나 정토신앙을 위해서 저보다도 더 많이 재보시를 한 분은 제 주변에서는 아직 없습니다. 그러므로 제8원과 관련한 일체의 오해는 다 사양합니다. 재보시하는 분들은 그런 의혹이나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명심하십시오. 재가자가 재보시 하는 것은 바로 권리이자, 의무입니다. 초기불교교단에서부터 그렇게 되어 왔습니다. 그것이 재가불자의 역할입니다. 그를 위해서 재가자는 노동을 하고 돈을 벌고 있는 것입니다. 대승불교는 바로 그러한 불교입니다. 남에게 회향하고 나누기 위해서 노동하고 돈을 버는 불교, 그런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이 대승의 재가자들입니다. 더욱이 반드시 그 재보시를 제게 해달라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스스로 『나무아미타불』 책 한 권을 구입해서, 지인에게 선물할 수 있습니다. 그럴 경우도 재보시에 해당합니다.
문 : 아홉 번째 염불과 열 번째 원 묘호인의 삶은 무엇입니까?
답 : 이 『나무아미타불』에서 말하는 바는 간단히 말하면 "나무아미타불 염불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염불을 일상생활화해야 합니다. 야나기 선생은 말씀하셨지요. 생활 속의 염불이 아니라, 염불 속에서 생활이라고 말합니다. 가끔 아미타불을 청하고 부르고 하는 것이 아니라, 늘 아미타불과 함께, 아미타불이 지켜보는 가운데 생활하는 것, 그것을 염불생활이라 합니다. 그렇게 하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묘호인의 삶은, 염불을 하면서 동시에 다른 이웃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묘호인이라 합니다. 염불하는 사람, 극락 가는 사람, 아미타불 옆에 서있는 사람, 아미타불을 등 뒤에 업고 다닐 사람이라는 자각을 하게 되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행하는 삶의 자세가 어떠해야 할지 답이 나올 것입니다. 그것이 묘호인의 삶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문 : 왜 열 가지 원을 맹서하기 전에 "나무아미타불"을 하게 합니까?
답 : 그야말로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할 수 있도록 사전에 배치하였습니다. 우리는 염불하자는 주장을 하는 것이므로, 그렇게 하도록 배치하였습니다 또 전통적으로 늘 발원하기 전에는 먼저 귀의하게 했습니다. 귀의 이후에 발원입니다. 우리의 경우, 그런 의미에서도 아미타불에게 귀의를 맹서하는 것이 발원 이전에 올 필요가 있지요. 또 「권진의 노래」에서는 후렴구로 뒤에 오지만, 여기 「나무아미타불 십대발원문」에서는 사전에 하도록 해서 서로 다르게 했습니다.
문 : 왜 「나무아미타불 십대발원문」을 혹은 「권진발원문」이라고 하였습니까?
답 : 좋은 질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해주셨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제1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나무아미타불,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선생님의 『나무아미타불』(모과나무,
2017)을 저희 스스로 지니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들도 지니고 있도록 널리 권진(勸進)하
겠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많은 발원문에서는 이렇게 발원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1. 나무아미타불,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선생님의 『나무아미타불』(모과나무,
2017)을 저희 스스로 지니고 있겠습니다."
이 둘 사이의 차이가 분명히 보이지요? 우리 스스로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권진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함께 말하고 있기 때문에 「권진발원문」이라 합니다. 또한, 이 열 가지 실천덕목들은 다 우리가 『나무아미타불』이라는 책을 권진하면서 하는 행위이고, "나무아미타불"이라는 명호를 권진하는 데 필수적으로 따라오는 일입니다.
문 : 「권진발원문」은 지금까지 드물었던 것 같습니다만, 혹시 힌트를 얻은, 선행(先行)하는 발원문이 있습니까?
답 : 없습니다. 발원문으로서는 모범을 삼은 것은 없습니다. 다만, 신란 스님 말씀에 "자신교인신(自信敎人信)"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신란 스님 스스로 믿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믿게 하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때 '교'는 사역동사 역할을 합니다. 교인신(敎人信)은 ‘남으로 하여금 믿게 한다’라는 의미를 갖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말을 따라 우리도 “자념교인념(自念敎人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염불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염불하게 한다, 라는 말이지요. 또 "자권교인권(自勸敎人勸)", 즉 스스로 권진하면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권진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문 : 예를 들면, 오늘 처음 불교를 만나서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인데도 이 「나무아미타불 십대발원문」을 만나는 사람이라면 스스로도 입문 단계인데, 다른 사람에게도 "권진"하겠다는 발원을 한다는 것이 사실 무리 아닐까요?
답 :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불교에서는 그렇게 가르쳤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의 권진(=정토)불교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자, 보십시오. 아미타불이 서원을 세우는 것은, 아직 부처가 되기 전입니다. 부처되기 위해서 서원을 세웁니다. 그때 바로 남을 제도하겠다는 마음을 일으킵니다. 미리 중생제도를 염원하지 않으면, 나중에 부처가 된다고 해서 중생제도를 하신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중생제도를 염원하고 수행하여 성불하였기에, 성불 이후에 중생제도를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정토문에서는, 아미타불은 나의 성불과 남의 왕생을 동시적으로 추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입문 단계에서 바로 권진을 하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 권진심을 낼 때만이, 제대로 스스로의 수행길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 : 다 읽고 나서 "발원제자 (김호성) 합장"이라고 했습니다. 그 부분을 설명해 주십시오. 왜 괄호를 하셨습니까?
답 : ( ) 안에 김호성을 안 넣으면, 이 발원문의 저자가 김호성인지를 알 수 없습니다. "김호성 합장"이라고만 해놓으면, 그 발원문의 주인(=발원자)는 김호성만 됩니다. ( ) 속에 김호성을 넣은 것은, 이 발원문에 동의하는 분들은 자기 이름을 말하고서 합장하면 됩니다. 예를 들면 홍길동은 "발원제자 홍길동 합장" 이렇게 읽으시면 됩니다. 이렇게 자기 이름을 말씀하시는 분들은, 바로 이 발원문의 저자로서 그 분이 등극하는 것이 됩니다. 아미타불의 48원을 우리 모두의 원으로 삼아야 한다고 믿는 저로서는, 이 「나무아미타불 십대발원문」 역시 저 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서원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다만, 그 계기를 만들었을 뿐입니다.
문 : 언제 이 「나무아미타불 십대발원문」을 하면 좋습니까?
답 : 언제라도 하면 좋습니다. 외워야 합니다. 그래야 이 원력이 우리의 DNA 깊숙이 들어가게 됩니다. 사람이 보살로 바꾸게 됩니다. 묘호인으로 바뀌게 됩니다. 독서회나 법회와 같은 모임에서는 마지막에 이 원을 하면 좋습니다. 그러고 마칩니다. 지금가지 사홍서원을 해옵니다. 사홍서원은 야나기 선생도 말씀하셨지만, 총원(總願)입니다. 총체적입니다. 보편적입니다. 그러다 보니, 추상으로 흐르기 쉽고 의례화됩니다. 피부로 간절히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성할 일입니다. 그런데 이 발원문은 별원(別願)입니다. 개별적이고 특수한 원입니다. 구체적으로 정토의 발원문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염불자라면 이 「나무아미타불 십대발원문」으로 「사홍서원」을 대신해도 좋으리라고 감히 생각합니다. 저도 그렇게 할 생각입니다.
문 : 어떻게요?
답 : 네, 독서회든 법회든 시작할 때는 「권진의 노래」를 합송하고, 공부나 설법을 듣고서는 마칠 때 이 「나무아미타불 십대발원문」을 합송하는 것으로 회향하고자 합니다. 그렇게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다만, 이러한 발원의 내용에 여러분이 공감하신다면 말입니다.
문 : 그러니까, 이 발원문을 던져 주신 것은 또 우리에게 "나무아미타불" 신앙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는 것이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답 : 네, 그렇습니다. 그런 의미도 있겠습니다. 이 정도 발원문을 자신의 발원문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묘호인의 삶을 향한 한 걸음을 떼어놓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게 함께 저 아미타불의 나라로 힘차게 '앞으로, 앞으로' 나아갑시다.
문 : 감사합니다.
답 :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2017년 5월 7일 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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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수정본입니다.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