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만난 여인 3 / 김지명
아침에 문자메시지가 날아왔다. 오늘은 놀라지 않은 곳으로 가고 싶다고 적혀 있다. 그래서 해변으로 달려 간절곶 공원으로 가자고 문자를 보냈다. 알았으니 만남의 장소로 빨리 오라는 답장이 왔다. 서둘러 시내버스에 몸을 올려 만남의 장소로 갔다.
선녀 같은 여인은 일찍 나와 평화공원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만남을 아주 기뻐하면서 손을 꼭 잡으며 반가워하였다. 생각 같으면 양팔 벌려 포옹이라도 하고 싶지만, 지나친 행동으로 쌓여가는 우정이 물거품이 될까 걱정되어 악수로 인사를 하였다. 그리고 차를 가지고 오라는 말이 없어 버스로 왔다고 하였더니, 아! 그래요, 저도 안 가지고 왔는데 하면서 미소를 보이며 말꼬리가 흐려졌다. 그래도 눈치를 보아하니 갖고 온 것으로 보였는데, 택시를 타자고 하였다. 그 순간 놀란 토끼처럼 굳은 자세로 뭐라고요? 그 멀리까지 택시를 타자고 하였습니까? 하고 반문하자, 여인은 손으로 입을 가리고 호호하고 웃으면서 농이었습니다, 하면서 팔짱을 끼고 잡아당기듯 차가 있는 곳으로 데려갔다. 보이지 않은 곳에 차를 감춰놓고 나를 놀라게 하려고 계획한 것이었다. 자동차 가까이 갈 때 열쇠를 주면서 오늘도 잘 부탁합니다, 하면서 조수석으로 가서 앉는다. 이젠 몇 번 만났으니 조금 친숙해지긴 했지만, 아직은 서로가 많이 조심하면서 탐색하는 기간이다.
승용차 안에서 여인을 바라보면 만남의 반가움에 악수한다고 손을 잡을 때 유아 손처럼 부드러워 잡는 순간마다 느끼는 촉감은 아주 좋았다. 손이 이렇게 부드러운데 몸은 얼마나 부드러울까 하고 얼굴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보얀 피부는 티 없이 말고 깨끗하며 달걀형으로 순수한 한국형 미인으로 보이기 때문에 세상의 남성이라면 누구나 가까이하고 싶은 여인으로 보였다. 그런데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내 앞에서 나를 잡고 있으니 행복 속에 취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하는 여인만큼 여인도 나를 멋진 남자로 보고 있을까 하는 의문도 있지만, 바람 같은 인연이 아니라면 비행기 타고 세상구경 하듯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삶이었으면 좋겠다고 기대와 실망을 반반 놓고 고심하고 있다. 친구처럼 영원히 머무는 인연이길 바라는 가느다란 희망의 물결이 일어나는 것은 아주 가까이 뜨겁게 다가오기 때문에 산불처럼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헛된 망상에서 벗어나 핸들을 꼭 잡고 광안대교를 지나 기장에서 일광 쪽으로 지방도로 따라 해변 도로로 여유 있게 드라이브를 즐기면서 가다가 경치가 좋으면 차에서 내려 사진을 찍을 때 사춘기 소녀 소년처럼 좋아하였다. 바다를 바라보면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가면서 유리 공장도 지나고 원자력 발전소도 지나 간절곶에 도착하였다. 많은 사람은 곳곳에 자리 차지하고 즐거운 한 때를 즐기고 있는데, 우리도 그곳으로 합류하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우체통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었고 등대에 올라 먼바다도 보았다. 그리고 모자 상이 있는 곳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의자에 나란히 앉아 대화하다가 여인은 몸과 머리를 기대고 호시절을 추억하면서 사랑을 고백한다.
처녀 시절에 처음으로 연정을 느낀 사람, 첫사랑으로 만나고 싶었지만, 용기가 부족하여 만나지 못하였다. 그리고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마음이 고운데 인상도 아주 좋아 사나이의 멋진 모습에 반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항시 마음속에 내 남자라고 생각하여도 한 번도 접근하지 못하고 멀리서 바라만 보면서 짝사랑하였다고 순박한 여인은 이제야 고백을 한다. 그리고 그때 결실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제부터 꽃을 피워보겠다고 하였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꽃봉오리에서 멈출 것이 아니고 만개한 후 향기는 영원히 풍겨주길 바란다고 했다. 그리고 소녀 시절의 꿈을 지금이라도 마음껏 펼쳐 보라고 했다.
여인은 친구 다섯 명과 함께 나에게 개인적으로 몇 번이나 등산안내를 부탁하였는데 기억나지 않는가? 라고 하였다. 아! 그 다섯 명 중에서 누군지는 몰라도 부탁받은 일이 있어도 취소하였기 때문에 기억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울산에는 대기업이 많아서 직장 여성이 아주 많아 등산한다는 현수막만 내 걸면 남자보다 2배로 몰려들었기 때문에 누구인지는 기억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70년대 연봉산악회라면 전국에서 알아줄 정도로 유명한 산악회였기 때문에 많은 산악인을 안내하고 인솔하였기 때문에 기억에서 아무리 뒤적거려 보아도 찾아내지 못하겠다고 했다. 여인은 과거야 어찌하였던 그때의 소원을 이루었으니 편히 잠잘 수 있을 거라고 하였다. 그럼 지금까지 잠도 제대로 못 잤는가? 하고 되물었다. 어쩌다 가끔 꿈에서 스쳐 가곤 하였지만, 말을 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항시 마음에 걸렸는데, 산행하면서 이런저런 대화 끝에 그때 그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기회가 왔으니 놓치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약속하였고 많이 기다렸다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헛된 망상으로 의심도 많이 하였다.
사랑 고백이 이어지는 동안 동쪽 바다의 무역선은 서쪽 바다로 멀어져 가고 있다. 하루가 너무 빠르게 지나가는 이 순간 시간을 잡고 있어도 영겁일 수는 없다. 여인은 간절곶에 처음 와보는데, 모자 상이 왜 여기에 있는지 궁금해 하였다. 간절곶의 모자 상은 신라충신 박재상 부인이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자녀와 함께 간절하게 기다렸다는 전설에서 유래하여 이곳에 이름이 간절곶이라 하고 모자 상도 만들어 두었다고 했다. 그리고 울산과 경주 사이 울주군 범서읍 척과리에 있는 치술령 산 아래에 박재상의 유적지가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애절하게 기다리다가 망부석이 되었다는 전설처럼 여인도 망부석이 될 뻔했는데, 우연히 만남이 이루어졌으니 아마도 우린 인연인가 보인다고 했더니 빙그레 웃으며 나의 손 꼭 잡으며 말한다. 인연은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하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등대 안으로 들어가 보자고 하였다. 여인은 빨판상어처럼 꼭 붙어 다니기를 좋아하여 항시 팔짱을 끼고 걸어야 하므로 발을 맞추어 걸어야 했다. 등대 위에서 먼바다를 내려다볼 때 옆에 있는 여인의 허리를 감싸주니 아주아주 좋아하였다.
간절곶을 멀리하고 집으로 오면서 나도 고백할 것이 있다고 하였는데. 무엇인가 하고 무지하게 궁금해하였지만, 다음에 말해주고 싶다고 해놓고 자동차를 돌려주고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