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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한 설 야
1
가을이다.
하늘은 수다쟁이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몰골을 고치는지 알 수 없다. 조각구름들이 파아란 높은 하늘을 미끄럽게 쏘다니며 득의(得意)의 군사처럼 거칠 것 없는 하늘에 마음싼 팔진도를 펴고 있다. 삽시간에 모였다가 금시 또 헤어진다. 어떤 때는 겹겹으로 쌓이고 해를 가려서 불시에 비가 멀어질 것 같기도 하다. 하나 변덕쟁이 구름은 오래 한 모양을 지키고 있지 않는다. 거미 새끼가 흩어지듯 또 헤어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높고 너그러운 하늘은 이 장난꾸러기들을 재롱바치 아들 손자쯤으로 보듯이 저 하는 대로 내버려 두고 있다.
마른 나무 잎사귀가 소리없이 떨어져 구른다. 무르익은 실과가 가지에서 떨어지는 것이나 별다를 것이 없는 자연스러운 일이요, 또 내년의 봄을 약속해 주는 일이언만 그래도 여기에는 사라져 가는 것의 가느다란 애수가 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결코 이 애수에 모래 머무르지 않는다. 실로 가을은―
사라지는 반면에서 새싹을 약속하는 가을의 감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파문이 많다. 비등점에 가까운 물같이 끓기 쉽고 빙점에 가까운 물같이 차지기 쉬운 것이다.
경수는 술이 잔뜩 취해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다. 가을의 애수와 흥취가 그에게도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그는 주의를 해서 걷고 있으나 가끔 웅덩이에 빠지는 것같이 다리가 터드렁 하며 눈이 팽그르 돌아간다. 겉으로는 그렇게 취한 것 같지는 않으나 속은 아주 곤드레만드레다. 위낙 기름기 쑥 빠진 그인데 오늘은 빈속에다가 다모토리 (소주)를 마시었으니까, 그나마 제딴은 첫사랑이어니 하는 다정한 여자의 손에서 기껏 마시었으니까 견디어 내는 장수가 있으랴……
복순이, 이 예쁜 여자가 플래시백같이 머릿속을 쏘다닌다. 얼굴도 도저하려니와 마음씨 고운 여자야! 나같이 허전한 사람을 알아보는 기특한 여자야! 그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좁은 골목이 많아지고 넝마전 행렬같이 남루한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득실거리는 자기 집 골목이 가까워 왔을 때 그는 자기의 아내를 생각하였다.
바가지 잘 긁고 또 요새와서는 강짜 속까지 활짝 트인 아내를, 무 뽑듯 아이를 잘 낳는 아내를, 그리고 가난과 아이 낳기와 바가지 긁기와 강짜에 험상궂은 주름살이 잡히고 처녀 시절의 애교가 악간 남았던 임가와 눈 언저리마저 이제는 우렷이 독살이 깃든 아내를 생각하였다. 아니 생각한 것이 아니라 그의 뜻과는 반대로 저절로 연해 떠왔다. 안 생각하려고 하건만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성가시게 떠오는 것이다.
술이 취해서 여느 때와 같이 몸서리까지는 나지 않았으나 그러나 눈을 홀기고 얼굴을 찌푸린 아내의 치명적인 표정을 생각하니 아닌게아니라 진저리가 나고 약간 다리가 떨렸다. 그리고 콧방울에셔 시작되어 입가에까지 패어진 굵은 주름에 에워싸인 좀 내밀린 아내의 입에서 우박같이 쏟아질 우악스런 말소리와 한바탕 단병접전을 할 생각을 하니 제 몸이 너무 약한 것 같기도 하였다.
아내도 무리는 아니다. 뼈대가 성하고 남 가지는 힘도 있는 멀쩡한 사람이 아무 하는 일 없이 빈둥빈둥 놀고만 있으니 어찌 가난한 아내의 심사가 편하랴. 그나마 그럭저럭 살아갈 수나 있으면 또 모르겠는데 남편이 벌지 않으면 아내와 숱한 어린 것들이 배를 곯을 수밖에 없는 그들의 처지니 어찌 그저 보고 있으라!
“왜 나만 가지고 이러는 거야? 너도 왜 업이 있것다, 손이 있것다, 발이 있것다 왜 좀 못 버느냐?”
하고 남편은 짜증을 내고 홱 나가 버리면 진종일 안 들어오고 때로는 고주망태가 되어 가지고 모두들 잠이 든 틈에 살짝 들어와서 한편 구석에서 꼬부리고 잔다.
아내의 속이 편할 리가 있으랴!
한데 요새는 또 갈본지 칠본지 오도깨비 같은 화냥년한테 미쳐서 얼바람 맞은 녀석처럼 둥둥 떠다닌다.
오늘 아침에도 남편은 한바탕 싸우고 나갔다. 감자깨나 남은 것을 오늘 아침까지 다 끓어 먹고 나니 저녁은 아주 한지다. 아무리 구변이 좋아도 어린 자식의 주린 배를 속여 내지 못하는 아낙이어니 하는 수없이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을 수밖에……
하나 남편에게도 별수가 없다. 아내에게 되넘겨 씌우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 요새는 들에 오만가지 풀이 다 었것다, 어째 그거라두 가서 캐오지 못하느냐. 날에 조개바람이 들었느냐?”
하고 남편은 툭 튀어나가 버렸다.
그런 것이 진종일 감감한 채 벌써 석양이 되었다.
자기 집 앞 죽은 골목에 이르렀을 때에 경수의 걸음은 어쩐지 떠듬거려졌다. ‘대체 어떻게들 허구 있누. 무얼 좀 얻어 왔는가. 그래도 산 사람 입에 거미줄운 안 치는 법이니까! ……’ 하며 경수는 바자 틈으로 흘깃 집 안을 엿들여다보며 손바닥만한 마당에 쑥 들어섰다. 일부러 더 비틀거려 볼까, 아니 더 도저히 벙정같이 걸어 들어갈까…… 하나 이렇게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술기운이 보채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수의 어깨는 아까보다 처져 버렸다.
아낙은 보이지 않았으나 취중에도 실로 무서운 광경이었다. 정주 가마목에 모여 앉아 올망졸망한 다섯 어린것들이 열어 논 뙤창문 안이 얼른 보였던 것이다. 개중에도 맨 사랑하는 응석받이 막내딸이 금시 울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어니무어니 해도 이게 사람 죽이는 풍경이 아나냐……
어린것들이 한결같이 부엌마당 쪽으로 눈을 주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아내가 거기 있을 것도 또 아이들이 먹을 것을 조르고 있는 것도 추측할 수 있었다.
‘엄마, 아버지 왔다!’
하는 말소리가 아이들 얼굴에서 읽혀졌다. 그래도 아내는 내밀어 보지도 않는다. 흥! 무열 좀 마련했나…… 하는 생각이 순간에 경수의 머리에 왔으나 곧 다음 순간에는 보다 큰 짝벼락을 준비하는 아내의 선전 준비를 그는 생각하였다.
폭풍우 전의 짧은 침묵이 방게 같은 오막살이를 짓누르고 있다.
“야, 길순(막내딸)아, 엄마 없니?”
하고 경수는 일부러 흐늑한 목소리로 호기 있게 불렀다. 그래도 아내는 대답 없다. 복순이 화냥년의 집에 갔다 오면 늘 되지 않게 기분이 좋아서 엄마니 임자니 마누라니 하고 추스르는 것이 잔뜩 미워난 아내는 지금 부엌에서 얼굴에 무서운 무장을 차리고 있는 것이다.
막내딸 길순의 때묻은 얼굴에는 눈물이 씻긴 흰 자국이 남아 있다. 어린애들 뺨과 손등과 저고리 앞섶과 소맷자락에는 거먼 콧더데기가 들어붙어서 혹뚤같이 번들번들 빛난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격으로 어미, 아비 살림 싸움에 치가 떨리는 어린애들은 어머니와 아버지에게로 번갈아 시선을 보낸다. 그 얼굴에는 주림보다는 평화를 바라는 어린것들의 부자연한 아부가 어스름히 나타나는 것이다.
눈치 빠른 아홉 살 된 둘째 놈이 앞니 빠진 홍살문 같은 입을 삐죽 열며 어머니와 아버지의 벌어져 가는 사이를 꿰˙매려는 듯이 얕은 웃음을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보내고 있지 않는가. 얼마나 아픈 광경이랴. 경수는 부지중 머리를 돌려 버렸다.
아내는 아직도 말이 없다. 남편이 복순의 집에 갔다 왔을 것을 생각하면 사홀 굶은 범이 원님을 가릴 여지도 없는 것이지만 한편 그래도 혹시 남편이 돈이나 ㅗ왔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화전양양(和戰兩樣)의 태도를 그 어느 편으로 결정짓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유자도 나무련마는……
남편은 별안간 좁은 마루에 나자빠지며 청승맞게 노랫가락을 떼기 시작한다.
“돈 가져왔소?”
그때에 무중 아내의 게궂은 소리가 남편의 덜미를 때렸다.
경수는 대뜸 더수구니가 따끔했으나 그래도 못 들은 척하고 일부러 비린 목청을 길게 뽑으며 노래를 외친다.
“창피한 대루 돈이나 내놔요.”
“뭬?”
하고 경수는 그제야 게슴츠레한 눈으로 아내를 보며 빙긋 웃고는 아이들에게 보내듯이 목청을 높여 일부러 길게 노래를 뽑는다.
……유자도 나무련마는 한 가지에 둘씩, 셋씩…… 아니 한 가지에 넷씩, 다섯씩……
“흥!”
하고 아내는 어이가 없는 듯이 코를 분다.
한 가지에 넷씩, 다섯씩이란 노래는 자식들을 가리키는 말인 줄을 아내는 곧 알았다. 이 대구같이 자식을 잘 낳는 아내는 자식의 말을 들으면 어느 사람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깊은 애착을 느낀다. 그런데 더욱이 가정에 대하여 책임감이 없고 자식에게 대하여 애정이 열은 남편이 웃는 낯과 들뜬 목소리로 자식을 노래하는 데 대해서는 맺힌 마음의 한 매듭을 짐짓 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싸움은 있다가 할 셈하고 돈부터 내놔요. 글쎄 지금 때가 어느때요……”
하는 아내의 소리는 한결 부드러웠다.
“돈! 여보 돈이고 뭐고 노래나 부릅시다.”
경수는 푸르러지다가 검어질 듯하던 아내의 얼굴이 개어지는 듯함에 적이 안심도 되고 또 반갑기도 하였다.
“노래 ―― 노래―― 이쁜 사람한테 가서 하구료. 돈이나 내놔요…… 짝판국이 나서 동네방네를 웃기지 말고……”
“헌데 여보 마누라!”
“흥 마누라!…… 그따위 속창이 뵈는 소리는 하지두 말구 어서……”
“암, 마누라구말구. 조강지처요, 강짜지처요, 요조숙녀요, 그러구 또 바가지쟁이요…… 헌데 여보, 인제 아일랑 낳지 말고…… 아니 아이도 잘 낳는 솜씨고 허니…… 기왕이면 돈도 좀 낳아 보구료.”
“날더러 그러지 말구 돈 잘 빨아먹는 년보구 낳으라구료.”
하고 말하던 아낙은 제김에 다시 고불통이 치밀었다. 돈도 안 가지고 오고 온종일 복순의 집에 가서 엉치에 늘어져 있었을 남편을 생각하니 목대는 못 시들궈 놓는다하더라도 하다못해 얼굴이라도 썩 허비어 놓고 싶었다.
“얼굴에 붙은 것두 사람의 살일 테지. 사람의 살이면 붉어질 줄도 모른담…… 화냥년의 궁둥이에 처백혔다가 인제야…… 어린 자식들을 생각해 봐요, 생각해 봐……”
하고 탁 쏘아붙이는 아내의 머리에는 못박인 몇 가지의 아픈 기억이 다시 살아 왔다.
바로 엊그제다, 셋째 아이가 감기 든 것을 그대로 내버려 두어서 결국 폐렴이 되어 거의 죽게 되었다. 그래도 남편은 밤이 새도록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아내는 하는 수 없이 복순의 집으로 찾아가 보았다. 거지들이 거적을 뒤집어쓰고 웅크리고 있는 좁은 골목, 복순의 집 뒤창을 두드리며 남편을 불렀다. 남편은 그제야 비슬비슬 나왔다.
“왜 그래 ?”
“아이가 다 죽어 가요.”
“가만 내버려 두면 살아나는 수가 있어.”
“내버려 둬요? 죽어 버려도…….”
“죽으면 천만 복망지괘(千萬伏望之卦) 지.”
남편은 이렇게 내갈겼다. 그렇게 영악한 아내이지만 이 천도깨비보다도 더 인정머리없는 남편을 어찌하랴……
옛날에는 그래도 무슨 회니 무슨 모임이니 강연이니 대회니 하고 쏘다니느라고 허파에 바람이 든 허튼 장난은 하지 않았다. 하던 것이 웬 영문인지 그도 인재는 없어지고 모두들 거리의 방랑자로 술이나 마시고 신문 지국 같은 데 모여 앉아서 허튼 말이나 하고 턱을 처들고 넘어가는 해를 기다리기나 한다. 툼펜! 이리하여 남편은 가장 아름답지 못한 이 무리에 떨어지고 말았다. 방향을 찾지 못하고 어둠에 헤매기 시작한 남편은 스스로 또 어둠을 찾았다. 매음부에게로 갔다.
“우리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다!”
남편은 자기의 추태를 이렇게 합리화하려고 들었다.
아내가 가난을 한탄하그 짜증을 내면
“이년아, 그게 내 죄냐, 세상의 죄다. 나를 미워하지 말고 세상을 미워할 줄 알아라!”
하고 남편은 자기의 책임을 벗어 버리려 하였다. 하나 아내의 곧은 눈에는 남편이 벌써 미워해야 할 세상의 값없는 존재로 되어 버렸음을 어찌하라.
해는 떨어졌다. 아이들의 주림은 끝내 어버이들의 싸움에 대한 무서움을 물쳤다. 딸년은 마침내 배가 고프다고 엉엉 소리를 내어 울기 시작하였다. 아내의 마음은 요복전조르듯 죄어들었다. 하잘것없는 남편을 지금 박박 쥐어뜯고도 싶었다.
그러지 않으면 제 몸이라도 기둥에 탁 박질러 보고 싶었다. 자포자기가 된 것이다.
“돈 한푼도 못 얻어 오는 화상이 툭하면 여편네와 애들이나 때리구……밖에만 나가면 할말도 청청히 못 하는 주제에……”
“흥! 잘난 놈을 얻어 가려무나, 가!” :
남편은 좀더 허튼 나발을 불어야 할지 그렇지 않으면 그만 헤헤 웃어 버러야 할지 모르는 엉거주춤한 생각으로 혀꼬부린 소리를 외친다.
“가란 말 안 해도 갈 테야. 그까짓 등신을 믿고 살다간 한지에 방아를 놓지.”
“가, 지금 당장 가…… 아수할 사람 하나도 없어.”
하는 남편의 소리는 좀 높았다.
“가게 해줘, 가게…… 나그네 국맛 없자 쥔 집에 장 없자……”
“난 돈 없으니 위자료 대신에 애들을 죄다 데리고 가……”
“흥, 되기는 되겠다.”
하며 아내는 남편의 곁으로 다가선다.
“이 도적놈아, 갈 톄니 가게 해줘, 가게……”
그러자 이 어마어마한 풍운을 본 막내딸이 으앙 하며 굴러 나온다. 다른 애들은 무서워서 여차하면 들고 빼려고 벌써부터 고무신들을 쥐고 들먹거리고 있었지만 막내딸만은 아버지의 귀염을 받는 까닭에 무섬을 무릅쓰고 달려나왔던 것이다.
경수는 그저께 한바탕 싸우고 난 때에 제 성미가 누그러지는 눈치를 보고 막내딸이 제 무릎에 와서 안기던 것을 생각하였다.
“아버지! 아버지!”
하며 아버지가 싸우지 않는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웃음을 보일 때까지 길순이가 가슴을 두드리던 기억이 난 것이다. 그러면 마음의 날이 적이 무디어졌다.
“워낙 사람이 뚱뚱한 품이 나 같은 가난뱅이와 해로할 신수는 아니야.”
“애 못 낳는 집에 가서 그만침 앨 낳아 줘 봐. 발바닥에 흙도 안 묻게 할걸……”
“암……”
“흥 그래두 그대로는 안 가·…·고년허구 멋대루 살라구…….”
“건 남 때문에 제 몸을 죽이는 게지.”
“남?……”
아내는 그 말이 원통하였다. 무엇보다도 그는 남편을 사랑했던 것이다. 가난에 전 얽힌 정이 있다. 개중에도 피를 나눈 어린것들이 그물과 같이 그를 이 집에 얽어 두지 않는가. 그런데 남편은 남이라고 자처한다. 아내는 벌써 이 자리가 싸움 자리라는 것도 생각지 못하였다.
분하다기보다 설움이 왔다. 이 영악한 아내는 한편 인정머리 있고 센티멘틀한 반면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남? 그래 나두 남이 될 테니 가게 해줘, 가게……”
“흥, 그래두 가기는 싫지……?”
“왜 싫어, 왜 싫어……”
하며 아내는 남편의 결에 펄썩 주저앉으며 행역하듯이 그에게 몸을 탁 쓸친다.
“물…… 물…… 좀……”
남편은 갑자기 목이 말라서 이렇게 외치었으나 아내는 일어서려 하지 않는다.
……물 마시고 팔을 메고 누웠으니 대장부 살림살이 이만하면 넉넉하리……
“왜, 못 해…… 왜 가게 못 해?”
아내는 남편이 콧노래를 ㅎㅇ얼거리며 한 다리를 다른 한 다리 무릎 위에 얹고 거들거들하는 것을 탁 밀쳐 떨구며 소리를 높인다.
“발로 걸어가지……”
“발로 걸어가…… 흥, 염치 좋다. 안돼, 물어내……”
“뮐?”
“시집 오기 전같이 만들어 놓으란 발야……”
“내 총각은 어쩌구?
“그런 되지도 않은 소리 말구 당장 물어 놔……”
남편은 별안간 웃음집이 터졌다. 이레 동안에 우주를 창조했다는 하느님일망정 도저히 물어 놓을 수 없는 처녀를 제 손으로 물어 놓을 생각을 해보니 허파가 흔들릴 만치 웃음이 났던 것이다.
얕은 어둠이 오막살이집에 멎저 기어든다. 싸움은 짐짓 멈췄다.
아내는 뜰에 널린 북더기와 바람에 불려 온 낙엽을 걷어들여다가 부엌에 군불을 때고 있다. 가마에는 물 이외에 물론 아무것도 안치어 있지 않았다.
“흥, 그래도 마누라가 마누라지. 주변성이 좋단 말야.”
남펀은 아무것도 끓일 것이 없고 또 이웃이란 이웃은 뱅뱅 돌아가며 예수구멍이 꽉 막힌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혹시 주변 좋은 아내가 어디 가서 무얼 얻어다 두었던 것이나 아닌가 하며 이렇게 넘겨짚었다.
"얻어 오긴 뮐 얻어 와…… 점두룩 처먹고 들어와서 염량 좋은 소리……”
아내는 가마 뚜껑을 열어젖혀 보일 듯이 움쭉하다가 다시 주저앉는다.
“그러면 불은 왜 때?”
“굴뚝에서 연기가 끊어져 봐…… 뉘 집에서 황조미 한 줍이나 꾸는가.”
아내의 소리는 마냥 가늘었다.
사실 가는 연기마저 끊어지는 것은 목숨이 끊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보다 당장 쌀 꾸러 가는 실낱 같은 용기를 그만 끊어 버리는 것임을 아내는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가는 연기조차 올리지 못하면 뉘 집에 가서 때쌀이 좀 모자라서 하고 말해내랴……
“하하, 그럼 인제 연기 끊어지기 전에 쌀 좀 꿔오지……”
경수는 아내의 쌀 꿀 준비공작을 그럴듯이 생각했던 것이었다.
“쌀 꿔와? 지금 때가 어느 때여…… 흑싸리 깍대기 같은 걸 남편이라구……”
사실 남편을 믿지 않았다면 어찌하든 아이들의 간에다가 기별이라도 해주었을 것이라고 아내는 생각하였다. 한데 행여나 하고 남편을 믿었기 때문에 이미 쌀 꾸러갈 시간조차 늦어지고 말았다. 그것을 생각하니 더욱 골이 치밀었다. 그까짓 것을 남편이라고 한종일 바라고 있었던 자기를 스스로 비웃었다.
“위불없이 남편이 꼭 돈을 가지고 올 건데 아직 안 들어오니 쌀 좀 꿔주시우…… 하지.”
“술 처먹고 지랄하는 소린 남의 귀에 안 들리나. 실컷 떠들어 놓구는…… 에튀, 저따위를 그래도 남편이라고 믿은 내가 곯지. 차라리 없으면 없거니나 하지.”
아내는 부지깽이 끝으로 낙엽을 하나, 둘 세듯이 조금씩 아궁이에 밀어넣고는 이따금 부지깽이 끝으로 빈 부엌 바닥을 똑똑 두드리고 있다. 아무 능력이 없으면서도 집안에 들면 공연히 우락부락하는 아버지 앞에서 찍소리도 못하고 빈코만 들이마시는 아이들을 생각하니 아내의 눈에는 불시에 원통하고 쓰린 눈물이 괴었다.
한동안 부지깽이 끝으로 부엌 바닥을 치는 가는 소리가 들려 올 뿐이다.
“오냐 그래라 그래. 내가 없어지마…… 네 배가 곯을지라두 내 배 곯는 걸 보면 네 속창이 열릴 거다.”
하고 남편은 거짓 골난 체하며 툭 튀어나갔다. 어디 가서 날아가는 돈이라도 좀 채와야겠다는 생각이 그의 가슴에 더위잡혔던 것이다:
그 이튿날 오후에야 경수는 어떤 친구에게서 돈 오 원을 얻어 가지고 급히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구 큰일났수! ”
들어오자마자 아내는 드설메며 창백한 얼굴로 이렇게 말한다. 악매디친 마른 손을 약간 떨고 있다.
“왜?”
“길호(넷째 자식)가 기차에 붙들려 갔수.”
“언제?…… 아까?”
경수는 벌써 대강 추측할 수 있었다. 그놈이 이 동네 서쪽을 지나가는 경편 철도 후미끼리 (횡단 도로)에 나가 놀다가 붙잡혀 갔을 것을……
인구 십만이 넘는 이 H부의 서쪽을 흐르는 S강의 동쪽 언덕에는 바로 연전에 120만 원의 공사비를 들여서 새로 쌓은 높고 넓은 방축이 길게 가로누워 있다.
이 방축 근가는 대개 다 그렇지만 개중에서 경수네 사는 이 하단에 와서는 낡고 조그만 집들뿐인데 이 동리와 방축 사이로 경편 철도가 남북으로 달리고 있다. 그런데 바로 이 통네 서쪽에 S강으로 넘어가는 후미끼리가 있어서 빨래하는 계집들이 끊일 새 없이 이리로 싸댄다.
뿐만 아니라 이 동네의 올망졸망한 장난꾸러기 어린이들이 이 후미끼리에 나와놀다가 기차 통행을 멈추게 하는 일도 종종하다. 향락이 없는 어린애들에게는 한껏 해야 둔하게 빛나는 두 줄의 레일이나 붉고 푸른 거울알이 박힌 시그널 (애들은 곱패라고 부른다)이나 팔자 좋은 사람들이 타고 다니는 기차가 눈을 즐겁게 하는 구경거리다.
그래서 그들은 고동 소리가 빽 하고 어디서 들려오면 곧 레일에 귀를 대고 의사가 청진기나 듣듯이 기차가 달리는 소리를 듣는다. 주로 석탄과 목재를 운반하는 이 경편차는 거리를 달릴 때면 더욱 속도가 뜬다. 해서 일찍 기차라곤 타보지 못한 어린애들은 이 기차에 뛰어올라 보고 싶은 엉뚱한 생각까지를 가지는 것이다. 그래서 달리는 기차도 대수롭지 않게 보고 따라서 가끔 기찻길에 선 대로 있다가 통행을 정지시키는 일까지 생기는 것이며 또 그 끝에는 붙들려 가게까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장난은 늘 대가리 큰 놈들이 앞코를 서는 것이지만 결국 붙들려 가는 것은 달음박질이 더딘 어린놈들이다.
더군다나 어젯밤과 오늘 아침 두 끼나 굶고 오늘 낮에나 어째 얻어먹었을지 모르는 자기의 자식들이 어정어정하다가 붙들려 갔을 것을 경수는 추측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맏놈, 둘째 놈, 셋째 놈도 한 번씩 다 붙들려 간 일이 있다.
“우라질 놈의 새끼! 바람이 불어도 시들어질 주제에 또 후미끼리에서 장난을 쳤던 게지……”
경수는 ㅅᅟᅳᆯ며시 골이 나서 견딜 수 없었다.
“그러구저러구 얼른 정거장에 가보우, 지금 막 역부가 와서 쥔을 곧 오라구요. 서슬이 딩딩 합디다……”
“쳐죽일 놈들, 가만 내버려 둬.”
“경찰에 고발한다던데요. 한두 번두 아니구……”
“할 테면 하라지…… 그놈도 가져다가 한 절반 얼죽음을 만들어 놔야 다시 거겔 안 가지…….”
“그애만 잘못인가요. 배 곯린 부모 죄지. 사과를 주워 먹다 그랬다는데……”
“사과? 사과는 웬 사과야?”
“저 S강으로 사과랑 돌배랑 흘러 내려오는 걸 주워 먹으러 가다가 그랬다우. 대가리 큰 새끼들이 나가니까 따라갔겠지……”
아내의 이 말을 듣자 경수는 곧 생각켜지는 것이 있었다.
때가 마침 추석 밑이 되어서 농촌의 아낙네들이 상한 실과와 지레 떨어진 익지 않은 낙과를 함지박에 담아 이고 S강에 놓인 M다리로 날마다 수없이 몰려든다. 한데 이것은 부민의 위생을 위하여 그대로 둘 수 없는 일일 뿐 아니라 겸하여 다리목은 그 때문에 사람답세기를 이루어서 교통까지 방해하는 것이다. 값싼 것이라면 쉬파리같이 민감한 축들이 가을의 미감(味感)을 찾기 위하는 이 다리목으로 범벅덩이에 파리 덤비듯 모여든다.
그리하여 가을이면 이 다리목은 교통정리의 중요한 곳으로 세어지게 된다. 그리하여 교통정리하는 기마 순사까지 출동한다. 순사들은 아낙네들의 실과 함지를 발길로 차 굴리고 머리에 인 것을 통으로 강물에 처넣기도 한다.
그리고 순사가 탄 덕대 같은 말이 사과 장수 아낙네를 몰아가며 긴 목을 늘이어 실과 장수의 머리 위에 인 함지박에서 실과를 집어먹기도 한다.
아낙네들이 옆구리에 찬 신발을 덜썩거리며 한 손으로 함지박을 붙잡고 도망을 치게 되면 말은 기역자 주둥이로 함지박을 홱 끌어챈다. 그러면 그 바람에 실과가 우르르 떨어쳐서 다리 위와 강물에 굴려 떨어진다.
그래서 쉴 새 없이 그것이 강물에 떠서 아래로 홀려 내려간다.
“이거 웬 ˙떡이냐?”
하고 하단에 사는 가난한 아이들은 얕은 강물을 다행으ㅗㄹ 달려들어가서 집어낸다. 오늘도 아이들이 그렇게 몰려들어갔을 것을 경수는 집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리로 넘어가고 넘어오다가 레일에 귀를 때고 기차 달리는 소리를 들었을 것과 그러다가 붙잡혔을 것도 벌써 짐작할 수 있었다.
경수는 무언지 모르게 골이 나서 가보지 않으려고 하였으나 결국 가고야 말았다.
역장실 한구석에 길호란 놈이 쪼크리고 있다. 하다가 아버지를 보더니 한결 허리를 더 꼬부리고 외면하듯이 저편으로 고개를 떨궈 버린다. 어마어마한 곳에 붙들려 온 것도 무서운 일이었지만 몰폼스러운 아버지의 눈살이 더 무서웠던 모양이다. 그놈은 눈알과 두 볼에 눈물 자국이 있었고 두 손등은 눈물을 씻기에 때가 군데군데 벗겨져 버렸었다.
경수는 한 번 픽 그놈을 보고는 성큼성큼 역장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하여 우선 넌지시 인사하고 온 뜻을 말하였다.
“네, 저애가 당신 자식이오?”
하고 역장은 서슬기 있게 물은 다음 오늘 경과와 맏놈, 둘째 놈, 셋째 놈의 지난일과 또 장래 교통상 그대로 둘 수 없으니 경찰에 고발을 할 텐데 부형의 말을 안 들어 볼 수 없어서 부른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또 늦게 온 것을 핀잔 주고 난 다음 교통 방해가 사회의 안녕 질서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과 또 부모의 무책임, 무성의로 해서 그런 얼이 생긴다는 것을 중언부연하는 것이다.
그래도 경수는 그저 듣고 있었다. 그러며 말할 대로 죄다 말해 봐라 하듯이 경수는 역장을 이윽히 쳐다보았다.
“고발하시우.”
경수는 역장의 입이 닫히는 것을 기다려 퉁명스레 이렇게 한마디 해던졌다.
“곱게 고발을 당하지요.”
“부형으로서 그런 태도를 가지고 있으니까 교통사고가 생기는 거요.”
역장은 우뚝 몸 자세를 고치며 노기를 띤다.
“아까 당신이 말하기를 부모가 어린애들을 잘 감독하라고 했는데 그러나 넉넉한 사람도 아이 하나에 어른 하나씩 매달려 살 수 없는 거요. 하니까 우리같이 그날그날을 벌어서 사는 사람이 당신들 일 때문에 아이들을 수직하고 있을 수 있겠소.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고발을 당할 데니 당신들 회사에서는 속히 거기다가 후미끼리 방(수직군)을 두시우. 요전에 사고가 생겼을 적에 당신 회사가 우리 동네 대표들에게 언명한 일이 있지 않소. 일시 허투루 말해 놓고 시간이 지나는 사이에 슬쩍 식언을 해버렸기 때문에 오늘 같은 일도 생긴 거라구 나는 생각하오. 그러나 일은 크게 벌어질수록 우리 동네에는 좋으니 지금 당장 고발 수속을 하시우.”
경수는 조금도 드팀새를 주지 않고 다우쳐 들이댔다.
“고발은 다음 일이고 나는 부형으로서 그런 태로로 나올 줄은 몰랐소.”
하는 역장의 소리는 어느새 가늘어졌고 얼마큼 당황해지기도 하였다.
“아니지요. 그것이 부모로서의 당연한 태도지요. 이련 사고가 없기를 바라는 우리들 부형의 너무도 의당한 대도지요. 이런 사고가 없게 하자면 당신네 회사가 후미끼리방을 푸는 것 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으니까…… 한데 나 개인이 바라는 것은 결국 우리 동네 전체가 바라는 거란 말요. 나 개인이 고발당하는 것을 면할라구 온 동네의 요구를 뒤덮어 둘 수는 없는 거요. 또 후마끼리방이 생김으로 해서만 내 자식도 남의 자식과 같이 그런 화단을 면할 테니까, 그 외에는 더 취할 태도가 없소. 요전에 당신네 본사무소에서 언명한 사실을 당신도 알 테지요? 또 후미끼리방을 두어야겠다는 것은 당신도 역장으로서 그 필요를 인정하고 있을 테지요?”
어느덧 경수가 추궁하는 입장에 서버렸다.
첨에는 곱닿게 훈계를 듣던 이 허전한 사나이의 갑작스레 변해진 태도에 역정은
“현데 여보.”
하고 목소리를 낮춘다.
“그곳이 제일 교통이 빈번한 것두 잘 아는 터이오. 또 그래서 회사에서 앞으로 후미끼리방을 두려고 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아니 거기뿐 아니라 그 아래에 두 곳이나 또 있지 않소. 그걸 일시에 다 해준다고 언명했으니까 우리 집 앞 후미끼리만 문제되는 건 아니지요.”
“아니 글쎄, 그건 나로서 이러니저러니 말할 수 없는 일이지만 워낙 경비가 많이 들어서……”
역장은 자기가 섣불리 고발 운운해서 긁어 부스럼으로 뜻밖에 회사가 가장 성가시게 아는 문제가 재연(再燃)될 것같이 생각하는 동시에 속으로 좀 당황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역장은 그것을 얼굴에 나타내지 않기 위하여 일부러 점잖은 체하면서 느린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을 잇는다.
“하여간 지금은 당신네 앞이 제일 사람이 많이 다니지요?”
“물론 그건 사실이겠지만 돈과 목숨을 바꿀 수 없는 인정은 어디나 매일반이니까요. 그리고 또 멀지 않은 거리요, 돌아가려면 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 곳에다 각각 후미끼리를 내게 한 것은 회사나 경찰이 함께 교통이 빈번하다늠 것을 인정한 관계겠지요. 하여간 당신과 장황히 말할 필요는 없소. 나는 그만 갈 테니 고발하고 안 하는 것은 당신의 자유에 맡기우. 동시에 우리가 우리의 요구를 회사에 말하는 깃은 물론 우리의 자유일 것이오. 자아……”
“아니 여보…….”
하고 역장은 경수를 만류하며
“고발한다고 한 것은 부형에게 당부하기 위해서 한 말이고 또 너무도 성가신 때가 많아서 말이 좀 지나갔는지 모르겠소만 금후는 좀 주의 잘 시켜 주기 바라오. 어린애는 테리고 가시우. 참、오늘 저애가 호사는 잘했슴넨다. 오로리까지 갔다 왔으니까. 그리구 또 아까 역부들이 사과를 주는가 보더군우. 하하하……”
하고 웃는다.
경수는 아무 말 없이 어린애를 흘끔 보고 그대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역부들이 조심스레 어린애를 일으켜 경수의 뒤에 따라 보내는 것을 그는 일부러 못 본 체 하였다.
해는 이미 넘어갔다. 붓다새 싸다니던 조각구름이 장난에 지친 듯이 검스레한 얼굴을 낮은 하늘에 쉬이고 있다.
대지에도 차차 어둠이 기어든다.
경수는 한참 걸어가다가 흘끔 뒤를 돌아다보았다. 쌀쌀한 가을 바람이 턱 밑으로부터 뺨을 쓱 핥고 간다. 길호란 놈은 허리를 딱 꼬부리고 두 손을 옆구리에 찌른 채 슬몃슬몃 앞을 살피며 걸어오다가 애비의 시선과 마주치자 얼결에 바른편 철도 관사 쪽으로 외면을 해버린다.
경수는 길호놈의 배가 불쑥 내민 것을 보며 걸음을 뜨게 하였다. 그러자 길호란 놈도 걸음을 뜨게 한다. 아버지의 결으로 오기가 무서운 꼴이다. 한 손으로 코앞을 쓱 씻으며 아버지를 흘깃 보고는 수삽한 듯이 이리저리 결눈을 팔더니 저편 철도 관사 앞으로 가서 담배딱지를 주워 가지고 들여다본다.
“얘 이리 온.”
경수는 높으나 한결 부드러운 소리로 아들을 불렀다.
길호란 놈은 누구 딴 사람이나 부르나 하듯이 짐짓 곁눈질을 하며 망설이다가 물만난 오리 걸음으로 삐뚝거리며 반달음질을 해온다.
“거 뭐냐?”
하고 경수는 그놈의 배를 가리켰다.
길호란 놈은 대번에 얼굴이 질리며 좀 떨리는 손을 옷자락 밑으로 집어넣는다.
“꺼내 봐라.”
그러자 길호란 놈은 겨우 손을 내들었다. 그 손에는 반편이 벌레 먹은 검은 자국이 삐뚜름한 사과와 되호박같이 오글쪼글한 시든 사과가 쥐여 있었다.
“누가 주던?”
하는 물음에 대하여 길호란 놈은 대답 대신 돌아서서 정거장을 손질한다. 무슨 잘못한 일이나 저지른 것처럼 그의 얼굴은 불안에 싸여 있다.
“어디 보자. 이리 가져온.”
하고 경수는 그 사과를 제 손에 집었다.
“우라질 놈들, 말이 먹다가 남은 걸…….”
경수는 대번에 팔매치듯이 땅바닥에 팽개쳤다. 땅바닥에 거먼 두 자국이 나며 사과 살은 산에 갈려서 먼데 가까운 데로 날아가고 말았다. 아버지의 성난 얼굴을 보며 비슬비슬 가버리려던 길호란 놈은 그 소리에 기가 질려서 발이 땅에 들어붙은 듯이 옴짝도 못한다.
“이리 온……”
경수는 앞서서 그 아래 구멍가게로 길호를 데리고 갔다. 그리하여 사과 오 전어치를 샀다. 열 개였다. 이곳은 가을철이면 사과가 감자만치나 싸다. 그러므로 오 전에 열 개짜리면 썩 좋은 사과다.
“옜다!”
하고 경수가 내맡길 때에야 길호란 놈은 안심되는 듯이 한숨을 호 내쉬며 사과를 받았다. 사과는 길호놈의 좁은 옷자락에 하나 가득 되었다.
아버지의 얼굴을 인제야 확실히 읽은 길호란 놈은 그제야 발씨 익은 걸음으로 걸어간다. 짧은 다리를 한껏 길게 뜯는다. 그 바람에 있는 것 같지도 않던 조그만 엉덩이가 삐쭉삐쭉 좌우로 내밀어진다.
길호란 놈에게 사과를 내맡길 때에 이상하게도 갑자기 눈물이 괸 경수의 눈에서는 기어코 눈물이 떨어지고야 말았다.
앞서서 가는 길호란 놈의 야위고 마른 뺨과 목에서 경수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였다. 가난과 박해에 시든 자기의 모습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발견한 자기는 결코 자기의 알몸에 그치지 않았다. 눈물 어린 눈에는 수다한 자기가 만화경(萬華鏡)같이 번득이는 것이었다.
“엄마, 사과 샀네……”
길호란 놈이 집으로 들어가며 외친다. 그러자 앞서거니뒤서거니 다른 자식들이 우르르 달려 나온다.
"야! 사과 봐라. 얼마나 많이 샀는지 아니.”
“누가?”
아이들은 웬 영훈을 모르는 상이다. 아직 한 번도 무얼 사다가 준 일이 없는 아버지를 아이들은 생각에 올릴 여지가 없었다.
“길호냐?…… 응 사과…… 아버지가?”
하고 구정물을 버리러 나갔던 아내가 다좇아오며 야단법석이다.
그러나 경수는 아내의 시선이 제게로 올 때에 무슨 잊은 일이나 있듯이 픽 돌아서 되나가 버렸다. 아내의 말이나 표정이 다 보기 싫었던 것이다. 다만 한 남편으로서나 아비로서 비쳐지는 이 속된 인정의 찰나를 그는 물리쳐 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의 머리에는 지금 수다한 자기와 아내와 아들이 서리어서 더위잡히고 있었던 것이다.
경수는 높다란 서쪽 방축에 올라섰다. 상기된 얼굴에는 쌀쌀한 가을 바람도 알려지지 않는다.
자기 집 굴뚝에서는 가는 연기가 오르고 있다. 아까 돈을 얻어다 준 생긱이 난다. 그리고 어젯밤에 싸우던 일이 생각난다. 그러나 거기에는 별로 큰 감상이라고는 짝하지 않았다.
저――우, 서편 방축가에서는 아직도 매약행상(賣藥行商)의 장난감 같은 줄 달린 모래차(밀차)가 연기를 퍽퍽 뿜으며 탁탁 소리를 내고 있다. 그리고는 그다음 밀차는 M 다리에 막혀서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그라고 귀에는 그 치수국사장(治水工事場)에서 밀차에 모래를 파 싣는 인부들의 모양이며 복도꾼들의 ‘영치기 영치기’ 하는 소리가 분명히 보이고 들리는 것 같았다. 그전에도 또 바로 아까도 그 앞을 지나 보았던 것이다.
그와 가장 친하던 동무 몇 사람도 얼마 전부터 거기서 일을 하고 있다. 옛날에 같은 단체에 있었을 때는 물론이고 그 후 룸펜으로서도 친분이 두터운 그들이 지금은 거기서 일하고 섰는 것이다. 경수는 제 눈이 여태 터무니없이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경수는 일본인들이 사는 곳을 바라본 것은 아니다.
또 부자들의 살림을 바라본 것도 아니다. 차라리 그것들을 반대해 왔다.
그런데 어찌하여 여태 그의 앞에 옳은 길이 보이지 않고 나서지 않았는가. 그는 여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던 겻이다. 그것은 실상 높은 곳이 아니라 허황한 곳이었고 나락같이 낮고 어두운 곳이었다.
거기에는 인간이 없다. 참답고, 바르고, 밝고, 굳센 생활이 없다.
‘인간을 보라. 인간 속에서 살자!’
한데 생각해 보니 그것은 실상 가까운 데 있었다. 결코 먼데도 높은 데도 있지 않았다.
경수는 공사장에서 일하는 친구들의 뒤를 따라 그리로 갈 것을 마음에 다짐하였다. 그것은 자기에게 생활을 가져다 줄 것이며 제가 가지고 있는 너절부레한 찌꺼기들을 털어 줄 것이라고 경수는 생각하였다.
‘내 머리에 남아 있는 몇 자의 글자와 과거의 가졌던 탁없는 자만심이 나를 가로막는 외에 그 무엇이 내가 그리로 가는 것을 막으랴. 몸도 튼튼하다. 일할 능력도, 의지도 있다.’
경수는 자기가 이제금 높게 보아야 할 몇 사람의 친구를 새로 그곳에서 발견하였다. 늘 남의 뒤에서만 쫓아갈 줄이나 아는 자기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였으나 그러나 그는 옳은 길이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가볼 용기와 양심이 새로 솟았다.
경수는 이날에 비로소 제가 갈 길을 찾은 것 같았다.
‘맨 밑바닥을 걸어가자! 거기서부터 다시 떠나자!’
경수의 마음속에는 하나의 신념이 주춧돌처럼 들어앉았다.
-끝-
2016년 7월 22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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