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개성공단 역사 뒤안길로…정부, 지원재단 해산 결정
중앙일보
입력 2024.01.04 17:05
업데이트 2024.01.04 17:21
정영교 기자
2022년 10월 5일 경기도 파주시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 도라전망대에서 바라본 개성공단 일대의 모습. 연합뉴스
정부가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개성재단)'을 해산하기로 결정하고, 내달부터 본격적인 청산 절차에 돌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 현대아산과 북한 측의 실무합의를 시작으로 남북관계의 부침과 운명을 함께 했던 개성공단이 사실상 '완전 폐쇄'의 수순을 밟는 모양새다.
4일 관련 사정에 밝은 복수의 여권 소식통은 "개성재단 해산 방안이 확정돼 당·정 협의와 기재부 (남북협력)기금 예산 심의에 관련 내용이 상정된 것으로 안다"며 "통일부가 2월 초까지 관련 법의 개정을 위한 입법예고를 완료하고, 3월 중에 시행령을 발표해 재단 청산에 들어가는 것으로 정리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개성재단은 2016년 2월 박근혜 정부가 북한의 고강도 도발에 맞서 개성공단을 전면 중단한 이후 기능과 역할이 대폭 축소됐다.
대통령실은 지난달 초 개성재단 해산 결정을 내리고 이를 주무부처인 통일부와 개성재단 주요 관계자들에게 통보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 통일부는 지난달 8일 정례브리핑 직전 브리퍼를 부대변인에서 대변인으로 교체하고, 북한이 개성공단 내 남측 시설 30여 곳을 무단으로 가동하는 정황을 공개했다. 당시 통일부는 2020년 6월에 폭파된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철거 동향도 밝혔는데, 이런 갑작스런 발표도 개성재단 해산을 위한 일련의 움직임이었다는 게 소식통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특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연말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를 '전쟁 중인 적대적 국가'로 재정의하고, 이에 따른 후속 조치로 당 통일전선부 등 대남사업 기구들을 정리·개편하는 움직임이 가시화되자 개성재단 해산에 더 속도가 붙는 분위기다.
2007년 10월 19일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창립3주년 기념식 및 종합지원센터 착공식이 열린 가운데 개성공단 내 신발제조업체 삼덕통상에서 북한 근로자들이 근무하는 모습. 중앙포토
개성재단 해산 방안의 골자는 과거 1인 기구로 운영했던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사무국의 사례와 유사하게 조직을 극단적으로 슬림화하는 것이다. 1994년 10월 북한이 핵 개발을 포기하는 대가로 북한에 경수로 발전 시설을 건설해주는 ‘제네바 합의’의 후속 조치를 위해 만들어진 국제 컨소시엄인 KEDO는 북한의 우라늄 농축 의혹이 불거져 좌초하다 결국 폐지 수순을 밟았다.
통일부는 재단 잔무 처리와 개성공단 내 자산을 정리하는 목적으로 하는 소규모의 청산법인을 꾸릴 예정이다. 향후 남북관계가 개선될 경우 개성공단을 재개하는 것을 염두에 둔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한 소식통은 "청산법인 자체도 1년 이상은 존치시키지 않을 가능성 크다"고 말했다.
반면 전문가들은 청산법인이 상당 기간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익명을 원한 전문가는 "정부가 개성공단 관련 합의의 주체가 아니었기 때문에 입주 기업들의 재산권 관련 문제를 다루는 별도의 조직이 현실적으로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이 최근 북한의 개성공단 무단사용에 대한 손해 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진행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도 이번 개성재단 해산 추진과 연관된 측면이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소식통은 "정부는 개성공단 관련 대북 소송을 추진할 경우 소송 대리권을 가진 재단이 존치해야 한다는 논리로 번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며 "지난해 6월에 추진한 연락사무소 폭파와 관련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뚜렷한 성과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도 이런 결정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앞서 통일부는 지난해 7월 구조개편 당시부터 개성재단 해산을 위한 법률 검토를 진행해 왔다. 하지만 재단 운영의 근거가 되는 '개성공업지구 지원에 관한 법률'에 재단의 해산 관련 조항이 없어 상위법인 민법 등을 토대로 다각도로 해산 방안을 찾아왔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