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현재 고1이다. 지난 4월 중순, 학교에서 2박 3일의 체험여행을 안산으로 떠났다. 그런데 다음 날 문자가 왔다. “아빠, 여기는 옛날에 경비행기 탔던 근처예요”라며 흥분한 톤의 글이다. 그래서 어디 쯤이냐고 했더니 정확한 위치를 말한다. 그렇다. 그곳은 아들이 6살부터 수십 번을 다녀왔던 화성시 송산면 고포리를 말한다. 그 당시에는 여러 가족들과 체험여행을 많이 다녔는데 경비행장이라 함은 아빠와 아이가 함께 비행기를 타고 체험하는 곳이다.
그 곳에서의 추억은 단지 비행체험만이 아니다. 시화호 주변에 3,000만평의 거대한 갈대밭이 있고 그 중심에 고포리가 있다. 가을이면 갈대가 평야에서 익어가는 벼처럼 물결치는 것이 장관이며 가을이면 갈대로 화살을 만들어서 창공에 활쏘기를 하기도 했다. 또한 9월부터는 망둥어 낚시를 해서 소금에 구워먹기도 했으며, 합판과 나무 등 25가지의 재료를 주면 망치로 못을 박고, 톱질을 하고 페이퍼로 곱게 나무를 갈아서 길이가 50센치나 되는 미래의 비행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점심은 늘 가마솥밥을 먹었다. 그 당시에는 촌스럽게(?) 가마솥을 가지고 다녔기 때문이다. 때론 3층 밥을 해서 애간장을 태우기도 했다. 그리고 5시 정도가 되면 라면 30개를 넣은 후 장작불을 사용하여 가칭, 인삼라면을 끊였다. 그리고 종이컵 2개에 넣은 후, 호호 불며 해질녁의 붉은 노을을 바라보며 먹곤 했다.
» 권규리 단국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아들이 중학교를 졸업하기 열흘 전, 제주도를 가고 싶다는 의사표시를 엄마에게 했다. 그러나 거절을 당했다. 혼자 보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개를 떨구며 아빠에게 도움을 청하러왔다. 그래서 아내를 부른 후, 아들이 어떻게 지낼 것이지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그랬더니 3년 전에 다녀왔던 기억을 떠올리며 완벽한 시뮬레이션으로 제주도 일정을 설명한다. 아내는 더 이상 반대할 명분을 상실했다. 이에 기세 충천한 아들은 친한 친구를 설득하여 함께 제주도로 떠났다.
거기에는 외갓집 할머니가 살았던 빈방이 하나 있다. 그런데 도착해보니 보일러가 돌아가지 않는다. 2월 하순의 추위란 냉방에서 잠을 자기에는 매우 쉽지 않다. 아들은 서울에 사는 외할머니와 통화를 한 후, 몇 번의 전화를 하더니 기름을 넣었고, 보일러는 가동이 되어 따뜻한 방에서 잘 수가 있었다. 4박 5일의 제주도 여행을 마치고 온 후에 친구는 어떠냐고 물었더니 자신이 모든 스케쥴을 짜서 함께 다녔다고 한다. 그리고 친구의 수발을 들었다고 한숨은 내쉰다. 또한 밥도 직접 해먹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친구에게 쌀을 씻으라고 쌀과 물을 주었더니 그것조차 하지 못한다고 한탄을 한다. 그래서 그 친구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네가 별난 놈이라고 했더니 깔깔 웃는다. 아들은 그동안 지출한 영수증을 꼼꼼히 챙겨와서 제출한다. 즉시 정산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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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이러한 내공은 사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마도 가장 큰 영향은 서바이벌게임이다. 이 놀이는 산에서 하는 전쟁놀이로서 보통 40명 정도가 한꺼번에 한다. 먼저 두 팀으로 나누고 개인마다 총알인 페인트볼을 지급한다. 그리고 그 것에 맞으면 몸에 페인트 색이 보이므로 사망으로 간주한다. 이곳에 아들이 처음으로 간 것은 6살 때이다. 총싸움을 한다니 아들이 흥분했다. 그리고 당일 새벽 5시에 아빠를 흔들어서 깨웠다. 양재동에서 버스에 참가자를 가득싣고 게임장으로 떠난다. 게임을 하기 전에 물품을 지급한다. 우선 얼굴을 보호하는 고글과 가슴을 보호하는 프로덱터를 착용한다. 그리고 탄창에 페인트볼을 가득 넣는 순간, 아이들은 갑자기 스나이퍼로 변신하고 아빠들은 특전용사로 돌변한다.
그러나 아들의 첫 번째 서바이벌 게임은 유쾌하지 않았다. 우선 아빠가 단장이라 행사를 진행하기에 함께 하지 못했다. 그래서 늘 선생님이 아빠의 대타가 되었다. 그런데 게임을 마치고 내려오는데 씩씩거리며 형들이 반칙을 했다고 흥분한다. 자신이 사망해서 나가려는데 계속 총알이 날아와서 고글을 벗은 상태에서 총알을 맞았다고 한다. 그 증거로 귀가 빨갰으며 머리에는 빨강색과 파란색이 물이 들었다. 그래서 우선 안아주었다. 그리고 게임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그러더니 엉엉 울면서 왠일인지 대성통곡을 한다. 그러면서 자신을 쏜 형들이 나쁘다며 다시는 ‘절대’ 서바이벌 게임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한다. 그러나 11시가 넘어서 결기에 찬 얼굴로 안방에 들어온다. 그러더니 다음 주에 있을 서바이벌게임에 가겠다고 일방통고를 한다. 그 이유를 물으니 형들에게 복수를 한다며 의지를 보인다. 하지만 그런 마음과 상관없이 서바이벌게임에서 6살이란 그저 총의 길이와 비슷한 키며 나이가 가장 어린 케이스이기에 방아쇠를 당기기도 벅찬 상태다. 아들은 6학년까지 30여 차례의 서바이벌 게임에 참가를 했지만 늘, 새벽에 아빠를 깨웠으며 전투력은 나이를 먹을수록 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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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의 관계에서 영향을 미친 분은 할아버지다. 88살까지 장수를 하셨고, 돌아가신지 30년이 넘는다. 아버지와 할아버지와의 관계는 한 마디로 언제나 단순하고 명료했다. 할아버지가 무엇을 하라고 하면 아버지는 그냥 ‘네~’ 하고 답한다. 어떠한 토도 달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할아버지는 아버지에게 무언가를 시키셨고 아버지는 그대로 했다. 그러나 몇 칠이 지나고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뵙고 그 때 말씀하신 것이 틀렸노라고 한다. 그 말을 듣고 할아버지는 자신이 잘못했음을 금방 시인하셨다. 이러한 아버지의 태도는 어찌 보면 맹목적인 순종으로 보일 수는 있지만 할아버지를 늘 공경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아버지의 삶의 태도는 자식에게도 대물림을 했으니 필자역시 아버지가 뭐라고 하시면 우선 토를 달지 않고 ‘네’라고 한다. 더구나 학창시절에 공부하란 말씀을 한 번도 하시지 않았다. 오히려 한 달에 한 번 정도 방에 들러서 ‘몸 상할라. 이제 그만 자라’고 하셨고, 아버지의 방문 뒤에는 어머니가 찐 고구마를 가지고 들리셨다. 이러한 전통은 이제 자식에게도 대물림이 되어 그동안 공부하라고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물론 그동안 우여곡절이 없지도 않았다. 아들은 중학교 1학년 1학기 때 37명에서 35등 정도를 했다. 한마디로 꼴찌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들은 초등학교 6학년까지 바둑을 두었다. 그리고 5학년 때 아마 4단을 획득했다. 6학년 때에는 유창혁 사범에게 바둑을 배우며 프로기사의 꿈을 꾸었다. 그러나 수많은 천재들 속에서 아들은 결국 중도하차를 하게 되었다. 그러니 당연히 공부를 하지 않았고, 더구나 영어는 겨우 ABC를 아는게 전부였다. 이러한 상황을 모를리 없는 아내는 아들의 공부에 대하여 애간장을 태웠지만 조금만 기다리자고 했다. 그러더니 중학교 1학기 초에 영어공부를 해야 한다며 학원을 보내달라고 스스로 간청을 한다. 짐짓, 포카페이스를 유지하며 못이기는 척 하며 청을 들어주었다. 그런 아들이 요즘은 영어칼럼의 해석을 술술하니 참으로 격세지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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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세대가 아날로그적이라면 요즘, 아빠의 세대는 디지털 시대이다. 하지만 가정을 지키고 좋은 아빠가 되고, 또한 자녀에게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싶은 것이 아빠의 로망이다. 하지만 그것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데 바로 시대에 따른 일대시교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 원인의 몇가지를 알아보자. 편의상 아버지란 표현은 30년 전이며, 아빠는 현재의 아빠로 구분해서 비교해보자.
<인성의 형성>
옛날에는 아이의 인성이 골목길에서 형성되었다. 그래서 골목길 전성시대이다. 그러나 지금은 거실에서 엄마의 잔소리를 들으면서 형성되고 또한 학원에서 아이들과 경쟁하면서 형성된다.
<자녀양육>
옛날 아버지는 그저 밥상머리양육법으로 가정을 지배하고, 아이들과 소통하지 않으면서도 항상 권위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아이들은 엄마만의 단독 양육시스템이다. 그리고 아빠는 돈을 벌어온다. 그리고 월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아내는 그 증가폭 이상으로 사교육에 지불하므로 기하급수적을 지출한다. 결국 아빠가 돈을 벌어오면 올수록 보람이 아니라 점점 힘들어지고, 양육에서 이방인이 되고 또한 돈을 벌어도 권위는 찾아볼 수가 없다.
<소통방식>
아버지와 아이의 소통은 늘 어머니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쓰리쿠션방식이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늘 근엄하게 느껴지고, 소통하기가 매우 불편하다. 요즘 아빠는 아이와 별로 소통이 없다. 늘 엄마가 아이의 말을 듣고 엄마가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한다. 엄마가 소통과 양육과 교육의 전권을 쥐고 있다.
<훈 육>
아버지의 훈육은 엄격하다. 아이들끼리 놀다 싸우고 울다가도 아버지가 들어오시면 얼음땡이다. 그러나 요즘 아빠는 그저 무관심이다. 아이가 싸우건 말건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 그 몫은 늘 아내가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는다.
<교 육>
아버지의 교육관은 아이가 공부를 잘하는 차원이 아니라 집안을 살리는 것이 목적이었다. 특히 첫째 아들에게 대하는 기대는 상상이상 이었다. 하지만 요즘 교육은 공부를 잘해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이다. 또한 교육의 모든 결정권은 엄마에게 있다.
<행 복>
아버지의 세대에는 형제자매가 많았다. 그러므로 함께 하며 희로애락을 겪었기에 비록 풍족한 삶은 아니었지만 행복했다. 요즘 행복의 컨셉은 공부다. 공부를 잘해야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회사에 입사하고, 좋은 배우자를 만날 수 있다고 엄마는 아이에게 귀가 닳도록 반복하여 강조한다. 그러나 아이는 경험하지 못한 사실이므로 한 귀로 듣고 한귀로 흘러버린다. 아이는 공부의 카테고리에 갖혀서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고, 행복을 누리지도 못하면서 성장한다. 그러나 성공이란 행복속의 부분집합이기에 공부를 잘한다고 반드시 행복하지 않다.
아버지는 아이에게 선생이다.
아빠도 아이에게 선생이어야 한다.
선생이란 자신의 삶 자체의 모든 노하우를 제자에게 물려주려고 한다.
아내가 양육과 교육의 전권을 행사한다고 남편은 결코 이방인으로 남아서는 안된다.
늘, 아내와 남편이 함께 하는 일관성 양육이 중요하다.
뇌과학에서 가족이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아빠는 가장으로서 가족의 끈을 항상 꼭 잡아야 한다
어째건, 공부만 가르치려고 하는 것은 작은 얻음이요
아빠의 모든 노하우를 알려주려고 하는 것은 커다란 가르침이다.
아이는 늘 아버지와 아빠의 그림자를 밟고 성장함을 알아야 한다.
부모에게 자식농사는 가장 중요하다.
그저, 아빠가 1% 바뀌면 아이는 10% 변한다.
그 중심에 바로 놀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