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 샤넬을 사랑하고, 또 사랑받던 남자들
20세기 가장 유명한 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 코코 샤넬로 유명한 그녀는
뛰어난 디자인과 화려한 남성 편력으로도 많은 입소문을 불러 일으킨
마성의 여인(?) 이기도 하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수녀원 부속 고아원에서 자랐기 때문일까.
그녀를 지나쳐간 수많은 남자들과 함께 파란만장한 인생을 공유하고,
화려하게 불타올랐던 샤넬.
그녀를 스쳐지나간 남자들은 누가 누가 있는지 한번 알아보자.
코코 샤넬의 첫 남자, 에티엔 발상

샤넬이 유명해지기 전의 남자라서 그런가?
이 남자에 관해서 그렇게 많은 자료가 있지 않다.
가수를 지망하며 카바레에서 노래하던 코코샤넬을 디자이너 샤넬로 만들게 해준
어떻게 보면 역사에서도 중요한(!) 남자인데, 왜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까?
아, 하긴. 그 다음 남자인 아서 카펠 때문에 버려진 남자라서 그럴수도… 흑흑흑.
귀족적이지 않게 털털하고 관대한 성격이었다고 알려진 그의 목장에서 머물다가,
디자인에 영감을 받아 발상의 후원으로 모자가게를 개업하였다는데.
여자는 남자 하기 이라고. 나도 후원해주면 잘 클 것 같다는 생각이 살콤히 든달까…ㅋㅋ
샤넬의 첫 모자가게, 1909 마르젤브 거리 160번지 샤넬의 모자가게와 함께한 남자.
한국의 혼수 가구를 선물로 준 샤넬의 첫 사랑, 보이 카펠

본명은 아서 카펠, 출신은 불분명하지만 최상류층이 어울리는
플레이 보이 기질의 재벌 청년이었던 그는 에티엔 발상이
닭 쫓던 개(?) 가 될 수 있게 했으며, 샤넬이 평생 잊지 못하는 남자!
결혼까지 약속했었는데.. 다른 여인과 결혼하고 곧 사망한 참 느아~쁜 남자.
1910년, 파리의 캉봉거리 21번지로 이사간 샤넬,
<샤넬 모드>라는 모자 전문점을 개업해서 본격적으로 디자인 사업에 뛰어든 샤넬은
약혼녀까지 떡~ 하니 있던 영국의 청년 실업가 카펠과
교제를 시작하였는데, 샤넬 모드의 개업 자금은 카펠의 후원이었다는 것을 보면,
지금의 샤넬을 만든 건 이 사람! 약혼녀가 있지만 당신을 사랑한다며
그때 당시 ‘동양의 멋진 물건이야. 결혼할 때 주는 물건이래’ 라면서
흑적색의 고가구를 선물로 주었는데, 샤넬이 죽을 때까지
고이고이 아끼며 옆에 두었다가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조카에게 물려준 선물.
자신이 쓰던 대부분의 물건들을 부티크에 뒀지만, 카펠로부터 선물 받은 고가구만이!
조카딸에게 전해졌다는데, 그 선물이 바로 한국의 혼수가구이다.
샤넬이 평생 아끼던 물건이 ‘한국’의 혼수가구라는 말에 내가 괜히 으쓱거린다. ㅎㅎ

샤넬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코코 샤넬’의 시대가 이때쯤이다. 남주 역시 아서 카펠인데,
아서 카펠 자체가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일까?
아서 카펠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코코 샤넬의 평생에 대해 적고있어, 조금 아쉽다. ㅎㅎ
고작 9년 연애하고 카펠은 사망하였고, 그 이후 샤넬은 솔로!
불륜을 저지르다니, 그렇게 샤넬이 좋았나?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실제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vs 영화 속 스트라빈스키
이번에 개봉하는 <샤넬과 스트라빈스키>의 주인공,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정말 이번 개봉하는 영화 보고 얼마나 빵 터졌던가.
어쩜 이렇게 똑 같은 사람을 데려다가 ㅋㅋ
샤넬과 스트라빈스키의 연애관계에 대해 올린 영화인데,
정말 그럴지도 몰라….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굉장히 사실에 가깝다.
아직 카펠이 살아있던 1916년부터 대성공을 거둔 샤넬은
자기가 남자들에게 후원을 받았으니,
이젠 갚아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나? 극작가였던 장 콕토, 화가인 피카소,
작곡가인 스트라빈스키를 후원하였는데. 후와. 다들 한번씩 들어본 거물들만 상대했다.

특히나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아내와 네 명의 아이까지 있었으면서도 샤넬에게 거의 목숨을
걸 정도로 사랑하였는데,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를 밝히고,
당시 음악의 혁신을 불러 일으켰던 스트라빈스키의 작 ‘봄의 제전’과,
지금까지도 샤넬을 보여줄 수 있는 향수 No.5가 이때 즈음 출시된다.
샤넬에게 가장 영향력 있던 남자, 웨스트민스터 공작

본명 휴 리처드 아서, 샤넬이 절정의 시기에 사랑한 남자로,
엄청난 토지를 소유한 부유한 귀족
엄청난 선물 공세와 끈질긴 구애로 5년간 연애를 지속했는데,
둘이 결혼할 거라는 소문까진 파다했지만
샤넬이 공작 부인에 만족할 여자는 아니지 ㅋㅋ
샤넬이 말했던 ‘내 인생에 남성들이 없었다면 과연 샤넬은 있었을까, 하지만 내 1순위는 사랑하는 의상이다’ 라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식의 말이 여기서 나온거다.
이 사람들 외에 샤넬 No.5의 성공을 쭉쭉 밀어줬던 드미트리 대공,
건축학을 전공한 예술적 재능의 소유자 폴 이리브.
하노버 태생의 독일 외교관이자 얼마 전 샤넬 스파이 루머건을 만들어낸
한스 군터 폰 딘클라게 등이 있는데,
그렇게 자료를 찾을 수 없어 유명한 사람들만 쏙쏙 뽑아 발표해보았다.
으햐… 샤넬, 정말 남자가 많았구나…
첫댓글 샤넬은 1910년에 파리에 샤넬 모드라는 여성용 모자점으로 출발하여 엑세서리, 향수 여성 의류 등으로 확대하였고요.
특히 1921년 조향사 에르네스 보와 함께 No.5와 No. 22 향수를 출시해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1883년 프랑스 남서부 오벨뉴 지방의 소뮈르에서 태어나 1971년 샤넬은 87세로 사망했지만 샤넬의 브랜드는 여전히 영향력을 보이고 있지요.
그의 화려한 명성만큼 남성 편력도 대단하군요.
샘이 좋아하는 장콕도와 피카소가 모두 샤넬의 연인들이었다니 정말 대단한 여인이었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