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그리고 대추
시계를 보니 오전 6시 40분, 함께 놓여 있는 5ℓ 음식물 쓰레기통 2개의 뚜껑을 열자마자 어두워진 내 마음과는 달리 날은 이미 밝아 있었다. 자주 음식물 통 뚜껑이 닫히지 않게 음식물 쓰레기를 배출하는 주택인데, 추석 연휴에 쓰레기 수거를 하지 않는 줄 알고 이번에도 정해진 용량보다 훨씬 더 많은 음식물 쓰레기가 들어 있었다. 음식물 통 손잡이를 잡고 포터에 실린 120ℓ 쓰레기통 안에 넣으려고 약 165cm를 들어 올렸다. 아니나 다를까, 맨 위에 올려져 있던 비쩍 마른 스파게티 가닥이 우수수 떨어졌다. 차에 실린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챙겨 바닥에 무수히 떨어진 스파게티 가닥을 쓰는데, 빗자루가 닫자마자 산산조각이 나기 시작했다. 쓸면 쓸수록 바닥과의 마찰로 스파게티 가닥이 미분(微粉, 고운 가루)이 되었다. 갑자기 주체할 수 없는 적분(積憤, 쌓이고 쌓인 분한 마음)이 생겼다. 잠시 고민하다 화를 참지 못하고 10년 만에 처음으로 음식물 쓰레기를 배출한 주택의 벨을 눌렀다(보통은 메모지에 개선 사항을 정중하게 적어서 올려둔다). 주인아주머니가 밖에 나오고 그동안 참았던 말을 쏟아 냈다.
“아~ 제가 아무리 쓰레기 치우는 사람이지만, 해도 해도 너무하시네요. 이런 비쩍 마른 스파게티는 밑에 두셔야지, 이렇게 위에 철철 넘치게 맨 위에 두시면 저보고 어떡하라는 겁니까! 들어 올리다가 바닥에 떨어지는 것이 당연한데!”
최대한 음성을 높이지 않고 이야기했지만, 상대방은 이미 내 기분이 많이 상한 것을 알아차리고 자기가 쓸겠다고 했다. 아주머니의 기분도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아닙니다. 제가 쓸겠습니다. 이렇게 철철 넘치게 배출하시고, 우리가 뒷정리를 안 한다고 민원 넣는 분들이 한두 분이 아니십니다. 다음부터는 잘 배출 부탁드립니다.”
끝까지 감정을 억누르려고 노력했지만, 상대방도 마음이 그리 편치는 않았을 것이다. 화가 난 상태에서 계속 빗자루로 쓸었기에.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계속 찝찝했다. 대구에 사는 친척들과는 왕래가 거의 없기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홀로 맞는 두 번째 추석인데, 이번에는 추석 전후로 내 감정이 철철 넘치게 배출되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긴 연휴이지만, 우리는 추석 당일 하루만 쉬고 추석 앞과 뒤 이틀 동안 일을 했다. 처음에는 어차피 우리가 쉬어도 쓰레기는 계속 쌓이기에 일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했다. 이틀 동안의 특근비도 합하면 40만 원이나 되니 나쁘지 않은 수입이었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좀 서럽고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매번 명절마다 느끼는 감정이지만, 이번에는 대추 때문에 더 그랬다. 3년 전 추석 무렵부터, 내가 담당하는 구역에 있는 대추나무 한그루에서 대추 몇 알을 따다가 어머니에게 가져다드리곤 했다. 어머니는 항상 맛있게 드셨고, 나는 시장에서 대추를 사다가 어머니의 간식으로 드렸다. 어머니는 당료인데 달콤한 대추를 먹어도 되냐고 하시면서도 곧잘 드셨다. 2023년 1월에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더는 대추를 가져다드릴 수 없다. 이번 추석 하루 전 월요일 비를 맞으면서 새벽에 일했다. 그 대추나무 앞에서 대추 몇 알을 입에 넣었는데, 달콤한 맛을 느낄 수가 없었다. 분명히 어머니에게 가져드릴 때는 달콤한 대추였는데 말이다. 그리고 2020년 추석 5일 전인 9월 26일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유달리 많이 나는 추석이었다. 2020년 추석은 아버지의 3일 장이 끝나고 어머니랑 처음 맞는 추석이었다. 아버지는 울산에서 함께 살다가 건강문제로 서울의 요양병원에서 2년 10개월을 계시다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이복 큰형이 자리 잡은 인천에서 장례를 치렀고, 아버지의 유골을 내 차로 울산으로 모셨다. 인천과 울산 부자지간의 첫 번째 여행이자 마지막 장거리 여행이었다. 당시 인천에서의 화장이 늦게 끝나는 바람에 아버지의 유골은 우리 집 내 방에서 하룻밤을 함께했다. 아버지가 요양병원에 가시고 우리는 이사를 했다. 화장 시간이 늦어진 관계로 울산에 저녁 늦게 도착했고, 울산 하늘 공원의 마지막 봉안 시간인 오후 4시를 맞출 수가 없었다. 덕분에 새로 이사 온 집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내가 함께 보낼 수가 있었다.
벌써 2024년 추석이 일주일 지났다. 이제 철철 넘치게 배출되었던 감정이 제자리로 돌아간다. 마음을 많이 쓸어 담았다. 환경미화원 10년 차, 이번에 내가 화가 났던 것은 가루가 되어버린 스파게티 때문이 아님을 늦게나마 알게 되었다. 단지, 아버지, 어머니가 너무 그립고 보고 싶어 화풀이할 대상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