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기세를 올리던 안철수 신당(국민의 당)이 주춤하다.
최근 여론 조사에서 호남의 지지도가 역류 현상을 보이고 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과거 새민련이 친노그룹의 독주로 분당 사태를 만났을 때 안철수 카드는 새로운 야권 재편의 출구로 보였다.
그래서 새민련의 비주류는 너도 나도 보따리를 싸서 안철수 천막으로 이사하기 바빴던 것이다.
그야말로 물고기가 물을 만난 형국이었다.
실탄도 있겠다, 조직을 구축할 인재 풀도 넘친다.
정치판을 바꿔야 한다는 국민의 여망이 무엇보다도 강렬하게 야권을 강타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뜬금없이 창당도 하기 전에 알맹이도 없는 정책기조를 발표하는가 하더니
이번에는 역대 대통령 묘소 참배에 식구들을 데리고 세 과시에 나선 것이다.
국민통합을 한답시고 노무현 대통령에서 이승만 대통령에 이르는 묘소 탐방은 당의 정체성 시비만 촉발하기 쉽다.
또한 마치 대선 바람을 연상케 하는 우쭐한 모습으로 국민의 눈에 비쳐진다.
그러다 보니 쓸데 없는 구설수에 올라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과연 지금 국민의 당은 그런 논란에 휩쓸릴 만큼 한가한 처지인가?
그 동안 전북 지역 현역 의원들은 더민주당에 잔류하기로 공동 선언을 했다.
호남 지역의 또 다른 한 축을 잃은 것이다.
아직도 박주선 의원이나 박준영 전 지사가 주도하는 호남 정치 세력과는 통합이 미뤄지고 있다.
천정배 의원 측과는 통합이나 연대를 서두를 필요가 없어도 다른 세력과는 통합이 빠를 수록 유리한 것이다.
국민의 당은 호남 발판을 잃으면 분당의 명분도 사라진다.
가장 시급한 것은 호남 정치 세력을 단단하게 묶는 일이다.
그러나 아직은 기회가 남아 있다.
첫째는 호남 정파의 통합을 서둘러야 한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박주선 의원과 박준영 전 지사의 정파들과는 먼저 통합에 나서야 한다.
천정배 의원 측은 득보다 실이 많은 대상이다. 더 민주당에 복귀할 가능성도 있다.
둘째, 전북을 잡기에는 늦었지만 충청권은 남아 있다.
정운찬 전 총리를 차기 대선 후보로 옹립하는 카드가 대세 전환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
안 의원은 정치 개혁에 몰두하고 자리에 연연하지 않아야 지지를 얻을 수 있다.
본인이 주인공 노릇을 하는 한 안철수 신당은 성공하기 어렵다.
차기를 양보하면 차차기에 기회가 온다.
십고초려를 해서라도 정 전 총리를 영입할 수 있다면 단번에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다.
셋째, 구슬도 꿰어야 보배가 된다.
창당과 총선이 맞물려 있는 바쁜 와중에 중심을 잡으려면 조직의 가동율을 높여야 한다.
인재 영입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중책을 맡을 인사들의 역활이 조직 활동으로 자연스럽게 동화되어야 하는 것이다.
당을 이끌 수뇌부와 손발이 제대로 호흡을 맞추지 못하면 묘소 참배같은 짓에 시간만 허비하기 쉽다.
새로 영입하는 인사를 위해 당의 핵심 라인을 묶어 놓는 것은 어리석다.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할 뿐더러 더민주당의 반격을 받게 마련이다.
무엇보다 인철수 의원은 정치 개혁의 사명감으로 자신이 주인공이 아닌 한 알의 썪는 밀알이 되려고 해야 한다.
정치 프로가 되려고 하지 말고 신뢰받는 아마추어가 그의 트레이드 마크에 더 어울리는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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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무그꾸리의 아름다운 노래를 들었구먼, 감사합니다.
Nana Mouskouri(나나 무스꾸리)는 단아한 품위와
청순한 아름다움을 지닌 여가수로 1935년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태어나 오페라 가수의 꿈을 키우며 성장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대한 남다른 재능을 보인 Nana Mouskouri는 명문인 아테네 음악 학교에
입학해 성악을 전공하게 된다. 그러나 음악 학교의 졸업 시험을 앞두고 우연히
접하게 된 재즈 음악에 매료된 후 Nana Mouskouri의 인생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그리고 Nana Mouskouri는 Billie Holiday(빌리 할리데이)와
Duke Ellington(듀크 엘링턴) 같은 재즈 뮤지션의 음악뿐아니라 포크와
샹송 등 대중들의 심금을 울리는 다양한 팝 음악을 섭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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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na Mouskouri의 본격적인 성공은 미국 대중음악의
거목인 Harry Belafonte(헤리 벨라폰테)가 그녀를 정식으로
미국에 초청하면서 이루어졌다.
미국인들의 뜨거운 환호를 받으며 펼친
Nana Mouskouri와 Harry Belafonte의 1964년 카네기 홀 실황은 성황을
이루었고 유럽에 이어 미국 시장에서도 Nana Mouskouri의 인기를 이어나가게 한
디딤돌이 되었다. 공연장과 대학가를 중심으로 전미공연을 펼치며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Nana Mouskouri는 40년이 넘는 활동 기간 동안 한결같은 모습으로 전 세계에 걸친
그녀의 팬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그리고 은퇴기념 마지막 세계투어 공연의 일환으로
내한하여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공연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