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나병이 가시고 깨끗하게 되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0-45
그때에 40 어떤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와서 도움을 청하였다. 그가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하였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41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42 그러자 바로 나병이 가시고 그가 깨끗하게 되었다.
43 예수님께서는 그를 곧 돌려보내시며 단단히 이르셨다. 44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네가 깨끗해진 것과 관련하여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45 그러나 그는 떠나가서 이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퍼뜨리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드러나게 고을로 들어가지 못하시고, 바깥 외딴곳에 머무르셨다. 그래도 사람들은 사방에서 그분께 모여들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임신부님 강론
연중 제6주일, 2월 11일, 마르코1,40-45
“내가 하고자 아니 깨끗하게 되어라.”(마르1,41)
+찬미예수님
본 시리즈로 유명한 미국 배우 멧데이먼이 주연한 2013년에 제작된 “엘리시움”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영화에서 기억나는 장면은 엘리시움에 거주하는 사람은 MRI 모양의 힐링 머신안에 들어가 잠시만 누워있으면 순식간에 백혈병, 암 같은 모든 난치병이 짧은 시간 안에 완전히 치료되는 최첨단 의료기술의 혜택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만병통치 기계 덕분으로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어쩌면 몇십 년 후에 의료기술의 발달로 이런 기계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둘러보면 주위에 아픈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연세가 많아질수록 아픈 사람들이 더 많아집니다. 인간 삶이 생로병사의 과정을 거친다고 하지만 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하느님께서도 인간의 병에 대해 무관심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도 인간이 질병으로 고통받는 현실을 마음 아파하십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다양한 치유의 기적을 보여주시며 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몸과 마음을 위로하시고 치유해 줍니다.
어떤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와서 무릎을 꿇고 도움을 청합니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마르1,40)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의 이 외침을 들으시고, 그를 나병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십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바로 나병이 가시고 그가 깨끗하게 되었다.”(마르1,40-41)
나병뿐만 아니라 모든 병에 걸린 사람이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치유가 되길 바랍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40절)
오늘 세계 병자의 날입니다. 가톨릭교회는 병자들의 빠른 쾌유를 위하여, 또 병자들을 돌보는 모든 의료인을 기억하고 병자들에 대한 그들의 사랑과 책임감을 다지도록 기도합니다.
모든 사람은 서로 돌봄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특히 아픈 사람은 보살핌이 필요합니다.
“질병은 우리의 인간적 상황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고립되고 버려진 채로 겪는다면, 돌봄과 연민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질병은 비인간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다.”(프란치스코 교황)
질병을 앓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돌봄의 사랑입니다. 인간은 서로 돌봄을 통하여 아픔을 견뎌낼 수 있고, 힘과 용기를 가지고 질병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갈수록 돌봄의 부재 즉 무관심이 지배하는 곳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 이기심은 남을 돌보는 것을 꺼리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혼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님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혼자만의 구원, 혼자만의 기쁨, 혼자만의 잘 사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철학자 마틴 부머는 이 세상은 ‘나와 너’의 관계와 ‘나와 그것’의 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사랑은 나와 너 사이에 있다."라고 말하면서 '나와 너'의 관계를 통한 만남이 은총이요, '너'를 통해 '나'가 된다고 합니다. ‘나와 그것’의 관계는 무관심이요 사랑이 없는 무의미한 관계입니다. 나와 너의 관계는 서로 사랑의 관계요 서로 돌봄의 관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서로 사랑의 돌봄을 통해 나와 너의 관계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예수회 사제인 헨리 나우웬은 잘나가든 대학교수에서 라르쉬 공동체에서 아담이라는 장애우를 돌보는 일을 합니다. 그의 책 “돌봄의 영성”에서 말합니다.
“돌봄(care)이란 무엇인가? 이 말의 어원인 ‘kara’는 '애통하다, 고난에 동참하다, 고통을 나누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돌봄이란 병들고 혼란스럽고 외롭고 고립되고 잊힌 사람들과 함께 부르짖는 것이다. 즉 그들의 고통이 내 마음속에도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돌봄이란, 깨어지고 무력한 사람들의 세상속에 들어가 그곳에서 연약한 사람들끼리 교제를 나누는 것이다. 또한 고통당하는 사람들 곁에 있어 주되 상황이 호전될 가능성이 전혀 없을지라도 계속 같이 있어 주는 것이다.
돌봄은 인간의 모든 몸짓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그 몸짓은 우리 모두에게 서로가 필요하고 긍휼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용감한 고백에서 비롯된다.
돌봄이란 참 신비로운 것이다. 돌봄을 베푸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함께 연약한 모습으로 만나면 양쪽 모두 새로운 공동체를 경험한다. 둘 다 회심에 마음이 열려서 새로운 삶을 은혜로 맛본다. 돌봄이란 돌보는 사람과 돌봄을 받는 사람이 내적 치유와 해방과 변화를 경험하는 기회다.”
헨리 나우웬 신부는 장애우 아담을 만난 것을 하느님 은총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요한15,14) 그분이 명하시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6,36) 그리스도인은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비로운 사람은 서로를 사랑으로 돌보는 사람입니다.
헨리 나우웬 신부는 『돌봄의 영성』 책 말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돌봄이란 돌보는 사람이 상대로부터 하느님의 복을 받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복은 무엇인가? 조금이나마 하느님의 얼굴을 보는 것이다. 천국이란 결국 하느님을 보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얼굴에서 하느님을 볼 수 있고 우리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에게서 예수님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우리는 복이 절실히 필요한 존재다. 우리의 돌봄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복을 주려고 기다린다.”
사람은 서로 돌봄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사람은 혼자 사는 각자도생의 삶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로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서로를 위하고 아끼고 돌봐주는 돌봄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람은 서로 돌봄을 통하여 사랑으로 살아갑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으로 돌보듯이 우리 역시 하느님 사랑으로 이웃을 돌보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아멘
무태성당 이민락 라우렌시오 신부
첫댓글
+ 찬미예수님
문명의 이기가 발달 해 더 편한 세상이
되고 물질이 넘쳐 날 수록 세상은 점점
이기주의 의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 나만 ! , 우리 만 ! '을 생각하고 고집하는
길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 나와 그것 '이 아닌, ' 나와
너 '의 관계로 인간적으로 서로 사랑의
관계,서로 돌봄의 관계가 절실히
요구 되고 있습니다.
서로를 돌보는 관계는 베푸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함께 연약한 모습으로
서로를 필요로 하게 되고 ,긍휼의 은혜가
필요한 모습과 관계가 만나면 양 쪽
모두가 서로의 마음이 함께 열려 새로운
내적 치유와 해방과 변화를 경험
함으로서 , 각자도생 의 삶이 아닌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를
구성하게 됨으로서 서로를 돌보면서
살아가게 되는 새로운 경험 가운데
돌봄의 영성도 체험 해 보게 돼 기쁨도
함께 느끼면서 살아 갈 수 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얼굴에서 하느님을
볼수 있고,우리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에게서 예수님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돌봄의 행위가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몸짓 중 가장 아름다운 모습
이리라 생각 됩니다.
어릴때 한센병환자들을 보면 너무 무서웠습니다.코가 깨져 떨어져 나가고 손가락 발가락이 뭉그러지고 부스럼으로 어그러진 얼굴이 감추인 사이로 보일때 섬득 하기 까지 했는데 한달에 한번 성당공원 묘지 공터 가건물에 외국 수녀님들이 흰 수건으로 마스크를 하시고 손장갑을 끼고 그들에게 약을 나눠 주시며 그들에게 한센병은 나을수 있다. 자신의 상처와 닿지 않으면 옮기지 않는다시며 타자쳐서 나눠주고 서툰 한국말로 위로하며 위생관리를 꼭 교육하시고 미소로 돌보시어 가슴뭉클 했습니다.
이태석 신부님께서 뭉그러지고 망가진 발을 맨발로 지냄을 안타까이 여기며 일일이 맞춤 신발을 제작하여 신기시니 그들이 활짝 웃는 모습에 덩달아 기뻣습니다.
모두는 하느님의 자녀로 존중받고 돌봄받고 사랑받아야 마땅하옵니다.
저희도 서로를 위하고 아끼고 돌보며 사랑하며 살게 하소서.
고통과 질병과 절망과 고독에서 혼자 헤메이지 않게 하시고 그들곁에 함께 있어 함께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은총 누리게 하소서.
돌봄을 받는 이와 돌보는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 드립니다.
치유의 은혜 내려 주시어 더불어 하늘나라를 살게 하소서.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아멘.
+ 찬미예수님
아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