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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귀중한 삶의 보석을 아시나요? 갈1:6-10
오늘 주신 말씀 갈1: 6-10 말씀을 중심으로 [그리스도인의 가장 귀한 보석을 아시나요?]란 제목으로 말씀이 선포되어질 때 큰 은혜 받으시기 바랍니다.
갈라디아 교회는 바울이 제1차 전도 여행 때 세운 교회입니다.
바울이 갈라디아를 떠난 다음 이신득의 구원의 진리를 떠나 구원을 위해서는 할례와 율법준수가 필요하다는 유대율법주의자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는 죄인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대속을 불완전한 것으로 만드는 것인 동시에 결국에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저버리는 행위였습니다.
이에 바울은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저주하는 방식을 통해 그러한 그리스도의 구속 복음을 떠난 다른 복음을 좇는 엄히 질책하면서 그들로 다시 그리스도의 복음 안으로 돌아오기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 싶이 구원의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길뿐입니다. (7)
오직 바울 자신이 전한 복음만이 진리요,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가르침이라는 것입니다.
다원론적 구원의 가능성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가장 귀중한 보석은 무엇입니까? 금? 사파이어? 루비 ? 450캐넛다이아?
성도가 가장 귀히 여겨야할 삶의 열매, 삶의 보석, 인생목적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하나님의 자녀요 택한 족속이요 거룩한 성전으로 사는 것(요1:12)이 가장 귀한 보석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 이렇게 말씀합니다.
[영접하는; 엘라본 ]이란 말은 취하다, 가지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거나 영접 받는 것, 모셔 들인다는 뜻으로 ‘그 즉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자는 얼마든지’란 말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손님으로 오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주인으로 오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임으로써 구원은 집단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 사건임을 알게 한 것입니다.
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단순히 손님을 접대하는 것과는 차이가 납니다.
단순히 접대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자기 인생 속에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나를 불러 주시니 주님께 나아가 주님과 깊은 입맞춤을 하는 것이며, 주님 안에서 나온 피조물로 주님께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방법이 믿음 즉 그 이름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그 존재의 본질을 나타냅니다.
그 이름은 예수님의 존재 자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다는 것은 곧 예수님 존재 자체를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되 단 일회적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그분을 신뢰하고 그 분이 내 인생의 주인이며 하나님이심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음으로 자기 인생 속에 받아들인 이들은 매 순간 도마처럼 주 앞에 엎드려 ‘나의 주 되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는 고백을 해야 하며 , 한 순간도 스스로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성도는 언제든지 자신이 하나님의 합법적인 자녀가 되었음을 명심하고 권리를 주장하기보다는 먼저 의무를 다하여야 합니다.
이 권리는 바로 우리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자들이 하나님의 택한 족속이 된 것이, 자신이 노력해서 얻은 것으로 오해할 수 있으나, 이것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이 거저주시는 선물이요 전적인 은혜인줄 믿기 원합니다.
예수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놀라운 축복을 주십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건강한 사람과 병든 사람, 지식인이나 무학자, 유대인이나 이방인 이런 구분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로 차별이 없습니다.
아직도 아브라함의 혈통을 가진 자들만이 하나님의 택한 족속이요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으셨다고 오해했습니다.
아브라함의 혈통이라야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해야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실패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거나 최선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열심을 내었기 때문입니다.
엡2:8“ 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신 말씀처럼 예수의 이름을 믿게 된 것을 최고의 복으로 알고 감사하는 성도되기 원합니다.
예수 이외에 구원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은 없습니다.
예수의 이름을 믿는 모든 자에게 구원으로 인도하는 줄 믿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요 선택된 족속이요 거룩한 성전으로 구별된줄 믿기 원합니다.
구원받고 구별된 성도라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에 합당한 성도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언행심사가 예수의 향기를 나타내므로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의 삶을 사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둘째로 성도의 모든 행동의 최종적인 목적은 하나님 영광입니다.(고전10:31)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잘 살았다할 수 있을까요?
얼마 전 전도하다가 만난 어르신이 말합니다.
어떻게 살다보니까 칠순이 되어 이제 갈 때를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합니다.
그러면서 그래도 후회 없이 살았다 합니다. 그러면서 씁쓰레합니다.
허전해 합니다. 허무해 합니다.
동계올림픽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장 기쁨이 된 사람은 이승훈 선수입니다.
원래 쇼트 트랙 선수입니다. 지난 4월 국가대표 선수 선발전에서 선배들과 동료 모태범 등에게 밀려 탈락했습니다.
좌절하고 포기하고 절망하는 대신 새로운 활로를 찾았습니다.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종목을 바꾸어 국가대표로 선발되었습니다.
아직까지 한 번도 이루어보지 못한 동양선수들의 무덤이라는 5,000m , 10,000m 선수로 출전하여 5,000m에서 0,18초차로 은메달을 획득했습니다.
10,000m에서는 네델란드 선수의 실수로 올림픽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얼굴도 잘생기고 귀엽고 마음에 드는 청년입니다.
젊은 청년에게 몇가지 귀한 교훈을 얻습니다. 무엇입니까?
첫째는 올림픽 국가대표 선수가 되겠다는 어린 시절 일기장의 꿈을 이루기 위해 좌절하지 않고 종목을 바꾸어 국가대표 선수로 출전했다는 것입니다.
만약 좌절하고 절망하고 불평하고 포기했다면 이 영광은 없었을 것입니다.
둘째로 5,000m에서 0,18초로 은메달에 머물렀는데 조금만 더 힘을 냈다면 금메달도 가능했을 것이라고 기자가 질문하자 [만약 그렇게 했다면 다른 실수를 했을 것입니다]라고 담대하게 대답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아껴둔 힘이나 여력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생을 살아간다면 우리가 못할 일, 두려워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성공의 비결입니다.
세 번째로 10,000m 우승의 감격을 기뻐서 흥분하여 제갈성령(렬) 해설위원이 [주님의 뜻입니다. 주님이 주셨습니다]라는 해석을 했다고 해서 공영방송인 kbs가 뉴스 시간에 자격미달의 해설 운운하고 ,조계종에서 공식사과를 요청한다는 반응을 보였는데 그 다음날 쇼트3,000m 계주에서 우리낭자들이 실격을 당했습니다. 물론kbs나 조계종 때문에 실격되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제갈성렬 해설위원이 선수출신이라 아직 해설을 하기에 부족한 부분이 많았지만 특정종교 편향이라고 하룻만에 교체되는 것을 보고 씁쓸함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우리편이 이겼다고 기뻐서 소리치는 우리편에게 침이 튀겼다고 뺨치는 사람과 같습니다.
좋은 일에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할 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슬픈 일에 함께 안타까워하고 위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기까지 하고 본론으로 다시 돌아갑시다.
성도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왜 삽니까? 성도는 두 가지 목적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삽니다.
성도끼리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여 서로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 삽니다.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는 말씀은 성도에게 주어진 자유사용에 대한 최종 결론적 권면이요, 성도의 행동강령입니다.
성도라면 누구나 이 말씀을 한번쯤 들어 보았을 것입니다.
실로 성도의 모든 행동의 최종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를 죄에서 구원하신 이유가 성도들의 자유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소 요리 문답 제1문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이냐 묻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다’라고 대답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말은 바로 성도된 자의 삶의 가치요 행동강령입니다. 율법적으로 믿으란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한다면 이 세상에 문제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고린도 교회 우상제물 취식문제를 비롯한 각종 문제가 왜 발생했습니까?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지 않고 자기의 기쁨과 만족을 위해 한 까닭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하나님의 영광대신 이기적인 자기만족과 기쁨을 구하는 데서 모든 악이 발생합니다.
최초의 범죄도 사실은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자기의 이기적인 만족과 기쁨을 위하여 스스로 하나님과 같이 되려한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를 나의 구주 하나님으로 믿는 자들은 무엇보다 ‘하나님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나라를 위하여’란 삶의 기치와 행동강령으로 삼으시길 원합니다.
내 가정을 위하여 나의 출세를 위하여가 하나님을 위하여보다 앞서게 되면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면 우린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고 심지어 주를 위한 고난도 즐겁게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최고의 기치와 삶의 목적으로 삶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그렇게 미워하는 죄를 범하거나 싫어하시는 우상숭배나 말씀을 떠난 삶을 살지 않을 줄 믿습니다.
골3: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하십니다.
왜 사십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시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 원합니다.
어떻게 사십니까?
서로 사랑하며 배려하여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살아가는 성도되기 원합니다.
셋째로 어떤 경우에도 복음을 방해/왜곡하지 말아야 합니다. (갈1:8-9)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으리라” 합니다.
성경에서 다른 사람을 저주하는 것은 그 어떤 경우에도 선한 일로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시109:17-19“ 저가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기에게 임하고 축복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더니 복이 저를 멀리 떠났으며, 또 저주하시기를 옷 입듯 하더니 저주가 물같이 그 내부에 들어가며 기름같이 그 뼈에 들어갔나이다 저주가 그 입는 옷 같고 항상 띠는 띠와 같게 하소서.” 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바울사도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단호하게 저주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복음을 왜곡시키는 일이 그 만큼 무서운 범죄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그 어떤 악랄한 범죄행위보다 더 무섭고 용서받을 수 없는 천인공로할 범죄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가장 무서운 범죄로 살인을 듭니다.
세상을 놀라게 한 지존파 등 연쇄살인범죄조직과 살인한 사람에게는 사형과 같은 중벌을 선고합니다.
헌법 재판소에서 사형이 합헌이라는 판단을 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가 실질적인 사형금지국가가 되었지만 아직은 사형제도는 존속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인간의 생명을 인간이 판단한다는 것은 잘못되었지만 세상의 악한 사람들에게 죄를 지으면 죽을 수 있다는 경고의 의미로 존속시키는 것일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죽인 자의 생명을 존중한다는 것이 모순인 것 같습니다만 그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에 또 다른 생명을 죽이는 살인 행위인 사형집행은 더 이상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 안에서 살인보다 더 무서운 범죄가 있습니다.
그것은 단지 사람의 육체적 생명을 빼앗는 행위로서 피해자에게 그 이상의 해가 가해지지는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누군가에게 살해를 당했다고 영생을 잃어버리고 지옥에 떨어지는 일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왜곡시키는 일은 피해자들에게 살인의 결과가 주는 육체적 생명을 잃는 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영적인 생명을 잃게 됩니다.
영적 생명을 잃게 되면 영생을 잃어버리고 지옥에 떨어져서 영원토록 고통 받게 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그 어떤 범죄행위보다도 복음을 왜곡시키는 행위에 대하여 더욱 진노하시며, 그러한 자들에게 무서운 형벌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결코 복음에 우리의 생각을 더하여 그 복음을 왜곡시키는 사악한 자들과 부화뇌동해서는 안 됩니다.
베드로는 복음을 왜곡시키는 자들에 대하여 경고합니다.
벧후2:12“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한 것을 훼방하고 저희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낮에 연락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 점과 흠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복음에 대하여 우리의 생각을 더하여 그 복음을 왜곡시키는 일을 하는 사악한 자들과 함께 왜곡된 복음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성경이 가르치는 복음에 견고히 서서 흔들리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그것만이 우리가 이 사악한 세대에서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바울 사도는 10절에서 자신이 이제까지 일한 것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만약 그렇지 않고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일한 것이었다면 자신은 그리스도의 종이라 불림을 받지 못할 것이라 합니다.
하나님의 일군된 자들이 세상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갈 것인가?
무슨 일을 하든지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일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는 하나님의 종이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일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자기가 섬기고 있는 상급자를 위해 일하는 것이므로 하늘에서 아무 상급이 쌓이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거나 칭찬받으려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일하는 성도되기 원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대를 막론하고 세상에는 항상 거짓 진리와 그릇된 사상들이 있습니다.
거짓 진리와 사상들은 항상 참 진리보다 훨씬 그럴 듯하고 매혹적입니다.
시대별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선포된 바른 진리를 붙잡아야 합니다.
구약시대에는 선지자가 하나님의 계시(직통계시)를 받고 백성들에게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 하시기를. . . . . . "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지자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드리면 부국강병 (富國强兵), 부귀영화(富貴榮華), 태평성대(太平盛代)를 누리게 되고 선지자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드리지 아니하고 사람의 말로 받아 이를 순종치 아니하면 기근이 오고 염병(전염병)이 돌고 천재지변(天災地變)이 일어나고, 전쟁으로 페허가 되고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원리는 같습니다.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말씀하셨으나 사람의 말로 받아드린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드린 소수의 사람들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역사함으로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자가 되어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여 로마와 온 세상을 점령하게 되었습니다.
신약시대에도 원리는 같습니다.
목사가 받은 계시(啓示)(문서계시=성경말씀)로 설교할 때 이를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드리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고 이 말씀이 성도들의 심령 속에서 살아 역사 하여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6:63) 말씀합니다.
성도가 가장 귀히 여겨야할 삶의 열매, 삶의 보석, 인생목적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가장 사랑받는 귀한 신부가 되어 공중에서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삶의 열매를 맺는 귀한 보석 같은 성도는
첫째로 하나님의 자녀요 택한 족속이요 거룩한 성전으로 사는 것이요
둘째로 성도의 모든 행동의 최종적인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셋째로 어떤 경우에도 복음을 방해/왜곡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가장 좋고 흠 없고 티 없는 제자의 길을 가는 거룩한 성도를 축복하여 천국에서 큰 상급 주실 줄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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